> 뉴스 > 시각
     
할리우드 키드 이건희, 세운상가 키드 잡스
[이원재의 기업 & 기업人]이건희vs스티브잡스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이원재 economyinsight@hani.co.kr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HERI) 소장

스티브 잡스와 이건희, 두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이면서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그런데 이건희의 삼성과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아주 다르다. 삼성은 여전히 ‘관리의 삼성’이다. 일사불란하고 성장도 안정적이지만 재미가 없다.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기업으로 칭송받는다. 세상에 없는 제품을 자꾸 내놓으니 불안하기도 하지만, 매우 역동적이다.
두 사람은 경영 스타일도 다르다. 스티브 잡스는 꿈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신제품을 자신이 들고 나와 직접 발표한다. 제품 디자인은 하나하나 직접 지시한다. 이건희는 은둔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사무실에 나타나 업무를 지시하는 일이 거의 없다. 추상적 화두만 가끔 던질 뿐, 구체적인 경영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지만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삼성 안팎에서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는다.
두 경영자의 차이는 두 기업의 차이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서로 다른 두 기업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이어질 글은 삼성과 애플의 경영에 대한 본격적인 비교 분석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경영자 이건희와 경영자 스티브 잡스의 비교 분석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이 큰 두 경영자를 뜯어보고 배우고 넘어서야만, 한국 기업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우선 가장 원초적인 대목부터 짚어보자. 인간 이건희와 인간 스티브 잡스는 누구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들은 공통적으로 ‘컬트’(Cult)형 경영자고, 자유로운 영혼이다. 좋아하는 일에 꽂혀서 편집광처럼 파고드는 성격이다. 사랑하는 것 외에는 모두 하찮게 여긴다. 대체로 사람보다 사물에 더 큰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사랑도 미움도 많이 받는 사람들이다.

   
2010년 1월 미국 LA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를 참관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왼쪽).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

인간 이건희와 인간 잡스의 닮은 점
더 중요하게는,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기업을 통해 직접 만들고 구현하는 데 큰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천생 경영자인 셈이다. 그것도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 파란을 일으키고, 추종자들이 따르도록 만들어 ‘팬덤’을 불러올 수 있는 매력적인 경영자다.
‘You’ve gotta find what you love.’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서 강연한 제목이다. 젊은이들에게 ‘사랑하는 것을 찾으라’고 연설한 스티브 잡스가 젊을 때 사랑한 것은 무엇일까?
스티브 잡스는 16살이 되던 1971년, 5살 많은 고등학교 선배 스티브 워즈니악(워즈)와 함께 전자 장치를 만드는 데 몰두해 있었다. 워즈는 이미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기술자였다. 잡스와 워즈는 함께 ‘블루박스’를 만든다. 수화기에 특정 주파수를 보내 공짜로 장거리 전화를 할 수 있는 장치였다. 아이폰처럼 버튼 하나로만 작동되도록 만들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행복했다. ‘기성 체제’의 대명사인 전화회사의 비즈니스를 파괴한다는 히피적 만족감도 컸다.
스티브 잡스는 어릴 때부터 ‘컬트’를 형성하고 있었다. 명문 인문대학인 리드칼리지에 입학하고는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그러고는 서체 디자인에 심취했다가 환각제에 몰두하기도 했고, 동양철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첫 직장인 ‘아타리’에 취직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출장차 독일로 떠났는데, 일 처리 뒤 히말라야와 인도 전역을 헤매다가 승려복을 입고 돌아와서는 회사에 복직하겠다고 나타났다. 한번 몰두하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그의 컬트적 성향은, 나중에 단 하나의 디자인, 단 하나의 제품 라인으로만 승부하는 애플의 경영전략에까지 이어진다.
이건희가 젊은 시절 사랑한 것은 무엇일까? 이건희는 영화 마니아였다. 스티브 잡스가 창고에서 전자제품 만들기를 즐긴 ‘세운상가 키드’였다면, 이건희는 ‘할리우드 키드’였던 셈이다. 그의 영화 사랑 역사는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당시 제일제당 사장이던 아버지 이병철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아들 건희를 일본으로 보낸다. 혼자 떨어져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 있던 이건희는, 영화에 몰두하게 된다. 수업을 마친 후 극장으로 달려갔고, 휴일이면 재개봉관에 가서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7~8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았다. 이건희는 일본에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3년 동안 1200편 이상의 영화를 봤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깊이 빠지고 마는 ‘마니아’였고, 스스로 팬이 되는 ‘컬트’였던 것이다.
이건희의 또 다른 사랑은 ‘개’였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뒤, 삼성 비서팀 직원들의 책상에는 주석으로 만든 개의 형상이 놓여졌다. 그러더니 에버랜드에는 1992년 ‘국제화기획실’이라는 조직이 신설됐다. ‘진돗개 국제화’를 목표로 한 조직이었다. 10년 이상 노력한 끝에 진돗개는 영국 애견클럽인 케널클럽((Kennel Club)이 공인하는 세계 197번째 명견이 됐다. 이건희는 수명을 다한 자신의 애견을 위해 장례식을 치러주고, 에버랜드에 추모비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삼성의 맹인안내견 사업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삼성과 애플 키운 CEO, 누가 더 행복할까?
이건희는 일본에서 혼자 지내던 어린 시절, 외로움에 개를 기르기 시작했다. 그는 “개가 좋은 친구가 되었고, 사람과 동물 간에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동아일보사 펴냄, 1997). “나의 첫사랑은 페키니즈”(일본에서 처음 기른 중국산 애완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건희의 자동차에 대한 사랑 역시 유명하다. 에버랜드에 전용 트랙을 만들어놓고 스피드를 즐겼다거나, 수억원대의 벤츠 마이바흐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이 입방아에 오르곤 했다. 삼성은 그가 사랑했던 자동차 사업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여기까지 보면, 스티브 잡스와 이건희는 비슷해 보인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사물이나 동물이었다. 또 그들이 사랑한 사물은 당시에는 별난 취미였지만 미래 시장에서 엄청나게 성장하는, 컴퓨터·전자제품·자동차·개(한국 애견시장의 성장세를 보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한번 마음을 주면, 그것에 끝까지 몰입해 사랑했고 집착했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사랑하던 것을 기업에 심어 키우고 사업화하려 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사랑과 열정을 애플에 구현한 반면, 이건희의 열정과 상상력은 삼성에 완전히 구현되지 못했다. 어린 잡스는 ‘하나의 버튼만으로 작동되는’ 그만의 블루박스를 만들었고, 그것을 사랑했다. 어른이 된 잡스는 하나의 버튼만으로 작동되는 아이팟과 아이폰과 아이패드라는 제품을 만들어 성공시킨다. 한번 몰입한 디자인과 기술에 완전히 몸을 던지는 것이다. 애플은 그의 사랑이 각인된 기업이다.
이건희는 성공한 글로벌 기업 삼성의 회장이다. 그러나 그가 사랑하는 영화와 자동차를 사업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1993년 출범한 삼성영상사업단은 결국 문을 닫았다. 오랜 준비 끝에 출범했던 삼성자동차 역시 1997년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르노에 인수된다. 삼성 전체를 봐도, 영화와 개와 스피드를 사랑했던, 상상력과 창조성 넘치는 그의 인격이 ‘관리의 삼성’에 그대로 구현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 그 자체다. 매킨토시 컴퓨터와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잡스의 수족이며 분신이다. 잡스는 그 열정과 집념으로, 자신의 분신을 지구상에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삼성은 이건희가 아니다. 이건희는 아직도 사랑하는 것을 조직에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과 애플의 가장 큰 차이는 여기서 시작된다. 자신의 인격을 기업에 구현해 그대로 성공시킨 경영자와, 기업과 자신의 인격이 유리돼 있으나 큰 성공을 거둔 경영자. 둘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또는 성공적일까? 어느 쪽이 좋은 경영자, 좋은 기업인일까?


이원재는 한겨레경제연구소(HERI) 소장으로, 미국 MIT MBA 학위를 마쳤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이원재의 5분 경영학> 등의 저서를 펴냈다. 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을 거쳤다. 트위터 @wonjae_lee 페이스북 www.facebook.com/lee.wonjae.fb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원재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