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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시대, 중소기업 키워야 살아남는다”
[Interview]장마리 위르티제 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 인터뷰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이춘재 economyinsight@hani.co.kr

이춘재 부편집장
 
장마리 위르티제 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은 국내의 외국인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CEO로 꼽힌다. 알프스 인근 프랑스 투르에서 태어난 그는 큰 키와 파란 눈을 가진 전형적인 유럽인이지만, 제주도와 지리산, 소주, 막걸리에 반한 ‘한류 팬’이기도 하다.
그는 2006년 르노삼성자동차 대표이사로 부임한 이후 개인의 합리적 결정을 중시하는 유럽의 기업문화와 공동체를 강조하는 한국의 조직문화를 잘 조화시켜 지난해 르노삼성자동차를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 3위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까다롭기로 소문난 국내 소비자의 취향을 사로잡아 8년 연속 소비자만족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8년 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한 그는 당시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위해 국내 기업인들의 우려를 EU에 전달하는 등 적극적인 메신저 역할을 했다. 그는 7월1일 한-EU FTA 발효를 앞둔 한국 경제의 당면 과제로 ‘재벌과 중소기업의 협력’을 꼽았다. 그는 <이코노미 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EU를 비롯한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재벌들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5월20일 서울 을지로4가 유럽연합상공회의소 사무실에서 했다.

   
유럽연합상공회의소는 지난해 2월 전북 익산시와 식품 클러스터 교류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왼쪽부터 이춘석 국회의원, 이한수 익산 시장, 장마리 위르티제 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 조배숙 국회의원.

한-EU FTA로 인해 국내 농·축산업계가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하는 전문가가 많다.
내가 태어난 프랑스도 유로존 안에서 농업 분야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그럼에도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다. 식품 가공 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한국 농업도 마찬가지다. 관건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한국도 식품 가공 산업을 더 발달시키면 농업 분야가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한국 식품은 고유한 특성이 있다. 한우, 쌀, 소주, 막걸리 등은 쉽게 대체재를 찾을 수 없는 상품들이다. 물론 유럽산 와인이나 치즈 같은 것은 걱정이 좀 되겠지만, 이보다 훨씬 중요한 주식, 즉 매일 먹는 음식은 유럽에서 대체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와인이나 쇠고기는 큰 위협이 되지 않을까?
서울의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와인이 넘쳐나서 걱정하는 모양인데, 와인이 한국 주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인지 아나? 겨우 5% 정도다. 와인이 어떻게 소주나 막걸리와 같은 전통적인 주류와 경쟁할 수 있겠나. 쇠고기도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산이 유럽산보다 더 많이 들어온다. 한국은 지금 미국 쇠고기의 최대 수입국이다. 축산업계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미국산 쇠고기다. 유럽산 쇠고기는 미국산보다 가격이 비싸다.
FTA가 정말 한국과 EU 모두에게 ‘윈윈’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이 협정은 유럽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들도 유럽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두 지역의 경제협력을 가로막는 관세 등 무역장벽이 신속히 제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EU는 그동안 밀접한 경제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나는 한-EU FTA가 이런 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이 협정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최소 1~2% 증가하고, EU도 최소 0.05% 이상 증가한다.
지난해 EU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9%를 기록해, 중국(17%)과 일본(15%), 미국(9.6%)에 이어 네 번째로 한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됐다. 또한 EU는 한국에 두 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다. 지난해 한국 수출시장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11.3%였다. 이는 중국(25%)보다는 크게 못 미치지만, 미국(10.7%)과 일본(6%)에 앞서는 규모다. 그만큼 EU는 한국에 중요한 교역 상대다. FTA는 두 지역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것이다. 또 다른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한-EU FTA로 인해 한국의 무역 규모는 지금보다 15~20% 더 확대되리라고 전망된다.
이 협정은 한국의 실업난 해소에도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한국 시장에 대한 유럽 기업들의 투자 규모가 증가해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협정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25만3천 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한-EU FTA가 국내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유럽 기업들이 그동안 투자한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 좋은 기업들이다. 유럽 기업들은 한국 시장에 대해 큰 신뢰를 갖고 있다. 이들의 투자는 투기적 성격이 강한 단기 투자가 아니라, 비교적 장기적 투자를 한다. 따라서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거의 해마다 한국에 대한 큰 규모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유럽 기업들로부터 나왔다. 지난해 EU 지역 기업들의 한국 직접투자 규모는 약 30억9천만달러(약 3조3400억원)에 이른다. 유로존 위기로 예년에 비해 줄어든 것인데도 어마어마한 규모다. 1962년부터 계산해보면, 그 규모는 59억5500만달러(약 6조4400억원)에 이른다. 한-EU FTA는 두 지역의 경제 발전에 중요한 협정이다. 물론 FTA가 가져올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두 지역 모두에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확신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외신들은 한국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로 꼽는다. 진짜 그런가?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적 빨리 극복한 것은 무엇보다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았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이 안정됐고, 기업의 현금 사정도 양호했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도 괜찮았다. 여기에 중국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 가깝게 있었다. 이런 요소들로 인해 다른 선진국들에 견줘 위기를 빨리 극복한 것이다.
또 한국 기업들은 위기 때 보너스나 봉급은 깎았지만, 인력을 줄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을 때 시장의 수요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미국 기업들처럼 무작정 인력을 줄이면 노동자의 소득이 줄어 전체적으로 소비가 위축된다. 당연히 불황이 더 오래간다. 또 막상 경기가 회복됐을 때 시장의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지금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차가 선전하는 걸 봐라.
재벌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한국 경제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건 한국 재벌이 어떻게 진화하느냐에 달렸다. 재벌들은 과거에 과감하고 집중적인 투자로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 경제가 짧은 기간에 경이적 성장을 기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경제는 과거 조립 위주의 단순한 제조업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고도의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상품과 서비스에 의존하는 선진국형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런 경제 체제에서는 창조력(Creativity)이 중요한데, 이 능력은 큰 조직보다 작은 규모의 조직에서 더 쉽게 발휘된다.
따라서 한국 재벌들은 다음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큰 규모의 조직을 작은 단위로 쪼개서 각 조직에 최대한 자율성을 주는 것이다. 기업집단을 해체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기업집단으로 존재하면서도 내부 조직에 더 많은 자율성을 주라는 것이다. 그래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미국의 애플이나 IBM이 좋은 사례인데, 더 작은 규모로 조직한 뒤 각 조직에 충분한 자율성을 줘서 직원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그야말로 ‘큰 기업’이 될 수 있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과의 협력이다. 지금 대부분의 일자리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그게 세계경제 추세다. 따라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질식시키거나 성장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국내 재벌은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납품업체를 옥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친재벌’을 표방한 현 정부가 ‘동반성장’을 강조할 정도인데.
재벌과 납품업체의 관계는 단순히 정상적 거래를 의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한발 더 나아가 연구·개발(R&D) 결과 등을 납품업체들과 공유해서 이들이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납품업체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재벌의 경쟁력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그래야 FTA 시대에 살아남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다.
일종의 ‘재벌의 사회적 책임’인가?
그렇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은 기업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와야지, 법이나 제도 또는 정책 등으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대기업의 횡포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규칙을 정해 제대로 집행하면 된다. 나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다른 문제들을 잘 해결해왔듯이 말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참 뜸을 들인 뒤) 글쎄, 난 프랑스 기업인이라서 그의 경영 스타일이 (한국 경제에)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겠다. (웃음) 삼성그룹이 그동안 해온 것을 보면, 그는 존경받을 이유가 충분히 있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현재까지는) 잘 작동되는 것으로 보인다.

   
장마리 위르티제 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은 ‘가장 한국적인 외국인 CEO’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올해 초 영국의 경제 매거진 <이코노미스트>는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는 빈부 격차가 10년 뒤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을 말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바로 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다. 국가 간 불평등이나 한 나라 안에서의 빈부 격차 모두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인류는 과거에 비해 잘살게 됐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과거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승용차 등 첨단 제품을 사용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에 비해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분명히 모순이다. 각종 통계를 봐도 전세계적으로 빈곤 퇴치가 훌륭하게 진행돼왔다.
문제는 상대적 불평등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무상교육이나 의료보험, 실업수당과 같은 사회보장제도와 진보적 세금 시스템, 최저임금제 등의 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부 규제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 일해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꺾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경우를 보지 못했지만, 유럽의 몇몇 나라들은 차라리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유리할 정도로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그래서 한-EU FTA가 두 지역의 빈부 격차와 실업난 해소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본다. 외국자본을 유치해서 일자리를 창출하면 자연스럽게 빈부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제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의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이 조직의 목표에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다. 어떤 경제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훌륭한 리더는 평범한(Ordinary) 사람들을 탁월한(Extraordinary) 사람들로 만든다’고. 다시 말해, ‘개별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탁월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주 멋진 말 아닌가.
유럽 기업들은 어떤 인재를 원하나?
창조적이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유럽 회사는 분명히 한국 기업보다 덜 관료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건 매우 긍정적인 면이다. 하지만 조직이 좀 느슨하다 보니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능력, 바로 창조적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 젊은이들을 보면 이런 문화에 익숙지 못해서인지 문제가 생기면 좀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한국인은 직장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데, 직장 바깥에서는 그 능력이 좀 떨어진다. 하지만 직장 바깥에서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직장 바깥의 커뮤티니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더 나아가 당신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우군을 만들 수 있다.
 일과 삶을 조화시킬 줄도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는 일만 중요한 게 아니라 휴식과 놀이도 중요하다. (위르티제 회장은 지난해 여름 휴가 때 르노삼성자동차 직원들에게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휴가의 중요성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내 화제가 됐다.)
‘일벌레’는 싫어한다는 말인가?
거의 매일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기업이 원하는 것은 효율적으로 일하는 직원이지,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원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는 유럽과 어떤 차이가 있나?
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공자의 사상과 데카르트 또는 루터 사상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은 연장자에 대한 존경, 위계질서, 공동체, 집단적 가치 등을 강조한다. 또 학습, 즉 배우는 것을 중요시한다. 유럽은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한다.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물론 그 선택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전 총재가 성폭행 스캔들에 휘말렸는데.
자세한 전말을 잘 몰라서 뭐라고 말할 수 없다. 3~4년 전쯤인가 그가 IMF 총재가 되기 전 한국에 왔을 때 만난 적이 있다. 인상이 좋았다. 아무튼 그는 운이 나빴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미국의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 그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는 유로존 위기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그의 낙마가 유로존 위기에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고개를 단호하게 저으며)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 유로존이 부채 위기를 겪고 있지만,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운명이 좌우될 정도로 취약하지 않다. 물론 하루나 이틀 정도 아주 단기간에 영향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의 부채 위기로 인해 EU가 와해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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