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락 <한겨레> 경제부 기자

금융권에 따르면, 최 회장이 선물투자에 나선 시기는 2008∼2009년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면서 나라경제는 물론 서민들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시기다. SK와 최 회장은 정확한 투자 시기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서민들이 생활고에 빠져 있을 때 재벌 2세가 투기성 거래에 나섰다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탓으로 보인다.
하지만 투자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이 기간에 금융시장과 원자재 시장은 하루에도 코스피지수가 수십 포인트 오르내릴 정도로 변동성이 컸다. 선물거래 같은 변동성을 사고파는 파생상품 시장 투자자로선 투자 적기라고 할 수 있다. 투자 위험이 매우 크지만, 동시에 어느 때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시기다.

그가 대박을 꿈꿨던 이유는?
자연히 일차적인 궁금증은 최 회장이 과도한 위험을 떠안으면서도 대박을 꿈꾼 배경이다. 금융권과 SK 주변에선 투자 배경으로 SK 지배구조가 자주 도마 위에 오른다. SK는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주회사인 SK(주)의 지배권은 SK C&C가 갖고 있고, 최 회장은 SK C&C의 지분을 44.5% 확보하고 있다. 옥상옥 형태의 지배구조인 셈이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에선 SK C&C와 SK(주) 간 합병설이 종종 흘러나왔다.
문제는 SK(주)의 기업가치가 꾸준히 올라간 탓에 두 회사가 합병할 때 추정되는 최 회장의 지분율이 20%대로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SK(주)의 주가는 지난해 8월엔 9만4천원 선에 머물렀지만, 올해 5월 들어선 20만원보다 높은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다. 최 회장으로서는 두 회사의 합병 전에 그룹 지배권 유지·강화를 위해 추가 지분 확보 자금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SK네트웍스와 SK가 보유한 SK증권 지분(30.4%) 처리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최 회장이 무리한 투자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SK는 2007년 지주회사로 전환했지만, 금융사인 SK증권을 아직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 자회사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지금은 유예조항 때문에 SK증권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유예 기간이 끝나는 오는 8월 말까지는 보유 지분을 처리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SK증권 지분을 시장에 내다파는 것이지만, 최 회장이 해당 지분을 사들여도 공정거래법 위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SK 고위 관계자는 “어떤 형태로든 SK증권을 시장에 내다팔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분석은 개연성은 있지만 뚜렷한 인과관계는 없다. 일단 SK(주)와 SK C&C 합병을 위한 자금 마련용이었다는 분석은 두 회사의 합병을 전제로 한다. SK로선 현재의 옥상옥 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은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법적 의무는 없다. 당장 개선해야 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최 회장은 현재 SK C&C를 통한 그룹 지배만으로 적대적 인수·합병 등 경영권 위협에 방어할 수 있는 안정된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SK증권 지분 처리 문제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정 적용을 받지 않는 SK C&C나 SK(주) 지배 아래에 있지 않은 다른 계열사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의 투자 배경은 최 회장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베일 속에 가려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1천억원은 누구 돈?
최 회장 선물투자 사건의 본질은 투자 과정의 적법성 여부다. SK 쪽도 이 부분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최 회장이 투자 배경에 대해 “개인적인 용도”라고 밝힌 것도 자금 출처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방어적 성격이 짙다. 일단 최 회장 쪽은 투자금에 회삿돈은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회삿돈이 들어갈 경우 배임·횡령 등의 혐의를 받을 수 있다. 현재까지 최 회장의 투자금에 회삿돈이 들어갔다고 볼 만한 흔적은 드러나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투자를 위한) 최 회장 개인 자금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말부터 SK 계열사에 대한 자금 흐름을 들여다본 국세청 쪽도 위법 여부에는 묵묵부답이다.
실제 최 회장은 SK 계열사로부터 받은 배당액만 최근 3년간 300억원에 이른다. 2009년 2월 SK(주) 103만 주(지분율 2.19%)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이 920억원이다. 게다가 지난해 9월 SK C&C 지분 401만 주를 담보로 우리투자증권에 열어놓은 신용한도액은 2천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최소한 최 회장이 돈이 없어 회삿돈을 투자금으로 전용했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 회장이 지배권의 핵심 자산 중 하나인 SK C&C 지분을 담보로 신용공여를 받은 부분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신용공여 계좌에서 빼간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SK에 대한 최 회장의 지배권에 직접적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4월25일 이 사실을 지적하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선택”이라고 했다.
선물투자에 들어간 투자금이 모두 최 회장의 개인 자금이라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일단 이번 투자에 들어간 자금 중 일부가 미신고 소득이라면 과세 당국이 세금 추징에 나설 수 있다. 이번에 드러난 선물투자 외에 또 다른 투자가 있으면, 그에 따라 발생한 이익에 대한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일단 SK 쪽은 미신고 소득은 없다고 말한다. 
 
왜 차명계좌를 이용했나?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3월10일 오후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최 회장이 선물투자를 차명계좌로 한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SK는 명의를 빌려준 쪽이 회사 내부 인사가 아닌 최 회장과 가까운 인사라고 밝혔다. SK는 “합법적 과정을 거친 단순한 차명”이라고 밝혔다. 현행 금융실명제법에선 계좌 명의자의 동의 없는 차명계좌에 한해서만 과태료 처분을 한다.
투자 과정에 불법성이 없었다는 SK의 설명에 따르면, 최 회장의 지인인 계좌 명의자의 동의를 얻어 차명계좌를 개설했고, 선물투자는 이 계좌를 통해 이뤄졌다는 말이 된다. 설사 최 회장이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했더라도 처벌 대상은 최 회장이 아니라, 최 회장이 거래한 금융회사와 임직원이 된다. 차명계좌 존재만으로는 최 회장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차명계좌를 사용한 목적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재벌들이 차명계좌를 사용할 때는 소득을 숨겨 세금을 탈루할 목적이거나, 자금 용처가 정치자금이나 로비용 등 불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쉽게 말해 검찰 등 사정 당국에 꼬리를 밟히지 않으려고 차명계좌를 사용해왔다. 이에 대해 SK 쪽은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 다만 최 회장이 업무상 바쁜 탓에 본인 명의의 계좌로 거래를 하지 못한 것 같다는 어정쩡한 설명만 할 뿐이다.
투자 과정의 적법성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SK 쪽은 검찰이나 국세청, 금융 당국 등에서 최 회장의 선물투자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불법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실패한 투자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금융 당국의 조사 관행을 미뤄볼 때, 금융 당국이 조사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법이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검찰과 국세청이 불법 혐의를 포착했음에도 추가 조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조사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SK와 검찰 주변에선 최 회장의 선물투자와 관련해 김준홍이란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 김씨는 주가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로, 2000년 초반부터 워커힐호텔과 SK텔레콤 등 SK 계열사에서 임원으로 재직해왔다. 특히 김씨는 최 회장과 사촌형제간인 최창원 SK가스·케미칼 부회장과,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최창원 부회장의 서울 여의도고 2년 후배이기도 하다.

검찰 수사 나서야 ‘진실 규명’
이렇게 얽힌 인맥 탓에 김씨가 SK 가문의 돈을 관리해왔다는 말도 금융권엔 상당히 퍼져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김씨가 대주주로 있는 창업투자회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SK 계열사 자금 2800억원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 꼽힌다. SK 쪽은 “정보기술(IT)과 콘텐츠 분야의 중소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대기업인 SK의 거액 투자금을 끌어온 것 자체가 SK 내에서 가지는 김씨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김씨는 또 다른 회사의 주가조작 사건에 휘말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김씨의 손을 거쳐 최태원 회장 등 SK 돈이 부정한 방법으로 운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내놓는다. 이 부분에 대해 SK 쪽에선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최태원 회장 돈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재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법 당국은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시장과 SK 안팎에선 여러 가지 정황과 개연성을 근거로 한 수많은 의혹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의혹의 중심에 선 최 회장이 억울한 피해자인지, 아니면 의혹이 진실인지는 결국 사법 당국과 금융 당국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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