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 한신대 일본지역학과 교수
　
연금은, 받은 이들은 소수지만 2천 년 전에도 있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군인과 왕, 귀족의 주변 인물이 그들이다. 로마에서는 군인으로 20년 근무하고 예비역 5년을 마치면 평생 연금이 지급됐다. 중세시대에는 퇴직한 신부나 신도가 재직 중의 기여도에 따라 교회로부터 ‘코로디’(Corrody)라는 사적연금을 받았다. 16세기 말에는 영국 해군에 채덤금고가 설립돼 부상자와 퇴역자, 유족을 지원했다. 미국은 18세기 후반 남북전쟁 참가 상이군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했다. 이들 직역연금이 공무원과 교원으로 확산돼 영국·미국 등 주요국의 군인·공무원 연금의 원형이 되었다.  
1653년 프랑스에 도입된 톤틴연금(Tontines Pension)은 사적연금으로 생명보험의 기원이 되었다. 의사 출신의 은행가 로렌조 톤티가 고안한 제도로 정부나 도시, 유력자가 설립했는데 가입자가 오래 살수록 수익이 컸다. 공공 프로젝트나 군사 목적의 자금 조달에 사용되면서 공식적으로 폐지됐음에도 유사한 제도가 이어졌으나, 제1차 세계대전 뒤 시들해졌다.
근대적인 사회보장연금(공적연금)은 1889년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노령·장애보험이 시초다. 정규 생산직 노동자와 저소득 사무직 노동자가 가입 대상인데, 도입 목적은 당시 세력이 커지고 있던 사회주의 급진세력을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이후 각국은 앞다퉈 공적연금을 도입했다. 대부분은 적립기금이 없는 부과 방식 연금이었다. 오늘날 적립기금을 지닌 나라는 일본, 캐나다, 미국, 싱가포르, 한국 정도다. 많은 나라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출산·고령화 위험에 노출돼 부과 방식을 부분 적립 방식으로 바꾸고, 공적연금을 줄이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퇴직연금은 기업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뒤 금융기관 매개 형태로 바뀌었다. 자사(自社)연금은 17세기 일본에서 시행된 ‘노렝와케’가 효시이며, 서구에서는 미국 아메리칸익스프레스사의 확정기여형 연금이 시초다. 현대식 퇴직연금은 미국이 세제 우대 퇴직연금을 도입하고(1942), 제너럴모터스(GM)가 채택하면서(1952) 보급이 확대됐다.
　
근대식 연금제, 일제강점기 때 도입
우리나라 연금사를 잠깐 살펴보자. 초기 형태로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70여 년간 시행된 ‘과전’(科田·1391~1466)이 있다. 과전은 <맹자>에 나오는 사자세록(仕者世祿), 즉 벼슬한 이에게 당대는 물론 대를 이어 녹봉을 준다는 개념의 제도로, 수조권(收租權)을 (퇴직) 관료에게 허용한 토지다. 이처럼 관료의 노후 보장은 옛날부터 왕과 법의 책임이었다.
토지 부족으로 과전이 폐지된 예종 1년(1469)에는 ‘봉조하’(奉朝賀) 제도가 만들어져 종이품 이상 70살 퇴임 관료에게 종신 녹봉을 지급했다. 초기에는 정원(15명)이 있었으나 나중에는 없어졌다. 이는 중국의 서한에서 명까지 시행된 관리치사(官吏致仕)가 그 뿌리다. 청대에는 퇴직 연령이 60살로 낮아졌다.
이후 근대식 연금제도가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일부 군인과 공무원이 조선총독부에서 ‘은급’(恩給)을 받았다. 일제의 은급은 육군과 해군 퇴역자에게 지급하기 위해 1875년 도입했고, 1884년부터 문관에게도 적용했다. 일제강점기 때 군인·군속·공무원으로 근속한 한국인 은급자는 많지 않았다. 지급 대상이 군인과 군속, 관(官) 이상의 상위직 공무원(교직원 포함)이고, 최단 근속 기간이 17년(경찰과 교정직 12년)이었기 때문이다. 
해방 뒤 최초 공적연금인 공무원연금이 1960년 1월에 도입됐다. 1963년에는 군인연금이 공무원연금에서 분리돼 독립했고, 1975년에는 공무원연금에 준하는 내용을 지닌 사학연금을 도입했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연금은 1974년 국민복지연금으로 도입될 뻔했으나, 제1차 석유 위기로 시행이 보류됐다. 이후 1988년 1월에 국민연금으로 이름을 바꿔 도입했다. 당시 적용 대상은 종업원 10명 이상 사업장이었으나 1992년 5명 이상, 1995년 7월 농어촌 지역, 1999년 4월 도시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취업 중인 대다수 국민에게 적용했다.
보험료율은 1988~1992년 3%, 이후 5년간 6%, 1998년부터 9%다. 급여 수준은 40년 가입 평균소득자 기준으로 소득대체율 40%다. 초기 소득대체율은 70%였으나 1998년 말 개정으로 60%, 2007년 7월 개정으로 50%(2008), 이후 단계적 인하를 거쳐 2028년에는 40%가 된다. 소득대체율이 낮아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역할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2006년5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겨레신문사와 고령화사회희망재단 주최 ‘퇴직연금 순회토론회’.

개인연금, IMF 경제위기로 다수 해지
이처럼 장래에도 국민연금의 역할이 제한적일 것으로 기대되면서 퇴직연금·개인연금 등 사적연금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는 개인연금이 퇴직연금보다 먼저 도입됐다. 금융실명제(1993년 8월)에 따른 가계저축 감소 상쇄가 목적이었다. 초기에는 10가구 중 4가구가 가입할 정도로 인기 상품이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다수가 해지했다. 이후 2001년 2월 신상품인 연금저축을 도입한 뒤 2000년대 중반부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개인연금 수급자는 2030년에도 동일 연령층의 10% 전후에 머물 전망이다. 
퇴직연금이 가장 늦은 2005년 말에 도입된 것은 1953년 5월 도입된 법정 퇴직금 때문이다. 이 퇴직금이 퇴직연금 못지않게 퇴직 뒤 일정 기간의 소득보장 기능을 수행해왔다. 특히 공기업과 대기업 근로자들은 퇴직금 누진제 등 제도상의 보장 장치가 두툼해 퇴직연금 도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법정 퇴직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민간 중소기업 근로자가 50%에 달하면서 이 문제의 해소책으로 퇴직연금 도입이 결정됐다.
도입 뒤 5년이 경과한 2010년 말 기준 가입자는 239.4만 명(9.45만 사업장), 가입률은 27.4%, 사업장 기준 도입률은 6.6%로 추정됐다. 적립금은 29.2조원이며, 구성 내역은 확정급여형(21.0조원) 72.0%, 확정기여형(5.2조원) 17.7%, 개인형 개인퇴직계좌(IRA·2.5조원) 8.5%, 기업형 IRA(0.5조원) 1.9% 순이다. 확정급여형이 강세인 이유는 연공제 중심의 대기업과 공기업 근로자들이 수익성보다 안정성에 초점을 맞춰 급여 수준이 미리 정해진 확정급여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미래 연금 전망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저출산과 고령화, 경제성장률 저하다. 지금 같은 상황이 한동안 지속되면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 따라서 인구와 경제성장률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선제적으로 연금급여 축소, 보험료 인상, 수급 개시 연령 상향 등 법제 개정에 나서야 지속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다. 아울러 장차 후세대가 늘지 않을 전망이므로, 향후의 은퇴 세대에게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보완할 사적연금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중·저소득층이 사적연금에 부담 없이 가입할 수 있게 보조금, 세제 혜택 등 유인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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