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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만 시간 여유, 재인생 로드맵 짜라!
[Special ReportⅡ]호모 헌드레드 시대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주명룡 economyinsight@hani.co.kr

‘호모 헌드레드’ 시대, 은퇴를 다시 생각한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는 ‘곡강시’(曲江詩)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고희(古稀), 일흔 살은 한자 뜻 그대로 ‘매우 드문’ 나이였다. 물론 옛말이다. 이제 두보의 시는 수정돼야 한다. 이른바 ‘호모 헌드레드’(100살 인생) 시대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호에서 ‘은퇴 목표 달성을 위한 현명한 10가지 길’을 특집으로 다뤘다. <타임>은 “퇴직연금, 국민·개인연금, 개인저축이라는 3개의 다리를 가진 새로운 의자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은퇴는 우리에게 다시 찾아올 새로운 인생 황금기가 될 수도 있다. 이제 얼마나 오래 살지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꿈을 다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_편집자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회장

퇴직은 벼랑 위에서 거친 세파의 사회로 뛰어내리는 일이다. 퇴직 시기가 다가오면 우리는 몹시 동요한다. 누구나 한 번은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삶의 과정이다. 잠깐 동안의 자유 낙하를 경험하는가 하면, 사회의 날바닥에 사정없이 내팽개쳐진다. 그리고 정도에 따라 퇴직의 후유증을 달래기 위한 회복 기간에 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얼마 뒤 다시 그 벼랑을 올라가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몇 개월이나 몇 년, 혹은 영원히 다시 생의 대열에 끼지 못한 채 노년기를 맞게 된다.
50~60대에 퇴직과 함께 오는 ‘제2의 사춘기’는 중년과 노년 사이의 전환기다. 자기 생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이 부여되고,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사춘기다. 제2의 사춘기를 맞으며 우선 해야 할 일은 이런 전환기에 대한 ‘자아 인지’다. 은퇴생활이 ‘에덴의 동산’ 같을 것이라는 판타지와 사회 현실의 괴리를 빨리 깨야 한다. 특히 퇴직 전 괜찮은 사회생활을 해온 퇴직자들이 과거의 신분에 매달려 퇴직의 벼랑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현상을 탈피해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변하던 10대 때의 별을 좇는 꿈이 아니라, 이제는 살아온 과정과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엮어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제2의 사춘기여야 한다. 그 꿈은 먼 데 있지 않다. 어느 날 아침 베란다 화분에서 꽃을 발견하듯 근처에서 그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2007년 3월 인천시 부평구의 한 태권도 도장에서 할머니들이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있다.

늙지 않고 죽는 시대는 지났다
은퇴란 없다. 은퇴는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대한은퇴자협회 캐치프레이즈)이다. 이제까지 해온 일을 멈추고 다시 새로운 길로 출발하는 것이다. 한 번 은퇴로 생을 끝내는 사람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두세 번 또는 여러 번 은퇴하는 사람도 있다. 축구선수 박지성이나 피겨스케이터 김연아의 은퇴설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들이 젊은 나이에 은퇴한다 해도 남은 인생을 의미 없이 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은퇴’라는 단어는 대단히 값지다. 은퇴는 적어도 괜찮은 직업에서 평생을 종사하다 물러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호칭이다. 이제 직장에서 퇴직한다면 길고 긴 생의 전 과정에서 잠시 첫 번째 정류장에 들어서는 것이다. 어떻게 재정비하고 가다듬고 다음 역을 향해 출발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
삶은 순환한다. 우리 평균수명은 80살을 넘어서고 있다. 수명이 50~60살을 맴돌던 시절의 ‘선배 세대’들은 지극히 단순한 일직선적 생활 패턴을 유지했다.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의 교육기에서, 생의 전선에 나서서 가족을 이루며 삶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2단계, 그리고 퇴직기로 넘어가는 3단계로 된 단순한 생의 영역이었다. 미국의 베이비부머(1955년~63년생)들을 조명한 시사주간지 <타임>은 “늙지 않고 죽어갈 뿐”(People did not age, they died)이라고 표현했다.
우리의 생활양식은 수명 연장,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년층 인구 증가, 그리고 생활양식 변화에 따라 ‘은퇴와 새로운 출발을 반복하는 순환적 삶의 형태(Cyclic Life)’로 변하고 있다. 다시 여생계획서 로드맵을 그려보자. 단기간 국내 여행을 떠나도 우리는 여행 준비를 한다. 퇴직 뒤 남은 긴 여정을 살아가려면 상당 기간 준비가 필요하다. 그 여정의 첫 번째 작업은 ‘이제부터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이제부터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하는 과정과 목적지를 향한 생을 설정하는 것이다.
‘나 찾기’(Who am I?)를 해야 한다. 퇴직 이후 삶의 방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작업은 지속적으로 나를 추구하는 일이다. 종이에 큰 원을 그린다. 그리고 가운데에 ‘나’를 써넣고 나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써보자. 시간을 두고 써나가다 보면 자신의 본질에 대한 모습이 보일 게다. ‘내가 누군가’에 대한 답을 찾게 되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나아가 당신이 선정하는 ‘생의 선택’(Life Choice)을 정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못다 한 것,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생의 선택 방향을 정해야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이다. 만약 자신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일해야 한다면 그 역시 그 부분에 대한 생의 선택을 정해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정년 뒤 평균수명을 산다고 하면 우리는 대략 12만 시간의 여유 시간을 갖게 된다. 하루 24시간 중 13시간을 취침·식사·운동·친구만나기·독서 등 잡다한 일상생활에 쓴다면, 나머지 11시간은 개인 시간이다. <생을 끌어안아라>의 저자 랠프 워너는 “바쁘게 살라”고 조언한다. 그는 “취침 전 머리맡에 내일 할 일을 빽빽이 적은 메모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활동 시절은 지정된 공간이 늘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은퇴 뒤 상황은 달라진다. 집으로 돌아온 가장은 이제까지 자신의 공간으로 알았던 가정에 아내의 그림자가 크게 느껴지고, 자식이 대하는 가장의 위치도 예전과 다름을 깨닫게 된다. 사회적 공간, 가정 내 공간 확보를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 건강의 키워드는 ‘다이어트’와 ‘체력단련’이다. 이는 적당한 영양 섭취와 운동을 통한 규칙적인 체력단련을 의미한다. 돈은 많을수록 좋다. 아마 돈이 싫은 사람은 없을 게다. 더구나 퇴직 뒤 경제활동이 원활치 못한 대다수 한국 은퇴층에게 돈은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자신의 국민연금 가입뿐만 아니라 배우자나 자녀의 연금 가입을 생각해볼 일이다. 물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가입도 필요하다. 하루 커피 한 잔 가격의 연금 가입으로 30년 뒤 1억원 이상의 자금이 적립된다는 광고는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젊어서 노년을 준비하는 일은 절대 게을리해선 안 된다. 그러나 잔칫날 잘 먹으려고 무리하게 노후자금을 준비하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자고로 컨설턴트라 부르는 사람들은 ‘10억원이 없다면 여러분의 노후가 비참하게 될 것’이라고 과장해 말하는 것이 통상적인 수법이다.
대한은퇴자협회가 ‘새로운 긴 여정,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교육을 할 때 강조하는 부분은 ‘일·봉사·여가’의 3분화된 삶이다. 우선 ‘일’이다. 5년 전 모 금융기관과 대한은퇴자협회가 공동 포럼을 연 일이 있다. 주제는 ‘70이 새로운 50대’였다. 건강한 퇴직 세대들이 경제적 문제가 없더라도 남은 30~40년을 할 일 없이 보낸다는 건 개인이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우리의 차세대에게 복지 부담을 떠넘겨야 할 처지에서, 일할 수 있는 건강한 노년층이 파트타임이라도 해 사회참여를 한다는 건 바람직하다. 일자리 참여는 노년기에 찾아오는 사회적 소외감을 없애주고, 건강한 생활 체험과 경제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소득을 올리는 길을 열어준다. 봉사는 은퇴 세대가 즐겁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평생 경험해온 전문지식을 후배에게 전할 수 있는 기회이며, 봉사를 통해 삶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더 많은 기쁨을 느낀다.

   
2008년 서울 시내의 한 당구장에서 노인이 당구를 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가’다. 흔히 ‘레저’(Leisure)로 부르는 여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퇴직 뒤 남은 생애가 온통 여가가 되면 이는 살아서 숨만 쉬는 무의미한 생존일 뿐이다. 여가란 할 일이 있는 생의 한 과정에서 잠깐의 여유를 찾는 ‘짬’ 또는 ‘쉼’이어야 한다. 퇴직 뒤 하루 24시간이 여가라고 생각하면 얼마간은 좋겠지만 곧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일과 봉사, 그런 생활을 통해 잠깐씩 갖는 쉼이 진정한 여가다.

인생은, 끝나야 끝난 것이다!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으로 들을 수 있는 대한은퇴자협회의 히어로 송(Hero Song)인 <우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후렴에서 “끝나야 끝난 거다”라는 구절을 반복한다. 은퇴는 끝이 아니다. 은퇴는 우리 생의 마지막 부분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잠깐 또는 얼마 동안 머무는 한 부분이다. 삶은 그 중간 역에서 새로운 계획으로 재충전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는, 순환하는 연속선이다. 노년층 권익단체인 ‘그레이 팬더스’(Gray Panthers)의 설립자이며 독설가로 유명한 미국의 매기 쿤은, 65살에 단체를 세워 90살이 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는 “섹스와 배움은 죽어서 근육이 경직될 때까지”(Sex and Learning until rigor mortis)라는 말을 남겼다. 대한은퇴자협회의 열성 회원인 울산의 김창원씨는 74살의 현역 최고경영자(CEO)다. 현대조선중공업에서 정년퇴직 뒤 무료하게 지내다가 동기 12명과 고령자 기업을 세워 지금까지 왕성하게 기업 활동을 하고 있다. 나 역시 평범한 시민으로, 오랜 미국 생활에서 사회참여의 방법을 깨달아 ‘생의 선택’을 했다. 한국으로 역이민해 대한은퇴자협회를 설립하고 10년째 봉사하고 있다. 은퇴한 뒤에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얼마든지 사회에 유익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은퇴는 절대 인생의 끝이 아니다. 우리 인생에 ‘Re-’을 접목해 은퇴(Retire)를 재출발(Restart), 재생(Regenerate)으로 바꾸자.
karp@karp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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