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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거부한 여인’ 껴안아
[Life]아프리카 소액대출 체험기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라이너 루이켄 economyinsight@hani.co.kr

라이너 루이켄 Reiner Luyken <디 차이트> 해외 특파원

시에라리온의 유일한 공항인 룽이공항은 길다운 길은 찾아보기 힘든 습지대에 있다. 공항에서 마케니까지 자동차로 이동한 4시간은 고문이나 다름없는 고된 여정길이었다. 4시간을 달리는 동안 도로는 질벅거렸고, 도로에 파인 구멍과 무릎까지 오는 물구덩이와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시에라리온의 우기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지만, 습도가 높아 상당히 후텁지근했다. 마치 강렬한 햇살이 도로 양옆에 있는 무성한 덤불에서 지난 몇 달간 내린 비를 다시 빨아들이는 듯했다.
내가 식당에 들어갔을 때 쿰바 무어는 음식 나오는 창구 뒤에 서 있었다. 무어는 당황한 듯 인사하며 컨테이너에서 베란다로 나왔다. 무어는 자리를 권하며 식사하겠느냐고 물어보았다. 때는 오전 11시였다. 나는 전혀 배고프지 않았지만 “네”라고 답했다. 무어는 컨테이너로 들어가서 쇠고기에 짙은 녹색 소스를 끼얹은 요리를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그릇에 내왔다. 고기요리가 매운지 밥이 산더미만큼 나왔다.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은 뒤, 무어는 옆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나를 바라보았다.
무어는 자신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무어는 빈곤에서 가족을 일으켜세우리라는 희망으로 2년 전 이 식당을 열었다. 무어의 아버지는 11년간 5만여 명의 사망자를 내고 2002년에 종식된 내전 중에 사망했다. 무어는 14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14살이라니 너무 어린 나이였죠.” 그녀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에라리온 여성의 평균 출산율은 6명이다. 무어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에서 멈추었다. 방학 중인 아들과 딸은 식당 일을 돕고 있었다. 16살인 아들 로렌스는 벌써 어른티가 나고, 14살 딸 루스는 10대 청소년답게 반항적이면서도 서툴러 보였다. 무어는 두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무어는 호텔학교를 졸업했다. 호텔학교에서 고객서비스 개념을 배운 무어는 자신의 식당을 찾는 손님이면 누구나 진심으로 서비스를 받고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도록 노력했다. 식당을 개업한 첫날에는 15명, 둘쨋날엔 17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지금은 하루에 최대 300명까지 손님이 오며, 그중 적잖은 수가 단골이다. 무어는 지역 라디오방송사에 몇 분짜리 광고도 냈다. 또한 저개발국을 지원하는 원조단체를 찾아가서 식당을 홍보했다. 이 단체의 직원들은 대다수 원주민들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다. 점심시간이면 영국인과 미국인, 일본인이 그녀의 식당을 찾아왔다. 그즈음 무어는 식탁 3개와 의자 7개에 불과한 식당을 확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수입이 적어 식당을 확장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무어는 마케니의 한 은행에 300만리온(약 720유로)의 대출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MBC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눈물>의 한 장면.

이자율 24%, 사채업자와의 차이점은?
무어와 테이블에 함께 앉은 유럽인 채권자인 나는 시에라리온의 여느 은행가들과는 달리 손목시계도 차지 않았고, 노키아의 최신 휴대전화도 갖고 있지 않았다. 여느 유럽인 채권자들과는 달리, 나는 다음날 길거리의 이발소 목조 노점에서 저렴하게 이발했다. 무어는 이런 내가 유럽인 채권자에 대한 통념에 비춰볼 때 이상해 보인 모양이다.
그래도 무어는 내가 지급한 대출금 덕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식당을 개업하기 전 이 도시의 반대편에 있는 한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그 레스토랑은 호텔 야외 수영장 옆에 있었다. 주고객인 다이아몬드 거래상들과 저개발국가 원조단체 직원들은 호텔에서 하루 묵는 데 70달러 이상을 거리낌 없이 지출했다. 무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하루 1달러를 벌었다. 그녀는 키바(Kiva) 대출금이 자녀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지 모른다고 여겼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무어는 계속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손님에게 음식을 서빙하고, 도로 맞은편에 있는 시장에서 채소를 사오기도 했다. 매일 새벽 4시30분이면 방 2칸짜리 집에서 나와 보통 밤 9시 전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무어는 한 번씩 쑥스러운 듯 웃으며 자신이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무어는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을 방문해 자신의 수표를 찾아왔다. 무어는 이자율이 24%나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뿌듯함에 미소를 짓는다. 24%는 일반 은행의 이자율에서 불과 3% 낮은 수준이다. 그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나는 키바의 소액대출은 무이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살로네소액금융신용 사무실은 빈민 지역에서는 빌라처럼 보이는 건물에 있었다. 그 건물 2층에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의 사장인 레지나 술라의 사무실이 있다. 건물 내부는 호화로운 외부와는 달리 아무런 장식 없이 썰렁했다. 건물 안에는 합판 문을 단 아주 작은 사무실들이 있었다.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의 설립 비전과 가치가 적힌 도금 액자가 사장 집무실의 유일한 장식품이다.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은 “경제적으로 능동적인 빈곤계층을 위한 서비스 기관”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 즉, 무기력하게 기부를 받는 사람들을 위한 기관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자녀 넷을 둔 51살의 술라는 고국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의 한 대학에서 농촌 개발을 전공한 뒤 소액금융업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이 일반은행과 대출조건에 별반 차이가 없다는 세간의 비난에, 술라는 개인적 비방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윤과 예비금 없는 사업모델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플레이션이 17%라면 무어에게 부과된 이자율 24%는 실질이자율 7%를 의미한다. 24%는 매우 현실적인 이자율이다.”
하지만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은 과연 무엇을 위해 예비금을 적립해야 한단 말인가? 술라는 이렇게 말했다. “소액대출금을 상환하지 않는 대출자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이 키바에서 현재 별 4개 등급에서 별 5개 등급으로 상향 조정되려면 예비금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 별 5개 등급으로 상향 조정되면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은 대출 규모를 늘릴 수 있게 된다.
즉, 현재 대출자 4천 명과 대출액 100만달러에 그치지 않고, 대출자와 대출액 모두 두 배로 늘릴 수 있게 된다. 솔직히 나는 술라가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생소했다. 저개발국 소액대출에서 ‘원조’ 개념이 무미건조한 경제적 논리에 앞서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었다. 금융매니저의 경제적 논리로 무장한 술라는 사용하는 용어도 ‘대출 과정’ ‘체계적 오류 감지’ ‘효율적 고객 서비스’ 등 전문용어 일색이었다. 내가 선뜻 내놓은 250달러가 이런 무미건조한 금융대출에 쓰이는 것인가?

   
2007년 9월 대선 결선투표 뒤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의 모습. 이곳에서는 불안이 끊이지 않는다.

석 달 뒤 대출금 중 27.77달러 첫 상환
마케니 첫 방문에서 석 달이 지난 뒤 키바에서 전자우편이 왔다. ‘무어가 대출액 중 27.77달러를 처음 상환했다. 이 돈은 당신 은행계좌로 송금해줄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운 고객에게 다시 빌려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몇 주간 동일한 내용의 전자우편이 수차례 왔다. 전자우편에는 무어가 지난 몇 개월간 정확히 34만764리온을 마케니의 살로네소액금융신용 창구에 상환했다는 내용과 함께, 좀더 자세한 내용을 참조하라며 홈페이지를 링크해놓았다.
내가 무어의 ‘K-Restureant’을 두 번째 방문한 것은 정오의 열기가 마치 바늘로 살을 찌르는 듯한 건기의 어느 날이었다. 무어는 자신의 컨테이너와 옆집 컨테이너 사이의 목재 벤치에 앉아 있었다. 무어의 언니가 그녀의 머리를 가느다랗게 땋아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소리치며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파리떼는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뚱뚱한 여성이 바닥에 놓인 아기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식당 내 공기는 숨이 막힐 듯 후텁지근했고, 땀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무어는 마치 오랜 친구나 사랑하는 이를 만난 듯 환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의 남자 직원이 당신이 오늘 방문할 것이라고 알려줘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왜 진작 전화를 주지 않았어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무어와 나는 그 사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서로 호감이 생겼다고 하여 250달러 소액대출 실험에 영향을 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학술연구 중인 학자처럼 실험 대상에게 거리감을 둘 생각이었다. 특히 대출과 관련해 그간 좋지 않은 일이 여러 차례 무어에게 생겼다.
지난번에 차고 있던 ‘짝퉁’ 디자이너 손목시계 대신 무어는 낡아빠진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있었다. 휴대전화도 닳아서 금이 간 저렴한 모델이었다.
무어는 플라스틱 시계가 딸의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몇 달 전 음식 나오는 창구 앞에 놓아둔 지갑을 도둑맞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지갑에 있던 100유로와 휴대전화 2개, 금목걸이와 귀고리 2개, 손목시계가 함께 없어졌다.

   
오랜 내전으로 고통받았던 시에라리온.

남편 말라리아 감염 등 불행 이어져
무어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토바이를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아들 로렌스가 친구의 소형 오토바이를 빌려 탔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로렌스는 맞은편에서 오던 어린 남자아이를 실수로 다치게 했고, 다리가 부러진 남자아이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무어가 병원비를 전액 내야 했다. 운전면허증 없이 오토바이를 탄 아들이 감옥에 가지 않도록 경찰관에게 뇌물을 주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뒤 무어의 남편이 말라리아에 감염되자 돈은 바로 바닥이 났다. 시에라리온에서는 경찰도 유급 병가를 낼 수 없어서 남편의 급여는 하루아침에 끊겼다.
무어의 식당 확장은 예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갔다. 인플레이션 탓도 있지만, 무어가 키바를 통해 대출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건축 인부들이 원래보다 더 많은 공사비를 요구한 것이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식당 확장 규모를 원래 계획의 절반으로 축소했다. 무어의 식당에는 여전히 식탁 3개와 의자 7개뿐이다. 무어가 키바를 통해 대출받은 돈은 거의 바닥났다. 식당 수익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무어가 대출받은 직후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새로운 식당이 문을 열었다. 그곳은 무어 식당 손님 중 가장 돈이 되는 고객인 서구의 저개발국가 원조단체 직원들을 주요 고객층으로 겨냥했다. 유니세프의 시에라리온 현지 직원이 급여를 털어서 개업한 식당인데 직장 동료들은 당연히 발길을 돌렸다. 이는 유니세프 외국인 직원들도 무어의 식당에 발길을 끊었다는 것을 뜻한다. 무어는 식당을 그만두고 술집이나 화장품 가게 등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지 갈등했다.
무어가 겪은 온갖 사건·사고를 검토한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의 소액대출 담당자는 그녀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고 했다. 살로네소액금융신용에 기록된 무어의 대출금 상환 기록에는 그녀의 어려운 상황이 고스란히 배어나왔다. 무어는 마지막 두 번째 대출 상환 기일을 맞추지 못했지만, 한 달 뒤 2회 분납으로 상환했다.
현재 무어는 마지막 대출 상환액을 2주 연체한 상태다.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은 현재 별 4개 등급에서 하향 조정되지 않기 위해 예비비에서 내 대출액을 키바에 상환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해 미국· 오스트레일리아·프랑스·독일·스웨덴과 필리핀의 채권자들은 무어의 최근 힘든 상황을 알 길이 없었다.
사업가적 관점에서 무어는 많은 실수를 한 것일까? 무어는 대출받은 돈을 주머니에 집어넣는 대신 별도의 계좌에 예치해놓아야 하지 않았을까? 무어는 개인 돈과 대출받은 자본을, 그리고 식당 투자와 개인 지출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이날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의 사장 사무실에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32살의 아치볼드 쇼다이크가 일하고 있었다. 술라는 사무실에 없었다. 술라는 현지 소액대출 기업 자문을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 중이었다. 무어에 대한 질문을 받자 쇼다이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손바닥을 위로 치켜들었다. “우리 고객들의 문제는 대출금 미상환이 아니라, 사업을 위해 대출금을 최대한 오랫동안 굴리려는 것이다. 고객들은 영리한 사업가다. 유럽인은 아프리카인이 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인이 이론적으로는 사업적 이해가 부족할지 모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인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적극 활용할 줄 안다.”
쇼다이크는 무어에게는 힘든 고비가 많았다고 했다. “고객이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은 일반은행처럼 대응하지 않는다. 일반은행은 고객의 여건을 고려할 만큼 유연하지 못하다. 고객이 병원비를 대기 위해 사업회계에서 돈을 유용하더라도 우리는 고객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일반은행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더라도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은 빈민층 소액대출로 적잖은 수익을 남기고 있다.”
저개발국 원조단체들이 소액대출 업계의 야박함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마케니에서 만난 영국의 저개발국 원조단체 여직원 3명은 아프리카의 사회적·경제적 재건에 소액대출기관들의 참여도가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그중 1명은 “아프리카는 기후변화로 상황이 악화됐고, 시에라리온 농부들에게 대안 농작법을 전수하고 전통적인 관개용수법을 재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원조단체 직원들의 아프리카의 미래에 대한 기대치는 엄청났다. 이들의 기대치는 더 나은 세상을 실현하는 것만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것도 시에라리온에서 말이다. 반면 소액대출기관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소액대출기관들이 중시하는 것은 시장과 경쟁이며, 더불어 삶의 수준을 개선시키려는 소액대출 고객의 작은 소망이다. ‘저개발국 원조’라는 이상주의와 ‘소액대출’이라는 실용주의는 정녕 모순되는 것일까?
소액대출기관마다 대출 지급과 관련해 상이한 규정을 채택한다는 점에서 소액대출은 실용적이라는 주장은 옳다. 무함마드 유누스의 그라민은행은 회원 20∼25명이 상호 보증을 서는 협동조합에만 대출을 해준다. 살로네소액금융신용도 초기에는 협동조합에만 대출해주었다. 하지만 살로네소액금융신용의 설립자들은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모델이 시에라리온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에라리온 현지인들은 기나긴 내전 때문인지 서로를 믿지 못한다. 대출 신청자들 대부분은 개인이었다. 
ⓒ Die Zeit·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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