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루이켄 Reiner Luyken <디 차이트> 해외 특파원

원조식량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 여인. 일부에서는 원조가 아프리카인들의 자립심을 해친다고 비판하고 있다.

나는 일찌감치 아프리카는 포기했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내전과 기아로 점철되면서, 아프리카인의 삶의 수준이 언젠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결국 버리게 됐다. 희망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프리카를 도우려는 마음은 계속 남아 있었다. 하지만 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아프리카를 도와야 하는가?
아프리카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에서 안락한 삶을 살다 보면 이 질문에 답을 찾기는커녕 신문을 읽으면서 용기만 잃게 된다. 영국 ‘로열 아프리칸 소사이어티’(Royal African Society)의 리처드 다우든 원장은 “저개발국 원조가 아프리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라면 아프리카는 이미 오래전에 선진국이 됐을 것이다. 저개발국에 대한 대규모 원조금은 아프리카의 자발성을 저해하고 종속성을 가속화할 뿐이다. 또한 아프리카 국가 정부들은 정작 국민이 아닌 채권국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신문 기고문에서 신랄하게 선진국의 저개발국 원조를 비판했다.
미국 주간지 <타임>에 실린 루이뷔통 가방 라인 전면광고에는 말쑥한 옷차림으로 아프리카 초원에 서 있는 팝그룹 U2 멤버 보노가 등장한다. 사회공헌 활동에 앞장서는 보노의 루이뷔통 광고 출연은 그의 고결한 정신 역시 결국 자기 도취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프리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잠비아의 여성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41)가 쓴 ‘아프리카에 원조를 중단하라!’는 글을 읽게 됐다. 모요는 당황스럽지만 간단명료하게 아프리카의 문제 해결책을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모요는 향후 5년간 전세계 선진국들은 아프리카 원조를 중단해야 하며, 천재지변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아프리카를 지원하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아프리카를 충분히 지원한 셈이라고 했다. 모요는 “유럽의 이타주의는 아프리카에 대한 경제적·인도주의적 재앙이나 다름없다”고 역설한다. 그가 나와 차이점이 있다면, 모요는 크게 성공한 아프리카 여성이라는 점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한 모요는 골드만삭스와 세계은행에서 근무했다.

소액대출 사이트 키바의 ‘인생 바꾸는 대출’

키바 홈페이지.

아프리카에 원조를 중단하라고 촉구한 기사에서 모요는 “원조 대신 구글에서 키바(Kiva)를 검색해보라”고 했다. 모요의 글을 읽고 구글에서 키바를 검색해보았다. 구글 검색창에 키바를 입력하자 컴퓨터 화면에 사진과 국가별 국기, 그리고 화살표로 가득 찬 담록색 웹사이트 창이 떴다. 화면 상단에는 ‘인생을 바꾸는 대출’(Loans that change lives)이라는 키바 슬로건이 보였다. 무담보 소액대출 사이트인 키바는 스와힐리어로 ‘화합’을 의미한다. 키바 슬로건 아래는 ‘소액대출로 부유층과 빈곤층이 하나 된다’고 쓰여 있다. 실루엣과 익명으로 처리된 채권자 사진이 낡은 재봉틀 뒤에 앉아 있는 한 아프리카 여성과 화살표로 연결돼 있다.
키바는 2005년 미국인 매트 플래너리와 제시카 재클리가 설립했다. 아프리카 현지에서 저개발국 원조 단원으로 일하던 재클리는, 꿈이 있는 소규모 사업가들에게 자본을 구하는 통로가 막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키바를 구상하게 됐다.
키바 홈페이지에는 대출을 원하는 방직공, 어부, 농부들의 사진이 나왔다. 쌀과 옥수수, 콩 등 곡류 씨앗을 사려는데 600달러가 부족하다는 에콰도르의 농부 엔리케 레이어스의 사진도 보였다. 케냐의 직물상 율리우스 키아마는 중고 이브닝드레스와 블라우스를 구입하는 데 750달러가 필요해 대출을 신청했다. 구입한 옷들은 그가 시장 좌판에서 직접 팔 상품이다. 나는 시에라리온의 주도 마케니에서 운영하는 식당을 확장하려고 875달러가 필요하다는 쿰바 무어의 사진에 시선이 갔다.
키바 웹사이트에 프로필이 실린 대출 신청자들은 기부나 적선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대출이며, 향후 1년 내에 한 푼도 남김 없이 대출을 상환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하고 있다. 독일인 관점에서 이들이 필요로 하는 액수는 결코 많지 않다. 키바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단체는 지난 5년간 70만 명이 전세계 빈곤국가의 약 40만 명에 이르는 소규모 상인들에게 소액대출을 해주었다. 최소 대출액 단위는 25달러이다. 전체 대출 거래는 싱가포르의 결제 사이트 페이팔(PayPal)에서 한다.
나는 이전부터 소액대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2006년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과 은행 설립자 무함마드 유누스가 빈민에게 소액대출을 제공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하지만 2010년 유누스는 1억달러를 그라민은행의 자회사로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았다. 인도에서는 소액대출기관이 부채 지급 능력이 없는 여성 채권자들을 자살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는 기사가 한때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내가 키바를 통해 저개발국 소상인들에게 대출해준다면 소액대출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구글에서 키바를 검색하기 몇 주 전, 시에라리온의 마케니에서 남쪽으로 5700km 떨어진 아졸리니 하이웨이의 버스정류장에 있는 쿰바 무어의 식당에 서류가방을 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그의 방문 이후 나와 무어가 연계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어의 식당 건물은 폐기물을 재활용한 이동식 컨테이너다. 한쪽 벽면에는 음식 나오는 창구가 뚫려 있다. 창구 앞에는 골조 함석 베란다가 있고, 베란다 양쪽에는 올리브 잎이 햇살과 비를 가리고 있다. 출입구에는 음식을 먹고 있는 남녀 커플 그림이 있고, 그림 위에는 ‘Welcome to K-Restureant’라는 표기법이 틀린 식당 이름이 적혀 있다. 컨테이너 뒤에 있는 주방은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주방 화덕에는 쌀과 열대 관엽 낙목인 카사바, 그리고 쇠고기 스튜가 끓고 있다.
서류가방을 들고 온 남자는 식사를 하러 무어 식당에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자리에 앉자 식탁 위에 서류를 올려놓았다. 무어는 주저하면서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서류를 바라보는 무어는 반신반의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1974년 3월28일 자신의 생년월일부터 시작해 ‘마케니 경찰 막사 B블록’이라는 집 주소에 이르기까지 작성해야 하는 서류의 빈칸이 상당히 많았다. 경찰인 남편의 연봉을 묻는 질문도 있었다. 남편의 한 달 급여는 20만리온(약 35유로)였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는 생활비의 절반을 대기도 빠듯하다.

6개국 21명이 모아준 자금 875달러
그는 무어의 식당 장부에 대해 물었다. 무어는 “식당의 수입과 지출은 모두 머리로 계산한다”고 했다. 그는 무어에게 식품 냉장 상자와 중고 가구, 식기 및 수저가 대략 얼마인지 물었다. 매달 쌀과 식수, 레모네이드를 구입하는 데 얼마를 쓰는지도 물었다. 한 달 매상과 하루 평균 최대 및 최저 매상, 매달 휴대전화 요금 및 컨테이너 임대료도 물었다.
무어에게 여러 가지를 묻던 그 남자는 “사무실에 돌아가서 무어 식당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고 현금 흐름을 분석하겠다”고 말했다. 서류 작성을 마친 남자는 소형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오토바이에는 ‘경제적 독립을 위한 서비스’(Service for Empowerment)라고 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경제적 독립을 위한 서비스’는 키바의 파트너 기관이자 그가 일하는 시에라리온의 살로네소액금융신용(Salone Microfinance Trust)의 설립 미션이다.
그가 떠난 뒤 ‘대차대조표’나 ‘현금 흐름’ 등 평소 접하지 않던 용어로 현기증을 느낀 무어는 다시 식당 일을 시작했다. 사무실로 돌아간 남자는 무어와의 미팅 보고서를 작성했다. “쿰바 무어 고객은 가정 지출액에 비해 가사 수입이 너무 적은 문제가 있지만, 식당 확장 계획은 수익성이 상당합니다. 그래서 쿰바 무어 고객의 대출 지급에 찬성합니다.”
이후 키바 홈페이지에는 무어가 식당의 음식 창구 앞에서 카사바 잎 한 다발을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이 올랐다. 사진 아래에는 ‘쿰바 무어 고객 식당의 인기 요리’라고 쓰여 있다. 무어는 대출을 받으면 쌀과 올리브유를 좀더 구매하고, 식당을 넓히고, 식기와 수저는 물론이고 식당 손님들에게 음악을 틀어줄 음향기기까지 새로 구입할 생각이다.
무어에게 지급하는 대출금으로 나는 250달러를 보탰다. 모요는 아프리카를 위해 소액대출을 추천했지만, 250달러는 아프리카를 위한 내 기여인 셈이다.
무어에게 대출해준 250달러가 상당히 큰 액수임을 깨닫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쿰바 무어가 받게 되는 나머지 대출액은 미국인 13명, 오스트레일리아인 3명, 프랑스인 1명, 스웨덴인 1명, 필리핀인 1명과 함께 함부르크의 우체부 얀이 각각 25달러씩 낸 돈으로 마련됐다.
키바 웹사이트에 등록하면 암호를 부여받아 다른 채권자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채권자 대다수는 유감스럽게도 다른 채권자들과 거의 접촉하지 않는다. 대신 채권자들은 자신에 대한 짧은 소개글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델라이데의 앤드루는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키바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앤드루는 돈을 21번 빌려주었다. 함부르크의 우체부 얀은 “나는 평소 필요 없는 것에 너무 많은 돈을 허비한다. 그래서 무언가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허비하는 내 돈으로 작은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얀은 이미 저개발국 소상인 264명에게 대출해준 경험이 있다. 얀은 자신의 금융상품에서 발생하는 이자만 포기하면 키바를 통해 소액대출에 참여할 수 있으며, 대출해줄 때마다 뿌듯함이 날로 커진다고 했다. 대다수 채권자는 대출금을 돌려받은 뒤에도 돈을 빼지 않고 돈을 필요로 하는 저개발국 소상인들에게 다시 대출해준다. 이들의 키바 계좌에는 주식 대신 키바 소액대출 프로필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내가 250달러를 빌려준 지 하루 만에 무어에게 지급될 대출금 875달러 전액이 마련됐다. 시에라리온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무어에게는 875달러가 의존적 위치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250달러 소액대출 실험은 시작됐다. 나는 무어를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 Die Zeit·번역 김태영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