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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위기는 미국산 변종 플루”
프 석학 사피르 “아시아 위기 재발 가능성…4대강 근시안적 발상”
[1호] 2010년 05월 03일 (월) 한광덕 총괄편집장 economyinsight@hani.co.kr

프랑스의 경제 석학 자크 사피르 파리 고등사회과학원 경제학 교수는 <이코노미 인사이트>와 4월 초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번 경제 위기의 병원체를 ‘모기지 위기→은행 위기→유동성 위기→국가부채 위기’로 이어가는 ‘변종 바이러스’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내수 시장 확대와 지역적 통화결제 시스템 구축에 실패한다면 또다시 위기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위기를 앞두고 정부를 무장해제시킨 주류 경제학자들을 ‘지적인 마피아’라고 규정한 사피르는 “이들이 여전히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있다는 게 참으로 기이한 미스터리”라고 통렬히 비판했다.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서브프라임이나 은행의 탐욕을 지목하는 견해에 대해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가 근본원인이라고  반박했는데 그 논거를 설명해달라.
우선 이번 위기가 국민의 대다수가 빈곤해진 미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미국인 3분의 2는 소득이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었으며 그들은 대출을 받지 않고서는 예전의 소비수준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가계부채  또한 1990년대 초에 GDP의 60%였던 것이 2007년에는 100%로 증가했다. 이것이 서브프라임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다음으로는 무역과 통화의 불균형이 위기를 불렀다. 금융부문은 위기 발생의 과정에서 하나의 고리를 제공했기 때문에 은행과 감독당국이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단순하게  ‘금융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번 위기의 근본원인은 국가적, 세계적 차원의 규제완화와 같은 제도적 무질서와, 임금 하락과 소득분배의 왜곡과 같은 실물경제의 문제에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당시에 경제위기가 지난해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측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 이제 종착역에 다달은 것인가, 아니면 계속 곪아가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위기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다만 경제위기의 형태는 변화하고 있다. 나는 2008년 카라카스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이 위기를 ‘변종 바이러스’에 빗댄 바 있다. 이 위기는 모기지 신용대출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후에는 은행위기로 진화했으며, 이어서 전반적인 유동성 위기로 변모했다. 지금은 여러나라의 국가부채 위기로 변해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특이한 점은 위기가 새로운 형태를 띠면서 경제 당국을 놀라게 하고 있지만 과거에 지녔던 위험성은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다시 수익을 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극도로 불안정하다. 실제로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은행들은 이제부터 사적 부채 대신 공적 부채에 의존해 예전처럼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용인될 수 없다. 먼저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이는 부차적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은행가들은 도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부채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증가하는 시스템은 오래갈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미칠 정도로 깊은 수렁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사이에 ‘칸막이’를 친 1933년의 ‘글라스 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이나 최근의 ‘볼커 룰(Volcker Rule)’로는 부족하다는 것인가?
은행 시스템에  ‘실물’ 경제에 대한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이것은 경제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아쉽게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위기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면 바이러스는 또다시 변모할 것이다. 새 국면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위기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할 가능성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
이미 그리스는 국가부채위기라는 새로운 국면을 겪고 있다. 그리스의 뒤로는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이 부각되고 있으며, 그 너머엔 빚이 가장 많은 나라, 미국이 몰골을 드러낼 것이다. 국가채무 위기가 달러에 미칠 때면 우리는 정말 미칠 정도로 깊은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변종 바이러스를 잉태한 자양분은 어디에서 비롯됐나? 잘못된 성장의 경로라고 지적한 1980년대 보수혁명과 레이거노믹스도 바이러스의 음습한 토양이 됐을 것으로 본다. 
보수혁명은 경제정책 측면에서 전반적인 규제 완화와 통화 긴축의 형태를 띠었으며, 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시켜 GDP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몫을 크게 증가시켰다. 시장에 대한 열광과 맹신은 자유무역을 확장시키고, 정부지출을 축소해 공공서비스의 붕괴를 가져왔다. 이러한 반혁명을 경제학에서는 가장 낡고 반동적인 생각들이, 수학적 표현이 주는 엄밀성이란 옷을 입고 화려하게 변신해 권력으로 귀환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 반혁명의 결과는 모든 영역에서 재앙과 같았다. 소득분배 구조의 왜곡은 최상위층을 더 부자로 만들었다. 
이번 위기의 근본적인 책임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서구 나라들에게 강제적으로 부여된 이러한 메커니즘에 있다. 또 다른 책임은 모든 것이 ‘최선의 세계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던 주류경제학자들의 담론에 돌려질 수 있을 것이다.
  
 경기 역행적(반경기적·contra-cyclical) 정책인 정부지출과, 국가재정 악화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하나?
공공지출은 정부의 고전적인 경기 역행적 대응이다. 재정적자를 늘리는 것은 소비에 활력을 주는 수단이다. 그러나 공공지출 역시 구조적인 측면에 유의해야 한다. 인프라에 대한 지출이나 교육, 과학, 연구, 보건 그리고 사회보장 영역에 대한 지출의 경우가 그렇다. 이 같은 지출의 직접적인 경제 효과는 1년 단위로 측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서 대체로 과소평가된다. 그러나 이들의 경제적 효과를 부인할 수는 없다.
공공지출 확대는 국채발행 남발과 금리 상승으로 인한 구축효과로 이어질텐데….
물론 경기 역행적 지출은 재정적자와 국채 증가라는 문제를 낳는다. 그러나 국채 이자는, 1945~1950년의 전후 시기처럼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 국가가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않으면 큰일나는 운명의 그 날을 제외한다면 국채는 중대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중앙은행의 독립이라는 교리가 나오기 전까지는 하나의 규범이었다. 
이는 은행들이 1%에도 못 미치는 이자율로 자금을 조달하는 반면, 국가는 최소한 3.3%의 이자율(독일의 평균 이자율)로 차입을 하라고 하는 역설적 상황을 낳았다.  물론 GDP의 20%에 달하는 적자를 모두 중앙은행을 통해 조달한다면 인플레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문제를 삼는 현실이 아니다. 만약 주요 선진국이 경제위기나 구조적 지출로 생겨난 GDP의 5~6%에 해당하는 적자만을 중앙은행을 통해 조달한다면 인플레는 겪지 않을 것이다. GDP의 성장률을 훨씬 상회하는 이자율을 국가가 부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국채는 문제되지 않는다.

경제위기 이후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케인스주의자와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교수 등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주류 경제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필립 아레스티스(P.Arestis)나 폴 데이비슨(P.Davidson), 존 갈브레이스(J.Galbraith)와 같은 포스트 케인시언과, 경제위기에 관한 통찰력은 있었지만 주류 경제학파에 속해 이 위기에 책임이 있는 학자들은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주류라고 일컫는 학파의 우월적 지위는 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헤아릴 수 없는 오류를 범했다. 그들의 주장은 다가오는 경제위기 앞에서 정부를 무장해제시켰다. 학문적 관점뿐만 아니라 실제 경제 문제에서도 완전히 신뢰를 잃은 이들이 여전히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미스터리다. 이 미스터리의 기원은 건강하고 열린 토론의 규칙보다는 ‘지적인 마피아’를 닮은 그들의 활동방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불균형속에서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에 따른 세계경제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이 두 나라는 정치적인 영역과 통화의 영역에서 동시에 대립하고 있다. 중국은 응당 그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자리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1945년부터 누려온 지배적 위치가 흔들리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가장 큰 위험은 통화의 영역에 있다. 만약 국제통화체제의 개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개혁을 거부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 지금 시점으로부터 18개월~2년 안에 총체적인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2009년 봄에 (조금도 혁명적이지 않은) 합리적인 제안을 했다. (IMF의 특별인출권을 발전시켜 초국적 국제결제통화를 만들자는) 이 제안에 다른 나라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미국이 이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이는 비극으로 이어질 것이다.

통상의 힘은 통화권력과 다르다

아시아의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아시아에서 경제 위기는 발생할 것이다. 1997~1998년의 위기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취하겠지만 위기의 도래는 분명하다. 아시아 주요국가의 외환보유고는 1997년과 달리 막대한 규모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외환시장의 돌발적인 사태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며 파국을 초래하는 식의 위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성장이 지나치게 수출에 의존하는 데서 발생할 수 있다. 아시아의 신흥경제국은 현재 두 가지 위험에 직면해 있다. 첫 번째는 투자율과 저축률 수준을 감안할때 과잉축적과 과소소비에서 오는 위험이다. 이 위험에 대해서는 내수시장의 발전 외에는 다른 답안이 없다. 두 번째 위험은 한층 다루기 힘든 문제인데, 바로 국제통화질서의 위기다.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이 위기를 전가하려고 한다. 당장은 통상의 힘이 통화의 권력을 수반하지 않는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나라들은 미국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정치 외교적 역량이 없기 때문이다. 당분간 아시아 국가들은 달러 기축 시스템의 쇠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모색해야 한다. 결국, 아시아 국가들이 성장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여부는 달러·유로화 경제권의 불안정성으로부터 아시아를 보호할 수 있도록 지역적 차원의 결제 및 지불체제를 구축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끝으로 한국 상황에 대해 간단히 질문하겠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이명박 정부 들어 복지 예산을 삭감하는 반면, 4대강 사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 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인프라 건설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며, 신자유주의 정책의 사례도 아니다. 핵심은 이런 인프라 건설이 적절한 것인지 여부다. 내수 시장은 사회·교육 시설로 대표되는 공공소비와 사회·의료적 보장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는 내수 확대의 의미와 다수 국민의 수요를 안정시킬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는 수출이 다시 문제가 되었을 때 심각한 위험을 자초할 수 있는 근시안적 사고다. 한국은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처럼 이번 위기를 상당히 빠르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수출 감소가 한국경제에 미친 파장은 매우 극명했다.  따라서 다음 번 충격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내수 확대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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