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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이 뿌린 씨앗, 아시아인 IMF 총재
[Cover Story]중국·인도, ‘비유럽인 총재’ 한목소리… 유럽·미국 기득권 돌파가 관건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김보근 economyinsight@hani.co.kr

김보근 편집장

“새로운 IMF 총재를 능력에 따르지 않고 낡은 관습에 따라 국적에 따라 선출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중국 <신화통신>은 지난 5월22일 ‘스트로스칸 총재 사건이 남긴 의문점’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물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뉴욕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으로 19일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나온 이 기사는 다음 IMF 총재 선출과 관련해 중국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과 관련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은 이미 스트로스칸 총재가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고 ‘결백’을 주장할 때인 5월17일 “차기 IMF 총재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많은 분석가들이 이런 중국의 움직임이 IMF 차기 총재 자리에 대한 ‘도전’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한다. 중국은 이미 IMF에서 세 번째로 많은 지분을 가진 나라가 됐다. 충분히 욕심을 낼 수 있는 위치다.
중국뿐만이 아니다. 스트로스칸 총재까지 1945년 IMF 창립 이후 10번의 총재를 모두 유럽인으로 채웠던 ‘전통’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비유럽 국가들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스트로스칸 총재의 사임 이후 타이의 콘 차티카바니즈 재무장관도 “지난 3∼4년간 세계는 많이 달라졌다. IMF 총재를 유럽인만 맡아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고 강조했다.
IMF의 동양인 이사들도 아시아인 총재를 지지하는 분위기다. 인도 출신의 아빈드 비르마니 IMF 이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유럽 각국이 현재 유럽의 여러 나라가 금융위기를 맞이하는 점을 거론하며, 유럽의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서라도 새 IMF 총재가 유럽인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비르마니 이사는 “유럽 재정위기가 있다고 해서 유럽인이 총재를 맡아야 한다는 건 웃기는 논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그렇다면 아시아에 재정위기가 오면 아시아인이 총재를 맡고, 아프리카에 재정위기가 생기면 아프리카인이 총재를 해야 한다는 말이냐”며 유럽인 총재 주장의 논리적 허술함을 지적했다.

   
 
IMF 총재 10명 모두 유럽인으로 채워져
IMF 집행위원회가 다음 IMF 총재를 오는 6월30일까지 선출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이렇게 아시아 쪽에서 비유럽인, 특히 아시아인을 다음 총재로 선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은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역관계가 유럽권에서 비유럽권으로 흐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따라 이미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재임하던 시절부터 비유럽권의 발언권을 늘리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었다.
‘아시아인 IMF 총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유럽에서도 일부 수긍하는 분위기다. 독일의 대표적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왜 다음 IMF 총재는 비유럽인이 돼야 하는가’라는 5월17일 온라인판 기사에서 “유럽이 그동안 IMF에서 대표성을 과도하게 행사해왔다”고 비판했다. <슈피겔>은 “유럽이 IMF에서 가지는 투표권 지분은 약 32.5%에 불과하고, 국내총생산(GDP) 규모도 전세계의 20%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IMF 총재를 유럽이 독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슈피겔>은 이런 상황에서 “유럽이 이번에도 유럽인이 총재를 맡아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유럽이 가진 신뢰성에 큰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미 자천타천으로 여러 명의 아시아인 경제전문가와 관료들이 IMF 총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 <블롬버그통신>은 지난 5월22일 “필리핀과 타이가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재무장관을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롬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중앙은행 총재인 그리고리 마첸코를 차기 총재로 지지한다. 이 밖에도 케말 데르비스 전 터키 재무장관, 몬테크 싱 알루왈리아 인도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멕시코 중앙은행장 등도 후보로 꼽히고 있다.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에는 한국의 사공일 한국무역협회장도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서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5월19일 “사공일 회장은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주도해 글로벌 금융 사회에서 명성을 얻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사공일 회장을 ‘저명한 경제학자’로 소개하면서 “미국 정부 관계자들 중 우군을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신문들은 중국과 일본이 아시아 지역의 후보로 다른 인물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고, 또 다른 국제기구인 유엔 수장을 한국인인 반기문 총장이 맡고 있다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넘치는 후보군, 그러나 사분오열된 힘
   
세계은행과 IMF 봄 총회가 열린 2009년 4월26일 시위대들이 ‘구제금융 반대’ 등 반 IMF 펼침막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이렇게 아시아인 총재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터져나오고, 이에 더해 후보군까지 풍성하게 거론되는 상황은 아시아인 총재가 탄생할 가능성을 높이는가. 그렇지 않다. 이런 활발한 문제 제기가 꼭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 현재 아시아인 IMF 총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중구난방’식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이는 아시아인 IMF 총재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튼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크지만, 아시아 각국이 사분오열된 상태를 맞게 함으로써 ‘빈 수레가 요란한’ 상황을 연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 각국이 ‘유럽인 IMF 총재’를 지켜내기 위해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큰 벽이 될 듯하다. 우선 미국은 아시아인이 IMF 총재를 맡는 것보다 관행대로 유럽인이 총재를 맡는 것을 선호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미국으로서는 현재 세계 금융기구의 두 축 중 하나인 IMF 총재를 유럽인이 맡는 대신, 또 다른 축인 세계은행(World Bank) 총재는 모두 미국인이 맡아오는 관행을 허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만일 IMF 총재 자리를 비유럽인이 차지하게 된다면, 그다음 차례는 세계은행 총재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되리라고 예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번 스트로스칸 사건에서 미국이 프랑스인인 전 총재를 IMF 수장 자리에서 내쫓기 위해 애쓴 흔적이 선명하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옳은 지적이다. 미국은 성추행 사건 발생 이후 신속하고 단호한 조처를 취해 스트로스칸 사퇴를 이끌어낸 가장 큰 힘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비행기에 탑승했던 스트로스칸 총재를 끌어냈고, 그 모습을 화면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지도록 했다. 또 스트로스칸 전 총재를 뉴욕시의 악명 높은 구금 시설인 라이커스 아일랜드 구치소에 수감해, 그를 ‘거부’하는 미국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초기 보석 신청은 거부한 채, 스트로스칸이 총재직 사퇴 의사를 밝힌 19일에야 보석 허가가 났다는 점도 단지 우연의 일치인지 의혹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5월17일 저녁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스트로스칸은 IMF를 이끌어나갈 위치에 있지 않다”고 밝힌 것은 미국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5월18일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 기회에 스트로스칸을 갈아치우기로 판단하고 있다는 시그널”이라고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말을 풀이했다.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5월19일 “투명한 절차에 따라 새 IMF 총재를 빨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발언에 대해 “미국은 유럽인에게 IMF 총재를 맡기면서 현 체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뜻”이라고 해설했다.
이렇게 미국이 스트로스칸에 거부감을 보인 것은, 그가 유럽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트로스칸이 유럽인이면서도 미국과 유럽으로 대표되는 선진국의 지위를 IMF에서 깎아내리려 했기 때문에 그를 경원시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듯하다. 미국은 유럽과 함께 IMF와 세계은행 체제라는 세계 금융질서에 계속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원한다. 따라서 스트로스칸같이 아시아와 신흥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유럽인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프랑스, 첫 여성 IMF 총재 배출하나

실제로 미국은 IMF에서 17%의 지분을 가진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다. 여기에 유럽연합(EU) 27개국의 지분율 32.5%를 합하면, 이미 지분율은 과반 가까이 된다. 미국과 유럽이 힘을 합친다면, 아시아 쪽 목소리가 아무리 거세더라도 이를 잠재울 수 있는 물리적 힘이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EU의 한 고위 관계자가 “국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EU는 IMF의 가장 큰 기여자”라고 강조했다고 전한 중국 <신화통신>의 5월19일치 보도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유럽의 속내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각국은 아시아 쪽 주장에 맞서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55) 프랑스 여성 재무장관에게 표를 몰아주는 분위기로 나타난다. 프랑스 내에서는 물론이고, 장클로드 융커 EU 의장은 5월19일 프랑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라가르드 재무장관이 가장 이상적인 후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라가르드 장관은 IMF 총재로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치켜세웠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라가르드 장관을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켈 총리와 라가르드 장관은 서로 세례명을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로 전해진다. 라가르드 장관이 새 IMF 총재가 된다면 다섯 번째 프랑스인인 IMF 총재이자, 첫 여성 총재가 되는 셈이다. 특히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성추문으로 물러난 상황에서 여성 총리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느껴진다.
이런 유럽의 단결과 미국의 지원 속에 아시아 쪽은 첫 아시아인 IMF 총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쉬운 과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미 물꼬는 터졌다. 이번에 뽑는 제11대 IMF 총재가 아시아인이 아니더라도, 스트로스칸 총재 사임 뒤 터져나온 아시아 쪽 목소리는 국제 금융기구에서도 아시아 나라들과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국이 한 발짝 더 주류로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것은 아시아와 신흥국의 IMF 의결권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 국제기구를 개혁하려 했던 스트로스칸이 뿌려놓은 씨앗이다. 씨앗은 언젠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법이다.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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