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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치 속살, ‘에로스 유전자’
[Cover Story]앙리 4세 이후 끊임없이 성 스캔들 만들어낸 프랑스 권력자들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클라우스 하르프레히트 economyinsight@hani.co.kr

클라우스 하르프레히트 Klaus Harpprecht 자유기고가

상류층 집안의 자제로 곱게 자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상류층에서 흔히 있는 것처럼 집안 하녀에게서 사랑을 배웠을 수 있다. 특히 어린 시절을 모로코에서 보낸 스트로스칸은 동양의 단순하고도 에로틱한 사랑 기법을 구사하는, 수줍음 많지만 여우처럼 대가를 톡톡히 챙긴 모로코 하녀에게서 사랑을 배웠을 수 있다. 그러나 스트로스칸이 무뚝뚝한 사감 스타일의 독일 여성에게 사랑을 배웠을 리는 만무하다. 자연스러운 독일어를 구사하는 스트로스칸이 의무감으로만 독일어를 배웠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칸, 대학 졸업 뒤 ‘허리 아래’ 탐구 본격화
   
프랑수아 제라르의 <에로스와 프시케>.
누구에게서 사랑을 배웠든 젊은 시절의 스트로스칸이 허리 아랫도리의 탐구를 시작했을 무렵, 그는 또래 대학 동기들이나 자신보다 나이 많은 성숙한 여성들이 자신의 매력과 남성적 자신만만함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을 당연히 여긴 것 같다. 프랑스 정·재·관계 고위직을 독식하는 엘리트 대학 국립행정학교(ENA) 졸업생을 뜻하는 ‘에나르크’(Enarque)가 되자 스트로스칸의 허리 아랫도리 탐구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런 스트로스칸이 노후대책을 자신의 연구 분야로 정하고, 그의 표현에 따르면 ‘서민 계층’에 연민을 느끼고 사회당에 합류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재임 2년째인 1981년 스트로스칸은 프랑스 국가경제기획청 부청장을 지냈고, 5년 뒤인 1986년 총선에서 오트사부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2년 뒤 1988년 총선에서 스트로스칸은 전략적 교두보인 발두아즈 지역구에 출마했다. 이후 스트로스칸은 국회 재정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미테랑 대통령의 과거 한때 최측근이자 조기 사임의 불운을 겪은 에디트 크레송 총리 내각에서 산업통상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크레송이 프랑스 첫 여성 총리로 지명된 데 프랑스 정계는 담담히 반응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크레송은 총리직에 걸맞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크레송이 총리직을 10개월여 만에 사임한 것을 남성 지배적 정계에서 남자들의 텃세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프랑스에서 국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왕에 속하는 앙리 4세(재위 기간 1589~1610년) 이후, 프랑스에서 에로스와 권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에로스와 권력의 끈적한 관계는 앙리 4세 이전에 이미 시작됐을 수도 있다. 다만 궁정 역사를 기록한 사가들이 관련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앙리 4세의 신교도 애첩들과 관련된 일부터였다. 왕의 애첩들이 공식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은 태양왕 루드비히 14세 재임 때부터였다. 왕의 애첩들은 오로지 왕위 후계자를 낳기 위한 사랑 없는 정략결혼의 불가피한 산물이었다.
엄격한 도덕성을 신봉한 시민계급 시대가 도래하자, 군주가 애첩을 두는 관습은 더 이상 묵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궁정 시중들의 아내와 딸은 물론이고, 평민 계급의 아름다운 처녀들에게 절대적인 종교적 수준으로 추앙받는 왕의 정자를 아낌없이 뿌리고 다니도록 여전히 용인하고 심지어 독려했다. 왕의 보은을 입은 여성 중에는 직위를 부여받고 수입을 얻는 운 좋은 경우도 있었다.

단두대 처형식 때면 창녀촌 북적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숨겨놓은 딸로 유명한 마자린 팽조.
프랑스에 공화제가 확립되고 금욕적인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금욕주의를 프랑스혁명의 기치로 내세웠음에도 권력과 에로스, 그리고 특권과 쾌락의 뿌리 깊은 결탁은 변함없었다. 프랑스혁명의 이성과 금욕의 여신상 마리안이 고급 창녀촌에 들어서는 굴욕을 로베스피에르는 감내해야 했다. 프랑스혁명 말기 공포정치 시기에 폭력과 육체적 욕망의 결탁은 어두운 씨앗을 뿌렸다. 프랑스혁명의 기록물에 따르면, 단두대에서 처형이 행해지는 날이면 창녀촌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고 한다. 팔레루아얄의 회랑 사이를 서성거리는, 가슴이 거의 드러나는 헬레니즘풍 옷을 입은 몸 파는 여성들 역시 쉴 새 없이 바빴다고 한다.
미테랑 전 대통령이 언급했던 ‘공포정치’(La Terreur)가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의 표현대로, 미테랑은 프랑스혁명을 전체적인 틀에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폴레옹이 다시 불 지핀 군주의 에로스와 관련한 유산도 프랑스혁명의 산물에 속한다. 미테랑은 수십 년간 숨겨둔 가족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를 비밀에 부쳤다. 숨겨둔 가족이 자신의 사생활에 끼어들게 되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게 되고, 독일 나치의 ‘괴뢰정부’로 낙인찍힌 프랑스 비시 정부에서 중책을 맡은 것 등 극우 성향의 과거사가 들통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미테랑의 숨겨둔 가족은 결국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에도 미테랑은 미리 정해진 때만 숨겨둔 딸 마자린과 공개 석상에 나타났다.
프랑스 비시 정부로 화제를 돌려보자. 미테랑이 한때 상사로 모시고 후일 프랑스 대통령이 된 육군 원수 앙리 필리프 페탱은 말년에 감옥에서도 엄청난 정욕을 과시했다. 최고위층의 허가를 받고 스스로 자원한 여성들이 감옥에 있는 고령의 페탱에게 보내졌다고 설명하는 한 감옥 간수는 온갖 과장된 몸짓을 써가며 페탱의 정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본처와 숨겨둔 여인까지 있던 미테랑이 해외 특파원 중에서 아름다운 여성들을 은밀한 장소로 불러내는 것을 미테랑 내각의 유능한 일꾼 스트로스칸이 모를 리 없었다. 넘치는 성욕의 소유자 미테랑은 전립선암에 걸려서야 겨우 성욕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엘리제궁을 비롯해 여타 대통령 관저들을 온통 자신의 에로스 사냥터로 만들던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과 그의 후임 ‘문화 사회주의자’ 미테랑은 실제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파리 전체가 데스탱의 여성 편력에 크게 들끓었을 때조차 프랑스인들은 분노가 아닌 오히려 그의 능력을 대단히 여기는 분위기였다. 프랑스의 선출된 공화국 군주들도 예외 없이 세습 군주들의 부정하지만 유익한 사랑의 기술을 물려받은 듯하다.
스트로스칸이 2012년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된 결정적 이유는 당연히 그의 넘치는 성욕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성욕이 프랑스의 내년 대선 후보로 나서도록 일정 부분 기여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여성을 사냥하는 탐욕스러운 ‘바람둥이’라는 꼬리표를 단 스트로스칸과 거의 20년째 결혼 생활 중인 안 싱클레어는 악명 높은 바람둥이와 사는 것에 이골이 난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최고의 텔레비전 인터뷰쇼 진행자인 싱클레어는 민감하고도 송곳처럼 날카로운 질문으로 유명하며, 그녀의 강렬한 푸른 눈빛과 치명적인 매력으로 일요일 저녁 7∼8시 황금시간대를 점령했다. 싱클레어는 남편의 바람기를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는 여성이 아니다.
남편 스트로스칸이 리오넬 조스팽 정부의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자 싱클레어는 의혹의 불씨를 애초에 없애려고 출연 중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했다. 스트로스칸이 스캔들이 터지면서 재임 2년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났을 때도 싱클레어는 남편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이 스캔들과 관련해서 스트로스칸은 나중에 무죄로 판결받았다.
스트로스칸이 IMF 총재 지위를 악용해 자신에게 섹스를 강요했다고 IMF의 한 여직원이 주장했을 때도 싱클레어는 남편을 지지했다. IMF 부하 여직원과의 강요된 성관계 혐의에 대해서도 스트로스칸은 무죄를 입증받았다. 싱클레어는 남편의 뉴욕 호텔 객실 청소부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남편의 결백을 주장했다. 싱클레어는 남편이 바람은 피울지언정 무모한 바보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남편을 감쌌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혼외정사 전력을 아무렇지 않게 공개적으로 털어놓으면서 남자는 그런 존재라고 무심하게 한마디 던지던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부인 베르나데트 시라크와 싱클레어는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의 모든 역대 대통령이 정욕에 불탔던 것은 아니다.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단 한 번의 스캔들도 일으키지 않은 예외에 속한다. 드골 대통령의 신앙심 깊은 아내 이본 드골이 남편의 스캔들을 용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드골 대통령부터 여성과의 스캔들은 그의 유일하고도 진실한 사랑인 (처녀 잔다르크와 금욕적인 마리안상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공화국에 대한 정조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심지어 드골은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처럼 마리안이 프리지안 보닛(Phrygian Bonnet·두건 형태의 모자)을 착용하는 것은 용납해도, 탱탱한 가슴을 훌러덩 드러내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특히 도미니크 스트라스칸 등 애국심에 불타는 프랑스 고위 정치인들은 예외 없이 모두 드골이 사랑한 프랑스에 대한 정조를 저버렸다. 이들이 연약한 육체로 인해 인간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렇다고 드골의 위대함이 작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 Die Zeit·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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