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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캐리 트레이드 재개 가능성 높아져
[쏙쏙 경제]
[13호] 2011년 05월 01일 (일) 홍춘욱 economyinsight@hani.co.kr

홍춘욱 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

지난 3월11일 일본 대지진 이후,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위해 해외 자산을 매각해 일본에 송금할 것이라는 기대가 부각되면서 달러-엔 환율이 76.59엔까지 하락하자, 지난 3월18일 일본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 정부가 외환시장에 함께 개입하며 엔화는 약세로 돌아섰다. 특히 G7의 개입 이후 2000년대 중반처럼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가 재개되리라는 예상이 부각되면서 한국 원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달러 등 이른바 ‘고금리 통화’의 강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무엇이며, 이것이 본격화할 때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살펴보자.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일본 경제가 장기적 저성장 영역에 접어들기 전까지 엔화 가치는 선진국 경기 여건에 좌우됐다. 미국 경제 여건이 개선될 때는 엔화 강세 현상이 나타나고, 반대로 미국 등 선진국 경기가 악화돼 일본 수출기업들의 전망이 나빠지면 엔화가 강세를 보였던 것이다. 일본 경제성장의 주요 엔진이 ‘수출’에 있었기에, 선진국 경기가 개선될 때는 일본의 수출산업이 호황을 누리며 경상수지 개선은 물론 일본 주식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수요를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관계는 2004년을 전후해 자취를 감추었다. 2004∼2007년 미국 경제가 호조를 보일 때 엔화가 약세를 보인 반면, 2008년부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자 오히려 엔화 강세가 나타났다. 이런 기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엔 캐리 트레이드 때문이다.
여기서 ‘캐리 트레이드’란 저금리로 자금을 차입해 수익률이 높은 유가증권이나 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오랫동안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한 일본에서 엔화로 자금을 차입한 것을 바탕으로 미국 국채를 비롯해 수익률이 더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다. 항상 엔 캐리 트레이드가 발생하지는 않으며, 캐리 트레이드가 활성화되려면 네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캐리 트레이드를 위한 4가지 조건
우선 자본을 조달하는 국가의 금리가 낮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하던 2000년대 중반, 일본은 디플레이션을 타개하기 위해 이른바 ‘제로금리’ 정책을 사용해 일본의 시장금리는 1%를 밑돌았다. 둘째, 해외로 자금을 공급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유동성이 필요하다. 일본은 당시 미국 뒤를 잇는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했고, 오랫동안 누적된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 외환보유고가 풍부해 전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셋째,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투자처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값싼 자본을 조달해도 투자 심리가 얼어붙어 마땅히 투자할 만한 곳이 없다면 캐리 트레이드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2000년대 중반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중국 제품이 전세계에 공급되고, 부동산 경기 활황으로 미국이 충분한 소비에 나서며 세계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완화되면서 주식시장의 강세가 이어졌고, 안정적이면서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채권이 곳곳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달통화(엔) 약세가 지속돼야 한다. 차입 자본을 상환할 시점이 되었을 때, 차입한 통화의 가치가 오르면 금리 차이로 번 일부 수익을 반납해야 하므로 캐리 트레이드로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이 반감된다.

중동 정세, 국제 유가 등은 위험 요소로 남아
네 가지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면 위험을 거의 짊어지지 않고도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돼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해진다. 그러면 엔화 약세가 본격화되고, 반대로 한국 원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달러처럼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고금리 통화 강세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엔 캐리 트레이드가 예전처럼 시장의 ‘주류’를 형성할 수 있을까? 엔 캐리 트레이드는 완만한 증가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디플레이션 상태가 계속되는 일본의 상황을 미뤄볼 때, 일본은 상당 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유동성 여건도 우호적이다. 일본 은행이 대지진 이후 시장에 공급한 유동성 규모는 약 100조엔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추가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하며 공급한 6천억달러를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다. 더 나아가 글로벌 경제 여건 개선 속에 선진국 채권 금리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캐리 트레이드에 따른 차익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G7의 공조 개입 이후, 엔화 약세에 대한 기대가 점차 부각되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를 가로막을 요인도 적잖다. 무엇보다 중동 지역의 정치적 긴장감이 높아지며 국제 유가가 급등할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가 오히려 청산될 수 있다. 국제 유가 급등은 선진국 소비자의 지출을 억제하고, 이는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자의 선호를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등 일부 남유럽 국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엔 캐리 트레이드를 가로막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남유럽 국가의 채권으로 민간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는다면, 엔 캐리 트레이드 같은 위험한 거래를 재개할 엄두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이상의 요인을 종합해보면, 엔 캐리 트레이드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엔 캐리 트레이드 재개 기대만으로도 금융시장, 특히 외환시장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점차 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도 투자가들이 행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G7 공조 개입 이후 엔 캐리 트레이드에 대한 ‘기대감’이 부각된 뒤, 한국 원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달러화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한 것이 단적인 예가 된다. 따라서 한국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엔 캐리 트레이드의 재개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economists@economists.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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