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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업에 의한, 시장을 위한 국가여!
[시장 들여다보기]
[13호] 2011년 05월 01일 (일) 조계완 economyinsight@hani.co.kr

조계완 국내편집장

앨런 울프는 미국의 매거진 <새터데이 리뷰 Saturday Review> (1980년 2월치)에서 “기업이란 미국인이 어디에서 살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일할지, 그리고 어떻게 죽는지 등을 결정하는 조직화한 경제 및 정치력을 가진 거대한 구조다. 이 나라에서 기업의 힘은 정부로부터 도전받지 않는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재벌 대기업의 지배력은 아마 더 강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지만, 사실 기업에 시장권력을 만들어주는 건 국가다. “기업은 국가에 법인세를 내는 대신 시장을 통하기보다는 정부의 영향력을 통해 힘을 행사한다.” 국가는 과연 시장의 수많은 개별 기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시장에서 ‘국가의 역할’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말하는 ‘산업정책’ 외에 엄청나게 많다.
경제학 교과서는 대부분 ‘국가 없는 완전한 경쟁시장’에서 분석을 시작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이기심의 수리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개별 기업의 이윤 극대화와 개별 소비자의 효용 극대화의 순수 모형에 ‘세금’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표적 기업과 대표적 개인의 극대화 행동을 총합하면 시장 전체의 후생은 자동 달성된다. 자원의 효율적인 최적 배분이다. 개인과 기업이 공동체·이타심·지구환경 등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이기심에 따른 행동을 하면 모두가 만족하는 최적의 사회가 항상 보장된다. ‘시장균형가격’ 외에 공동체 가치를 고려하는 경제행위자는 합리적·효율적 인간이 더 이상 아니며, 경제 분석 대상이 될 수 없다. 여기서 가장 많은 비용(가격)을 지급할 용의가 있는 사람에게 희소한 자원을 배분해주기만 하면 그 자원은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된다.

기업을 돕는 ‘국가의 역할’ , 건설업·은행…
이제 순수 모형에 세금이 개입되면 어떻게 될까? 경제적 측면에서 세금(징수)과 화폐(발행)는 오직 국가만 갖는 독점적 권한이다. 즉, 세금과 화폐는 국가의 시장 개입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완전경쟁시장에 세금이 던져지면 항상(!) 비효율이 발생한다’고 경제학원론은 가르친다. 생산자·소비자 잉여를 갉아먹고 정부의 잉여(세금)로도 포함되지 않은 채 허공에 사라지는 이른바 ‘자중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시장의 힘에 따라 배분된 소득 격차를 세금이 재분배하는 기능을 하고, 직접 소득세의 경우 세금을 내고 또 낼 능력이 있는 사람은 중위소득 이상의 고소득·자산가일 뿐’이라는 이야기는 교과서에 빠져 있다. 세금이 개입되면 전체 경제 후생은 줄어든다는 얘기뿐이다. 즉 세금은 비효율을 초래하고, 그래서 국가는 나쁘다고 시장주의 이론은 몇 가지 간단한 그래프를 이용해 가르치고 증명한다.
맨큐의 <경제학>은 같은 맥락에서 △정부 지출은 경제에서 그 크기만큼 민간투자를 쫓아내고 △정부의 임대료 가격 통제는 공급 물량 부족을 초래해 오히려 세입자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정부의 최저임금제도는 오히려 저임금 청소년의 실업을 초래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시장을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것이, 즉 정부는 시장에서 빠지는 것이 시장 참여자 모두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수리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 경제는 국가독점자본주의다. 경제학자들이야 국가 없는 ‘더 완전한 자유시장’을 외치지만, 오히려 시장의 민간기업들은 국가독점자본주의 아래 막대한 이윤을 즐긴다. “우리가 국가에 엄청난 법인세를 내는 만큼 국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 이윤 활동을 보장해달라.” 1930년대 영국의 비주류 경제학자인 조앤 로빈슨 교수가 말했듯이 “현실에서 시장의 일반적 모습은 독과점시장이고 완전경쟁은 부수적인 특별한 경우”다.

   
분양 실적 저조로 공사를 중단한 충남 연기군 아파트 건설 현장. 건설업은 국가경제에 엄청난 유발효과를 일으킨다.

건설산업을 보자. 건설업은 경제의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와 고용유발 계수가 매우 크다. 주택과 사무실이 지어지면 철강·시멘트·건설중장비 수요뿐 아니라 새로 지어진 건물에 들어갈 냉장고·세탁기·텔레비전·선풍기 수요도 증가한다. 심지어 집과 사무실에서 쓰는 화장지·책상·의자·가위·연필·지우개·화분·손톱깎이 따위 수많은 상품 소비가 발생한다. 재벌기업마다 건설회사를 거느리는 이유는 비자금 조성 목적도 있지만, 대형 TV에서부터 현관 열쇠까지 그룹 계열사가 생산한 온갖 상품의 안정적이고 거대한 소비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주택건설업의 수요와 공급은 국가의 부동산 정책에 크게 좌우되기 마련이다. 토목 쪽도 마찬가지다. 세금 투입으로 도로를 확충하면 찻길이 넓어지고 많아져 자동차 수요가 늘면서 현대자동차가 큰 혜택을 보게 된다. 또한 이 자동차에 타이어·유리·소파·내비게이션 등 수천 가지 부품을 공급하는 개별 기업들의 수익이 증가하게 된다. 건설회사 사장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건설업이 국가경제에 끼치는 엄청난 유발효과를 잘 알 것이고, 토건국가 정책 구상은 여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시장에서 국가로부터 독점적 이익을 보장받는 또 다른 민간기업은 은행이다. 은행업 면허는 일반 국민에게 합법적으로 예금을 받고, 또 예금이자보다 더 높은 금리로 대출해주면서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며 장사할 수 있는 ‘허가증’이다. 게다가 국가는 ‘예금자보호’라는 제도를 둬서 사람들이 돈을 은행에 믿고 맡길 수 있게 도와준다. 예금자보호제도에 따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경제 위기 때마다 돈은 은행에 더욱 몰리게 된다. 국가는 은행업 진입면허 발급을 소수로 제한하고, 이를 통해 독과점적 수익을 보장해준다. 수익을 보장해주는 이유는 은행이 가진 거시경제적 외부 효과 때문이다. 즉, 은행은 산업자본에 자금을 대출해줘 투자를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공공재 역할을 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은행은 국가에서 부여한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연간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면서도 기업대출을 줄이고 가계 소매금융에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본연의 역할을 팽개치고 있음에도 은행이 부실해지면 국가는 또다시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해주기 일쑤다. 은행이 쓰러지면 기업대출이 끊기면서 대출받은 기업도 함께 흔들려 결국 고용에서 재앙이 터진다. 한두 개 기업이 망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로 인한 실업은 표와 직접 연결돼 정치권력의 유지와 집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한다. 사실 대공장 하나가 지진에 폭삭 쓰려졌을 때 자본(설비)이 파괴되는 것쯤이야 중앙은행이 종이와 잉크·물감으로 돈을 더 찍어내 복원하면 그만이다. 물론 경제에 인플레이션 고통을 다소 초래하겠지만. 일자리 상실로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가 가장 큰 문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도 원동력은 여전히 ‘사람’이고 ‘노동’이다.

   
2006년 11월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에서 고객들이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현실의 문제다
시장에서 기업 이윤을 위해 국가가 봉사하는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자유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경제원론이 보여주는 세계와 정반대로, 오히려 민간기업의 이익과 잉여를 위해 존재한다. 1980년대 말 이른바 ‘종심-독강’(종속 심화, 독점 강화) 테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은 단지 이론 수준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오히려 심화되는 현실의 문제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사우디아라비아 경제관료가 오면 공항 마중부터 시작해 극진히 모시는 이유가 뭐겠는가? 국내 독점자본의 공사 수주를 위해 국가가 발벗고 나서는 것이다. 법인카드 사용을 손금 비용으로 인정해 법인세에서 공제해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직장인이 내 돈 아닌 회삿돈으로 밥과 술을 더 많이 사먹을 수 있게 도와 민간이 시장에서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더 잘 팔리게 해주는 셈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역시 투명한 매출액 노출 효과도 있으나, 신용카드 사용을 국가가 장려해 민간기업이 만들어낸 제품의 소비를 진작시켜주고 있다. 소득공제로 국가가 그만큼 세수를 포기하면서까지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자동차보험 가입 의무화’ 제도는 민간보험사의 수익을 보장해주고, 투자 대비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민간자본이 참여하지 않는 화물철도사업을 국가가 운영하면서 싼값에 컨테이너를 수출 항구까지 운송해주는 것도 대표적 지원 정책이다.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 비판을 대중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설파한 사람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다. 프리드먼은 <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라는 책에서 “경쟁이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경영자가 정부관료보다 더 융통성이 많다거나 이타적이거나 관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기업가의 신념과도 같은 이기심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제너럴모터스는 당신으로부터 결코 1달러를 착취할 수 없지만 미국 정부는 경찰을 보내 당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칠 수 있다. 제너럴모터스는, 정부는 하지 않아도 되는 봉사를 당신의 이익을 위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포드나 크라이슬러사의 제품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개입을 받지 않는 ‘자유기업’은 시장의 시험을 끊임없이 받기 때문에 ‘가장 낮은 비용’, 즉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하는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새는 물통’ , 당신은 참을 수 있는가?
프리드먼에 따르면, 사회보장제 등 사회·경제적 약자를 돕기 위한 국가의 각종 제도와 정책은 집행 공무원의 △무능과 정보 부족 △부패와 낭비 △인건비 지출로 인해 비효율을 발생시킨다. 이른바 ‘정부 실패’다. 국가는 전지전능하고, 또 경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후생을 증진시키는 자비로운 사회계획자(Social Planner)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경제학원론은 프리드먼의 메시지를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쓰인다는 수많은 세금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그 제도를 관리·지도하는 공무원 등 이미 소득이 높은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경제학자 오쿤은 ‘물 새는 물통’을 이야기한 적 있다. 부자가 세금을 통해 가난한 자에게 돈을 이전해줄 때 도중에 (집행공무원 인건비 등으로) 새나가는 물이 아까워 이전 자체를 반대할 것인가? “밀턴 프리드먼과 달리 나는 구멍 난 물통 실험에서 누출이 10%나 20%라면 소득재분배를 열광적으로 계속할 것이다. …나는 60% 누출이 보일 때까지만 소득재분배를 계속할 것이다.”(이정우, <불평등의 경제학>) 과연 당신이라면 어느 선까지 물통에서 물이 새는 것을 참을 수 있겠는가?
잠깐 빗나갔지만, 현실의 독점자본주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민간기업이 1980년대 이후 시장에서 저임금·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 유연화’를 추구하면서 전세계 경제는 유효수요 부족에 시달리게 됐다. 소득 감소에 따라 구매력이 뒷받침된 수요가 줄어들고, 기업이 만들어낸 상품이 잘 팔리지 않게 된 것이다. 고용 불안과 저임금 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성장이 막힌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광범위하게 나서 또 한 번 민간기업을 지원한 것이 바로 여기저기에서 자산 ‘거품’을 일으키는 방법이었다. 거시경제 차원에서 저금리와 각종 주식시장 활성화 제도 도입을 통해 주식·부동산·신용카드 거품 등 우리 시대의 거품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경쟁이 격화된 민간기업은 수익성 회복을 위해 임금소득을 깎고, 국가는 비정규직 확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기업이 만들어낸 상품 소비를 촉진해주기 위해 자산 쪽에서 거품을 만들어냈다. 거품이 꺼진 뒤의 고통은 여러 차례 경제 위기가 말해주었다.
일본의 한 해안 지역에서 1933년 쓰나미가 발생했는데, 30여 년 주기로 같은 해안에서 쓰나미 재앙이 일어났다고 한다. 당시의 공포와 상흔을 잊어버릴 정도로 한 세대가 경과하고 나면 또다시 재앙을 겪었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저임금 비정규직의 공포와 불안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소비 위축이 장기화할 수 있다. 이른바 ‘세대적 경기순환’으로, 저임금 공포를 잊어버릴 수 있는 한 세대가 지나고 나서야 경제가 회복될 수 있을까. 시장에 대한 ‘국가의 역할’은 민간기업과 자본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경제의 원동력인 인간과 노동에 맞춰져야 한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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