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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과 비트의 재앙, SF는 이제 시작이다
[김국현의 IT 인문학]
[13호] 2011년 05월 01일 (일) 김국현 economyinsight@hani.co.kr

최근의 농협 금융 전산망 마비 사태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두 사건은 이미 장기화돼버렸지만, 그 재앙의 진행 과정을 관찰해보면 흥미로운 유사점이 발견된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밖에서는 즉시 알 수 없는 리스크라는 것이다. 물론 이해당사자들이 사건을 축소하려는 인센티브가 발동해 정보가 단절된 탓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그 대상이 ‘원자’(아톰)와 ‘비트’라는 일상의 인지 범위를 뛰어넘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방사능은 무섭다. 그렇다고 물을 끓여 먹는 등 분자 수준의 대응을 해도 방사능이라는 원자 수준의 도전에는 무의미한 응전일 뿐이다. 물을 끓이는 것 같은 화학반응으로 분자적 변화를 일으켜봐야 그 열이 깨뜨릴 수 있는 건 겨우 분자 조합이다. 핵반응으로 방사성 물질이 방사선을 방출하며 다른 원자핵으로 되는 과정을 겨우 분자 수준으로 조립된 인간이라는 생물은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비트 또한 마찬가지다. 0과 1이라는 신호로 도대체 어떤 무궁무진한 재조립이 실시간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어떻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지, A·G·C·T 염기 서열에 의한 결과물인 인간은 마찬가지로 비트를 직감할 줄 모른다.
이것을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과학이었다. 최근 뉴스를 장식한 이 사건들의 근원 아톰과 비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발명·발견해 21세기로 계승한 가장 위대한 과학적 산물이다. 오일쇼크 이후 ‘과학기술 입국’을 꿈꿨던 공업국가들은 모두 원자력에 미래를 걸었다. <우주소년 아톰>은 물론 <메칸더 V>까지 당시 만화영화에는 원자력에너지로 힘이 솟는 주인공들로 가득했다. 비슷한 시기 바다 건너에서는 PC가 등장하고 인터넷의 이상(理想)이 완성되기 시작하면서 사이버스페이스는 공상과학(SF)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20세기에 21세기란 아톰과 비트의 미래였다.
그렇게 찾아온 미래. 원자력이 뿜어내는 전기에 우리 산업이 얼마나 깊게 의존하고 있는지, 인터넷과 컴퓨터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깊게 의존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아톰과 비트는 분명히 21세기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꾼 대혁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가 일어난 지난 4월14일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중앙본부점에서 고객들이 객장을 드나들고 있다.

아톰과 비트에 대한 두려움은 합리적일까
인간의 후생에 미치는 여파라는 면에서 후쿠시마 사태와 농협 사태를 비교하는 것은 그 자체가 실례일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래의 총아’로 불리던 이 기술들은 대중심리에 분명히 어떤 각인을 남기게 되었고, 이는 여러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직감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것에 대한 불안, 예컨대 방사능이 건강에 미칠 영향에 대한 걱정이라든가, 전산 시스템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자료가 증발됐는지에 대한 의구심 같은 공포다.
앞으로는 인터넷 뱅킹을 믿지 않고 꼭 통장에 인쇄를 해야겠다거나, 원자력발전소는 모두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더라도, 누구도 이제는 논리적 반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보안을 철저히 하더라도 내 통장 내역에 삭제 명령이 내려질 수 있고, 초고도화 산업국가에서도 원전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음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드물고 생각하기 힘든 일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블랙 스완’이 존재하는 것이 증명된 이상.
행동경제학에서 늘 말하듯,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경제이론에서 합리적 인간은 지출과 기회비용이 같을 때 행동하겠지만, 실제로 인간은 손실, 즉 실제 지출을 훨씬 더 싫어한다. 누가 지금 1만원을 준다고 하자, 혹은 10분의 1 확률로 10만원을 줄 수도 있다고 하자. 대부분 사람은 그냥 1만원을 챙긴다. 한편 1만원을 잃거나 10분의 1 확률로 10만원을 잃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개는 10분의 1 확률로 10만원을 잃는 쪽을 선택한다. 그 유명한 ‘손실 회피’ 성향이다. 만약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경제성 있고 생활을 지탱하는 기술이더라도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다.
행동경제학 논의에서는 △내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강요된 리스크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 △처음 발생하는 리스크 △자연적인 것이 아닌 최첨단 리스크 △일부에게만 해당되는 리스크 등을 ‘과대평가하기 쉬운 리스크’라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모두 아톰과 비트가 만들어내는 리스크에 해당한다. 인터넷과 컴퓨터 문화를 혐오하는 듯 규제하는 비합리적 법안이 태연히 등장하는 것은 이런 리스크를 분별하는 합리성이 결여된 채, 손실 회피 성향이 과대 증폭되고 어떤 불순물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결벽증으로까지 발전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원전 건설은 사실상 힘들 것이다. 압도적 경제성, 그리고 이미 과잉 전기 소비에 결합된 사회와 산업구조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두려움 앞에 완전히 묻혀버리기 마련이다. 원자력에너지가 없어도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인터넷과 컴퓨터 이전의 삶도 우리는 그럭저럭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추억하는 일과 실제로 돌아가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보다 퇴보가 훨씬 더 힘들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빠질 수밖에 없는 덫
재앙의 한복판에서 폐로(廢爐)나 시스템 셧다운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어디에 있었고, 또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인간은 손실 회피 성향이 강하기에 원자로를 잃고 싶지 않거나, 시스템 가동률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거나, 혹은 직업과 꿈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리스크 상황 아래 공황 상태에서 강하게 개입한다. 후쿠시마는 지금도 지휘·통제 계통을 왜 여전히 도쿄전력에 두고 있는지 시끄럽고, 농협 사태에는 이미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개입했다. 
에드워드 요든은 저서 <죽음의 행진> (Death March)에서 프로젝트가 빠질 수밖에 없는 덫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풍경은 후쿠시마 제1원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변경되는 요구 사항, 기간과 인력에 대한 제약 조건, 과도한 기대와 열악한 조건은 프로젝트를 말 그대로 ‘데스 마치’로 만들어버린다. 고도성장기의 정부 주도 산업 전략에는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었는데, 그것이 원자력처럼 극히 위험한 것이어도 마찬가지였다. 협력업체의 하도급에 의해 주먹구구로 움직이던 금융기관의 정보기술(IT)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 현황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차세대의 에너지원과 시스템으로 상징되는 장밋빛 비전이 모든 것을 포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행진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재앙 뒤 프로젝트에 그런 사치는 없다.
요든이 <죽음의 행진>에서 말한 해결안은 두 가지다. 그만두거나 진실을 말하는 것. 적어도 진실을 말하면 대책이라도 나오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 대책의 주체로 정부를 지목한다.  
적어도 우리 생애에서 원전은 사라질 리 없다. 인터넷과 컴퓨터는 그 리스크가 어떠하든 우리 삶을 완전히 삼킬 것이다. 우리는 기껏 분자적 대응밖에 할 줄 모르지만, 아톰과 비트의 시대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지 모른다. SF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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