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평등 정책은 유리천장에 쏠려 있다. 그 외에 벌어지는 일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성별에 따른 직업 편중, 여성의 비자발적 파트타임 계약 등 해결해야 할 사안이 많다.

오드리 피스네코시 Audrey Fisné-Koch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24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양성평등 촉구 시위에서 한 여성이 ‘2024년 프랑스에서는 2.5일마다 여성 한 명이 남성에게 살해당한다’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REUTERS

직장 내 성평등은 모두 눈속임이었나? 지난 몇 년간 성차별이 가장 많이 해소된 것으로 보이는 분야는 노동시장이다. 여성들이 영화산업 등 직장에서 겪은 폭력 경험을 나누면서 #미투 운동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성폭력과 여성폭력의 줄임말인 SGBV(Sexual and Gender-Based Violence)는 이제 일터에서 낯설지 않게 쓰인다.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표현이었다. 2018년에는 직장 내 성평등이 얼마나 진전했는지를 평가하는 지표가 나왔다.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연구부장이자 사회학자인 소피 포시크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의 동료인 로르 베르니의 평가는 조심스럽다. 성평등에 대한 높은 관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사이에 이미 여성 인권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이 생기는 등 국가적으로 페미니즘 발전이 시작됐다. 다만, 그때 국가가 주도한 성평등은 남녀의 직업과 임금 격차 문제에 우선순위를 뒀다.”
임금 격차 문제는 노사정 대화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사안이다. 소피 포시크는 “남녀 임금평등이 노조가 가장 손쉽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였다. 사쪽과 단체협약을 논의할 때마다 요구사항으로 넣었다”고 했다. 이후 40년 만에 법이 줄줄이 만들어졌다. 가장 상징적인 법률은 1983년 제정한 루디법이다. 직원 수가 50명이 넘는 회사에서 남녀불평등 지수를 의무로 측정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그때 만든 공공정책은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게 유일한 목적이었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많은 남녀차별 문제는 외면당했다. 로르 베르니는 “겉핥기식 정책이 많았다. 직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남녀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데 별 효과가 없었다”며 탄식했다. “법을 강제하지 않고 독려하는 단계에 오래 머무른 탓이다. 고용주는 남녀불평등 지수만 평가하면 그만이었다. 문제를 바로잡는 건 성가신 일이었다.” 소피 포시크가 설명했다.
2000년대부터 어조가 서서히 강해졌다. 2001년 제정 이후 2006년 강화한 제니송법은 사회적 파트너(노사)가 직장 내 성평등을 논의할 자리를 만들도록 규정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규정을 어기면 처벌했다. 그런데도 연금개혁(1995년, 2003년, 2010년) 때마다 남녀 불평등이 드러났다. 여성은 남성보다 소득과 경력에서 여전히 차별받고 있었다.

성별 말고 능력 따져라
2010년대 또 한 번 전환점이 왔다. ‘유리천장 깨기’가 시작됐다. 명문대 출신인 여성 고학력자 사이에서 인식 변화가 이뤄졌다. 그들은 아무리 학교 성적이 우수하고 능력이 출중해도 여성이 조직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소피 포시크는 “단결한 여성들이 정부와 고위공직자들에게 강력한 조처를 마련하라고 설득했다. 여성할당제가 그 예다. 여성들은 금융자본주의가 변화에 동조할 수 있게 정확한 근거를 댔다. 남녀평등 실현의 목적은 정치적 원리·원칙이나 사회적 정의가 아니라 생산성에 있다”고 했다. 회사가 여성을 차별하면 회사 자체적으로 재정·경제·상업 생산성을 높이는 능력과 자질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일부 컨설팅 회사나 경영 전문가들이 여성 경영자 수와 기업 성과 사이에 긍정적인 관계가 있음을 알아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자료가 완벽하지는 않다.” 소피 포시크가 덧붙였다.
통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양성평등이 사업에 좋다는 주장은 통했다. 변화가 탐탁지 않던 이들을 설득시켰다. 가장 크게 동요한 건 재정 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하던 사람들이었다. 곧이어 법이 만들어졌다. 2011년 기업 이사회 여성화(여성할당제)에 관한 코페-지메르만법, 2012년 고위 행정공무직 임명에 관한 소바데법, 2021년 경영진 여성할당제를 도입한 릭생법이다.
소피 포시크는 이런 법률이 “간부급 여성만 누릴 수 있는 게 한계”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가령 릭생법을 적용받는 여성은 1만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엘리트주의 성평등을 지지하는 법률이다. 그런 정책은 조직에서 가장 바닥에 있는 여성이 겪는 차별 문제를 하나도 개선하지 못한다.”
 

▲ 오로르 베르주 프랑스 성평등부 장관(왼쪽)과 실비 리테일로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이 2024년 1월12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국무회의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프랑스의 직장 내 성평등 정책은 지나치게 엘리트 여성 중심적이란 비판을 받는다. REUTERS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시간제
성별 직업 분리 역시 남녀평등 정책에서 소홀히 다루는 문제다. 파리 낭테르대학 경제학 조교수 라셀 실베라에 따르면, 여성이나 남성이 특정 직업에 편중될수록 젠더(사회적 성별)에 기반한 편견이 더 커진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 가치를 깎아내리는 현상이 심해지고 남녀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진다. 여성노동자가 많은 직종을 차별하는 시선이 남아 있는 이유다.
라셀 실베라는 “프랑스에서 임금 평등은 1972년 법으로 정한 원칙이다. 똑같이 일하면 임금도 똑같이 받아야 한다. 서비스업(의료, 교육, 사회)에서 학력은 기술업이나 제조업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서비스직에서 필수 역량인 관계 조정 ‘능력’을 “기술적이고 복잡한 역량으로 보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그래서 여성에게는 주로 저평가되거나 저임금인 일자리가 주어진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57.3%가 여성이다. 정부는 무관심하게 상황을 관망한다. 소피 포시크가 기억하기로 “2014년 업종별 단체협약을 개정해 차별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고용주들이 거세게 저항하면서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사업자에게 일자리 재평가는 곧 비용 증가를 뜻한다”.
여성들의 외로운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보다 승진 기회가 훨씬 적다. “여사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일부 직종에서도 여성은 진급할 기회가 닫혀 있다. 숙련이 덜 된 남자 직원은 기술자로 승진되기도 한다. 반대로 가사도우미나 장애인학생도우미로 일하는 여성은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나?” 소피 포시크가 물었다.
시간제 일자리도 문제다. 여성노동자의 30%가 시간제로 일한다. 시간제 노동자의 80%는 여성이다. 1970년대부터 “여성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고 노동 강도가 높아졌다. 여성은 언제든 자를 수 있는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여자 직원에게 시간제 계약을 강제했다”. 로르 베르니가 설명했다.
청소업이나 대형유통업 등 몇몇 업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일감이 없어서 억지로 무급 휴가를 쓰거나(단속적 고용), 근무시간이 규칙적이지 않고 비정상적이다. 부족한 소득을 메꾸기 위해 투잡·스리잡을 뛰기도 한다. 사회학자 타니아 앙즐로프가 “일자리 부스러기”라고 부르는 일들이다. 그런 처지에서는 싸울 의욕이 꺾인다.
“가구의 유일한 소득원인 여성이 많다. 그러면 일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청소업계 노동현장 실태를 조사한 정치·사회학자 사피아 두망이 설명했다. 해고 위험, 하청·재하청 구조에 따른 어려움(의사전달 창구 부재, 원청업체보다 재량권이 적은 고용주), 노조 압박과 같은 문제도 남아 있다.

제도 개정으로 차별 심화
에마뉘엘 마크롱의 정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크롱은 2017년부터 꾸준히 단체교섭권을 제약했다. 여성들의 피해가 컸다. 흔히 성과급 향상으로 해석되는 임금 개인화는 “남녀 임금 격차의 첫 번째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성은 직무능력과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둥 여성 임금을 차별하는 핑곗거리를 수두룩하게 댄다”. 로르 베르니가 상기했다.
작지만 값진 승리도 있었다. 2023년 6월 베르보떼(아동복 제조업체) 여직원들이 단결해 두 달간 파업을 벌였다. 임금이 인상되고 30명 남짓의 파견직 직원이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이비스(대형 호텔 체인) 파리 바티뇰의 여성 청소노동자들 역시 오랫동안 투쟁을 벌인 결과 2021년 5월 임금 인상과 근로환경 개선이라는 두 성과를 얻었다.
정부와 기업이 말과 행동으로 고용 다양성과 부모됨을 추구해도 효과가 따르지 않는다. 성평등 운동이 통합된 행동이 아니라 각개전투이기 때문이라고 소피 포시크는 분석한다. “임금이나 업무 조직, 투자 관련 결정을 할 때마다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질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최근에 이뤄진 개혁에서 희망을 찾기는 어렵다. 연금수령 나이를 미룬 2023년 연금개혁은 여성을 지금보다 더 불리한 처지로 내몰 것이다. 안 그래도 프랑스 연금제도는 여성이 경력을 쌓으면서 당하는 온갖 차별을 집약한 제도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늦은 나이까지 일해야 할 것이다. 자녀가 있는 여성은 모성권(출산과 육아에 따른 경력단절 기간을 연금 가입기간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을 잃고 여성 일자리의 불안정성은 여전히 가려질 것이다.” 라셀 실베라가 말했다.
보이고 들리는 게 다가 아니다. 노동시장은 결국 남녀 평등에 가까워지지 못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4년 8월호(제449호)
Une égalité professionnelle… réservée à l’élite
번역 최혜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