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가사와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가족정책이 성역할을 와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견고하게 했다.

자비에 몰레나 Xavier Molénat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프랑스 정부가 현행 육아휴직을 2025년부터 출생휴가로 대체할 경우 부모가 3개월씩 공평하게 쓸 수 있다. 파리에서 한 여성이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고 있다. REUTERS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것을 공짜 노동이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출신 철학자이자 운동가인 실비아 페데리치가 한 말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일으킨 사고 변화를 그보다 잘 요약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은 우리가 가사와 육아를 대하는 방식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여성의 ‘천성’ 또는 ‘운명’이라는 말과 거리를 두게 했다. 실비아 페데리치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여성 이론가들은 여성이 살림과 자녀 교육을 전담하게 된 배경이 착취적 가부장제에 있다고 봤다. 착취적 가부장제는 가사와 육아의 가치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부정했다. 가정 영역에서 행해지는 일이라는 게 이유였다.
가부장제는 그러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재하다. 프랑스 통계청(INSEE)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가사 분담 불평등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성이 가사노동의 71%, 육아의 65%를 떠맡는다. 남성 가사노동 분담률도 조금은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여성이 가사노동 시간을 덜 써서 생긴 착시에 불과하다. 다림질은 세탁소에 맡기고 식사 준비는 완성품으로 해결한다. 청소하는 시간도 줄였다. 자녀에게 쓰는 시간은 남녀 모두 늘었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보다 가파르게 증가해 남녀의 육아 시간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2022년 부모 둘 중 육아휴직을 쓴 남성의 비율은 6%였다.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 인근의 한 모자보호센터를 방문해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가사와 육아가 여성의 몫이다. REUTERS

끈질긴 가부장제
다른 측면에서 보면 프랑스 엄마들은 부러움을 살지도 모른다. 과거 독일에서는 일하는 엄마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프랑스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여성이 많은 편이다. 2022년에는 자녀가 있는 여성의 82%가 경제활동에 참여했다. 그중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워킹맘의 비율이 일정 수준(28%)을 유지한다. 부모가 아이를 맡길 수 있게 정부가 지원금 등 공공서비스를 넉넉하게 제공한다. 2021년 3살 미만 아동 100명당 공인 돌봄시설(어린이집 등 돌봄기관, 공인 가정보육, 가정돌봄, 유치원 등) 자리가 59개로 조사됐다. 프랑스 국립인구연구소(INED) 소속 정치학자 상드린 도팽은 “아이 나이가 3개월만 지나면 돌봄시설에 보낼 수 있다. 종종 예시로 거론되는 북유럽은 1살이다. 프랑스와 비슷한 나라에서도 아이를 시설에 맡기고 일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 곳이 많다”라고 했다.
이처럼 대비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기억해야 할 사실은 프랑스 가족정책이 출산장려 관점을 바탕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가족수당 제도는 오래전(1938~1939년)에 만들어졌다. 그때 수당금액은 자녀 수에 따라 누적 비례해 늘어났다. 자녀가 있는 전업주부에게 주는 지원금도 있었다. 이후 1945년에 사회보험 제도가 도입되고 돈벌이는 남자,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구도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프랑스가 가진 특이점이 또 있다. 바로 강력한 집단주의다. 1945년 정부는 국립가족연맹(UNAF)에 가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독점 지위를 부여했다. 사회학자 안느 르비야르는 보수 성향의 국립가족연맹이 가족주의를 바탕으로 여성운동 등 “외부 주체의 영향력을 강하게 막았다”고 했다.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이 가족 문제를 단념하고 직업 영역에 열중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1970년대 말,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타협안이 정계에서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다. 어린이집 증원, 육아휴직 연장(매우 적은 급여로) 등 워킹맘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정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워킹맘이 가진 시간에 따라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으로 일할지, 아예 일을 그만두고 자녀 양육에 힘쓸지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했다. 출산 지원은 좌파·우파 모두가 인정하는 가족정책의 바탕이었다.
 

▲ 일·가정 ‘양립’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그 정책은 페미니즘 운동의 파급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2024년 6월23일 프랑스 파리에서 페미니스트 단체가 극우 정당의 정책에 항의하며 시위하고 있다. REUTERS

두 배로 일하지만 임금은 절반
일·가정 ‘양립’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 정책은 페미니즘 운동의 파급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책 <여성 단결! 대중 항쟁의 페미니즘 역사>를 쓴 역사학자 파니 갈로의 생각이다. 파니 갈로는 “1970년대에 노동 구조를 큰 그림에서 다시 생각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이는 직장일과 가사노동에 모두 해당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일·가정 ‘양립’ 정책이 시행됐다. 정책은 ‘자연히’ 여성만 겨냥했다. 일자리가 불안정한(파트타임, 비정규직 등) 여성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가사노동 문제가 지워졌다. 모든 관심이 직장 내 성평등 문제로 쏠렸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정책은 여성들 사이에서 불평등을 키웠다. 상드린 도팽은 “급여가 적고 근로환경이 열악한” 계층 사다리 아래쪽에서는 “육아에 전념하는 걸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요약했다. 그러나 경력 단절은 나중에 노동시장에서 일을 찾는 걸 더 어렵게 할 뿐이다. 상위 중산층 여성은 “견고한 노동 구조에 녹아들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남성화’되는 것이다. 그들은 가사노동을 맡아줄 다른 여성을 고용한다. 인종이 같거나 다른 빈곤층 여성이 대부분이다”. 파니 갈로가 설명했다.

남성 가사노동 참여율 아직도 낮아
문제는 가족정책 목표가 시간이 흐를수록 중구난방으로 설정됐다는 점이다. 어떤 것들은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 출산 장려, 남성 실업률 감소, 빈곤 퇴치와 같은 목표에 최근(2000년대 초) 성평등이 더해졌다. 성평등은 여전히 다른 목표보다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프랑스 가족정책의 가장 분명한 한계는 남성이 가사노동에 조금만 참여해도 된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데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오롯이 여성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가사노동 분담은 사회적으로 단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 그렇게 영영 공공정책 영향권 바깥에 머물러 있다. 육아 영역은 사정이 나아 보일 수 있다. 2002년 14일짜리 아빠 육아휴직이 도입되고 2021년 그 기간이 28일로 늘어났다. 하지만 사람들 의식과 사회 구조에 단단히 박혀 있는 질서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24년 5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출생휴가’를 언급했다. 도입 여부가 확실하지 않지만, 현행 육아휴직을 2025년 출생휴가로 대체할 계획이다. 출생휴가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한 발짝이 될 수 있다. 기간이 육아휴직보다 짧지만 부모가 3개월씩 공평하게 쓸 수 있다. 급여는 통상임금의 50% 수준(상한액 1900유로)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대통령이 “아빠들에게 책임을 지울 것”이라고 똑똑히 말했다. 불안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출생휴가 사용이 의무가 아닌데다 조건이 유럽연합이 장려하는 수준(통상임금의 60%)보다 낮다.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연합 지침에 반대하며 “(유럽연합 지침은) 좋은 생각이지만, 돈이 많이 들어 결국 포기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출생휴가를 쓰고 난 다음이다. 최근 몇 년간 아이돌봄시설 정원이 줄어드는 추세라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 가정보육교사가 되겠다는 사람은 점차 없어지고, 어린이집 정원은 늘지 않는다. 증원하겠다는 말만 요란하다. 지역 간 불평등도 심각하다. 어린이집 자리가 넉넉한 코뮌(기초자치단체)은 전체의 15%(대부분 돈이 많고 큰 지자체)에 불과하다. 영유아 10명 중 6명은 아직도 가족이 돌봄을 책임진다. 공인 돌봄시설에 자리를 찾지 못해서 가족이 돌보는 아이는 10명 중 2명이다.

단 하나의 싸움
여기서 공공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파니 갈로가 말했다. “오늘날 쟁점은 임금노동과 가사노동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야 재생산 노동을 재평가할 수 있다. 재생산 노동은 가정관리(청소, 공과금 납부 등), 교육, 감정노동 등 노동력을 유지·증진하는 데 필요한 일 전체를 가리킨다. 보수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정에서 공짜로 하는 일과 노동시장에서 저보수로 하는 일은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청소노동, 노인·장애인생활지원, 영유아 보육, 장애인학교생활지원 등 여성 일자리인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것과 저평가된 것은 페미니즘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파니 갈로는 그렇게 평가한다. 1970년대 ‘가사노동의 보수’를 요구한 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그 운동은 수많은 논의를 낳았다. 오늘날 페미니스트 파업 운동에도 1970년대 흔적이 남아 있다. 2017년부터 아르헨티나, 스위스,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 페미니스트들은 단 하나를 위해 싸운다. 직장 내 성평등, 재생산 노동 재평가, 성적·성차별적 추행 및 폭력 대응을 한 의제로 엮은 것이다.
프랑스에선 아직 생소한 관점이다. 몇몇 대표 노조에서 이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우리 어머니들, 할머니들이 들었던 팻말을 다시 꺼내야 할 때인지 모른다. 그 시절의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설거지는 누가 하나? 우리는 혁명한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4년 8월호(제449호)
La famille, foyer d’inégalités
번역 최혜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