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

한국인의 주거복지 수준은 아직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회복했다고 법석이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주거와 관련된 삶의 질은 높지 않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990년대 초 수도권 신도시 개발과 200만 호 공급으로 급속히 상승해 2008년 109.9%를 기록했으나, 인구 1천 명당 주택 수는 286호로 선진국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1인당 주거 면적은 27.1㎡로 좁으며, 연간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의 비율(PIR)은 7.6배로 선진국의 3~5배보다 높아 한국인의 ‘주거 관련 삶의 질’은 열악한 편이다.
월세를 내지 않고 보증금만 지급하는 ‘전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다. 조선 후기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된 전세는 주택·토지·귀중품 등을 맡기고 돈을 빌려 쓰던 ‘전당’(典當)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과거 제도권 주택금융이 미흡한 시기에 주택을 담보로 하는 사금융 기법의 하나로 기능했다. 또한 1960~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주택이 부족한 시기에 전세는 민간이 제공하는 주택임대 서비스로서 정부의 역할을 대신했다. 서민이 매입 가격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 서비스를 확보하도록 도와줬으며, 내 집 마련을 위한 ‘강제 저축’ 기능을 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많았다.
최근 전세제도에 몇 가지 구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먼저, 전세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그림> 참조). 임대차 유형 가운데 전세 비중은 1995년 67.2%를 정점으로 해 2005년 54.1%로 줄어들었다. 올해 하반기에 발표될 2010년 센서스 결과에서 더 많이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지방에서는 이미 2005년에 월세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또 하나의 변화는 전세나 월세로 임대하기 쉬운 도심의 중소 규모 주택에 대한 선호가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전세의 월세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
그러나 월세로의 전환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전세의 월세 전환을 늦추는 큰 장애물은 높은 전·월세 전환율과 원리금 상환 부담이다. 가계 부채 증가로 지급 여력이 감소한 상황에서 시중금리의 2배에 달하는 높은 전·월세 전환율(10%대)은 월세로의 전환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또 하나는 ‘세대 간 자산 이전’ 현상이다. 전셋값 상승을 부모 세대로부터의 자산 이전으로 조달하면서 전세보증금을 주택 구입을 준비하는 지렛대로 유지하려는 움직임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이런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 매매 가격 안정 등이 월세로의 전환을 재촉하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중요 요인으로 들 수 있다. 1965년 26.4%였던 금리가 2000년 이후 5%대로 급락했고, 담보대출도 284조원까지 늘었다. 둘째, 인구구조 변화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고 고령화가 심해지며,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중소형 임대주택과 월세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셋째, 주택 가격의 안정과 공급 증가다. 주택보급률이 110%에 육박하면서 향후 주택 가격 급등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짐에 따라 집주인들의 월세 선호가 강해지고 있다. 넷째, 젊은 층과 서민층을 중심으로 도심의 소형 임대주택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는 주택 가격 안정과 저금리 기조하에서 전세의 월세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므로 이에 따른 서민 부담의 완화 등 사전 대응이 필요하다.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사회별 공정임대료(Fair Rent) 책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임대료 안정화가 우선돼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 임대주택 비중은 9.8%로서, 미국·일본보다는 높지만 프랑스·영국 등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어서 민간 임대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 복지국가는 물론 영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사회주택(Social Housing)을 전체 주택의 20% 내외로 공급해 서민의 주거 안정에 크게 기여한다.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보금자리주택 등 각종 공공주택의 공급에서 임대주택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지난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주택 바우처’를 도입하자
시장경제를 앞세우는 대표 국가라고 알려진 미국이나 영국에서 물가상승률 범위에서 임대료가 인상되도록 하는 공정임대료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부동산 임대료의 과도한 상승은 서민 생활을 불안하게 만들고, 이는 임금 인상 요구로 이어져 국가경제 전반에 걸쳐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경험을 통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임대료 결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월세로의 전환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주택 바우처’를 도입하는 등 주거비 부담을 가볍게 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월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주거비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우리나라도 2001년부터 생계비를 보조받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거급여를 지급해오고 있지만, 그 대상이 협소하고 생활비와 주거비가 실질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향후 지급 대상을 중산층까지 포함해 더 넓히고, 주거 비용에만 활용할 수 있는 주택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전세보증금의 제도권 금융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집주인의 목돈 활용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세입자의 월세 전환을 도와주게 된다. 전세를 제공하는 대가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서 받은 무이자 대출을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으로 이전하면, 가계 부채를 줄이고 제도권 금융화를 통해 금리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대형 국책 금융기관의 역할이 필요하다. 세입자에게는 목돈을 돌려주고, 낮은 정책금리와 연동해 낮은 월세로 전환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만약 세입자가 전세자금을 은행에서 빌렸다면, 이를 상환하고 낮은 월세로 교체해 가계 부채를 낮추고 가계의 건전성을 제고할 수 있다. 집주인에게는 기존과 같은 목돈을 활용하게 하되, 세입자가 아닌 금융기관에서 무이자 담보대출을 받는 형식으로 ‘제도권 금융화’한다. 은행에 주택담보를 제공하는 불리함을 상쇄하게 임대사업에 따른 소득세 감면과 양도소득세 감면 등 세금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은행에는 주택담보 확보를 통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늘어나지 않으면서 자금을 공급할 수 있고, 연기금과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정책 금융기관으로의 유동화를 통해 저비용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임대서비스의 전문화와 고도화를 위해 기업형 임대사업자를 육성해야 한다. 2~3채의 주택으로 임대업을 하는 소규모 개인 임대사업자를 모아서 재임대하는 대형 임대사업자를 육성함으로써 임대사업을 전문화·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 임대주택사업자는 건설임대사업자와 매입임대사업자로 분류돼 있지만, 일본처럼 지주(地主)공동사업이나 ‘서브리스’(고정 월세로 집주인에게 30년을 보장받고 임대주택을 빌린 뒤 임차인을 모집해 마진을 남기는 사업 형태)등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사업을 하도록 관련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 법인에도 주택을 분양할 수 있게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해 국민연금공단, 한국토지주택공사, 지방 공기업, 민간 대기업 등이 임대사업에 참여하게 한다. 일본에서도 부동산 거품 붕괴와 일본판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의 은퇴에 따라, 소유보다는 임대를 선호하자 분양사업이 급속히 감소했다. 주택 임대를 선호하면서 임대보증금 자체가 사라진 ‘먼슬리 렌트’(Monthly Rent)가 등장하게 됐다. 과거처럼 개인들이 임대하고 관리하는 방식의 임대시장은 빠른 속도로 기업화됐다. 우리나라는 아직 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보다는 경기침체에 의한 미분양 아파트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의 변화가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재 일본의 모습이 이제 본격적인 인구 감소를 앞둔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일본 임대주택사업자, 한국 진출 준비 중
한국의 주택시장이 일본과 비슷하게 소형 임대주택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주택임대사업에 정통한 일본의 부동산회사들이 국내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에서 서브리스 등 신규 임대서비스를 통해 57만 호를 보유한 대규모 임대주택사업자로 성장한 ‘레오팔레스21’과, 대형 부동산회사인 ‘스미토모상사’ 등이 서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최근 부동산거래업의 전문화, 부동산업의 고부가가치화 등을 추진하기 위해 ‘부동산거래업법’을 새롭게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대형 건설업체들도 주택임대사업 진출을 검토 중이다.
나라마다 역사적 전통과 주택 임대차에 관련된 제도가 형성된 배경이 다르지만, 서민들의 주거를 안정시키려는 노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야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 등 시장주의 국가는 물론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 우리와 제도적 맥락이 비슷한 일본에서도 월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주거비 보조와 주택 바우처를 지급하고 있다. 과도한 임대료 상승을 예방하고, 임대계약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한다. 19세기 중반 이후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에 따라 주택 부족이 사회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선진 각국은 공공 임대주택의 보급에 힘썼고, 민간 임대주택도 임대료 규제와 계약 갱신권 부여 등을 통해 세입자를 보호하고 있다.
영국은 2005년 말 현재 임대주택 비율이 29.5%에 달하고, 공공 임대주택 비중이 18.2%로 높은 편이다. 1915년 임대료 규제, 1943년 주거수당, 1965년 공정임대료 제도, 1972년 임대료 보조(Housing Benefit) 제도를 도입했다. 프랑스는 구미 선진국 가운데 3년 또는 6년의 최소 계약 기간을 두고 계약 갱신권을 보장하는 등 세입자 보호에 필요한 가장 강력한 규제와 임대료 보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임대주택 비율이 약 34%로 대부분 민간 임대주택이며(민간:공공=8:2), 최근에 민간 임대주택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크게 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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