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 조선업이 10년이 넘는 장기 불황을 지나 호황을 맞으면서 울산광역시에 외국인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 울산시 동구 시가지 너머로 현대중공업 조선소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한국은 저출산 국가다. 한국 여성 1명당 출산율이 0.8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6명에 견줘 절반 수준으로 가장 낮다. 경제활동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면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산업 인력을 확대하려면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확대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외국인 인구 증가는 산업 현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 있을 때는 근로자이지만 퇴근하면 이웃이 되고 일자리를 놓고는 경쟁자가 된다.

이미 다인종·다문화 국가
외국인 유입 증가는 여러 나라에서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인도적 난민 정책을 원칙으로 삼는 유럽연합(EU)에서는 국가 간 난민 떠넘기기가 횡행하고, 외국인 혐오를 대놓고 주장하는 극우 정치인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고 있다. 대표적 다문화·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외국인 유입을 막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다.
‘단일민족’ 국가라는 인식이 확고한 한국 사회에서는 외국인 인구 증가가 미칠 파급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한국은 이미 다인종·다문화 국가다. 전체 인구의 5% 이상이 외국인인 국가를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분류한다. 국내 장단기 체류 외국인은 251만4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4.9%를 차지한다. 제조업과 농업 현장은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산업이 무너질 지경이다.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외국인 인구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한국 사회가 목도하게 될 정해진 미래다.
울산은 가장 특이한 경로로 다문화 도시가 될 지역으로 꼽힌다. 보통 외국인 인구는 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울산은 대규모 외국인이 한꺼번에 유입되는 양상을 보인다. 2023년 9월 말 기준 울산 인구는 112만6671명으로, 2016년 이후 88개월 만에 증가했다. 갑자기 출산율이 높아지거나 내국인 유입이 늘어날 리가 없다. 결국 외국인이 증가한 것이다.
울산 지역 전체 외국인 수는 2만2504명인데 2023년 한 해 동안 4천 명이나 넘게 늘었다. 2022년 889명과 비교하면 300% 넘게 늘었고,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 외국인 인구의 20% 이상이 1년 만에 증가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 HD현대미포, HD현대삼호 등 대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수많은 협력업체가 밀집한 울산 동구의 인구가 크게 늘었다.
조선업은 10년이 넘는 장기 불황을 지나 호황을 맞았다. 다시 선박 주문이 들어오고 일감이 생겼지만 힘들고 임금을 적게 주는 조선업 현장에 한국인 노동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일감은 있는데 일할 사람이 없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고 정부는 외국인 인력 유입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2023년 3분기까지 조선업에 신규 채용된 1만4천 명 중 1만2천여 명이 외국인이다. 울산 지역에 외국인 인구가 늘어난 이유다.
한두 명이 아니라 100명이 넘는 외국인이 한 번에 유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울산에는 선례가 있다. 202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탈레반은 수도 카불로 진격했다. 미국은 물론 미국의 우방국들도 안전을 위해 아프간에서 철수했다. 문제는 주아프간 한국 대사관에서 한국 외교관들과 함께 근무했던 현지 아프간 임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적국의 부역자로 분류돼 탈레반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 외교관들은 아프간을 떠나며 이들에게 구출하러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인도적 이유로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만을 위해 국외 분쟁 지역에 군인을 투입한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아프간에서 작전명 ‘미라클’인 군사 작전을 벌여 아프간 기여자 391명을 구출해왔다.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한국 정부에 협조한 사람은 끝까지 돕는다는 선례를 남긴 중요한 사건으로 국내에서도 많이 회자됐다.
 

▲ 고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2022년 3월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등굣길을 함께하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고 노옥희 교육감 페이스북 갈무리

아프간 기여자들도 울산 정착
정부는 이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할 기업을 물색했다. 현대중공업 협력업체들이 이들을 채용하기로 하면서 29가구 157명이 울산에 정착했다. 이들은 한국에 입국할 때만 하더라도 한국을 도운 특별기여자로 환대받았지만 울산에 정착하자 위험한 무슬림 취급을 받았다.
여기에 초등학생 25명이 포함돼 있었는데, 입학하게 된 학교의 학부모들은 손팻말을 들고 아이들의 입학을 반대했다. 해당 지역 학부모들은 “어린 아이들이 아프간 사람들이 가진 종교, 문화, 사상도 모른 채 피해를 몸소 겪어야 한다”며 거세게 저항했다. 특별기여자라고 하지만 이들의 신분은 사실상 난민이다. 하루아침에 100여 명의 외국인이 이웃이 되는 현실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다. 외국인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은 막상 외국인이 내 이웃이 됐을 때는 무색해지기 마련이다.
이들이 지역사회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특히 노옥희 전 울산 교육감의 행보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노옥희 교육감은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 교육’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이들이 울산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프간 자녀가 배정된 학교마다 특별반을 만들어 별도의 한국어 교사를 배정하는 등 아프간 사람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쳤다. 또, 다른 문화와 국적을 가진 사람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다문화 교육 강좌를 만들어 지역 주민을 초대했다.
많은 이의 반발 속에 아프간 아이들이 처음 등교하던 날,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등교하는 노옥희 교육감의 진정성 있는 모습은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프간 자녀들 가운데 고3 학생 일곱 명이 졸업해 6명은 울산과학대에 합격했고 1명은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에 취업했다. 2022년 12월 노옥희 교육감이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울산 시민과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고인을 기렸다.
울산은 한국 사회가 가게 될 길을 누구보다 먼저 가고 있다. 울산은 HD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등 대기업의 지역총생산이 전국 어떤 도시보다 높다. 하지만 인구 유출은 전국에서 가장 심각하다.
1997년 광역시로 승격 당시 101만 명이던 울산 인구는 2015년까지 117만 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이후 조선업 불황이 길어지면서 2022년 111만 명까지 감소했다. 외국인 인력이 유입되지 않으면 제조업 유지가 쉽지 않다. 앞으로 외국인 비중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중 세계화’
법무부는 외국인 비자 규모를 크게 확대했는데 이 가운데 ‘숙련기능인력’ 비자 확대의 영향도 클 것이다. 4년 이상 국내에 체류 등 조건을 충족한 외국인 근로자는 ‘숙련기능인력 비자’(E-7-4)를 받을 수 있는데 연간 한도가 2천 명에서 3만5천 명으로 확대됐다. 숙련기능인력 비자는 가족을 동반할 수 있다. 지금 1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왔다면 4년 후에는 가족을 포함해 4~5명의 외국인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게 되는 것이다.
저출산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듯 다문화 국가로 진입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당장 산업적 필요로 인해 울산 등 제조업 도시들이 먼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데 한국 자체가 다문화 국가로 변하는 것도 머지않은 미래다.
서울에서 이뤄지는 상류층의 세계화는 우리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다문화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제도적·심리적 준비가 됐는지는 의문이다. 서울대에서 서아시아를 공부하는 임명묵 작가는 본인이 공부하고 있는 서울에서 상류층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세계화와 본인 고향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세계화를 경험하며 ‘이중 세계화’라는 표현으로 한국 사회를 정의한 바 있다.
상류층의 세계화보다 실제 더 큰 폭으로 이뤄질 하류층의 세계화는 우리 사회의 큰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임 작가는 “이중 세계화가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있는지 서울에 살면 감이 잘 안 잡힐지 모르지만 서유럽과 북미가 겪었던 정치적 혼란을 피하고 싶다면 진지하게 답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문화 사회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지역 도시의 변화를 진지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 권순우는 경력 15년의 현직 기자다. 금융, 산업 등 다양한 영역을 취재하며 생생한 현장을 전한다.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머니투데이방송>을 거쳐 현재는 <삼프로TV>에서 ‘압도적 권순우: 압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격변과 균형>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가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