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호 공인회계사
 

회계사 수험생에게 현금흐름표는 공부하기에도, 시험에 나와도 껄끄러운 존재다. 많은 1차 수험생이 막판에 현금흐름표 공부를 포기하고 시험장에 나설 정도다. 이유는 간단하다. 회계는 발생주의를 기준으로 한다. 회계 계정에는 현금의 입출입과 별개로 수익과 비용이 발생한 시점에 거래가 기록된다. 수험생은 이 발생주의를 대원칙으로 회계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현금흐름표는 이를 반대로 돌린다. 현금주의인 것이다. 수험생 입장에선 익숙지 않은 발생주의에 겨우 적응한 머리를 다시 되돌려야 한다.
현금흐름표에서는 수익이 언제 발생했는지보다 그 수익에 따른 현금이 언제 나가고 들어오는지가 중요하다. 아무리 높은 매출을 달성했어도 매출을 기록한 해에 현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현금흐름표에는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는다. 현금흐름표를 만드는 일은 귀찮고 복잡하지만 그 결과는 직관적이다. 전해 또는 전분기 대비 현금이 얼마나 늘었거나 줄었는지 곧바로 알 수 있다. 서두를 길게 쓴 이유는 위메프의 현금흐름표 때문이다. 이른바 ‘티메프’ 사태는 1조원대 피해까지 예상되는 대규모 사건이다. 기록된 순손실 이외에도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그들의 현금흐름표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사태의 반면교사를 위해 위메프의 현금흐름표를 살펴보자.
현금흐름표는 세 가지로 구성된다. 영업으로부터의 현금흐름, 투자로부터의 현금흐름, 재무로부터의 현금흐름이다. 예를 들어 제조회사를 설립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회사는 투자자로부터 자본 투자를 받아 공장을 건축한 뒤 제품을 판매한다. 여기서 재무현금흐름은 플러스(+), 투자현금흐름은 마이너스(-), 영업현금흐름은 플러스(+)가 된다. 투자받은 돈(재무현금흐름)으로 영업에 필요한 설비에 투자(투자현금흐름)한다. 그리고 이 설비로 제품을 제조해 현금을 벌어들인다(영업현금흐름).

투자자 생각 엿볼 수 있는 현금흐름표
성장성이 기대되는 회사들엔 회사의 현재 매출이나 수익과는 별개로 큰 투자가 이어진다. 몇 년간 회사가 제품 판매로 수익을 거두지 못해도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다. 테슬라를 예로 들어보면, 2017년 테슬라는 불과 1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했고 누적 적자는 50억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테슬라의 투자현금흐름을 보면 한 해에만 44억달러의 투자가 이뤄진 것으로 나온다. 이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투자자들의 자금이다. 테슬라의 성장성에 베팅한 것이다.
이해 테슬라의 재무현금흐름으로 44억달러의 투자금이 유입됐다. 대부분 증자를 통해 이뤄졌다. 계속되는 누적 손실에도 테슬라가 계속되는 시설투자를 할 수 있던 이유를 현금흐름표에서 알 수 있다. 스타트업 기업이 대부분 이런 식의 투자를 받아 대박을 꿈꾼다. 우리나라에서는 쿠팡과 배달의 민족이 성공적인 예시라 할 수 있겠다. 창업자의 아이디어로 투자받고 상장 또는 매각으로 결실을 본다.
이제 위메프로 다시 돌아가보자. 위의 표는 최근 10년간 위메프의 손익계산서와 현금흐름을 발췌한 것이다. 매출을 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는 매해 꽤 높은 성장을 했다. 그러나 당기순이익은 지속적으로 큰 손실이었다. 그럼에도 몇몇 투자자들은 당시 위메프의 성장성을 높게 산 모양이다. 재무현금흐름을 보면 2019년 대규모의 플러스(+) 금액이 발생했다. 이는 당시 넥슨코리아와 아이엠엠(IMM)인베스트먼트의 3700억원 투자에 기인한 것이다. 표에는 기재하지 않았지만 당시 이 투자로 위메프의 자본잠식은 해소됐고 재도약할 발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2020년 이후 매출을 보면 성장세가 크게 꺾였다. 이는 아마존, 쿠팡과 같은 경쟁업체 성장 외에도 알리, 테무와 같은 중국 이커머스 회사의 저가 공세에 기인한다. 기껏 수혈해온 유상증자 금액이 몇 년간의 순손실로 그대로 빠져나갔다. 플랫폼 기업은 성장이 생명이다. 성장이 사라진 플랫폼 기업은 대규모 적자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아무도 신규 투자에 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위메프가 투자금을 다 소진하고 두 손 두 발 다 든 시기가 2024년 7월인 것이다.

미지급금과 예수금 증가의 의미
소상공인의 피해가 왜 이렇게 커졌는지는 2023년의 현금흐름표에서 알 수 있다. 2023년의 당기순손실은 882억원이었다. 그런데 영업현금흐름은 -177억원이다. 영업현금흐름은 회사의 주 영업에서 발생한 현금흐름이다. 그렇다면 당기순손실과 영업현금흐름의 큰 차이는 어디서 기인할까? 바로 미지급금과 제휴예수금이다. 위메프와 연계된 소상공인들에게 지급할 금액과 상품권 할인판매로 인한 예수금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미지급금과 예수금이 증가하면 영업현금흐름은 좋아 보인다. 지금 줄 돈이 나중에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메프는 소상공인에게 줄 돈의 시기를 늦추고, 고객으로부터의 상품권 할인판매 금액을 크게 늘려 버틸 때까지 버텨본 것이다. 그러나 결국 터질 수밖에 없었다. 항복의 시기가 늦춰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티메프 사태 이후 각종 기사에 따르면 위메프와 티몬이 지급불능 막판까지 상품권 할인판매 금액을 크게 늘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2024년 2분기 분기재무제표에는 미지급금과 제휴예수금이 훨씬 더 증가했을 것이다. 돌려막기의 끝이 이렇다. 위메프가 살길은 추가로 투자받는 것 또는 매출의 급반전뿐이었으나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다.
위메프를 통해 현금흐름표 분석의 중요성을 살펴봤다. 현금흐름표는 직관적 정보를 주지만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보다 쓰임새가 적다. ‘얼마를 벌었냐’는 손익계산서를 통해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이 조달받거나 벌어들인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현금흐름표를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불과 3여 년 전만 해도 티몬, 위메프와 경쟁 구도에 있었던 쿠팡이 성공적으로 상장한 뒤 이제는 영업이익을 발생시킨다. 현금흐름표에서 보이는 위메프와 쿠팡의 차이점은 쿠팡의 성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이었다. 쿠팡이 현금을 다 소진할 때마다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그들에게는 쿠팡이 밑 빠진 독이 아니었다.

* 10여 년간 자본시장 언저리에서 밥벌이하는 공인회계사다. 시장 거품을 늘 걱정하지만, 우리가 숨을 거둔 뒤에도 자본시장은 계속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모두에게 공개하는 재무제표 등 공시 정보를 통해 기업의 속살을 톺아보는 글을 독자와 함께 나누려 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