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은 조기 총선 결선투표에서 좌파 연합과 범여권에 밀렸지만 1차 투표에서 득표율 1위를 차지하는 등 극우 세력의 힘을 보여줬다. 1958년 제5공화국 성립 이후 반이민주의를 내세운 극우 정당이 총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연합이 권력의 중심에 입성하게 될 경우 사회 전반에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민연합은 성별과 인종을 차별하는 반동적 사회정책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편집국
 

▲ 2024년 7월3일 프랑스 파리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 개표 결과 국민연합이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REUTERS

지금도 국민연합(RN)이 극우 정당인가? 최근 국민연합이 던진 이 질문에 국참사원(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은 ‘그렇다’고 답했다.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편집국은 국민연합이 스스로를 ‘정상 정당’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2024년 총선 공약을 파헤쳐봤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결과는 국참사원이 낸 것과 같았다.
‘극우’라는 말에는 ‘극단’이라는 뜻 말고도 ‘우익’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프랑스의 극우 성향 정당 국민연합(RN)은 저소득층에 친근하게 비치고자 극우 딱지를 벗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나 본질은 말로 숨기지 못한다. 국민연합의 경제·사회·환경 공약을 보면 우익 정당이 분명함이 드러난다. 자유주의와 생산주의를 주창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한 행보는 부르주아 계층 유권자가 늘어나는 추세와 맞아떨어진다. 이제 국민연합 지지층은 관리직, 퇴직자, 부유층 등 공화당에 표를 주던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지키지 못할 복지 공약
국민연합의 속살을 깊이 파헤치기에 앞서 이번 총선 공약이 얼마나 부실한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24년 6월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연합은 실질 지도자 마린 르펜이 2022년 대선 후보 때 발표한 22가지 공약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그때 르펜의 분야별 정책 공약집 16권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유럽의회 선거용으로 써먹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1차 투표를 고작 며칠 앞두고 12장짜리 빈약한 공약집을 내놓았다. 그 안에 예산 계획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국민연합 공약집에 적힌 내용이 부실하다보니, 당내 핵심 인사들이 언론에서 한 말을 고려해 뜻을 해독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합은 홍보지와 책자에 새긴 약속도 언론을 통해 때때로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바꿔버린다. 총선이 가까워지자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 대표는 걸림돌로 보이는 현안을 점점 회피했다. 국가재정 상황을 살펴야 한다는 이유로 몇몇 가장 시급한 사회정책을 밀어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합 공약을 평가한 결과는? 경제·사회정책 공약은 앞서 말한 대로다. 국민연합은 아니라고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펼치는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연합이 공약한 사회정책 중 몇 가지는 마크롱주의를 끊어버릴 대안으로 보인다. 가령 의료정책 공약으로 공공의료기관 예산 증액, 자궁내막증과 유방암의 국가 보장률 확대, 부인과 부족 문제 등 의료사막화 해결을 제시했다. 그 밖에 프랑스 가정(한부모가정 우선)과 청년(기술 수습생)에게 조세 혜택 확대, 사회주택 건설, 성년장애인지원금(AAH) 인상 등을 공약했다.
바르델라 대표는 마크롱 정부가 추진하는 실업보험 개혁을 중단하고 구직자 보호제도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공약이 남았다. 연금제도를 개혁 이전으로 돌려놓겠다는 공약이다. 다만 연금 문제는 핵심 현안이라 약속을 “차차” 지켜나갈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연금개혁 대안으로 제시한 정책도 밑그림이 너무 희미해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런 공약은 정계쪽 표현으로 ‘매장된’ 거나 다름없다.
 

▲ 프랑스 유권자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현실감각이 없다고 반대하면서 반이민정책을 내세운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RN)에 표를 던졌다. 2024년 6월30일 파리에서 국민연합의 실질 지도자인 르펜이 연설하고 있다. REUTERS

공약대로라면 국가 재정건전성 악화
국민연합 공약집 전반을 살펴보면, 이 당이 과연 공약을 실현할 의지 또는 여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몇 개 안 되는 예산 자료는 수치가 엉터리다. 르펜이 2022년 대선 후보 때 공약한 예산정책은 적어도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 어긋나지는 않았다. 그는 지출 증가분 680억유로(약 101조6200억원)만큼 수입을 늘려서 예산을 충당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였다.
국민연합이 제시한 재정수입 확보 방안은 네 기둥을 바탕으로 한다. 공공재정 낭비 축소, 경제 활성화, 탈세와 정부지원금 횡령 근절(매년 150억유로 환수), 이민자 지원 축소(매년 160억유로)다. 뒤에 두 정책을 두고 재정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예상 환수액이 터무니없이 높다고 진단했다.
몽테뉴연구소가 2022년 대선 공약(국민연합의 이번 총선 공약)을 평가한 결과, 공공재정 지출을 160억유로 축소하더라도 수입 감소로 재정적자가 총 1200억유로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됐다. 연구소는 공공지출 축소, 감세, 구매력 지원 등의 정책으로 예산을 30~50% 줄이는 긍정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합 총선 공약대로라면 매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가 1.4~1.9포인트 늘어난다.
국민연합은 공공부채에 대한 우파의 전통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2024년 2월 르펜은 한 토론회에서 “공공재정 정책이 엇나가고 있다”고 꼬집으며 “부채의 벽에 부닥친 프랑스가 건전재정을 실현할 체계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되도록 빨리, 최대한 많이 재정수입을 늘려야 한다고 말이다. 재정수입을 충당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은 (에마뉘엘 마크롱이 그랬듯이) 사회복지 예산을 축소하는 것이다.
국민연합이 엘리제궁에서 낸 길을 따라갈 여지가 없지 않다. 엘리제궁은 사회보험 예산을 깎아서 프랑스 국민의 구매력을 높이고자 했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연합이 낸 공약도 근로자 급여가 10% 이상 인상되면 그 인상분에 대한 사회보험료를 공제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공약은 근로자 구매력을 끌어올리는 비용 부담을 사용자가 아닌 납세자에게 지울 뿐 아니라, 고소득자에게 보험료 감면 혜택을 준다는 문제가 있다. 소득이 최저임금 수준에 가까운 근로자는 대다수가 이미 공제 혜택을 받고 있다.
국민연합이 제안하는 개혁안은 하나같이 불평등을 심화하는 정책뿐이다. 이는 두 경제학자 엘비르 기욤, 롤 상포냐로가 총선 직전에 한 거시경제적 평가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국민연합 공약대로라면 프랑스의 경제 수준 상위 10%는 더 부유해지고 하위 30%는 더 가난해진다.

환경 공약, 크게 뒷걸음질
국민연합이 제시하는 사회·조세정책 공약은 불평등만 심화하는 게 아니다. 환경 분야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국민연합은 자동차 연료와 가스, 중유(난방 연료)에 대한 부가가치세(VAT)를 현행 20%에서 5.5%로 낮추는 방안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공약에서 비롯될 수 있는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첫째, 유통업체가 세금 하락분을 가격에 반영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둘째, 보편적 부가가치세 인하 혜택은 소비를 많이 하는 부자에게 좋은 정책이다. 셋째, 더 심각하게는 프랑스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높인다. 환경도 환경이지만, 이는 국가 경제 주권이 걸린 문제다. 감세 대상 에너지는 거의 전부 외국에서 사온다. 거기에 해마다 수백억유로(2022년 1160억유로)씩 들어간다.
구매력 증가안이 이렇게 환경 파괴적인데, ‘녹색’ 공약은 어떤가. 당은 엄청난 퇴행을 예고했다. 지금의 ‘처벌식 환경정책’을 따르지 않겠다며 규정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발표했다. 폐지를 공약한 규정에는 단열 부실 주택을 임대하지 못하게 점진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포함됐다. 국민연합이 내세우는 대안은 ‘긍정 환경정책’이다. 하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긍정 환경정책이라고 할 만한 공약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대다수 공약이 모호하고 반환경적이다.
더욱이 국민연합은 ‘간헐적 에너지’에 반대하는 과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풍력발전을 두고 “프랑스 발전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라고 한다. 그래서 풍력발전소 건설 정지 명령을 내리고 이미 설치된 발전소는 서서히 해체하겠다고 공약했다. 2023년 풍력과 태양에너지는 프랑스 발전량의 15%를 차지했다. 그만큼 화석연료 소비량이 줄었다. 그 덕에 최근 몇 년간 금값이 된 가스를 덜 수입할 수 있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은 프랑스에서 수익성도 있지만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국민연합은 얼마 전부터 원자력과 수력 발전을 밀고 있다. 재생에너지발전과 비등한 비용으로 원자력발전을 대규모로 개발할 수 있는지는 현재로서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수력발전의 경우도 잠재 역량이 현재 수력발전 생산량의 10~20%에 그칠 것으로 본다.
국민연합은 풍력발전소 해체를 ‘시골 풍경’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홍보한다. ‘시골스러움’을 ‘실질적’이고 ‘토속적’인 환경정책과 연결해, 도시 출신 혹은 유럽연합(EU) 엘리트의 ‘처벌식’ 환경정책을 대체할 대안으로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농업정책 공약에서도 그러한 접근법이 드러난다. 르펜에게 프랑스 농업은 이미 훌륭한 본보기다. 그래서 추가 규제거리가 없다고 말한다. 르펜은 회원국 간 교역을 늘리는 EU 공동농업정책 역시 개정할 생각이 없다.
결국 국민연합이 내세우는 친환경 농업정책은 ‘지역주의’ 정책이다. 프랑스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은 전부 친환경적이라고 보는 셈이다. 거기에 보호주의가 더해졌다. 국내에서 환경 제약 없이 생산한 식품 등 모든 상품을 보호하고자 국경을 닫는 것이 공약의 뼈대다. 바르델라 대표는 유럽의회 선거 공약집에서 “제조업, 농업, 에너지산업의 쇠퇴”에 대한 투쟁을 약속했다.

출생지주의 폐지
국민연합은 우익 정당이 맞다. 이 정당의 ‘극단’ 성향에 대해서도 더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민연합은 정상 정당이라고 주장하지만, 당의 사회정책이 완전히 반동적이고 외국인 혐오적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국민연합이 총선을 이기면 외국인, 더 크게는 이민자가 가장 큰 희생자가 될 것이다. 국민연합은 출생지주의를 폐지하고 중요 관직에 이중국적자를 배제하겠다고 공약했다. 더 나아가 “자국민 우선주의”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비이민자 출신 프랑스인에게만 사회주택과 특정 일자리(공공기관 자유계약자, 공무원직 등), 일부 사회지원금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그중 몇몇 정책은 지난해 가을 이민법에 포함됐다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법은 언제나 바뀌기 마련이다. 법적 판단이 여론에 무감각한 건 아니다. 국민연합은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LGBTQIA+(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퀴어·인터섹스·에이섹슈얼) 등 성소수자 집단도 국민연합 승리를 우려한다. 국민연합 소속 하원의원은 최근 미성년 트랜스젠더의 호르몬 대체요법을 금지하는 법안을 냈다. 르펜은 2021년 여성 누구나 인공생식으로 임신할 수 있게 하는 생명윤리법에 반대표를 내고, 이듬해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의 성적 취향이나 정체성을 고치는 ‘전환’ 치료를 금지하는 법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합이 총선을 이기면 여성도 잃는 것이 많다. 르펜의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태도에서 당의 이념 노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르펜은 2012년 “이기적” 임신중절술을 사회보험 보장 대상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10년 뒤에는 임신중절술 가능 임신주수를 12주에서 14주로 확대하는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합 소속 하원의원 88명 가운데 46명만이 임신중절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안에 찬성했다. 국민연합은 가족을 “국가 공동체의 첫째 구성 요소”로, 국민을 이민 대응 무기로 여긴다. “출산하겠다고 하는 건 국가의 존속과 우리 문화의 보존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2022년 대선 공약집에 적힌 말이다.
국민연합은 당의 걸림돌을 전부 없애버리려고 한다. 그 걸림돌은 소수자 집단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파제다. 국민연합은 계획한 일이 법률에 가로막힐 때마다 “공화국이 사법화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언론정책 공약으로 공영방송 민영화를 내세운다. 공약이 실현되면 이미 프랑스 언론사를 다수 보유한 볼로레그룹에 공영방송까지 넘어갈 수 있다. 교육정책으로는 교육과정과 교사단을 엄격하게 감독하겠다고 했다.
그러한 권위주의 정책은 경찰의 정당방위 추정 원칙을 도입하는 등 공권력 강화를 바탕으로 할 것이 분명하다. 상상력이 부족하더라도 그림이 그려진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테러방지법, 국가 비상사태, 시위대 강제 진압을 이유로 공공의 자유를 억압하는 길을 닦아놨다. 국민연합 공약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점이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최악의 퇴행은 투쟁할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4년 7월호(제448호)
Le RN mauvais sur l’économie, dangereux sur le reste
번역 최혜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