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 엔진을 장착한 보행기, 태양광 기와, 내용물을 빠짐없이 기억하는 가방…. 새로운 물건을 고안해 만드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개인 발명가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베냐민 비더 Benjamin Bidder
루카스 홈리히 Lukas Homrich <슈피겔> 기자
 

▲ 게르하르트 비셀은 산악자전거용 소형 바퀴 3개를 단 보행보조기로 숲속에서 종횡무진 돌아다닌다. 비셀 알핀 누리집

게르하르트 비셀은 86살에 산악자전거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허리를 다쳤고 팔에는 찰과상을 입었다. 그는 거의 4주간을 누워 지내야 했다. 사고 이후로 그는 자전거로 숲을 통과하거나 스키를 지고 활강로까지 걸어 올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비셀은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체조 선수를 해도 될 만큼 젊은 나이”라고 말한 그는 직접 제작한 기계를 타고 숲속에서 종횡무진 돌아다닌다. 비셀은 2024년에 92살이 됐다. 그가 “비셀 알핀(알프스) E-하이커”(Wissel Alpin E-Hiker)라고 부르는 이 기계에 기자들은 ‘터보 롤레이터’(Turbo Rollater)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터보 엔진을 장착한 보행기라는 뜻이다.
보덴제 근교 독일 위버링겐에 있는 비셀의 집 앞에 이 보행보조기가 세워져 있다. 비셀은 산악자전거용 소형 바퀴 3개를 보조기에 달았다. 보행기에 안정성을 주고, 지반이 고르지 못한 지형에서도 잘 전진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산악자전거 바퀴로 보행기 제조
동력 장치로는 전기자전거 엔진을 사용했다. 경사도 20%까지 문제없이 올라갈 수 있다고 비셀은 말한다. 보행기로 평야를 가로지르고, 시냇물을 건너고, 질척한 풀밭도 지나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말이다!
비셀은 고령자도 어렵지 않게 설치할 수 있는 스노체인도 제작했다. 현재 이 제품의 특허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그는 보행기에 이 스노체인을 장착하고 가끔 산꼭대기의 스키 활강로로 올라간다. 거기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신다.
최근 한 대 가격이 4965유로(약 744만원)인 그의 보행기를 사기 위해 독일 각지에서 고객들이 찾아온다. 그들 가운데엔 나이와 운명에 맞서 발명가 정신을 발휘하는 이 놀라운 불굴의 남성을 직접 보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비셀은 점점 줄고 있는 특수한 사람들, 이를테면 혼자 무언가를 만들기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발명해내는 개인 발명가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다. 루돌프 디젤의 디젤 모터, 멜리타 벤츠의 커피 여과지, 베르너 폰 지멘스의 발전기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 경제는 오늘날까지 이런 개개인의 기계공학적인 영감에 힘입어 발전해왔다.
특허청에 접수된 특허 신청 건수를 보면 발명품 총량에는 변동이 없는 듯하지만, 개인 발명가의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1994년만 해도, 발명 특허 5건 중 1건 정도는 개인이 발명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가장 최근 자료인 2020년 통계를 보면 개인 발명품의 특허 신청은 겨우 7%에 불과하다. 이 자료는 〈슈피겔〉의 요청으로 독일경제연구소에서 특허청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평가한 결과다. 연구소의 특허 전문가 올리퍼 코펠은 이를 “드라마틱한 퇴보”라고 평가했다.
혁신의 비중은 점점 더 대기업에 쏠리고 있다. 수십억유로의 자산을 보유한 기업의 연구 부서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개인 발명가의 입지는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다. 기술이 너무 복합적으로 발전해서 개인이 일별하기 불가능한 상황이 돼버린 경우도 많다.
더욱이 독일 연방정부는 10년 전, 개인 발명가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개인에게 대단한 비약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반대 기류도 감지된다. 개인 발명가도 3D 프린터를 통해 “자기 나름의 혁신적인 발명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실현하는 일이 점점 더 쉬워지고 있다”고 미국의 경제 전문가 에리크 폰 히펠은 말했다.
조사 결과, 기존 기계를 개별적 필요에 따라 개량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자기가 필요해서 시작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의 필요에까지 눈을 돌리는 사례가 드물지 않은 것이다. 다만, 그것이 특허 신청이라는 고전적인 결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어 보인다.
오늘날 독일인은 여전히 자기 지하실이나 차고에서 나사못을 끼우고 납땜질을 하고 실험을 한다. 발명가들은 건물의 한구석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소형 풍력터빈 같은 걸 만지작거린다. 소방관이 불 끄는 비싼 로봇을 대체할 수 있는 간단한 소화 장치를 만들거나 버섯으로 만든 스티로폼 대체재를 연구하기도 한다. 그들을 이렇게 일하게끔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발명가들은 언제 좌절할까?
 

발명가 자질은 ‘뱃심’
발명가로서 자신이 지닌 가장 중요한 개성은 바로 “뱃심”이라고 비셀은 말한다. 웬만한 일엔 꿈쩍도 하지 않는 굳건한 성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발명가는 수많은 의심을 견뎌야 한다. 사람들이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와 스스로를 향한 의심이 이에 해당한다. 예컨대, 그 발명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아이디어를 가졌다고 믿는 것은 자만이 아닐까? 아이디어를 실제로 적용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어디서 마련하지? 만약 제품 생산이 실패로 끝나버린다면? 그 경우 발명가는 은행 빚을 지거나 친구 또는 가족에게 빚을 지게 된다. 비셀은 자기가 저축한 돈으로 E-하이커를 제작할 수 있어 다행일 따름이라고 말했다.
비셀은 젊었을 때,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쓸모 있는 포클레인을 설계한 적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설계도를 보여주며 설명을 하자 사장은 화를 냈다.” 포클레인의 사내 개발을 위해 사장이 구시렁거리며 설계도를 점검할 때도 정작 비셀은 함께 논의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산 책임은 그에게 맡겨졌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생산했고 구매 고객도 비셀이 직접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다가 점점 판매량이 증가했다. 토목 공사에서 큰 도움이 되는 이 민첩한 기계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연간 수천 대씩 판매됐다. 비셀은 회사의 대표로 승진했다.
발명의 첫 단계는 즉흥적 시도라고 비셀은 말한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중요한 것은 기존 해결책을 일단 머리에서 다 지우는 일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자유롭게 다른 방법으로도 해결이 가능할지 숙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저 맨 처음 떠올린 해결책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허 위기
비셀은 이미 오래전에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재능은 그대로다. 그는 자신의 E-하이커를 우선 소량생산해 보라고 자전거 공장을 설득했다. 그와 함께 일했던 비서는 이제 89살임에도 매일 업무를 맡아 처리한다. 비셀의 손자는 컴퓨터 관련 작업을 돕는다.
비셀은 자기 발명품과 2020년에 설립한 주식회사에 관한 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돼 가끔 한숨을 쉬기도 한다. 자초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가 무언가를 또 한번 해결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껏 고양된다. 그는 우산을 고정하는 장치 등 E-하이커를 좀더 개선할 계획이다. 백미러를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고, 야간보행 때 필요한 전조등도 추가하면 좋을 것이다.
현재 92살인 비셀이 마지막 발명가 세대일까? 과거 독일인의 전형적 덕목 중 하나였던 발명가 정신은 서서히 사라지고 마는 걸까? 수학과 과학 분야의 지식을 가진 이들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이는 잠재적 발명가 인재풀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독일경제연구소 코펠 연구원은 지적한다. 그 결과는 독일 경제가 전통으로 여기며 자랑하던 분야, 즉 기계·건설 분야에서의 특허 부족 위기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때마다 신기술로 일상생활의 빈틈을 파고든 건 개인 발명가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인공지능(AI)과 생명공학 분야에서 기술 대혁신이 일어났다. 이 분야는 개인 전사들이 성공을 바랄 수 있는 전장이 아니다.

ⓒ Der Spiegel 2024년 제23호
Das Geheimnis der letzten Erfinder
번역 장현숙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