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운명이 아니다
노년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모든 이의 소망이다. 쏟아지는 연구는 지금도 무병장수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람 수명을 좌우하는 요인 중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5%에 불과하다. 이는 생활환경과 개인의 노력에 따라 더 오래 살 수 있음을 뜻한다. 근력운동, 식단 조절, 충분한 수면, 가족 및 공동체와의 행복한 유대 관계 등은 무병장수를 위한 검증된 ‘보약’이다. _편집자
필리프 다움 Philipp Daum 〈차이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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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베를린의 인플루언서 크리스티네 첼러는 무병장수에 관심이 많다. 그는 친구와 함께 생리용 속옷 회사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창업가이기도 하다. 크리스티네 첼러 링크드인 |
최대한 오래 살면서 활력 넘치는 건강한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무병장수의 꿈을 이루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독일 베를린의 인플루언서 크리스티네 첼러(43)는 새벽 5시 30분에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테라스에 앉아 정원의 수국을 바라본다. 밖은 쌀쌀하다. 그는 두꺼운 재킷을 걸치고 있다. 그는 눈을 감는다. 새들이 지저귀고, 멀리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린다.
첼러는 매일 아침 30분간 명상을 한다. 명상은 그에게 하루 시작을 알리는 루틴이다. 그나마 명상할 여유가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후 첼러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간다. 그는 하루에 최소 일만 삼천 보를 걷는다. 그의 일주일 운동프로그램은 월요일 조깅으로 시작한다. 화요일, 목요일, 그리고 일요일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수요일에는 킥복싱 트레이너와 훈련하고, 토요일이면 테니스를 친다. 금요일은 “쉬는 날”이다(쉬는 날은 요가를 의미한다). 그는 비타민 디(D), 오메가3, 콜라겐, 크레아틴 등 영양제도 한 움큼씩 복용한다.
첼러는 마치 기계 다루듯 몸을 관리한다. 그는 “무병장수를 위한 대책”으로 식단, 운동, 수면을 꼽는다. 어느 봄날 아침, 잠에서 완전히 깬 그가 주방에서 셀러리, 브로콜리, 파프리카, 강황과 생강, 파슬리와 민트 등 각종 채소를 거대한 믹서기에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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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내 미생물 관리를 위해 다양한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 브라이턴의 채소·과일 가게. REUTERS |
50가지 채소 섭취 노력
아침에 잼을 바른 빵을 먹는 것은 어떨까? 첼러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침 공복에 당을 섭취하면 혈당이 급격히 상승한다.” 심지어 과일스무디도 과당이 있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된다고 그는 지적한다. 대신 채소를 아주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장내 미생물을 위해 매주 50가지 채소를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첼러는 채소 1kg을 간 믹서기에 단백질 가루 몇 스푼을 추가로 넣는다. 그는 근육을 위해 식사 때마다 단백질 30g을 섭취한다. 완두콩과 쌀 단백질 가루의 혼합이 이상적인 아미노산 배합이라고 한다. 그는 믹서기로 채소를 갈면서 이 모든 내용을 술술 읊는다. 〈차이트〉 기자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그는 “이건 과학”이라며 미소 짓는다.
그래, 맞다. 이것은 과학, 무병장수의 과학이다. 지난 몇 년간 무병장수는 시대의 화두가 됐다. 분자생물학자와 유전학자는 노화의 메커니즘을 해독하고 있다. 생명공학 스타트업은 인간의 수명을 120살까지 연장하는 약물을 연구 중이다. 의료인과 스포츠 생리학자는 일정한 규칙을 지키면 노년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제 ‘무병장수’는 시대의 키워드가 됐다.
사람의 수명을 좌우하는 요인 중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5% 정도다. 생활환경과 행동 패턴도 수명에 영향을 준다. 후천적 요인이 수명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든지 노력에 따라 오래 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도 사람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했다. 가급적 술을 자제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신선한 공기를 최대한 많이 마시는 등 과거 장수 비결은 비교적 단순했다. 여전히 중요하게 적용되는 것들이지만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이 외에도 장수를 위한 온갖 비결이 넘쳐나고 고도로 세분화됐다는 점이다. 고강도의 달리기는 노화에 관여하는 세포 건강의 저하를 막을 수 있다거나 건강한 성인은 매일 밤 분당 12~20회 숨을 쉬는데 평균 4번의 호흡 편차만 있어도 질병이 의심된다는 등 아주 세부적인 내용을 담은 연구보고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무병장수를 위한 맞춤형 하이테크도 존재한다. 과거에는 수면연구소에만 있던 고도의 측정 장치를 이제는 집에서 밤마다 사용할 수 있고 낮에는 운동용 스마트워치를 착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이테크는 엘리트 운동선수가 아니어도 누구나 심박수, 근육량, 산소포화도 등의 수치를 손쉽게 측정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첼러는 이런 수치에 민감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블로그와 앱, 피트니스 전문가가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를 쏟아내는 장수의학 업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인 무병장수다. 노화는 더는 운명이 아니다. 이제 인간은 노화를 조절하고, 지연시키고, 멈출 수 있으며, 심지어 되돌릴 수 있다.
그렇다면 노화를 관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비즈니스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어떤 방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물음이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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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화는 운명이 아니라 인간이 조절하고, 지연시키고, 멈출 수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벨라루스 민스크의 공원에서 산책하는 노인. REUTERS |
식단에 촉각
2024년 봄 베를린에서 분홍색 야구 모자와 분홍색 점퍼, 디올 선글라스를 착용한 첼러는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벤치 프레스와 불가리아식 스플릿 스쾃 세트를 막 끝냈다. 헬스클럽에서 나온 그는 인스타그램에 동영상을 올리느라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교차로 여러 개를 가로질렀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그의 인상적인 등 근육 영상이 방금 업로드됐다.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트럭 한 대가 그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그는 “인플루언서는 위험한 삶을 산다”면서 웃었다.
첼러는 절친한 친구이자 함께 생리용 속옷 회사를 운영하는 카티 에른스트를 만나 어디론가 가는 중이다. 둘은 평소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가까이 지낸다. 초기에 주변 창업자들에게 ‘무병장수 프로젝트’를 자신들의 새로운 취미로 소개했을 때는 모두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둘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장수 라이프스타일’이 현재 큰 성공을 거두면서, 마케팅 회사까지 설립됐다.
첼러와 카티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레스토랑은 벽장식 없이 카운터에 당일 메뉴만 놓여 있다. 첼러는 샐러드 믹스 메뉴를 미심쩍게 바라본다. 혹시 단백질이 너무 적어서일까? 역시나 첼러는 “샐러드 메뉴에는 대체로 단백질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레스토랑 직원이 샐러드에 “렌틸콩이 들어간다”고 말한 후에야, 그는 못마땅한 시선을 거둔다. 뒤이어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 렌틸콩과 두부, 호박 카레를 주문하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수란도 추가한다.
첼러는 통밀 제품, 과일, 채소, 견과류, 콩류 및 생선 위주의 식단이 심혈관질환과 당뇨병 및 비만의 위험을 크게 줄이고 뇌의 노화를 막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신체 세포에서 노화가 진행될 때 염색체 끝부분에 있는 염색 소립이 분열을 겪으며 짧아지는데 건강한 식단은 이 속도도 느리게 만든다. 모두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식단 관련 연구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첼러의 건강한 삶을 향한 여정은 위기에서 비롯됐다. 첼러와 그의 파트너는 30대 중반에 직장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자녀 육아로 허덕였다. 그는 잠도 거의 자지 못했고 운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황발작을 겪었고, 곧이어 번아웃 진단을 받았다.
첼러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명상과 요가를 시작했다. 매일 10분씩 명상하고 요가하며 점점 운동량과 종류를 늘려나갔고, 틈틈이 건강 관련 서적과 팟캐스트, 비디오를 계속 찾아봤다. 그리고 모든 자료의 공통분모인 ‘무병장수’를 목표로 삼았다. 첼러는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코끼리 500마리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흘러넘친다”고 웃으며 말한다.
무병장수 인플루언서를 비웃기는 쉽다. 테슬라를 타고 적외선 사우나에 가고, 무병장수에 관한 모든 새로운 연구 결과를 체화하려는 첼러도 쉽게 비웃음을 산다. 하지만 인류가 과학 덕분에 지금까지 이만큼이라도 죽음을 정복해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곧잘 잊어버린다. 150년 전 독일에서 태어난 사람의 평균 수명이 40살이었다면, 현재는 그 두 배에 이른다. 특히 20세기 전반 항생제의 발견과 위생 개선, 아동 질병 퇴치 및 예방접종 프로그램으로 인해 인간의 평균 수명은 크게 늘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평균 수명 곡선은 계속 상승 중이다. 21세기 들어, 독일의 기대수명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디게 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늘고 있다. 2009년에 독일에서 태어난 아이는 적어도 100살까지 살 확률이 50%에 이르렀다. 전세계 역대 최고령자인 프랑스 여성 잔 칼망은 1997년 122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 정도로 장수하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한다.
하지만 인간 신체는 장수하는 데 최적화돼 있지 않다. 과학 저술가 토마스 람게는 그의 저서 <영원히 살고 싶은가?>(Wollt ihr ewig leben?)에서 “진화생물학 측면에서 볼 때 호모사피엔스 종은 30~40살에 이미 성인 자녀를 두도록 신체가 세팅돼 있다”고 적었다.
암과 싸우는 인간의 유전적 능력이 150년 이상 장수하는 갈라파고스 큰바다거북보다 떨어지는 것도, 400년 동안 살면서 치아가 몇 번이고 다시 자라는 그린란드 상어와 달리 영구치가 단 한차례만 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불멸의 해파리’ 투리토프시스 도르니(Turritopsis dohrnii)와 다르게 생물학적으로 인체 세포 대부분이 불과 수십 차례만 분열하고 지속적으로 재생되지 않도록 설계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 신체는 노화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다. 나이가 들면서 세포의 활성산소는 디엔에이(DNA)에 복구 불가능한 손상을 일으킨다. 결합조직의 탄력이 사라지고 주름이 생기며 시력은 저하된다. 서구 선진국의 노인은 어느 순간 알츠하이머, 당뇨병, 심혈관질환, 암 등의 형태로 죽음의 전령사를 맞이한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간극
현대 의학은 이런 죽음의 전령사를 막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다. 사람들이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을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보내면서 결과적으로 기대수명이 늘어난 결과이기도 하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인 이른바 ‘건강수명’은 유럽에서는 68살로, 기대수명보다 10년이나 적다. 현대 의학의 발전은 생명을 연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죽음의 과정을 연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화두가 된 ‘장수의학’은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간극을 메워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장수의학 분야에서 세계적 유명인 가운데 한 명인 미국 스탠퍼드대학 의학박사 출신 피터 아티아는 장수의학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형적인 미국 방식으로 지식 마케팅을 한다. 그는 텍사스에서 장수의학클리닉을 운영 중이며 팟캐스트도 진행한다. 독일에서 그의 대표작 <질병 해방>(Outlive)이 출간됐을 때도 별도의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굳이 출간 기념 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그의 저서는 이미 독일에서 충분히 유명했기 때문이다.
아티아에 따르면 운동, 식단 및 수면 패턴과 건강보조식품, 약물치료 및 질병 조기 발견을 통해 기대수명은 10년, 건강수명은 심지어 20년가량 늘어날 수 있다. 즉, “자신보다 스무 살 아래의 사람만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이 일치하는 삶은 얼마나 복 받은 삶인가?
ⓒ Die Zeit 2024년 제26호
Der Sprung ins ganz hohe Alter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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