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다움 Philipp Daum 〈차이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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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런던에 위치한 훅런던클리닉은 다양한 검사를 통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훅런던클리닉 누리집 |
수제 양복점으로 유명한 런던 새빌로 거리와 고급 호텔들과 우아한 벽돌 건물이 늘어선 메이페어 주택지에 클리닉이 하나 있다. 클리닉 바닥은 리놀륨이 아닌 밝은색의 목재 마루다. 의사들은 가운 대신 우아한 정장을 입고 있으며, 클리닉 건물 지하에는 사우나와 헬스클럽이 있다.
40살 전후의 스포츠학자 에런 파슬리가 로잉머신과 덤벨 사이에서 방문객을 맞이했다. 파슬리는 훅런던(Hooke London)클리닉에서 건강검진을 담당한다. 훅런던클리닉은 단순 건강검진이 아닌, “전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파슬리는 설명했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덧붙였다.
고관절 위험
파슬리는 〈차이트〉 기자에게 일상 업무를 소개했다. 에어컨 냉기가 클리닉의 헬스클럽을 가득 채웠고, 스피커에서는 전자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보다 젊은 〈차이트〉 기자를 상대로 바를 이용한 스쾃 등 운동성 테스트를 진행했다. 또한 기자를 압력판에 눕게 하고 스쾃 자세에서 점프할 때 발생하는 힘을 측정했다. 팔굽혀펴기, 엉덩이, 무릎 및 발목 테스트가 이어졌다. 눈을 감고 한쪽 다리로 선 다음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반복하기도 했다. 이상하면서도 의미 없어 보이는 이 테스트는 신체 불균형으로 어느 쪽 다리에 무게가 더 실리는지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기자의 신체 불균형은 아직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만, 세월이 흐르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파슬리는 설명했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 감소하고 관절이 뻣뻣해지면서 균형감각이 떨어지고 낙상 위험이 크게 늘어난다. 노인은 뼈가 약하기 때문에 낙상 후 고관절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평소처럼 움직일 수 없게 돼 근육 손실이 더욱 가속화된다. 이로 인해 고관절 수술 후 사망 위험도 늘어난다. 평균연령 85살 환자 509명을 대상으로 한 스페인 연구에 따르면 고관절 수술 후 1년 이내에 사망할 위험은 23%였다. 수술을 받지 않은 동일 연령대의 사망 위험과 비교하면 무려 두 배에 이른다.
기자가 훅런던클리닉의 헬스클럽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검사는 최대산소섭취량(VO₂max) 테스트였다. 기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밟았다. 마스크에 장착된 튜브는 흡입한 산소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기록하는 장치와 연결돼 있었다. 다리와 폐가 마치 타들어가는 것 같았고 이마에서 땀이 쏟아지며 핸들바에 쓰러질 정도의 상태가 될 때까지 파슬리는 계속 밀어붙였다. 최대산소섭취량은 신체 활동 중에 신체가 산소를 소비하는 최대 비율을 뜻한다.
최대산소섭취량 수치가 높으면 신체의 여러 핵심 시스템이 효율적이라는 의미다. 폐는 공기 중의 산소를 흡수하고 심장은 혈액을 통해 산소를 펌프질하며, 세포는 산소를 사용해 에너지를 생성한다. 실험대상자 12만 명 이상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 최대산소섭취량 수치가 높을수록 사망률이 낮아진다는 명확한 상관관계가 밝혀지기도 했다.
장수의학에 관심을 가지면 끊임없이 이런 연구를 접한다. 피에르마크 불루는 이런 연구가 각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탐구해왔다. 불루는 훅런던클리닉 원장이자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내분비학 교수로서 신진대사와 호르몬을 연구한다. 그는 동네 테니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70대 초반의 말쑥하고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다.
불루 교수는 환자의 모든 데이터와 진단을 취합하는 것이 자신의 업무라고 설명했다. 훅런던클리닉에서는 헬스클럽에서 이뤄지는 각종 건강검진 정밀 데이터 외에도, 자기공명영상(MRI), 심전도, 혈액 검사, 골밀도 측정과 게놈 시퀀싱(디엔에이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일) 스캔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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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훅런던클리닉 원장인 피에르마크 불루는 어떤 접근법도 자동으로 무병장수의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훅런던클리닉 누리집 |
삶·죽음에 대한 통계적 관점
불루 교수는 클리닉의 목표가 “비만이나 심혈관, 당 대사 등 향후 건강에 해로운 요인을 고객이 갖고 있는지 미리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각 고객이 동성의 동년배들과 비교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거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무병장수가 가능할지를 도출하는 것이다.
불루 교수의 관점에서 노화란 다음 생일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을 의미한다. 위험 정도는 대략 8년마다 두 배씩 급증한다. 10살 어린이의 경우 위험 정도는 1만1500분의 1이지만, 40살이 되면 800분의 1로 확 늘어난다. 그리고 90살이 넘으면 위험 요소가 너무 많이 누적돼 향후 12개월 안에 사망할 확률이 무려 6분의 1로 치솟는다. 물론 모두 평균치다.
이는 삶과 죽음에 대한 통계적 관점이다. 장수의학 분야에서 통계치를 제외한 데이터는 전무한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장수의학 연구가 지금까지 이렇게 폭넓게 이뤄진 동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수의학은 매일 아침 30분간 명상하는 것이 얼마나 건강에 유익하며, 40살에 조깅을 중단하고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을 때 건강수명이 얼마나 감소하는지 등 특정 행동에 따른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다.
매일 파인애플을 먹으면 수명이 연장될까? 이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연구원들은 실험대상자가 한 가지 생활습관만 바꿔 매일 파인애플 한 개씩을 먹도록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유사한 습관을 지닌 다른 실험대상자들은 이전과 똑같은 생활을 지속하면 될 것이다. 연구원들은 이렇게 확연히 구분되는 두 그룹을 대상으로 실험해볼 수 있다. 실험용 쥐에게 비교 대상의 쥐와는 다른 사료를 주거나 햇빛의 양을 달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장수의학 분야에서 이러한 비교 연구는 지금까지 없었다. 대신 연구원들은 역학을 연구했다. 즉, 설문조사에서 육식을 하지 않거나 매일 파인애플을 먹는다고 답한 큰 규모의 집단을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질병 초기 징후 포착이 중요
연구원들은 이런 집단에 속한 사람이 얼마나 자주 병에 걸리고 언제 사망하는지 등의 정보를 수집 중이다. 물론 이는 모두 특정 행동 패턴의 일반적인 영향을 도출하기 위한 평균 데이터에 불과할 것이다.
불루 교수는 어느 순간 다소 의외의 말을 했다. “무병장수라는 용어는 가식적이다. 장수의학 클리닉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클리닉이 특정 접근법을 통해 무병장수의 삶을 보장해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질병의 초기 징후를 포착해 최악의 상태를 막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역학적 관점에서 말할 수 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무병장수를 보장할 수는 없고 기껏해야 무병장수의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특히 무병장수의 모든 연구 결과를 고려하며 관리하더라도 사고사 위험이 상존한다. 혹은 외부 영향이 전혀 없어도 게놈의 무작위 복제 오류로 인한 종양 위험도 있다. 불루 교수의 클리닉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포괄적인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도 주사위 던지기 게임에서 어이없이 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루 교수가 제안하는 모든 것을 충실히 따른다면 120살까지 살 수 있을까? “적어도 120살까지 살 가능성은 훨씬 높아집니다.”
런던의 고급 수제 양복점 거리 새빌로의 일류 재단사들처럼 훅런던클리닉은 건강검진을 받은 고객에게 개인 맞춤형 권장 사항을 제시한다. 연구팀은 혈당 수치가 높으면서 마라톤에 참가하길 원하는 사람에게는 탄수화물 ‘절대 자제’에서 ‘주의’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고 매일 섬유질 40g 섭취를 권장한다. 검진 결과 골밀도가 ‘우려’ 수준으로 감소했다면, 환자가 자외선이 강한 여름일지라도 비타민 디(D) 섭취량을 겨울 용량으로 유지하라고 권한다.
훅런던클리닉의 검진비용은 새빌로의 고급 양복점에서처럼 만만치 않다. 검진 하나당 비용이 7천유로(약 1천만원)고, 클리닉 연회비는 최소 2만3천유로에 이른다.
클리닉의 전형적인 고객층은 창업한 회사의 주식을 처분해 건강을 돌볼 돈과 시간을 가진 전직 사업가들이다. 클리닉 고객의 평균연령은 49살로, 고객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21살 청년이 클리닉을 찾았다.
빈부에 따른 건강 결정
〈차이트〉 기자는 훅런던클리닉을 방문한 뒤 ‘무병장수는 부유해야만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문득 생겼다. 현재 독일에서 가난한 남성의 기대수명은 부유한 남성보다 9년 정도 짧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건강마저 빈부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장수의학 신봉자들은 개인의 습관만 강조할 뿐, 우리가 사는 환경이 기대수명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기오염 기준 강화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지도 않으며, 회사 구내식당의 식단 개선이나 발암성 화학물질 사용 금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무병장수를 위한 환경 개선을 목소리 높여 요구한 적이 거의 없다. 정치적 행동을 넘어, 결국 자신을 위한 일임에도 말이다.
ⓒ Die Zeit 2024년 제26호
Der Sprung ins ganz hohe Alter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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