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기 편집장

영국 그룹 비틀스가 미국 팝시장에 진출했던 1964년 무렵, 현지 언론은 그 엄청난 파급력에 빗대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공습)이란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가격과 물량을 앞세워 전세계 유통시장을 초토화하고 있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테쉬톡’(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틱톡샵)의 공세를 두고 세간에선 ‘차이니즈 인베이전’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요즘 소셜미디어에서도 이들의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는데요. 광고를 타고 한번 들어가면 값싸고 다양한 상품을 고르는 재미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알리지옥’ ‘테무지옥’이란 말까지 생겼습니다.
2023년부터 한국에 진출하기 시작한 이들은 초저가를 앞세운 공격적 마케팅으로 국내 시장을 무섭게 잠식해나가고 있습니다. 2024년 상반기 이들을 통한 직구(직접구매) 금액은 1년 전 같은 기간에 견줘 약 3배 늘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연스럽게 2023년 국내에서 이용자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1위와 2위는 알리와 테무가 차지했지요.
이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초저가 전략으로 국내 시장을 파고드는 것 자체는 그리 나쁜 일이 아닐 겁니다. 소비자는 저렴한 제품을 살 수 있다는 점에 환호합니다. 예전엔 값이 싼 만큼 배송이 느리고 반품 절차도 까다로웠지만 이젠 배송 기간이 획기적으로 줄었고, 무료 배송에 무료 반품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상품 제조사 입장에선 판로가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국내 제조업체들에는 이들을 활용해 글로벌 진출을 확대하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과거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결과적으로 전세계 팝시장의 규모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듯이 ‘차이니즈 인베이전’도 유통시장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들이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초저가 물량 공세를 통해 과잉소비와 환경오염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쏟아집니다. 중국 업체들이 수집한 소비자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도 큽니다. 프랑스 월간지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는 최근호에서 이 같은 실태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기사화했습니다.
‘알테쉬톡’이 앞세운 ‘약탈적 가격 전략’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약탈적 가격 전략은 한 기업이 새 시장에 진출하거나 다른 기업의 진출을 막기 위해 단기 손실을 감수하고 초저가로 승부를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 전략을 통해 단기적으론 손실을 보겠지만 경쟁자가 사라지고 난 뒤 독과점 기업으로 남게 되면 가격을 올려 장기적으론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략이 반드시 지속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든 경쟁 기업이 다시 등장하면 영원히 독과점 기업으로 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알테쉬톡’의 초저가 물량 공세 전략이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질지 이들에 밀려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할 우리 기업들로서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4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