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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 얽매임 없는 테크 천재 창의성·혁신으로 전설 일궈
[PEOPLE] 은퇴한 SAP의 공동설립자 하소 플라트너- ① 기념비적 기업가
[171호] 2024년 07월 01일 (월) 팀 바르츠 economyinsight@hani.co.kr

 독일의 유일한 글로벌 테크 대기업 에스에이피(SAP) 공동설립자 하소 플라트너(Hasso Plattner, 80)는 50여년간 함께했던 SAP에서 최근 은퇴했다. 억만장자 플라트너는 기념비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유산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팀 바르츠 Tim Bartz
크리스티안 베르크만 Christian Bergmann
<슈피겔> 기자
 

   
▲ 2024년 5월15일 SAP의 전설적 최고경영자인 하소 플라트너의 퇴임식이 열린 독일 만하임에서 플라트너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고 있다. REUTERS


예상했던 대로 SAP 창업주 일가는 연례총회가 열렸던 다음날인 2024년 5월15일, SAP의 전설적 최고경영자(CEO) 하소 플라트너에게 어울리는 특별한 퇴임식을 마련했다. 독일 만하임의 SAP 대강당에서 직원과 지인 및 옛 동료 수천 명이 SAP 창업자이자 대주주이면서 영원한 CEO였고, 동시에 감독이사회 의장으로서 SAP의 정신적 지주이자 최고의 동기부여자였던 플라트너에게 경의를 표했다.
플라트너는 1994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와 2001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고객사 콘퍼런스에서 척 베리의 <오 캐롤>(Oh Carol)과 <록앤롤 뮤직>(Rock and Roll Music)을 전자기타로 연주하는 파격을 연출하기도 했다. SAP의 하이델베르크 출신인 한 음악 개발관리자는 플라트너의 리허설에서 그의 전자기타 리프 조율을 도와야 했다.
플라트너는 동기를 부여하는 인사말로 청중을 열광시키기도 한다. 2년 전 SAP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처럼 말이다. 당시 연설자에게 할당된 시간은 불과 3분이었지만, 관습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그는 무려 30분간 인사말을 했다. 그의 열정적 연설로 SAP 대강당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고, 좌중을 휘어잡은 플라트너에게서는 광채가 났다.
 

   
▲ SAP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1998년 8월3일, 거래소 최고경영자인 리처드 그래소(Richard Grasso, 오른쪽)와 하소 플라트너(가운데) 및 헤닝 카거만 SAP감독이사회 공동의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REUTERS

가끔은 무자비한…
플라트너는 미국에서라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압도적인 인물’로 불렸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전설적인 인물이다. 독일에서 첨단 테크 기업을 창업해 반세기 만에 미국 거대 테크 기업들에 맞먹는 기업인으로 우뚝 일어섰다. 물론 미국의 거대 테크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무자비한 방법을 동원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플라트너는 혼란스러운 천재이자 시스템 파괴자로서 좋은 기업이 되기 위한 지배구조 규정도 무시해버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역대급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기업을 보유한,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기업 CEO들이 홍보 담당자나 변호사의 자문 없이는 공개석상에서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자제하고 위험을 회피하며 국가에 맹종하는 현재의 독일 재계에서였다면 플라트너는 과거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독일 경제시스템에서도 독특한 파괴자를 향한 갈망은 여전히 존재한다. ‘기적의 마법사’로 불렸던 와이어카드(Wirecard, 독일 상장 기업 상위 30위권에 들 정도로 거대하고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핀테크 업체의 선두주자였으나 2020년 분식회계가 폭로돼 파산함)와 관련한 정계, 재계, 언론의 ‘묻지마 열풍’은 경제시스템에서의 독특한 파괴자들을 향한 갈망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독일 닥스(DAX·독일 대표 주가지수)에 포함될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렸던 와이어카드는 대규모 분식회계가 폭로되면서 광풍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플라트너는 글로벌 테크 대기업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6.6%의 지분으로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 제국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그가 CEO 자리에서 내려왔을 당시 SAP의 시가총액은 2100억유로로, 독일 기업 중에서 가장 높았다. 그리고 전통적인 라이선스 및 서비스 비즈니스를 클라우드로 전환해 수익률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크리스티안 클라인 CEO는 인공지능(AI)을 SAP의 역점 비즈니스로 삼았다. 클라인은 앞으로 2년 안에 AI 비즈니스에 10억유로를 투자하고 인력을 충원하려 한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부문에서는 일자리를 8천 개나 감축할 계획이다. 주식시장은 이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기업 임원을 기리는 신전이 있다면, 창업자 플라트너는 분명히 신전에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물음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SAP는 향후 플라트너 없이 해낼 수 있을까? 또한 플라트너는 SAP를 떠나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플라트너가 CEO 재임 시절 저지른 오류가 SAP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플라트너가 양면적 인물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SAP에서 직원들을 단결시키는 동시에, 직원들에게 갑질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공개적으로 과학·예술 후원자이자 자선가로 알려지는 것을 즐긴다. 그는 포츠담의 바르베리니 궁전과 민스크의 미술관에 자신이 소장한 인상파 및 구동독 예술가들의 그림 컬렉션을 전시한 적도 있고, 자신의 요트를 타고 대형 보트 경주에 참가한 적도 있다. 그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라트너에게는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그는 대이란 불법 수출 혐의로 자진 신고 후 미국에서 800만달러(약 110억원)의 벌금을 내야 했고, 이와 관련해 7개국 정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뇌물 수수 혐의 수사를 종결하기 위해 벌금 2억2200만달러를 추가로 내야 했다.
 

   
▲ 하소 플라트너가 1998년 포츠담에 설립한 ‘하소 플라트너 디지털 엔지니어링 연구소’(HPI)는 지금도 SAP 그룹의 혁신센터 역할을 담당한다. HPI 누리집

공동 창업자들
이 외에도 앞으로도 두고두고 SAP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송건들도 있다. 미국에서 SAP는 산업스파이 행위 등 혐의로 여러 차례 고발당했으며, 캘리포니아주에서 진행 중인 소송도 있다. 플라트너는 SAP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유산을 남긴 셈이다.
플라트너가 현직에 있는 동안 그에게 접근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슈피겔>과 공영방송 <아에르데>(ARD)가 인터뷰한 대다수 관련자와 마찬가지로, 그의 지인들과 전직 동료들은 창업자 플라트너를 이야기할 때면 어김없이 익명을 원했다. 인구 1만5천 명의 SAP 본사 소재지 발도르프에서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플라트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렸다. 플라트너는 쉽게 마음을 다치고 뒤끝이 있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는 <슈피겔>의 인터뷰 요청을 오래전부터 거부하고 있다.
물론 SAP는 플라트너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다. 1972년 플라트너가 바인하임에 ‘시스템분석 프로그램개발’이라는 기업을 설립할 때 클라우스 벨렌로이터, 한스베르너 헥토르, 클라우스 치라, 디트마르 호프도 함께 있었다. 이 회사가 후일 발도르프로 이전해 사명을 SAP로 바꾼 것이다. 이들 창업자 중에서 SAP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단연 두각을 드러낸 사람이 플라트너였다. 플라트너와 SAP의 이해관계는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상 유지에는 격노
플라트너는 테크 천재로 평가받는다. 그는 기업에 필요한 회계, 구매, 물류, 생산 등 모든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제어하는 SAP의 최신 소프트웨어에 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SAP는 독일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혁신했다.
SAP는 지금도 플라트너에게 ‘최고 소프트웨어 고문’이라는 독특한 직함을 부여하고 있다. 플라트너가 1998년 포츠담에 설립한 ‘하소 플라트너 디지털 엔지니어링 연구소’(HPI)는 지금도 SAP 그룹의 혁신센터 역할을 담당한다. 플라트너는 HPI가 수많은 창업자와 정보기술(IT) 경영인들을 배출했다고 자부한다.
HPI는 또 다른 핵심 기능도 담당하는데, SAP에 필수적인 개발·통합 플랫폼 ‘하나’(HANA, 데이터를 디스크에 보관하는 대신 메모리에 저장하는 멀티 모델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한 것이다. HANA는 SAP 내부에서 ‘하소 플라트너의 새로운 아키텍처’로 알려져 있다. 조달·통제·재무 등 핵심적인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HANA가 필요하다. SAP가 HANA 플랫폼 사용을 주저하자, 플라트너는 경쟁업체를 창업할 것이라며 협박했다고 한다. 플라트너는 이를 부인했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플랫폼 HANA는 SAP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SAP가 현상 유지에 안주한다고 판단될 때마다 플라트너는 격노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베를린 사람이라 빠르고, 시끄럽고, 참을성 없고, 열심히 일하고,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직원의 프레젠테이션이 지루하다고 판단되면, 그는 생각에 잠긴 채 부러질 때까지 손가락으로 클립을 갖고 놀기도 한다. 비즈니스 구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가 벌컥 화내는 소리를 SAP 직원들은 복도 건너편 집무실 문틈 사이로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플라트너는 샤이 아가시 등 창의적인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이스라엘 출신인 아가시는 플라트너가 가장 아꼈던 인물로, 둘 다 괴팍한 성격이지만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비전가이기도 하다. (CEO 임명을 기다리던) 아가시는 2007년 자신의 멘토인 플라트너가 헤닝 카거만 당시 CEO의 계약을 갑작스럽게 연장하자 이에 좌절해 SAP를 떠났다. 카거만 CEO의 계약 연장은 플라트너 특유의 수많은 변덕스러운 인사 중 하나였다. 이후 직원들 사이에서 샤이 아가시의 발도르프 집무실은 ‘샤이의 집’으로 불렸다.
아가시는 플라트너를 과거 대표적 기업인과 비교한다. “플라트너가 SAP를 운영하던 시기는 헨리 포드가 포드자동차에 몸담았던 1950년대에 비견할 수 있다. 플라트너와 포드라는 걸출한 기업인들은 단순히 한 기업만이 아닌, 유관 산업 전체를 일으켜 세웠다. 플라트너는 글로벌 컴퓨터 플랫폼의 토대를 만든 마지막 걸출한 기업인이고, 미국 출신이 아닌 유일한 테크 기업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베를린에서 루마니아계 독일인의 아들로 태어난 플라트너는 콘스탄츠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카를스루에 공과대학에서 통신 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1968년부터 후일 SAP 공동창립자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컴퓨터 대기업 아이비엠(IBM)의 독일 만하임 지사에서 근무했다.
SAP에서 플라트너를 가까이서 경험했던 한 명은 “당시 IBM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플라트너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1969년은 결정적인 해였다. IBM은 그때부터 반독점 소송을 피하기 위해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분리해 판매했다. 플라트너와 동료들은 IBM/360-20 데이터처리시스템에 재무회계 및 자재 관리용 소프트웨어를 추가했다. 고객사는 영국 기업 ‘임페리얼 케미컬 인더스트리’(ICI)였다. ICI는 컴퓨터에 펀치 카드를 입력하여 데이터를 처리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자 했다.
플라트너와 그의 팀은 새로운 표준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달렸던 반면, IBM은 새로운 표준 소프트웨어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ICI는 새로운 표준 소프트웨어 개발을 디트마르 호프와 플라트너에게 직접 의뢰했고, 이는 SAP 탄생의 계기가 됐다. 두 사람은 IBM을 나온 뒤 다른 IBM 전직 동료들과 함께 스타트업을 창업했고, 그들의 최초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SAP’라는 브랜드로 유통했다. ICI와의 계약은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들에게 재정적 안정을 가져다줬다. 바덴 지역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컨설팅업체와 협업 통해 성장
SAP를 업계 선두주자로 만들어준 것은 고객사에 SAP 소프트웨어를 구현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킨 아서앤더슨(Arthur Andersen)이나 딜로이트(Deloitte) 등 서비스 파트너들이자 컨설팅업체들과의 협업이었다. 이를 통해 SAP는 누구보다 빠르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다른 기업과 달리 SAP는 국외 기업들이 좀처럼 진출하기 어려운 미국 시장에도 과감히 뛰어들었다.
SAP의 국외 진출 원동력은 다름 아닌 플라트너였다. SAP의 한 전직 CEO는 “플라트너는 미국에서 SAP 제품을 독일 엔지니어링의 결과물이라고 선전하며 전형적으로 미국 방식인 공격적이고도 과감한 홍보를 했다”고 회상했다. 거의 20년 동안 플라트너를 지근거리에서 경험한 이 전직 CEO는 익명을 요구했다.

ⓒ Der Spiegel 2024년 제20호
ENDE LEGENDE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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