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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 경영 간섭 허용 않고 경영진과 역대급 잦은 마찰
[PEOPLE] SAP에서 은퇴한 하소 플라트너- ② 독단적 기업 운영
[171호] 2024년 07월 01일 (월) 팀 바르츠 economyinsight@hani.co.kr

 

팀 바르츠 Tim Bartz
크리스티안 베르크만 Christian Bergmann
<슈피겔> 기자
 

   
▲ SAP의 다른 공동창업자들은 일찌감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반면, 하소 플라트너는 디트마르 호프와 함께 끝까지 일선 경영 현장에 남아 환상의 콤비를 이뤘다. 2022년 7월 SAP 창립 50주념 기념식에서 호프(왼쪽)와 플라트너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REUTERS


에스에이피(SAP)의 다른 공동창업자들은 일찌감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하소 플라트너는 디트마르 호프와 함께 끝까지 SAP의 일선 경영 현장에 남았다.
‘SAP 커뮤니티’ 관련 독일 전문잡지인 〈E3마가친〉 페터 페르빙거(Peter Färbinger) 편집장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플라트너는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고독한 투사였던 반면, 호프는 플라트너가 일을 진행하도록 놔두기도, 때로는 제동을 걸기도 했던 팀플레이어였다.” SAP에 몸담았던 샤이 아가시도 “호프가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한 덕분에 자신이 도약할 수 있었다는 점을 플라트너도 인지했다”고 말했다.
SAP의 1988년 기업공개 및 그로부터 7년 후 닥스 편입 후에도 플라트너와 호프는 계속 환상의 콤비를 이뤘다. 둘은 실과 바늘처럼 서로를 떼놓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내성적이었던 호프는 1998년 최고경영자(CEO) 지위와 2005년 감독이사회 이사에서 물러난 뒤에도 SAP를 떠나고 싶지 않아 대주주 지위를 유지했다. 한편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사랑한 공격적인 테크 천재 플라트너는 실제로 수십 년간 실리콘밸리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플라트너는 호프의 뒤를 이어 2003년에 CEO로 취임 후 감독이사회로 자리를 옮겼다.
플라트너와 호프, 두 사람 모두 사명감이 투철하면서 동시에 허영심도 가득했다. 라인네카 지역의 컬트적 인물인 ‘파더 호프’(Vadder Hopp, 디트마르 호프의 별명)는 어린이 놀이터를 짓고 동네 축구클럽이던 ‘TSG 호펜하임’이 분데스리가까지 진출하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발도르프 SAP 본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플라트너는 남아프리카의 호텔·골프장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산호세 샤크스’ 아이스하키팀도 소유했다.

사명감 투철, 허영심도 가득
그런 플라트너도 자신의 고향인 베를린만큼은 어떻게든 피해 다녔다. 그는 최근 스위스 일간지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베를린 전체가 아랍인에게 점령당한 것 같고, 그들의 윤리와 법이 베를린에서 기준이 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일간지 <빌트>는 ‘CEO가 말하는 이주’라는 헤드라인을 달아 그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후폭풍은 엄청났다. 이후 그는 공개 발언을 최대한 자제했다.
플라트너는 과거에 어떤 논란도 피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와 호프는 SAP가 상장기업으로서 특수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그들은 직원이 5명 이상인 사업장에 적용되는 노사협의회 설치에 오랫동안 반대했다. 둘은 SAP의 기업 문화가 독특하며 감독이사회에서 고용주와 종업원이 동등한 대표성을 갖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SAP 독일 직원 1만800명은 2006년에야 처음으로 직장평의회 의원을 선출할 수 있었다. 사실 대다수 직원이 오랫동안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거부했다. 직원들은 ‘파더 호프’와 플라트너를 무한대로 신뢰하는 것처럼 보였다.
플라트너는 어떤 경우에도 제3자의 경영 간섭을 허용하지 않았다. 2004년 감독이사회 의장으로서 그는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MS) 합병을 직접 협상했으며 이 과정에서 SAP 경영진을 일체 배제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이 소문을 부인했다. 하지만 후일 협상에 참여했던 한 SAP 임원은 “합병은 거의 성사될 뻔했다”고 회상한다. 당시 플라트너와 호프, 또 다른 공동창업자 클라우스 치라는 SAP 주식 32%를 공동으로 보유했다. 그래서 플라트너의 독단적 경영은 이례적이면서도 그가 SAP에서 갖는 무한대의 권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MS가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시장에 뛰어들고 경쟁사 오라클(Oracle)이 피플소프트를 인수하려는 상황에서 플라트너는 SAP의 앞날을 우려했다. SAP가 주변부로 밀려나는 상황을 지켜볼 수 없었던 그는 어떻게든 MS의 도움을 받고자 했다. 후일 협상이 결렬된 뒤 호프는 “당시 상황은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유럽 반독점청이 합병을 막을 것이라는 우려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병이 됐더라도 플라트너가 SAP에서 했던 것처럼 게이츠의 제국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 발도르프 SAP 본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플라트너는 남아프리카의 호텔·골프장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산호세 샤크스’ 아이스하키팀을 소유했다. 독일 발도르프에 있는 SAP 본사 건물. REUTERS

뒷끝 작렬
플라트너가 경영진과 빚은 마찰은 역대 최고다. 그는 2009년 텔레비전 방송 중에 레오 아포테커 CEO를 사실상 해임하기도 했다. 그는 토크쇼 <마이브리트 일너>(Maybrit Illner)에 출연해 “테크 기업은 성장 궤도에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포테커는 부임 9개월 만에 SAP를 떠나야 했다.
빌 맥더모트는 9년 동안 CEO로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했고 인수를 통해 SAP를 확장했다. 하지만 그도 해임된 뒤 플라트너에게 ‘제품 수준을 떨어뜨렸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플라트너는 “품질 저하로 SAP가 침체에서 회복하는 데 1년 반에서 2년이 더 걸렸지만, 정신적으로는 훨씬 더 큰 손해를 봤다”며 역정을 내곤 했다.
이후에도 플라트너는 ‘한두 가지 전략적 차이’를 이유로 맥더모트의 후임인 제니퍼 모건을 2020년 깜짝 해임했다. 불과 7개월 전 닥스 상장 기업인 SAP의 최초 미국 여성 CEO로 제니퍼 모건을 앉힌 것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반면 공동 CEO인 크리스티안 클라인은 유임됐다. 플라트너는 호프의 ‘미니미’(Mini-Me)라고 할 수 있는 발도르프 출신 클라인의 CEO 직책을 지금도 허용한다.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펀드매니저 중 한 명인 데카방크(DekaBank)의 잉고 슈파이히는 플라트너가 전략적 선견지명으로 SAP를 마지막 순간까지 지배했다고 말했다. “플라트너는 감독이사회 의장 역할을 훨씬 뛰어넘어 활약했다.” 플라트너의 전지전능함은 SAP에게 “저주이자 축복이었다”고 그는 지적했다.
슈파이히는 투명한 기업지배구조의 가이드라인을 담당하는 정부위원회 ‘독일 기업지배구조 강령’ 위원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다. 반면, 플라트너는 기업지배구조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기업인이다. 플라트너는 SAP가 정해놓은 감독이사회 이사의 연령 및 임기 기준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2022년 또 출마를 단행했다. 규정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그는 “몇 년 더 하거나 덜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며 출마 의지를 재차 표명했다.
플라트너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도 되는 존재였다. 주주들은 그에게 불만을 거의 제기하지 않았다. 그가 이뤄낸 SAP 실적이 대체로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후임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은 이따금 플라트너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상황을 야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경영컨설팅업체 딜로이트의 푸닛 렌젠 전 CEO가 플라트너 후임으로 내정됐다. 플라트너는 초반에 렌젠을 매우 칭송했다. 하지만 렌젠이 감독이사회 의장으로서 전략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돌연 태도를 바꿔 그의 임명을 반대했다. 감독이사회 의장으로서 수십 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그로서는 참으로 이중적인 태도였다.

소송 중인 사건들
그렇게 2002~2021년 감독이사회 이사였던 핀란드 출신의 순종적인 페카 알라피에틸레가 렌젠을 대신해 신임 의장으로 내정됐다. 알라피에틸레는 플라트너가 불쾌해할 만한 일은 벌이지 않을 사람이었다. “후임에 관한 선견지명도 창업자의 자질에 속한다. 이번 승계는 전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펀드매니저 슈파이히는 지적했다. 플라트너 시대 이후 상대적으로 방해 없이 지속적인 경영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크리스티안 클라인이 거의 유일하다. 그의 계약은 최근 2028년까지 연장됐다.
그러나 클라인은 플라트너의 치명적인 유산을 처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될지도 모른다. 2008년 SAP와 합작 투자를 체결한 미국 기업 테라데이터(Teradata)는 SAP를 고소했다. 테라데이터는 SAP가 자사의 지식재산권을 불법적으로 빼돌리고 자사 특허를 사용해 플라트너의 역작인 HANA를 발전시켰다고 확신했다. 테라데이터는 2018년 지식재산권 절도, 산업스파이 행위, 사기, 시장지배력 악용 등의 혐의로 SAP를 고소했다. 플라트너가 평소 한결같이 비난했던 불법 관행들이다.
SAP는 플라트너 시절 표절 혐의로 이미 한차례 곤경에 처한 적이 있다. SAP의 경쟁사인 미국 오라클은 지식재산권 악용 혐의로 SAP를 제소한 적이 있다. SAP는 손해배상금 3억5700만달러(약 4918억원)를 지불했다. 항해를 좋아하는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는 개인적으로 플라트너와 전설적인 레가타 경쟁을 벌인 적도 있다.
플라트너가 SAP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기록될 것임은 확실하다. 그가 남긴 유산이 SAP 그룹에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 Der Spiegel 2024년 제20호
ENDE LEGENDE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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