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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대학 독점 깨지고 교수진 세대교체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미술대학에 부는 변화의 바람
[170호] 2024년 06월 01일 (토)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미술사학자
 

   
▲ 국제패션대학교류재단(IFFTI)의 글로벌 학술행사인 ‘2024년 콘퍼런스’와 특별기획전시전 을 알리는 현수막이 이화여자대학교 조형대학 앞에 걸려 있다. 이승현

요즘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출신이 대세다. 김고은, 박소담, 안은진 등이 포진한 전설의 10학번과 임지연, 변요한, 박정민 등의 09학번을 비롯해 이제는 학교가 아니라 학번별로 나열해야 할 정도로 많은 걸출한 배우가 이 학교 출신이다. 대중에게 익숙한 연기자들 외에도 연출, 무대미술, 음향 등 그간 한예종의 연극원과 영화원이 배출한 인력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오늘을 만드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해낸 우리 문화계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뿐 아니다. 사실 한예종 출신의 명성은 오래전 클래식 음악에서 이미 두드러졌다. 또한 무용이나 전통예술, 미술 분야에서도 이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한예종의 약진은 다른 대학에도 ‘선한 영향’을 미치면서 예술대학의 판도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작가들 출신학교 분포 다양해져
한국 미술은 1946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부의 설립과 1949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의 설립 이후 두 대학 출신을 주축으로 한 양대 진영 체제로 유지됐다. 주로 두 대학에서 작가가 배출되면서 이들이 자연스럽게 화단의 다수를 차지했다. 이들을 가르친 교수들은 사실상 학교 안에서뿐 아니라 미술 현장에서도 독점적 권력을 누렸다. 과거 프랑스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소수의 회원이 학생을 가르치고 공모전인 살롱의 심사도 하면서 화단에 절대권력으로 군림했던 것처럼 말이다.
한예종은 설립 후 음악원(1993), 연극원(1994), 영상원(1995), 무용원(1996)에 이어 1997년에 미술원을 개원했다. 미술원은 2001년부터 한예종 출신 작가들을 배출했다. 20년이 넘게 작가들이 축적되어 이제는 주요 미술 전시에서 서울대, 홍익대 출신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예종 외에도 최근 미술 현장에서 비중 있는 작가, 기획자 등이 교수진으로 임용된 과학기술대나 계원예술대의 이름도 자주 눈에 띈다. 작가들의 출신학교별 분포가 점점 다양해지는 것이다.
얼마 전 이화여자대학은 전세계 패션 교육기관들의 네트워크인 국제패션대학교류재단(IFFTI)의 글로벌 학술행사 ‘2024년 콘퍼런스’를 주관했다. 행사 기간에 대학원생들의 오픈스튜디오와 학생들이 기획하고 학생과 수료생들이 작가로 참여한 특별기획전시전 ‘퀘스천스 투 퀘스천’(Questions to Question)도 함께 열었다. 전시기획을 맡은 학생들을 가르친 베테랑 기획자 안소현 박사가 뒤에서 힘을 보탰다.
이 전시는 회화과뿐 아니라 디자인, 섬유예술, 도자예술 등 조형예술대학 소속 실용학과 학생들의 작품을 함께 모아 순수미술 맥락의 전시로 나름 솜씨 있게 펼쳐냈다. 예술학과 학생이 실기학과 학생들과 함께한 이 전시는 실전 경험을 통해 참여 학생들이 성장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됐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부문에서 출신 학생이 두각을 나타내는 한예종은 학문적인 영역에서 예술을 탐구하는 대학의 예술교육과 중세 이래 도제식 교육으로 직업적 예술가를 양성하는 콘서바토리 형태의 예술학교가 분리돼 상호 보완 관계를 이루는 서구의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당시 국내에 후자의 기능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이 없었으므로 영역별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예술가를 교수진으로 채용해 실기 위주 교육으로 국내외 예술현장을 주도할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 것이 설립 취지였다. 이처럼 실기와 실습이 중요한 한예종에서는 이론학과의 학생이 기획하고 실기학과의 학생이 출품하는 학생 전시가 낯설지 않다. 이화여대의 이번 전시는 한예종의 이런 활동을 도입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대·성균관대 교수진 재편
학생들의 기획전에 이어 오픈스튜디오에서는 서양화과와 동양화과 대학원 학생들의 작업실을 일반 관람객에게 개방했다. 서양화과의 작업에서는 동시대 회화의 유행 내지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고, 동양화과의 작업에서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주류가 아니어서 오히려 뭐든 해보겠다는 결기 같은 것이 생긴 것일까 싶었다가 이내 2023년 리움에서 대형 개인전을 열었던 세계적인 작가 강서경이 이 학교의 동양화과 교수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런데 학교는 2024년에 동시대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인 테이트모던의 관장이었던 프란시스 모리스를 명예석좌교수로 초빙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화여대 출신들의 향후 행보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한국 미술은 세계 미술계와 고립된 상태에서 소수의 미술대학 교수가 독점적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미술은 세계 주류 미술계와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야 발언권이 주어진다. 이제 미술대학의 교수라는 이유만으로는 학교 밖 미술 현장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의 관행에 매몰된 경우에는 학생들에게마저 외면당하는 실정이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 대학 진학률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충원됐던 교수의 대부분이 정년을 맞이하면서 최근 대학 교수의 세대교체가 본격화됐다. 한예종은 예술교육에서 교수진과 교수법의 변화가 학교의 위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세대교체 과정에서 새롭게 재편되는 교수진의 면모에 따라 미술대학의 세력 판도가 한동안 요동칠 전망이다. 실제로 이화여대는 세계적인 유명인사를 명예교수로 초빙했다. 성균관대학은 최근 정연두 작가에 이어 박미나 작가를 스카우트해서 교수진을 재편하고, 미술대학 커리큘럼 전반을 새롭게 손봤다고 한다.
케이(K)팝과 한국 영화, 드라마가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면서 한예종 미술원의 전문사(석사) 과정을 비롯해 한국의 미술대학에 외국 학생들, 심지어 서구 학생들이 입학을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교수진의 세대교체가 실력 있는 작가를 교수로 선임하는 선순환의 계기로 작용하고, 이렇게 임용된 실력 있는 교수진이 동시대 미술환경에 부응하는 교과과정을 새롭게 편성한다면 한국 미술의 미래도 케이팝이나 드라마처럼 한번 기대해볼 만하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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