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한국사회경제학회장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한국 경제에 던져진 과제는 지속 가능한 선진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지속 가능성이 동시에 달성돼야 지속 가능한 경제가 실현될 수 있다. 선진경제는 글로벌화 시대의 지식 기반 경제를 선도해야 한다. 환경친화적 방식으로 역동적으로 성장하면서도 양극화가 해소돼 사회가 통합되는 경제가 선진경제다.
21세기 글로벌화와 지식 기반 경제 시대에 지속 가능한 선진 지역경제는 ‘창조경제’(Creative Economy), ‘협력경제’(Cooperative Economy), ‘청정경제’(Clean Economy) 세 가지로 구성돼야 한다. 이를 ‘3C 경제’로 부르자. 3C 경제의 기본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창조경제는 창의성에 기초해 성장하는 경제다. 학생, 노동자, 기술자, 경영자 등 사람들의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과 문화의 창달이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길이다. 지식 기반 경제에서 요구되는 혁신은 창의성을 발휘해야 지속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경쟁우위의 핵심적 요소는 창의성이다.
개인과 조직의 자율성, 사회의 개방성과 다양성은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또 다른 사회·문화적 조건이다. ‘창의성은 이질성에서 나온다’는 명제가 있다.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이 한 조직 속에 섞여 있어야 조직 구성원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경제가 실현되려면 사회가 동질적·획일적이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고, 서로 다른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야 한다.
아울러 사람들의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정책과 문화정책이 요청된다. 보편적 복지가 실현되는 사회보장제도는 전 국민이 안정된 생활 속에서 학습하는 여유를 제공함과 동시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험 성향을 높여 창조경제 실현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 창조경제를 추동하는 가치는 ‘자율’(Autonomy)이다.
협력경제는 경제주체 간 협력을 통해 동반성장하는 경제다. 신뢰에 기초한 협력은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노사협력, 도농 간 협력, 기업 간 협력, 산학 협력, 민관 협력 등은 기업, 지역경제, 국민경제의 생산성을 높인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촉진하는 제도의 설계, 협력을 촉진하는 파트너십과 공동체 정신의 강화는 협력경제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요소다. 협력경제는 노사 간, 대-중소기업 간, 도농 간, 수도권과 지방 간 공생을 통해 양극화를 극복하는 사회 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시장경쟁을 절대시하는 신자유주의, 주주의 단기적 이익 실현에 집착해 노사협력이나 기업 간 협력을 저해하는 금융주도경제와 주주자본주의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노동자·주주·경영자 등이 참가해 협력하는 이해관계자자본주의,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으로 구성된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강화돼야 협력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사회적 대화가 활발하고 타협이 잘 되는 나라에서 협력경제가 실현될 수 있다. 협력경제를 추동하는 가치는 ‘연대’(Solidarity)다.

자율과 연대, 그리고 생태를 지향하는 경제

2004년 대구의 서문시장.

청정경제는 ‘녹색기술’(Green Technology)과 ‘녹색제도’, ‘녹색문화’를 통해 유지되는 경제다. 화석에너지로부터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통해 탄소의존성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녹색기술은, 청정경제의 토대다. 녹색기술로 개발된 태양에너지와 수소에너지에 기초한 태양경제와 수소경제의 실현이란 장기적 전망 아래 에너지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일관되게 실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류의 생존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할 위험이 있는 원자력 의존을 줄이는 로드맵을 작성해야 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재앙은 원전을 축소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지 웅변으로 증명해준다. 원전 안전 설비와 장치가 허술한 채 무모하게 원전을 확대하는 정부 정책은 중단돼야 한다. 이런 에너지 전환 계획은 물론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한 기후변화협약에서 한국 경제에 요구되는 CO2 감축 계획과 연계해 추진해야 한다. 생산 시스템의 탈물질화와 탈독성화가 강도 높게 추진돼야 한다. 생산과 소비에서 증가하는 엔트로피를 줄이는 ‘관류 혁신’(Throughput Innovation)을 위한 제도를 구축하고 문화를 함양해야 한다. 정부는 탄소세 도입 같은 ‘생태적 조세 개혁’(Eco-tax Reform)을 추진하고, 시민은 생태주의적 생활양식을 갖춰야 한다. 아울러 생태적 농업과 지역 자원순환형 농업으로 전환해나가야 한다. 청정경제를 추동하는 가치는 ‘생태’(Ecology)다.
이와 같이 창조·협력·청정 경제가 결합할 때 지속 가능한 선진경제가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지식투자와 사회투자, 녹색투자를 해야 한다. 연구·개발과 인적자원 개발로 구성된 지식투자는 창조경제를, 사회보장 지출을 중심으로 한 사회투자는 협력경제를,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화석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녹색투자는 청정경제를 실현하는 데 각각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선진경제가 가까운 장래에 우리나라에서 실현되려면, 현재의 한국 경제를 이끄는 경제정책 기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주주자본주의, 금융주도경제, 하향식 경제학을 극복해야 한다. 주주만이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주가수익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주주·노동자·경영자 등 기업의 이해관계자가 의사결정에 함께 참여하고 이해관계자의 공동자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금융이 자유화하고, 금융자본이 산업자본과 노동자를 지배하고 수탈하는 금융주도경제가 아니라, 노동과 자본에 체현된 지식이 부가가치 창출과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지식주도경제를 실현해야 한다.
부자 감세와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부자의 소비와 대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그 과실을 빈자와 중소기업에 일부 배분해 사회를 통합하는 하향식 경제학이 아니라, 빈자와 노동자, 그리고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생산성을 높여 경제성장과 사회 통합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상향식 경제학을 실천해야 한다. 3C 경제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지식주도경제, 상향식 경제학이 결합하면 지속 가능한 선진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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