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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만큼 세금 안 내는 유럽 초고액 자산가
[ISSUE] 유럽의 조세 형평성 논란
[169호] 2024년 05월 01일 (수) 크리스티앙 샤바뇌 economyinsight@hani.co.kr

 유럽 초고액 자산가는 다른 납세자보다 세금을 덜 떼인다. 부자들이 많이 버는 만큼 세금을 많이 내면 불평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움직인다. 초국가적 부유세가 조세 형평성을 되살릴 해법일 수 있다.


크리스티앙 샤바뇌 Christian Chavagneux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23년 4월13일 프랑스 파리의 한 은행 지점 벽에 ‘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유럽 초고액 자산가에게 부유세를 매겨 조세 형평성을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REUTERS


‘유럽에서 부유세를 도입하고 그 세수를 지구온난화와 사회불평등에 대응하는 예산으로 쓰자.’ 오로르 라뤼크 유럽의회 의원과 폴 마네트 벨기에 사회당 대표가 생각해낸 정책이다. 유토피아(이상적) 정책일까? 두 사람의 생각은 유럽시민발의(ECI)로 실현돼 2023년 7월 유럽연합집행위원회에서 공식 발의로 인정받았다. 두 사람은 1년 안에 회원국 최소 7곳에서 총 100만 명에게 동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두 사람이 공식으로 발의한 2023년 10월9일을 기준으로 기한은 2024년 10월9일까지다.
부유세 도입 투쟁에 합류해야 하는 까닭이 뭘까? 여러 조사에서 반복해서 확인된 사실이 있다. 유럽 초고액 자산가는 다른 납세자보다 세금이 덜 떼인다는 사실이다. 친환경 전환 예산이 부족한 지금이 그같이 명백한 부조리를 바로잡을 적기다.
유럽 각국에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나뉘고 흐르는지 정확히 알기는 쉽지 않다. 평가 방식도 나라마다 다르다. 나라별 ‘소득분배지표’(각 가계의 소득, 자산, 부채 현황)를 파악하려면, 회원국이 보유한 계좌 정보와 가계조사 자료 등을 종합해야 한다. 다행히 유럽중앙은행(ECB)이 2024년 1월 그 작업에 착수했다. 유럽중앙은행 화폐정책은 불평등 수준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유럽중앙은행이 이 문제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커지는 조세 불평등
유럽중앙은행이 공개한 통계자료는 아직 실험 단계에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2009~2023년 자료를 보자. 유로존 자산 하위 50%가 보유한 순자산(전체 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 예를 들어 부동산가치-대출잔금)은 전체 순자산의 4.8%에 그쳤다. 상위 5%는 전체 자산의 50%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격차가 엄청나다.
평균값은 저마다 사정이 얼마나 다른지 드러내지 못한다. 더욱이 유럽연합에서는 그 차이가 심각하다. 네덜란드는 상위 5% 부자가 국내 순자산의 31.7%를 보유한다. 오스트리아는 그 비중이 53.5%에 달한다. 프랑스는 유럽 평균보다 적은 39.8%다. 순자산 분배가 가장 불평등한 나라는 독일과 이탈리아로 조사됐다. 유럽이 한 기구로 통합된 지 수십 년이 지났다. 하지만 회원국의 경제와 사회는 한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 셈이다 .
다음으로 2009~2023년 유로존에서 계급별 자산규모가 어떻게 변했는지 봤다. 놀랍게도 경기가 어려울 때 부자는 자산이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금융위기가 유로존에 닥치기 직전인 2009년에는 상위 5% 부자가 역내 순자산의 41.5%를 보유했다. 2010년 초 금융위기가 유럽을 삼키고 전방위적 긴축정책으로 모두 생계가 어려워졌다. 2015년 초 상위 5%가 보유한 순자산의 비중은 44.4%로 늘어났다. 이후 정부가 죄였던 돈줄을 풀고 유럽중앙은행이 (마리오 드라기 전 총재의 이른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책으로) 그에 적극 개입했다. 그때 상위 5%의 순자산이 줄어들었다. 2020~2021년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으로 비중은 다시 늘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사다리 아래는 하는 일과 일해서 번 돈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다. 그래서 경기가 어려워지면 사다리 위쪽에 있는 사람보다 잃는 게 많다. 사다리 위는 주식과 부동산 시장 호황에 자산으로 돈을 번다. 지난 15년간 유럽에서 두 계층의 자산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부자들이 많이 버는 만큼 세금을 많이 내면 그런 불평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움직인다. 최근 몇 년간 유럽연합 전반에서 세제가 변한 양상은 뚜렷하게 보인다. 회원국 거의 전부가 부유세를 폐지했다. 30년 전만 해도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 등 10개국에서 부자에게 세금을 따로 더 걷었다. 물론 부유세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었다. 세금이 안 붙는 항목(실거주지, 사업용 자산 등)이 많아서 기본세율이 지나치게 낮았다. 세수가 적었지만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던 부유세가 자유주의 사상에 밀려 하나둘씩 폐지됐다.
그뿐이 아니다. 유럽집행위원회가 최근에 공개한 조세현황보고서를 보면 초고소득층의 한계세율 구간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법인세율도 낮아졌다. 기업소득은 부자 소득과 연결돼 있다. 기업은 세금이 떼이지 않은 소득을 주주에게 배당금 형태로 나눠준다. 배당소득은 주로 부자들 손에 들어간다.
 

   
 

역내 자산현황 조사
하나를 보고 열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자산 쏠림 현상이 부유세 폐지 기조와 맞물려서 나타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초고액 자산가 가운데 공격적 감세 전략을 쓰거나 조세회피처로 도망가는 사람이 많다.
이제 세제 개편의 결과를 따져볼 때다. 부자들 가운데 세금을 제대로 내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똑 부러지게 답하기가 쉽지 않다. 몇 년 전까지는 그 답의 실마리를 아예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관련 조사가 늘어나면서 답이 드러났다. 유럽 갑부들은 자국의 다른 국민에 견줘 세금을 덜 낸다.
부자들에게 정확히 세금을 매기려면 그들의 소득과 자산이 얼마인지 파악해야 한다. 문제는 공식 자료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부자들은 주로 회사에 지분이 있어 배당소득이 오른다. 그런데 그 지분이 유령회사나 홀딩컴퍼니(지주회사)를 매개로 보유한 지분일 수 있다. 그 경우에 회사는 주주에게 배당금이 아니라 세금이 붙지 않는 자본소득을 나눠준다. 부자들은 그렇게 자산을 늘린다. 그와 비슷한 예가 수두룩하다. 부자들의 소득과 자산, 실질세율을 파악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이 문제에 관심을 둔 경제학자들이 소득세 과세지표, 설문조사 결과, 나라별 소득분배지표 등 익명으로 된 자료를 종합해서 공개했다. 그런 방대한 작업이 지금까지 드물었다가 이제 막 유럽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프랑스 공공정책연구소가 2023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에서 실효세율은 상위 0.1%에서 46%에 이르다가 상위 0.0002%(재산이 10억유로 단위인 75명)에서 26%로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초고액 자산가의 자산은 배당 전 상태의 배당금(기업소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주에게 나눠주지 않은 배당금에는 법인세가 붙는데, 프랑스는 몇 년 전부터 법인세율을 내렸다. 공공정책연구소의 보고서는 2016년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법인세율이 높았다.
이탈리아도 비슷하다. 2024년 초 자료를 보면, 소득 상위로 갈수록 실효세율이 높아지다가 5%부터 실효세율이 역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5%의 실효세율은 36%로 소득 하위 구간의 실효세율인 40~50%보다 낮았다. 순자산에 붙는 실효세율을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순자산이 많을수록 세금을 적게 냈다. 순자산 하위 25%의 실효세율은 52%이지만, 상위 0.1%는 36%에 그쳤다. 네덜란드에서도 거시경제와 미시경제 자료를 종합한 결과를 내놨다. 네덜란드 국민의 99%는 실효세율이 평균 40%에서 시작해 50%까지 오른다. 그러던 것이 상위 1%부터 꺾이기 시작해 상위 0.01%에서 21%까지 떨어진다. 영국도 조사결과가 똑같았다.

조세 형평성 되찾기
다른 유럽 나라에서 비슷한 연구가 진행되기까지 기다려도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연구만 봐도 결과가 같은 곳으로 수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유럽 부자들은 부를 점유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세금을 적게 내고 있다. 노동소득에 견줘 자본소득에 세금을 덜 떼는 탓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보고서에도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세율 격차가 크다고 나와 있다. OECD 평균 12%포인트(프랑스 9.5%포인트)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맞다. 유럽 상위 1% 부자, 0.1% 부자에게 부유세를 매겨서 조세 형평성을 되찾아야 한다. 금융자산을 굴려서 번 돈에 일해서 번 돈보다 세금을 적게 매기는 게 문제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부자에게 세금을!’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4년 4월호(제445호)
Les grandes fortunes européennes ne paient pas leur part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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