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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아빠는 가정 폭력 엄마는 중동 가사도우미로
[FOCUS] 국가부도 스리랑카- ① 망가진 가족의 삶
[169호] 2024년 05월 01일 (수) 슈테판 슐츠 economyinsight@hani.co.kr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와 북반구 저위도의 개발도상국들) 국가들은 수십 년 이래 가장 큰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했다. 2020년 이후 약 50개 국가가 파산에 이르렀고, 1억6500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여기, 거의 모든 것을 잃은 스리랑카의 한 남매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서로뿐이다.


슈테판 슐츠 Stefan Schultz <슈피겔> 기자
 

   
▲ 스리랑카의 국가부도는 한 가족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다누쉬(맨 오른쪽)와 그의 누나 우데니(가운데), 조카 오샤다, 할아버지 마다사미(왼쪽)는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슈피겔

삶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고 말하기에는 다누쉬는 너무 어리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온통 ‘망가짐’으로 얼룩져 있다. 그는 이제 겨우 17살이다. 그의 수염은 아직 부드럽지만, 표정은 체념한 듯 보인다. 이미 너무 많은 나쁜 일을 경험했다는 듯이 말이다.
이른 아침, 공기가 후덥지근해지고 햇살이 쿰북나무 잎 사이로 스며들면 다누쉬는 스리랑카 센트럴주에 있는 마하웰리강으로 간다. 뗏목을 타고 건너편 강둑으로 가서 바닥의 모래를 삽으로 긁어낸다. 몇 시간 동안, 가느다란 팔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까지 계속한다. 강이 꺾이는 곳의 모래는 건설업에 딱 쓰기 좋은 양질의 모래다. 저녁이 되면 트럭 한 대가 와서 다누쉬에게 하루치 모래를 사 간다. 그는 하루에 최대 4천루피(약 1만7천원)를 번다.
12월 초, 몬순이 끝날 즈음에는 조류가 강하다. 때때로 뗏목에 모래를 너무 많이 실어 전복되기도 한다. 이미 여러 사람이 이곳에서 익사했다고 한다. 다누쉬는 학교에 갈 나이지만 그가 돈을 벌지 않는다면, 그와 그의 누나 우데니(26), 조카 오샤다, 할아버지 마다사미는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 스리랑카는 국가 경제의 10분의 1 이상 차지하던 관광산업이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었으며, 국가부도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6월 여행객으로 북적이던 콜롬보의 한 해변이 텅 비어 있다. REUTERS

시스템적 실패
스리랑카는 부유해질 수도 있는 나라였다. 스리랑카에서 나는 차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경치는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자석이다. 서로 원수였던 타밀족과 신할리즈족이 2009년 마침내 평화를 이루면서 인도 남단에 위치한 섬, 스리랑카의 전망도 밝아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정부에 수십억달러의 대출을 제공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부분의 돈을 투기성 건설 프로젝트에 낭비했다. 2022년 4월, 국가는 더 이상 채무를 갚을 수 없게 됐고 경제는 무너졌다. 그 이후 다누쉬와 그의 가족은 살기가 어려워졌다.
정부가 재정을 현명하게 관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이 파산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잠비아, 엘살바도르, 파키스탄 등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 다른 국가도 비슷한 위기를 겪는다. 영국의 비정부기구 ‘부채 정의’(Debt Justice)에 따르면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15개 국가가 파산했고, 약 40개 국가는 차관을 갚을 능력이 없다. 2023년 여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시스템적 실패”라고 지적했다.
이 재앙은 2010년에 형성된 1조달러 규모의 신용 거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라 금리가 매우 낮았고, 부유한 국가에 투자해서 큰 수익을 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블랙록, 에이치에스비시(HSBC), 골드만삭스와 같은 민간 금융회사는 훨씬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개발도상국에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중국 정부 역시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보할 겸 글로벌 사우스에 아낌없이 돈을 빌려주었다.
영국 런던대학에서 글로벌 부채 위기를 연구하는 경제학자 울리히 볼츠는 “개발도상국들이 갑자기 국제 자본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며 “그들은 실제로 상대를 골라가며 돈을 빌릴 수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국가부채는 두 배로 늘었다. 이후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세계 경제 시스템에 충격파를 던졌고, 수조달러의 거품은 꺼져버렸다.
어느 정도 경제를 잘 관리해온 정부도 이제는 절약해야 한다. 많은 경우 사회복지, 보건, 교육 분야의 지출을 삭감해 국민을 희생시켜 절약한다. 세계은행의 수석이코노미스트였던 카르멘 라인하르트는 “이로 인한 결과는 수백만 명의 비참한 곤궁”이라고 말한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연구에 따르면 2020년과 2023년 사이에 약 1억6500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유럽연합(EU) 인구의 3분의 1 이상에 해당한다. 이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다누쉬와 우데니가 사는 집은 자나우다나가마라는 마을의 변두리 진흙길 가장자리에 있다. 마을 이름은 번역하면 ‘행복한 사람들의 마을’이다. 정원 식물을 잘 손질해놓았으나, 청록색 외벽은 얼룩으로 가득하다. 우데니는 집을 페인트칠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우데니는 “우리는 항상 가난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잘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 파산 이후부터 그들의 가난은 비참함으로 바뀌었다.
우데니는 마른 편이며 스리랑카 기준으로도 작다. 그는 사람과 상황에 관한 판단이 빠르고, 자신 있게 집안일을 한다. 다른 나라에 살았다면 스스로 무언가를 이룰 좋은 기회를 찾았을 것이다. 집 현관에는 두 남매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두 남매의 유대감은 언제나 끈끈했다. 다누쉬가 태어난 직후, 우데니는 남동생에게 줄 젖병을 사러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개가 우데니의 등을 물었다. 피를 많이 흘렸지만 우데니는 병원까지 몸을 질질 끌고 가면서도 젖병을 놓지 않았다. 우데니의 등은 지금도 흉터로 가득하다. 다누쉬는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에게는 늘 누나가 있었고, 누나에게는 늘 내가 있었다.”
주방에서는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조리대 위쪽 벽은 타일로 돼 있다. 이런 시설을 갖춘 집은 스리랑카에 많지 않다. 더 잘살던 시절의 유물인 셈이다. 수십억달러의 대출이 스리랑카로 흘러들어오던 2010년대, 어머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했다. 어머니는 한 달에 약 8만5천루피, 당시로서는 거의 600유로(약 88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벌었으며 대부분을 집으로 송금했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과일을 팔았다.
 

   
 

정쟁으로 찢어진 정부
가족이 어느 정도 돈을 모으는 동안 정부는 경제개혁을 시도했다. 스리랑카는 수년 동안 수출보다 수입을 더 많이 하고 해외 부채가 점점 늘어나는 등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해왔다.
2015년 11월, 당시 라닐 위크라마싱하 총리는 수입을 줄이고 첨단기술 제품의 생산과 수출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한 낡은 세금 시스템을 현대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정부는 정쟁으로 갈기갈기 찢어졌고, 개혁을 이행하지 못한 채 다음 선거에서 패배해 2019년 결국 물러났다. 새 대통령인 고타바야 라자팍사는 취임하자마자 세금을 인하했다. 국가부채는 이미 놀라울 정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이 무렵 우데니는 임신했고 집을 떠나 남편과 함께 살았다. 다누쉬는 어머니도 잃었는데 사랑하는 누이까지 잃을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우데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2020년 7월에 당시 한 살이었던 오샤다와 함께 돌아왔다. 남편이 그를 몹시 거칠게 대했고 그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가족이 다시 살림을 추스르는 동안 스리랑카 경제는 무너졌다. 국가 경제의 10분의 1 이상 차지하던 관광산업이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국가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섰다. 신용평가기관들은 스리랑카의 신용도를 더 심각하게 보았다. 2020년 말이 되자 국가에 대출을 해주는 곳이 거의 없었다. 정부는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를 열어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을 처리했으나, 외환보유고는 기록적인 속도로 줄어들었다.
정부는 당황하며 탈출구를 모색했다. 2021년 4월, 급진적인 농업개혁을 추진했다.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의 수입과 사용을 금지했다. 세계 최초로 전면적인 유기농 라벨을 부착한 국가가 되겠다는 포부였다. 이는 수출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위기를 더 악화시켰다. 살충제 사용 금지로 농작물 수확량이 크게 감소했다. 쌀 생산량은 3분의 1 이상, 옥수수 생산량은 절반 이상 줄었다. 기본 식량이 부족해지고 가격이 올랐다. 불과 6개월 후 정부는 살충제 금지를 해제했으나 이미 시작된 식량 위기를 막을 수 없었다. 우데니는 설탕 한 봉지를 사려고 반나절이나 줄을 서야 했던 일을 기억한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전세계 에너지 시장에 가격 쇼크가 일어났다. 휘발유와 경유를 많이 수입하는 스리랑카에는 또 다른 타격이었다. 연료도 가격이 올랐고 공급량은 부족해졌다. 3월 말 인플레이션은 16%까지 상승했다.
우데니는 섬유 공장에서 일했다. 때로는 오전 7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재봉틀 앞에 앉아 일하기도 했다. 이모에게 오샤다를 맡겼다. 우데니는 “오샤다를 혼자 두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3월 초, 스리랑카의 외환보유고는 사실상 고갈됐다. 약 2주 만에 스리랑카 화폐가치는 50% 가까이 폭락했다. 스리랑카에서 수입하는 모든 물품의 가격이 치솟았다. 동시에 수입도 감소했다. 이제 연료, 식량, 의약품 등 거의 모든 것이 부족해졌다. 2022년 4월12일, 정부는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가 5월 초에 사임했다. 수만 명의 사람이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였다. 정부 지지자들은 대통령궁 앞에서 시위 캠프를 공격했다. 거리 전투가 벌어져 9명이 사망하고 22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정원사로, 모래채굴 노동자로
하필이면 이때 오샤다가 병에 걸려 우데니는 공장을 그만둬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돈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전에 그들은 한 달에 약 1만5천루피로 생활했으나, 이제 기본적인 식료품에만 매달 두 배의 비용이 들었다. 우데니는 전당포에 보석을 맡기고 돈을 빌렸다. 할아버지는 아픈 다리를 치료할 약조차 포기했다. 아버지는 이웃에게 빚을 졌다. 다누쉬는 학교를 중퇴하고 처음에는 정원사로, 그다음에는 나무꾼으로, 마침내는 모래를 채굴하는 노동자가 됐다.
다누쉬가 다녔던 학교는 승려가 운영하는 학교였다. 스리랑카 사회에서 승려는 지위가 높아 이런 학교에는 유리한 점이 있다. 교장 베네레블 임불피티야 비파시는 모금을 잘한다. 비파시는 구호단체인 카리타스에 제출할 목적으로 작성한, 가정 형편이 특히 어려운 학생들의 명단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현재 카리타스에서 식량을 지원받는다. “대부분의 아이는 아주 적은 양의 밥과 채소를 겨우 싸온다”고 비파시는 말한다. 그것으로 온종일 버텨야 한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 배움을 향한 열정이 생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누쉬의 담임교사였던 라시카 무단나야케는 다누쉬 가족도 카리타스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누쉬는 이미 2022년 5월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현재 3분의 1 정도의 학생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 “어떤 아이들은 5학년이 되면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여자아이들은 부모님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동생을 돌봐줘야 하고, 남자아이들은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무단나야케 선생은 다누쉬의 소식을 궁금해했다. 사진작가가 모래를 채굴하는 그의 사진을 보여주자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를 위해 곁에 있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Der Spiegel 2024년 제12호
Dhanush und die Staatspleite
번역 최현덕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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