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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잇비’‘레몬트리’, 영감의 선물
[Special Report] 히트곡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① 노력? 우연?
[169호] 2024년 05월 01일 (수) 스텔라 샬라몬 economyinsight@hani.co.kr

 

   
 

히트곡 탄생의 비밀 공식
비틀스의 ‘렛잇비’, 독일 록밴드 풀스 가든의 ‘레몬 트리’, 빌리 아일리시의 ‘오션 아이즈’는 누구나 아는 노래다. 수백만 명의 심금을 울리는 이런 곡을 아무나 만들 수는 없다. 역대 히트곡에는 ‘우주선처럼 무언가에 잠시 도킹된 것 같은’ 번뜩이는 영감,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곡조, 반복이 많은 가사와 화음 등의 비밀 공식이 숨어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음악은 많이 변했지만, 히트 공식은 변하지 않았다. _편집자


스텔라 샬라몬 Stella Schalamon <차이트> 기자
 

   
 


테크노 클럽 시시포스(Sisyphos)가 있는 독일 베를린의 트렙토브-쾨페니크구에 옛 방송국 건물이 있다. 방송국 건물의 탑은 푸르른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그 뒤로 슈프레강의 한 카페에서 이날 아침, 음악 프로듀서와 작사가, 스위스 출신의 가수가 만났다. 이들은 오늘 함께 곡을 쓸 계획이다.
“자, 시작해봅시다. 함께 잘 만들어봅시다”라고 음악 프로듀서 니콜라스 렙셔가 말한다. “우리 멋진 곡 만들어봅시다!”라고 작사가 미셸 레오나드가 덧붙인다.
이들은 옛 방송국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과거 이곳에는 구동독의 한 라디오방송국이 있었다. 이후 건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바닥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고, 벽에는 깨진 유리 시계가 걸려 있다. 하지만 건물의 대형 홀에서는 정기적으로 콘서트가 열리며, 음악 프로듀서들은 건물 녹음실을 대여해 사용할 수 있다.
 

   
▲ 1968년, 당시 20대 중반이던 폴 매카트니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어머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그냥 그렇게 두어라”(Let It Be)고 말했다고 한다. 상당수 대형 히트곡은 번뜩이는 영감으로 만들어졌다. 플리커


히트곡의 산실
렙셔의 녹음실은 6층 A592a호다. 렙셔가 몇 년 전 싱어송라이터 앨리스 머튼과 협업으로 글로벌 히트곡 ‘노 루츠’(No Roots)를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노 루츠’는 플래티넘 앨범 8장, 독일 싱글 차트 2위, 미국 히트곡 리스트 진입 등의 쾌거를 이루어냈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는 ‘니콜라스 렙셔 프로듀싱’ 플레이리스트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의 플레이리스트에는 100곡 가까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노 루츠’가 있다.
다른 곡들도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최 베스의 ‘걸스 라이크 어스’(Girls Like Us),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의 ‘러닝 위드 더 울브스’(Running with the Wolves) 및 니코 산토스의 ‘루프톱’(Rooftop) 등이 렙셔의 손을 거쳐간 곡들이다. 미국 가수 맥클모어, 로빈 슐츠, 레나, 사라 코너, 그리고 벨기에 출신 싱어송라이터 밀로브의 곡도 프로듀싱했다.
검붉은 양탄자가 깔린 녹음실에는 소파와 말라비틀어진 야자수, 큰 창문에는 육중한 벨벳 커튼이 달려 있다. 녹음실 중앙에 놓인 대형 테이블 위에는 모니터와 각종 컨트롤, 케이블이 달린 앰프 여러 개가 있다.
렙셔가 회전의자에 앉아 등을 기댄다. 헝클어진 짧은 머리의 렙셔는 보라색 티셔츠에 선글라스를 썼다. “무슨 곡을 쓰고 싶은지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는 거야? 곡은 술술 잘 쓰일 것 같아?” 렙셔가 치안이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가수 티치안 후겐슈미트(30)에게 물었다.
치안은 스위스 바젤 출신이다. 그는 21주간 스위스 싱글 차트에 진입했고, 최고 성적은 26위였다. 스포티파이에서 그의 곡을 듣는 사용자는 매달 십만 명 정도로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그는 현재 독일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치안의 신곡 ‘황무지’(Wasteland)는 그의 어머니를 소재로 한 곡이다. 치안은 “이번에는 아버지를 소재로 곡을 만드는 건 어떨까?”라고 운을 뗀다. 치안은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 이들 세 명은 영어로 대화하곤 한다. 아버지를 소재로 한 치안의 신곡 제안에 렙셔는 “네가 할 생각이 있다면, 안 될 이유가 없지”라고 말한다.
렙셔는 녹음실에 매주 여러 차례 온다. 레오나드도 그와 함께 항상 이곳에서 작업한다. 매번 바뀌는 것은 가수들이다. 녹음실 컴퓨터에서 프로듀싱 당일에 사라지는 곡도 있고, 세상의 빛을 보는 곡도 있다. 모든 전제 조건이 들어맞는다면 여기서 수백만 명의 심금을 울리는 곡이 나올 수도 있다. 사람들의 귀에 계속 남고, 머리와 가슴에서 느껴지며, 춤을 추고 웃으며, 때로는 눈물도 흐르게 하는, 계속 듣고 싶은 노래, 히트곡이 탄생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대중음악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다.
 

   
▲ 음악 프로듀서 니콜라스 렙셔는 몇 년 전 싱어송라이터 앨리스 머튼과 협업으로 글로벌 히트곡 ‘노 루츠’(No Roots)를 탄생시켰다. 스포티파이 갈무리


음악산업 260억달러
글로벌 음악산업 매출액은 현재 연간 260억달러라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일본, 영국과 더불어 독일은 글로벌 음악시장을 떠받치는 주요 국가다. 지금처럼 신곡 발표와 히트곡을 만들기가 쉬웠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요즘은 기타 솔로와 드럼 반주를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조합해 만든 컴퓨터 파일이 곧바로 곡이 된다. 그렇다 해도 히트곡을 만들기가 지금처럼 힘들었던 적도 없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매일 음악을 평균 3시간 듣는다. 그 3시간 안에 들어가려면 곡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신곡 중에서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고, 어떻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이미 음악시장에 발표된 수백 수천 개의 히트곡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까?
검은색 점퍼와 검은색 스키니 청바지 차림의 치안은 녹음실을 서성거린다. 치안은 아버지와 어떻게든 잘 지내야 하는 사이였다고 하고, 소파에 앉아 있는 레오나드는 아버지와 치안의 사이가 남자 간의 대립이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치안은 “무엇보다도 내가 아무리 잘해도 아버지의 성에 차지 않는 존재라는 좌절감을 느꼈다. 아무리 잘해도!” 레오나드가 노트북에 “나는 당신에게 단 한 번도 충분한 적이 없었어”라고 입력한다.
이 정도면 핵심 가사가 충분히 만들어진 듯하다. 전체 곡의 바탕이 되는 가사로 충분하다. 사람들의 머리에 여운을 남기고, 과거 히트곡처럼 음악과 더불어 남는 가사 말이다. 비틀스의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에 나오는 “우린 모두 노란 잠수함에 살고 있어”, 시네이드 오코너의 “어떤 것도 당신과 비교할 수 없어요”,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칼리 레이 젭슨의 “전화해줄래?”처럼 말이다.
핵심 가사가 만들어지기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직 오전 11시도 되지 않았다.
모차르트가 바이올린을, 베토벤이 피아노를 연주했을 때, 어떻게 들렸는지에 관해 남아 있는 기록은 없다. 가장 오래된 인간 음성은 1860년에 녹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초로 녹음된 프랑스 민요 ‘달빛을 맞으며’(Au clair de la lune)를 부르는 음성은 마치 다른 세계의 음성처럼 거칠고 둔탁하다. 이른바 포노토그래프(Phonautograph)는 초창기 녹음장치로, 귀처럼 원뿔체를 이용해 소리를 한데 모으고 이때 발생하는 진동이 얇은 동물 가죽으로 된 진동판에 전달된다. 그리고 실린더를 손으로 돌리면서 원뿔체의 반대편에 고정된 빳빳한 멧돼지 털로 실린더 표면에 감겨 있는, 그을음으로 검어진 종이 위에 진동이 기록된다.
포노토그래프는 레코드판의 전신이다. 레코드판은 처음에는 왁스, 이후 셸락, 마지막에는 비닐이라는 플라스틱으로 제작됐다. 이후 음악은 테이프에 녹음되고, 시디(CD)에 구워지고 엠피3(MP3) 파일로 저장됐다. 지금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직접 스트리밍해 음악을 접하는데, 음악을 듣기 위해 콘서트에 갈 필요가 없다는 기본 콘셉트는 모든 수단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제는 음악을 집에서도 듣고 싶은 만큼 들을 수 있다. 음악은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는, 반영구적으로 유통 가능하고 원하는 만큼 소비 가능한 상품이다. 수백만 명이 듣기를 원하는 음악이라면 말이다.
 

   
▲ 치안이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가수 티치안 후겐슈미트는 음악 프로듀서 니콜라스 렙셔와 협업으로 독일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치안의 앨범 《황무지》. 벅스 누리집


“우주선처럼 도킹된 것 같았다”
1968년, 당시 20대 중반이던 폴 매카트니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꿈을 꾸었다. 꿈에서 어머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그냥 그렇게 두어라”(Let It Be)고 말했다고 한다. 잠에서 깬 매카트니는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아 꿈 내용을 음악으로 만들었다. 이와 유사한 히트곡 탄생 비화는 수없이 많다. 글로벌 차원의 히트곡 중에 며칠, 몇 주간 힘들게 작업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히트곡은 번뜩이는 영감과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1977년, 18살의 케이트 부시는 에밀리 브론테 소설 <폭풍의 언덕>을 원작으로 한 <비비시>(BBC) 미니시리즈의 마지막 10분을 시청했다. 부시는 자신의 생일이 작가와 같은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날 밤 불과 몇 시간 만에 소설과 같은 제목의 곡을 작곡했다.
1995년 비 오는 일요일 오후에 피터 프로이덴탈러는 여자친구를 기다렸다. 독일 포르츠하임 인근의 한 농가에 살았던 프로이덴탈러의 방에는 큰 침대와 피아노가 있었고, 맞은편에는 키보드와 컴퓨터가 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있었다. 프로이덴탈러는 피아노와 컴퓨터로 즉흥적으로 곡을 써내려갔고, 그렇게 미래의 히트곡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마치 우주선처럼 무언가에 잠시 도킹된” 것 같았고, 20여 분간 영감이 마구 샘솟았다고 한다.
그때 마침 도착한 여자친구는 곡을 듣고는 대박을 예감했다고 한다. 다음날 함께 곡을 완성시킨 소속 밴드 풀스 가든의 멤버도 ‘히트작’이 되리라 예감했다. 하지만 처음 몇 차례 콘서트에서는 관객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프로이덴탈러가 말한 것처럼 그의 신곡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신곡 제목은 ‘레몬 트리’(Lemon Tree)였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데이터 과학자가 스포티파이 사용자의 연령대 및 이들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람은 자신이 11~16살에 발표된 노래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970년에 태어난 사람은 1980년대 초반 음악을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식이다.
10대는 음악을 매개로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고 타인의 주목을 받으며 동년배들과 동질감을 갖고자 한다. 학계에 따르면 10대 시절의 음악 경험이 평생 음악 취향에 영향을 미친다. 60대가 첫사랑, 첫 실연, 부모와의 관계 등 15살 무렵에 관심이 있을 만한 주제의 노래를 부르는 70대 가수의 콘서트에 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방송국 건물 고층에 있는 녹음실에서 “나는 당신에게 단 한 번도 충분한 적이 없었어”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오자, 렙셔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피아노에 앉는다. 그는 고심하는 A단조, F장조, 그리고 구원하는 C장조 건반을 두 번 누르고 화음이 갑작스레 떠올랐다고 말한다.
레오나드는 지금까지 나온 가사 한 구절을 반복해 부르기 시작한다. 때로는 비난조로 강하게, 때로는 단어 하나하나를 강조하듯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른다.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새로운 구절을 구상한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으면 “다 바다바다”를 읊조린다. 치안은 녹음하려고 자신의 스마트워치를 탭한다. 레오나드는 그에게 격려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치안은 흥얼거리는 레오나드를 따라 부른다. 그의 목소리는 깊고 감정에 북받쳐 떨리기도 한다. 그는 노래하며 휘파람을 불고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낸다. 노래가 계단을 따라 울려 퍼진다. 전등갓 장식이 열린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린다.
 

   
▲ 인터넷 뮤직 스트리밍의 등장으로 레코드판은 이제 유물이 됐다. 2013년 8월 체코의 GZ미디어 공장에서 노동자가 프레스로 찍어낸 레코드판을 꺼내고 있다. REUTERS


너무 비슷한데?
렙셔는 “마음에 들고 좋다”며 흥을 돋운다. 그는 다시 책상에 앉아 컴퓨터에 새로운 파일을 만들었다. 그는 이 파일을 ‘내가 과거에 알았던 남자’라는 파일명으로 저장한다. 그는 파일을 열어 콘텐츠를 조각조각 잘라 새로 붙여본다. 그리고 전자기타를 집어 들고 스트링을 치다가 녹음 버튼을 누른다. “‘슈퍼스티션’(Superstition)과 조금 비슷하게 들리는데. 너무 비슷한가?” 미국 뮤지션 스티비 원더는 1970년대 초 ‘슈퍼스티션’으로 자신의 두 번째 히트곡을 기록했다.
레오나드와 치안은 아무 말이 없다. 치안은 열린 창문 옆에서 담배를 피운다. 레오나드는 컴퓨터에서 전장, 전사, 무기를 버려라 등 노래 주제인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에 어울리는 단어를 검색한다. 그는 혼자서 문구를 중얼거리며 아이디어를 짜낸다. 무엇보다 단어의 음색이 곡과 어울려야 한다.
“당신의 기억 속에 또 뭐가 더 있나?”라고 레오나드가 묻자, 치안은 공격적인 아버지와 인정 욕구, 평화, 사랑 등을 꺼낸다. 녹음실은 일순간 심리상담실로 변한다. 시간은 이제 열두 시를 향해간다.

ⓒ Die Zeit 2024년 제12호
Wie entsteht ein Hit?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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