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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깃발법’을 위한 변명
[편집장 편지]
[169호] 2024년 05월 01일 (수) 김연기 ykkim@hani.co.kr

김연기 편집장

   
 

역사적으로 보면 규제가 기술의 발달을 이기지 못한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19세기 영국 런던에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마차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이용을 제한한 이른바 ‘붉은 깃발법’(Red Flag Law)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법은 30여 년간 효력을 유지했지만 자동차산업은 쇠퇴하기보다 되레 세력을 키웠습니다. 비슷한 시기 알프레드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는 온갖 규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능이 더 개량돼 여러 현장에서 활용됩니다.
이처럼 기술의 발달을 인위적 통제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조절하고 제어하려는 노력마저 폄하돼서는 안 됩니다. 혁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조정하지 않으면 급격한 기술의 발전은 대개 더 큰 부작용을 낳기 때문입니다.
2024년 2월 대화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ChatGPT)를 개발한 미국 기업 오픈AI가 동영상 생성 AI 소라(Sora)를 공개해 세상이 다시 한번 들썩였습니다. 일본 도쿄의 거리에서 한 여성이 걸어가는 모습 등 소라가 만든 영상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영상이 오직 몇 문장의 텍스트만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소라의 등장과 함께 세간에선 전례 없는 새로운 형태의 AI가 몰고 올 미래를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오갔습니다. 그러나 AI가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AI는 빛의 속도로 진화하고 있지만 눈앞의 현실은 엄혹합니다. AI의 ‘일자리 습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가장 큽니다. 전세계 테크기업의 감원 현황을 집계하는 레이오프스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26만 명이 AI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2024년 들어서도 3월 말까지 5만 명가량이 일터에서 쫓겨났습니다. 누군가의 모습이 담긴 사진 몇 장과 짧은 음성파일로 그 사람이 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사실처럼 꾸며내는 이른바 ‘딥페이크’ 악용 우려도 큽니다.
급기야 AI전문가들조차 ‘미래의 충격’을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오픈AI 공동 창업자인 일리야 수츠케버 수석과학자는 대표적인 AI규제론자입니다. 수츠케버의 스승이자 AI의 핵심 원리인 딥러닝의 대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는 AI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구글에 사표를 던지며 “앞으로 10년 안에 인간을 죽이는 로봇 무기가 등장할 것으로 본다”고 말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규제야말로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라고 외치는 규제철폐론자들은 ‘붉은 깃발법’ 탓에 영국이 자동차산업에서 뒤처졌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한번쯤 뒤집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로 상태 등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붉은 깃발법’은 승객과 보행자, 더 나아가 시민사회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였을지도 모릅니다. 규제가 기술의 발달을 이길 수 없다고 해서 이를 통제하려는 노력마저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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