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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개혁 2단계 운동, ‘기업집단법’ 제정하자
[한국경제 혁신]재벌 개혁
[13호] 2011년 05월 01일 (일) 김상조 economyinsight@hani.co.kr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지난 4월12일 개정 상법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지난 3월 국회 통과) 최종 공포됐다. 이번 상법 개정을 바라보는 필자의 감회는 남다르다. 2005년 초 경제개혁연대가 ‘재벌 개혁의 2단계 운동’을 제창한 지 6년 만에 일부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재벌 개혁의 2단계 운동이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그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제도 도입, 회계 투명성 강화, 소수주주권 강화, 증권집단소송제 도입 등 법제도 면에서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그러나 한국 재벌의 지배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됐다는 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재벌 총수 일가의 불법적 사익 추구 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고, 재벌 총수가 휠체어를 타고 검찰청의 포토라인에 서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나아가 중소기업과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문제나 무노조·비정규직 등 전근대적 노무관리 문제는 개선은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왜 그런가?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경제개혁연대는 ‘우리나라의 기업 현실과 법체계의 괴리가 주요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재벌은 기업집단(Business Group)이다. 다수의 계열사가 공동 지배권하에서 통합 경영되고 있다. 기업집단 체제는 다수 계열사 간의 시너지 효과를 내부화하면서 대규모 투자에 따른 위험은 분산하는 등 많은 장점을 가진 기업조직 형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제법이 기업집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개별 기업만 규율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수는 기업집단인데 심판은 개별 기업만 상대하는 것이다. 그 결과 재벌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는 기업집단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할 때는 개별 기업 차원으로 도피해버리는 모순된 행태를 보인다. 그래서 기업집단의 권리와 의무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발생하고 수많은 이해관계자에게 부당한 피해가 발생함에도, 이를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외환위기 이후 개별 기업 차원의 지배구조 개선 조치가 대거 도입됐지만, 기업집단의 문제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근본 원인이다.
현대자본주의에서 기업집단의 역할과 비중은 날로 증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대기업은 모두 기업집단 조직 형태를 가졌다. 따라서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문제는 모든 나라 회사법(상법) 학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물론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영국 등 보통법 국가들은 개별 기업을 단위로 하는 회사법 체계를 유지하지만, 법원의 판례를 통해 법인격 부인론(Piercing the Corporate Veil), 증거개시제도(Discovery), 이중대표소송제도(Double Derivative Suit) 등 예외적이지만 강력한 구제 수단들을 발전시켰다. 독일·이탈리아 등 유럽대륙 국가에서는 아예 성문법을 통해 기업집단 자체를 법적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독일은 콘체른(기업집단) 내의 거래에서 손실을 입은 계열사에 대한 손실 보상 조건이 있으면, 이른바 ‘부당 내부거래’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는다. 또한 공동결정법은 자회사의 노동자들이 모회사의 감독이사회에 자신의 대표를 파견하게 한다.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 총수 초청 간담회.

기업집단법 제정, 허황된 꿈 아니다
어느 것이 우리나라 현실에 더 적합한 접근 방법인가? 우리나라의 대륙법적 전통, 그리고 사법부의 능력과 관행 등을 감안할 때 필자는 후자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가칭) ‘기업집단법’의 제정을 촉구한 것이다. 즉 기업집단과 관련한 규정을 모두 통합한 법을 새로 제정해, 기업집단이 그 강점을 실현하게 하는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중소기업과의 하도급거래 관계, 그리고 은행과의 대차 관계 등 이른바 ‘준내부적 조직’(Quasi-internal Organization)에 대해서도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이 재벌의 지배구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금융거래 정상화 등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판단한다.
기업집단법 제정은 우리나라의 경제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장기 과제다. 경제개혁연대는 중·단기 과제로 일단 현행 상법 개정부터 착수하기로 했다. 특히 삼성그룹 이재용 사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회장의 글로비스 사건 등이 보여주듯이, 재벌의 불법 부당행위가 주로 비상장 계열사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2006년 회사 기회 유용 금지, 이중대표소송제 등의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했다.
회사기회 유용 금지는, 총수 일가가 기존 계열사의 수익 기회를 빼앗아 새로운 비상장 계열사를 설립한 뒤 여타 계열사들의 지원을 받아(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부당이득을 얻는 것을 금지하는 실체법적 규정이다. 이중대표소송은,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부당행위에 대해 상장 모회사의 주주가 대신 대표소송을 제기해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한 절차법적 규정이다. 이 조항들은 모두 총수 일가가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기업집단 전체에 책임지도록 하는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이 원리의 발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기업집단법 제정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이번 개정 상법은 경제개혁연대의 입법청원안 중 회사기회 유용 금지 규정만 반영했고, 이중대표소송은 입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 미완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6년 동안의 노력에 비하면 초라한 결과다. 그러나 그동안 경제개혁연대가 법제도의 미비를 악용한 재벌의 부당행위 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계속 발간하고, 또 대표 사례로서 현대차그룹의 글로비스 사건에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과정에서 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본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도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상법의 완전한 개정, 기업집단법 제정이 결코 허황된 꿈은 아니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확한 분석에 기초한 올바른 대안을 제시한다면, 그리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결국 세상은 변할 것이다.
sjkim4059@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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