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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액이 GDP 10% 차지 젊은이들 목숨 걸고 유럽행
[SPOT] 국외 이주민에게 의존하는 세네갈 경제
[168호] 2024년 04월 01일 (월) 안드레아 뵘 economyinsight@hani.co.kr

 
서아프리카인이 서유럽으로 이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이트> 취재진은 서유럽으로 이주한 가족과 친척이 송금한 돈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세네갈의 한 마을을 취재했다.


안드레아 뵘 Andrea Böhm <차이트> 기자
 

   
▲ 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밀항하던 세네갈 사람들이 공해상에서 경비정에 적발돼 2023년 11월 수도 다카르에 있는 해군기지로 송환되고 있다. REUTERS


가족 중에서 최초로 국외로 이주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에게 물어보았다. “아마 할아버지일 것이다. 아니면 큰할아버지가 할아버지보다 먼저 세네갈을 떠나 국외로 이주했을 수도 있다.” 뎀바 로(62)는 자신의 땅콩 상점 건물이 드리운 그늘에 쪼그려 앉아 있다. 그의 건물은 세네갈 니옴레 대로변에 있다.
정오의 폭염에 길거리에는 자동차보다 염소가 더 많이 보인다. 땀에 흠뻑 젖은 일꾼 두 명이 소형 화물차에서 땅콩 자루를 하역하고 있다. 다른 동네 사람과 마찬가지로 뎀바도 얼른 시원한 계절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날씨가 시원해지면 일상은 쾌적해지지만, 바다의 파도는 거칠어진다. 대서양은 그의 고향에서 50km 이상 떨어져 있다. 2024년 니옴레 남자 가운데 몇 명이 세상을 하직할지 전적으로 바다 날씨로 결정된다.
니옴레 남자들이 언제 최초로 고향을 등지고 이주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이 지역에서 이주는 일상이다.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어디가 더 살기 좋은 곳인지 절대 알 수 없다”고 니옴레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뎀바도 지금까지 세네갈 수도 다카르, 벨기에 브뤼셀, 프랑스 생테티엔과 리옹, 이탈리아 밀라노, 스페인 빌바오 등지에서 일했다. “당연히 항상 적법한 취업비자를 받았다”고 그는 강조한다.
뎀바는 양손에 스마트폰 두 대와 태블릿을 들고 있다. 그중 한 대는 끊임없이 진동하거나 벨이 울리거나 문자 도착 신호음이 온다. 그는 니옴레의 부시장이자 땅콩 도매상이며 공사 현장 관리자다. 또한 ‘니옴레를 위한 구급차’ 구상의 담당자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아내가 셋이고 자녀가 18명이나 있다. 뎀바가 일반인보다 연락 수단을 더 많이 가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 세네갈은 서유럽으로 이주한 가족과 친척이 송금한 돈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2021년 1월 세네갈 수도 다카르 지역에서 한 여성이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REUTERS

국외 거주자들의 기부
니옴레는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져 있다. 주민 1만8천여 명의 니옴레에는 수십여 개 마을이 있다. 마을 주민 중 누가 현재 거주하고, 누가 국외에 있는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파악된 적이 없다. 모리타니(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서부의 공화국) 국경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이곳의 적지 않은 주민이 모리타니에서 일한다.”
뎀바는 <차이트> 취재진에게 가이드투어를 자청했다. 시청 건물에서 도로를 건너면 개조된 이슬람사원이 나오며, 여기서 계속 걸어가면 최근 벽돌로 새로 지은 시장 가판대가 나온다. 차고에 있는 건설기계 사이에 주차된 새 구급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르노의 미니밴 모델인 트래픽의 구급차에는 프랑스 번호판이 그대로 붙어 있다. 구급차는 중고지만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하다. 구급차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국외 이주민이 니옴레에 송금한 돈으로 충당했으며, 프랑스 구호단체를 통해 구급차를 마련했다고 뎀바는 설명한다.
국외 거주자들의 기부금으로 건립될 커뮤니티홀 공사장에서 가이드투어는 끝났다. 이곳에서 청년 세 명이 벽돌 쌓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돈을 모으면 고향을 떠나 카나리아제도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뎀바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청년이 그런 뎀바를 반항적인 눈길로 쏘아 본다. “여기 젊은이들은 너무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세네갈의 니옴레 현상을 ‘이주와 개발’이라고 명명했다. 이주와 개발은 오래된 세계적 현상이다. 사람들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현재 거주지보다 더 큰 도시나 경제 상황이 나은 이웃 국가, 중동의 부유한 국가, 북미, 유럽 등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경우 일자리를 구한다. 현지인은 거들떠보지 않는 일자리인 경우도 흔하다. 이들은 수입 일부를 고향으로 송금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2년 이렇게 6300억달러(약 838조원)가 개발도상국이나 중국, 인도 등의 국가로 흘러들어 갔다. 이 금액은 선진국이 개도국에 지원하는 금액의 3배 이상이다. 6300억달러 중에서 1천억달러가 아프리카 국가로 흘러갔다. 이 가운데 25억달러가 세네갈로 송금됐다. 25억달러가 세네갈의 어느 지역과 지자체로 흘러갔는지 통계치가 없다. 뎀바는 “해외 가족, 친지들이 송금해준 돈이 없었다면 세네갈 현지인의 경제 상황은 지금보다 나빴을 것”이라고 말한다.
뎀바는 유럽에서 처음 돈을 번 날이 1984년 여름이었다고 회상한다.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여성 관광객에게 팔찌를 20프랑에 팔았던 것이 첫 돈벌이였다. 당시는 유로화도, 솅겐 지역도, 유럽국경·해안경비청(European Border and Coast Guard Agency)도, 취업비자도 없던 시절이다. 뎀바가 장사꾼으로 첫걸음을 뗀 날이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세네갈이 독립한 후 프랑스는 1960년대 세네갈에서 공장 노동자 수만 명을 모집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사헬지역(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쪽 가장자리)의 농축산업이 가뭄으로 붕괴하면서, 농부의 아들 뎀바도 프랑스로 향했다. 부모의 축복을 받으며 세네갈 현지 직물, 나무로 만든 탈과 보석 등으로 가득 찬 가방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프랑스에 갔다고 그는 말한다. 몇 년 후, 그는 프랑스 거주 허가증을 발급받고 르노12 승용차를 마련했다. 이후 그는 장사하기 위해 생테티엔 주변 시장을 차로 엄청나게 돌아다녔다고 한다.
 

   
▲ 세네갈에서는 매년 약 20만 명의 젊은이가 노동시장에 유입되지만 충분한 일자리를 창출하지는 못한다. 2022년 6월 수도 다카르에 있는 한 공장에서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양동이를 검수하는 노동자. REUTERS

1998년 월드컵, 세네갈에 특수
당시 생테티엔에 아프리카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한 개에서 두 개로 늘어났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기간에 몰려든 축구팬들로 아프리카 기념품 상점은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였다. “사업적으로는 꿈같은 한 해였다.” 월드컵 경기가 끝날 때마다 경기장을 청소하고, 호텔과 식당 주방 청소를 도맡아 하는 세네갈인들의 비자 보유 여부에 당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후 니옴레의 수많은 가정이 집을 증축하고, 더 좋은 음식을 먹고 텔레비전(TV)을 사고, 메카 성지순례를 하는 재정적 여유를 누렸다. 세계은행은 뎀바 같은 이주민을 ‘경제적 난민’이 아니라 ‘경제적 요인’으로 분류한다. 세네갈에서는 국외 이주민이 본국으로 보내는 금액이 국내총생산의 10%를 차지하고, 이웃 국가 감비아에서는 해당 비율이 30%에 육박한다. 성공 스토리다. 원래는 말이다.
<차이트> 취재진은 니옴레에서 뎀바를 2023년 11월 말에 만났다. 그와 만나기 며칠 전, 200여 명이 탄 어선이 대서양에서 난파된 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이 세네갈인이었다. 구조된 사람은 37명에 불과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난민을 태운 어선 난파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을 장식했다. 한 해 중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이맘때 바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잔하다. 그러면 사람들은 거대한 통나무배를 타고 1500㎞ 떨어진 카나리아제도까지 어렵지 않게 건너갈 수 있다고 쉽사리 믿어버린다. 그렇게 그들은 스페인을 비롯해 유럽에 닿으리라는 순진한 환상을 가지는 것이다. 뎀바가 아는 가족도 최근 몇 년간 바다에서 아들을 한 명 혹은 여럿 잃었다고 한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이민을 놓고 벌이는 논쟁에서 이런 비극은 ‘아프리카의 절반이 유럽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논거로 활용된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기회주의적이고 잘못된 믿음이다. 아프리카인은 전세계 난민의 15%도 되지 않으며, 그나마 아프리카 난민 대다수는 아프리카를 벗어나지 않는다. 세네갈 출신 이민자 대부분은 코트디부아르, 가봉, 모리타니, 모로코 등지에서 일한다. 물론 유럽으로 향하려는 세네갈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유럽의 문제이기보다 세네갈의 문제에 가깝다.
벽돌공 오마르(21)는 공사장에서 잠시 휴식 중이다. 그는 카나리아제도에 도착하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로 가고 싶다”고 했다. 이주민 방지 관련 법률이 30개에 이르는 프랑스는 더 이상 세네갈인이 선호하는 목적지가 아니다. 오마르는 마르고 키가 큰 청년으로 막노동을 해 손에 굳은살이 박여 있다. 그는 공사장에서 한 달에 150유로(약 21만원)를 번다. “이렇게 벌어서는 가정을 꾸리거나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다. 부모님이 아프기라도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면 내가 사람들 앞에서 대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까?”
모퉁이를 돌면 넓은 테라스, 타일 벽, 호화로운 가구로 꾸며진 뎀바의 이층집이 나온다. 현지 기준으로 대저택이다. 오마르는 매일 아침 뎀바의 집 앞을 지나간다. 국외 이민이 니옴레에 경제적 부를 안겨주기도 했지만, 오마르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젊은 세대에는 선망과 시기의 대상임을 알게 됐다. 과거 빈곤한 시절에는 가족을 위해 국외 이민을 큰 어려움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젊은 세대는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위험한 길이 되고 말았다. 유럽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문을 꼭꼭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 마키 살 대통령이 최근 세네갈인의 국외 비밀 이주를 막겠다며 경제지원책을 발표했지만 이것이 실행되리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살 대통령이 2023년 12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연설하고 있다. REUTERS

대서양 건너는 도박
오마르는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극소수에게만 발급해주는 농업부문 임시 취업비자를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다. 어차피 비자를 받을 확률이 ‘0’에 가깝다고 오마르는 말한다. 그는 난민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통나무배를 ‘몰래’ 타고 모로코 쪽으로 가다가 방향을 돌려 서쪽 카나리아제도로 갈 계획이다. 운이 나쁘면 해류에 밀려 북대서양 카보베르데제도로 휩쓸려 가거나 실종자 통계치에 잡힐 수도 있다. 세네갈에서는 밀수업자에게 몸을 맡기고 국외로 떠나는 사람을 가리켜 ‘비밀스러운 사람들’이라는 뜻의 ‘레 클랑데스틴’(불법 이민자)이라고 부른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이주민과 난민 약 6만 명이 스페인에 왔는데 대부분 대서양 항로를 거쳐 도착했다. 오마르는 난파 사고를 당하거나 익사한 희생자가 아닌 유럽 안착에 성공한 사람들만 떠올린다.
오마르는 밀수업자에게 지불할 500유로를 우선 모아야 한다. 가족이 오마르에게 돈을 조금씩 줄 때도 있다. 그건 오마르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향에 남을 본인들을 위해서다. 오마르가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 일자리를 얻으면 집으로 송금해 가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일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만들거나 스페인 알메리아의 슈퍼마켓에 납품할 토마토를 수확하는 일을 하는 남자들, 스페인 빌바오에서 상인으로 일하는 파투 라콘(29)의 남편처럼 말이다. “남편은 매달 220유로 정도 송금한다”고 라콘은 전한다. 이 돈으로 네 자녀 중 세 자녀의 학비와 계속 오르는 전기세와 약값, 식비, 옷값 등을 충당한다.
국외 이주민의 본국 송금이라는 성공 스토리에도 한계는 있다. 이들은 웨스턴유니온(Western Union), 레미틀리(Remitly) 또는 머니그램(MoneyGram) 등의 송금 서비스로 고국의 가족에게 매달 보통 150~400유로를 보낸다. 이 돈으로 가족들은 생활비를 충당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임산부를 돌보고, 집을 늘리기도 한다. 혹은 뎀바가 운영하는 와츠앱 그룹 ‘니옴레를 지원하라’와 ‘이민자협회’가 이주민한테 모금한 기부금으로 보건소의 모자 병동 수리나 도로포장에 사용한다. 그러나 이주민이 송금하거나 모금한 금액은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공장이나 작업장, 매장을 만들기에는 적은 것이 현실이다.
세네갈에서는 매년 약 20만 명의 젊은이가 노동시장에 유입된다. 최근 몇 년 동안 마키 살 대통령은 세네갈의 교통망, 금융망, 에너지 부문을 확충하고 양호한 성장률을 달성했다. 하지만 인구 평균연령이 18살인 세네갈에서 이 정도의 성장으로는 충분한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한다.
29살 미만 세네갈인 중 약 3분의 1은 현재 일하지도, 교육받지도 못한다. 일하는 29살 미만 세네갈인의 대부분은 노점상, 가사도우미, 택시기사, 세탁소, 소규모 양복점, 주유소, 시장 노점상 등 비공식 부문에 종사한다. 기후위기가 농업과 어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세네갈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어업 종사자는 세네갈 연안에서 중국, 유럽 어선과 경쟁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벽돌공 오마르는 지금쯤 세네갈 어부의 배를 타고 은밀하게 대서양을 건너고 있을지도 모른다.
 

   
▲ 밀항선을 타고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에 ‘성공적으로’도착한 세네갈인들이 2023년 11월 카나리아제도 테네리페섬에 있는 도시인 라라구나의 난민캠프에서 공을 차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REUTERS

국가에 기대하지 않는다
니옴레 주민 중에서 국가에 조금이라도 기대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가 최악의 사기꾼이다! 그걸 좀 보도해달라!” 스페인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이 있는 늙수그레한 남성들이 시장 광장에서 차를 마시며 <차이트> 취재진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살 대통령이 세네갈인의 국외 비밀 이주를 막겠다며 발표한 ‘긴급조치’, 즉 경제지원책을 니옴레에서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유럽연합이 이주의 직접적 원인에 대처하기 위해, 즉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원한 수십억유로는 해당 국가에서 국경 경비 강화에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 세네갈 해안선에도 방위군이 순찰하고, 스페인 드론이 해안 상공을 정찰한다.
뎀바는 유럽에서 번 돈으로 자신의 땅콩 상점 가까이에 빵집을 열었다. 니옴레 출신 청년 몇 명이 그의 빵집에서 매일 아침 동네 주민을 위해 바게트 수백 개를 굽는다. 이 청년들이 굳이 국외 이주를 원치 않는 것은 지역사회를 향한 뎀바의 공로일 것이다.
니옴레 젊은이 수백 명이 유럽 국가의 취업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면 니옴레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뎀바는 말한다. “유럽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니옴레에는 노동력이 차고 넘친다.” 이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그의 아들 중 한 명이다. 아들은 스페인 빌바오에서 수년째 일하고 있다. “아들은 스페인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면서 일한다.”

ⓒ Die Zeit 2024년 제4호
Der Migrationshintergrund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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