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특집
     
기억은 미래 결정하는 과거
[SPECIAL REPORT] 뇌과학자 한나 모니어 인터뷰- ③ 치매 앓았던 아버지
[168호] 2024년 04월 01일 (월) 마이크 그로세카트 회퍼 economyinsight@hani.co.kr

 

마이크 그로세카트 회퍼 Maik Großekat Höfer
클라우스 헤킹 Claus Hecking
<슈피겔> 기자
 

   
▲ 치매환자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자 2020년 4월 네덜란드 바세나르의 요양원에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치매 걸린 아내를 남편이 만나고 있다. REUTERS

당신의 기억을 단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 지워야 한다면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나는 1975년 17살 때 루마니아를 떠나 독일로 왔다. 꼭 남겨두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기차역에서 오빠, 아버지와의 작별 순간이다. 아버지와 오빠는 나를 기차 안까지 데려다줬고, 기차가 출발하자 따라 뛰면서 손을 흔들었다. 당시 내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새로운 세계로 떠났지만, 그 순간은 떠남이 아니라 아버지·오빠와의 연결고리로 기억에 깊이 새겨 있다.
왜 그 기억을 끝까지 가져가고 싶은가.
프랑스 철학자 폴 발레리는 “기억은 과거의 미래”라고 말했다. 기억이 어떤 임무를 가졌는지 아주 잘 설명한 말이다. 궁극적으로 기억은 우리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결정한다. 내 목표는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는 것이었다. 기숙학교에서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이나 케임브리지대학에 관해 많이 들었지만, 나는 하이델베르크대학이 독일의 옥스퍼드대학이라고 생각했다.

기억은 개인 인성의 배경
당시 기차 여행이 기억에 나는가.
당연하다. 그 모든 기억이 내 정체성의 일부다. 어떤 주소를 단기 기억에 잠시 보관하면, 특정 뉴런 사이의 연결이 강화된다. 우리가 무언가를 영원히 기억할 때는 그 과정이 다르다. 장기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기억은 이면에서 우리의 삶을 관통하면서 개인 인성의 연속성을 구축한다.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할머니가 내게 2마르크를 줬다. 할머니한테 받은 2마르크는 내가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했을 때 수중에 있던 전부였다. 생계를 위해 숙박시설에서 청소일을 했던 나는 김나지움에서 두 학년을 건너뛰고 1년 만에 졸업했다.
모든 것이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기억으로 들린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심한 향수에도 시달렸다. 독일에서의 첫 몇 달은 아버지 임종 전 몇 달과 더불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치매를 앓은 아버지는 2년 반 전에 돌아가셨다.
두뇌과학자인 당신은 아버지가 기억을 잃는 것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경험했는가.
아버지가 기억을 잃어가는 것을 9년간 지켜봤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치매임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주의력결핍장애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을 때, 뇌과학자라는 내 직업이 도움이 됐다. 아버지가 무엇을 더는 할 수 없고,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무엇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지를 봤다. 아버지의 치매로 내게 무슨 일이 펼쳐질지 예상됐지만, 나는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 치매가 일상을 얼마나 뒤흔들어놓을지 최악의 상상력을 발휘해도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아버지가 나를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게 된 것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아버지에게 노래를 불러줬고, 마태수난곡을 피아노로 연주해줬다. 모르핀 주사를 놔드리는 등 아버지가 상황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요리를 해드렸는데, 음식이 아버지 입맛에 맞지 않았다. 아버지는 루마니아 음식만 먹으려 했다. 아버지 식성이 어린이 입맛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단것만 찾았다. 나는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알프스산맥을 등정하겠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가.
잊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망각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미래로 시선을 향하고 새로운 것에 열린 마음을 가지려면 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 아버지와 춤도 많이 췄다. 아버지는 춤을 잘 췄다. 최근에 경험한 가장 부정적인 일은 강력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우리 뇌는 이렇게 작동한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늙고 병든 사람이 아닌, 젊고 생동감 넘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치매에 관한 내 기억을 덮어쓰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그게 가능한가.
아버지 죽음 등을 잊기 위해 신체적으로 아주 힘든 일도 일부러 찾아서 했다. 알프스산맥 등정은 나만의 트라우마 치료법이다. 이후 킬리만자로를 등정했다. 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완전히 녹초 상태였다. 모든 순간을 의식적으로 느껴보는 것, 현재에 침잠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죽음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버지 죽음이 아버지에 관한 내 기억을 지배하도록 하고 싶지는 않다. 이를 계기로 나는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동기부여를 가지게 됐다. 향후 몇 년간 ‘망각’을 학술적으로 연구할 생각이다.

치매 걸리면 음식 섭취 중단할 것
정확히 무엇을 계획 중인가.
치매환자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고 싶다. 아버지를 위해 연구해보려 한다.
당신은 기억을 잃을까 두려운가.
정말 두렵다. 기억 잃는 것을 많이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기억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가.
노년이 되면 뼈가 약해지고, 치아가 빠지며, 피부에 주름이 생기고, 근육이 약해지며, 기억력은 감소한다. 우리는 이 노화 현상을 피해갈 수 없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2년 전 89살에 숨을 거뒀다. 어머니는 노환이 찾아오자 음식 섭취를 중단했다. 내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나도 음식 섭취를 중단할 것이다.

ⓒ Der Spiegel 2024년 제9호
Für das Gehirn gilt: Was weg ist, ist weg
번역 김태영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이크 그로세카트 회퍼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일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최우성 | 편집인 : 박종생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박종생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