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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지상주의’에서 '인간중심주의’로
[한국경제 혁신]경제 패러다임
[13호] 2011년 05월 01일 (일) 강철규 economyinsight@hani.co.kr

강철규 우석대 총장·전 공정거래위원장

한국 경제는 역사적으로 보면 해방 이후 60여 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했다. 여기서 ‘발전’은 단순히 경제성장률이 높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돼 1인당 소득이 불과 수십달러에서 2만달러로 증가한 것 외에 사회 구성원 삶의 질이 향상됐음을 뜻한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심각하게 노출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할 만큼 우려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견해는 발전을 보는 시각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진다. 발전의 정의에 대해서는 3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경제가 성장하는 것 △사회 구성원의 자유가 확대되는 것 △인류가 지향하는 기본적 가치인 생명 존중과 자유 확대, 그리고 신뢰사회 구축 등이 실현되는 것을 발전이라 보는 견해가 있다. 필자는 이 중에서 세 번째 기본적 가치가 실현되는 것을 발전이라고 본다. 이 관점에서 평가할 때, ‘과연 지난 60여 년간 한국은 생명·자유·신뢰 면에서 발전했는가’라고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경제성장 면에서만 보더라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눈부신 발전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총량으로는 높아졌지만 양극화가 심화됐거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심해졌거나,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의 격차가 심화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고귀한 생명을 존중하고 인권과 개개인의 자유가 신장됐는지, 그리고 신뢰사회가 구축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면 문제가 더욱 커진다.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고귀한 생명의 가치를 훼손하거나 자유를 억압한 사례가 적잖기 때문에 높은 성장률에 비해 기본적 가치의 실현 정도는 크게 낮아질 수 있다. 사회 구성원 간에 신뢰가 두터워졌는가 하는 문제에 이르면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남북·복지 문제뿐 아니라 많은 정책에서 우선순위를 놓고 화합과 협력보다는 이분법으로 나뉘어 격렬한 대립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한국 경제는 이제 성장지상주의와 그 기조 위에 선 선진화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 본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살펴보자.
첫째, 무엇을 위한 경제성장인지를 재정립해야 한다. 성장 위에 인간이 있지, 인간 위에 성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성장률만 높이면 발전한다는 식의 맹목적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무시한 재개발 같은 성장지상주의는 성장의 긍정적 의미마저 무색하게 한다.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아서 결국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용산 사태나, 성적 지상주의로 나아가 이를 견디지 못한 학생들이 자살하는 사건은 모두 인간 중심 경제, 인간 중심 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났다.
‘한 사회 혹은 국가가 경제활동을 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기본적 문제에 대해 분명한 답을 가져야 한다. 개별 기업은 이윤 추구, 시장점유율 확대 등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한 사회는 이들의 목적이 조화를 이뤄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함으로써 생존과 번영을,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목적을 가진다. 그렇다면 반세기 이상 절대 가치로 여겨왔던 ‘경제성장지상주의’는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중요시 여기는 ‘인간중심주의’로 바뀌어야 한다. 총량 성장에 필요하다고 해서 인권을 훼손하고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
   
지난 4월11일 카이스트 학부 총학생회가 학교 본관 앞에서 비상학생총회 개최에 앞서 세상을 떠난 학우를 애도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신뢰·공감의 패러다임으로 경제 혁신해야
둘째, 경쟁과 협력이 조화돼야 한다. 자유시장 경쟁이 중요하지만 협력을 무시하거나 협력의 가치를 과소평가해서는 결코 안 된다. 협력은 신뢰를 높이고 인간을 살맛 나게 하는 효소와 같은 가치다. 성장 위에 인간이 있듯이, 경쟁 위에 인간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답게 하는 협력의 가치가 중요하다. 실제로 치열한 경쟁을 하는 기업들도 회사 내에서 협력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한다. 원시시대에는 협력하지 않으면 수렵·채취의 성과를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공동체로서 협력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이를 발전시켰다. 농경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산업시대에 들어 희소한 자원을 서로 획득하려는 치열한 경쟁이 중심이 되면서 협력의 가치가 점점 상실돼가는 듯하다. 이에 따라 인간성도 상실돼간다. 경쟁만 있고 협력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살벌하고 비정한지, 그 때문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전혀 살맛 나지 않는 무정한 사회가 되지 않을지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존중하되, 신뢰와 협력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경쟁과 협력 두 기둥 위에 건설되기 때문이다.
셋째, 결과 나누기보다 반칙 없는 경쟁 질서를 먼저 확립해야 한다. 초과이윤을 나눠 평등 사회를 구현하려는 시도는 성공 확률이 낮은 구호에 불과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은 허망하다. 우리 사회가 경쟁을 토대로 발전하고 있는 시장경쟁 시대에 머무는 한, 일단 공정한 경쟁을 이룩하는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칙을 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것은 성장지상주의에서는 그냥 넘어갈지 모르나 공정한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타자에게 위해를 가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먼저 반칙을 없애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런 다음 얻은 이익의 처분에 대해서는 사회 안전망 구축이나 사회 복지 같은 차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반칙의 문제는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성공한 기업은 대부분 과거 개발연대 때 정부의 지원과 혜택으로 성장했다. 이 기업들은 국민과 역사에 빚진 셈이다. 현재 비록 불공정이 없다 해도 과거의 지원과 특혜에 대한 빚은 갚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도 반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나 기술 탈취 같은 하도급 비리라든가, 독과점에 의한 시장지배적 지위를 누리는 사업자들의 불공정 행위, 순환출자 같은 기업집단에 의한 다양한 반칙들이 자행되고 있다. 과거에는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이런 문제를 알고서도 묵인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반칙 행위는 철저하게 적발하고 처벌해서 공정한 경쟁이 되게 해야 한다. 반칙을 그대로 놓아둔 채 ‘초과이윤을 나눠주세요’라고 주장하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 반칙 규제만 철저히 해도 동반성장의 절반은 이뤄진다고 본다. 미래 기업들은 반칙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경영 패러다임도 인간 중심, 신뢰 중심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특히 공감의 시대로 나아가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인간 사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기업 패러다임으로 혁신해야 한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한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 이제는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를 원점에서 다시 돌아볼 때다. 개발연대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의 생명이 존중되고 사회 구성원의 자유와 행복을 신장시키는 경제, 그리고 서로 믿고 협력하는 신뢰사회를 만드는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 
ckkang@mail.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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