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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미술품 가격, 쉽게 떨어지지 않을 듯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플렉스 문화, 새 신분제로의 이행 징후인가
[168호] 2024년 04월 01일 (월)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미술사학자
 

   
▲ ‘새로운 신분제 사회’로의 이행이 계속된다면 과시용 소비와 플렉스 문화도 지속할 것이고 소수의 고가 미술품 가격도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절대왕권을 과시하며 신분제를 강화했던 프랑스 왕 루이14세. 아생트 리고(Hyacinthe Rigaud), <루이 14세의 초상>, 1701, 루브르박물관 소장. 위키미디어 코먼스


<포브스>가 발표한 2023년 세계 최대 부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그룹 LVMH(루이뷔통모에에네시)를 소유한 베르나르 아르노다. 2000년 이후 세계 최고 부호의 자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1, 2위를 차지해왔다. 그리고 지난 5년간 플랫폼과 전기에너지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그리고 곧이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부상했다. 기술의 발달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술기업들의 지위가 급변하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기술과 금융인의 등장은 쉽게 납득이 간다. 그러나 럭셔리 기업의 소유주가 갑작스럽게 부상한 것은 다소 의외로 보인다.
금융위기와 뒤이은 팬데믹의 여파로 주요국이 양적완화를 시행했고, 미국의 경우 2007년까지 발행한 금액 대비 거의 6배에 이르는 달러를 이후 추가로 발행했다. 부의 양극화로 이렇게 풀린 돈이 대부분 부유층에게 귀속되면서 이들이 소비하는 고가주택과 럭셔리 제품의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사실상 최고가의 사치품이라 할 수 있는 일부 고가 미술품의 가격도 꾸준히 올랐다.
예를 들어 샤넬의 대표 상품인 ‘클래식 플립백’의 가격은 2018년 대비 5년 만에 두 배로 뛰었고, 럭셔리 제품의 가격은 지금도 매 시즌 1년에 두 차례씩 인상된다. 원가가 거의 동일한 상태에서 판매가가 오르니 매출과 마진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고, 회사의 이익이 급증하면 주가는 상승하게 마련이다. 현상만 놓고 보면 럭셔리 회사 오너의 부가 급증한 것은 쉽게 설명된다.
그러나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서 가치를 창출하는 기술과 그 사업에 대출이나 주식으로 투자해 수익을 함께 나누는 금융과 달리, 명품의 효용은 기껏해야 예쁘고 멋진 겉치레에 불과하고 부의 과시일 뿐이다. 게다가 명품 가격의 상승은 어떤 추가적인 가치의 창출도 수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겉치레에 명목상 가격 인상이 지속하는 이유는 추가적인 설명을 필요로 한다.

가치 창출 않는 명품의 효용은?
한편으로는 성장잠재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자본주의가 고가 제품의 명목가격을 올려 명목상 성장으로 버틴다고 설명할 수 있다. 정의에 따르면 자본은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미래의 양적 성장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그런데 실질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명목상 성장을 유지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근대에 민주주의와 쌍생아로 함께 나타났다. 민주주의는 자본가, 즉 부르주아계급이 기존 귀족과 성직자 계급이 누리던 특권을 없애고 신분제를 철폐하기 위해 일으킨 시민혁명의 결과로 등장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취약해졌다면 민주주의 역시 위협받을 여지가 있고 이는 곧 새로운 계급사회의 등장을 예고한다.
에르메스의 핸드백은 수천만원에서 억원대를 호가하고, 제니와 아이유가 쓴다는 스웨덴제 침대 해스텐스의 최고가는 12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과거 명품 가격이 비싸다고 해도 일반 대중이 접근 가능한 제품가의 10배 안팎에 구입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그 차이가 백배에서 천배, 심지어 만배에 이른다. 명품은 아무런 가치 창출 없이 명목상 가격만 올랐지만, 바로 그 오른 가격만큼 부의 과시 효과와 경제적 지위의 차이를 더욱 확연하게 한다. 따라서 단순한 명목가격 인상은 계급적 구분이란 측면에서 자기실현적으로 실질적 가치를 창출한다.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이나 나인원한남 등 최고가 주택의 거래가격이 100억원대를 넘기면서, 강남 청담동에서 100억원대 주택 분양 소식이 들리고, 반포의 팔레스호텔과 강남의 리츠칼튼호텔이 이런 초고가 주택의 분양사업을 위해 매각됐다. 바야흐로 우리나라에도 일반인은 꿈도 꿀 수 없는 ‘넘사벽’의 주택단지가 본격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세계 최고 부호의 자리는 아르노가 차지했지만 기술기업의 지위는 여전히 막강하다. 얼마 전 도이체뱅크의 발표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 메타, 테슬라 등 7개 기업의 전체 시가총액은 세계 2위인 중국의 전체 시가총액보다 크다. 사실상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보다 커서 3, 4, 5위인 일본과 인도, 프랑스의 시장을 모두 합친 규모와 비슷하고 한국의 약 8배에 이른다. 이런 특정 기업으로의 집중은 자연스럽게 개인의 부 집중으로 이어진다.

과시용 소비 일반화
만약 우려대로 신분제 사회로의 역행이 진행 중이라면, 과시용 소비가 일반화된 오늘날의 이른바 ‘플렉스(Flex) 문화’도 비로소 이해가 가능해진다. 인터넷상에 어떤 연예인이 100억원대 주택을, 수억원대 자동차를 현금으로 샀다는 뉴스가 넘쳐나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계정에서는 명품 소비와 고가 레스토랑 등의 플렉스용 사진과 동영상이 인기몰이를 한다. 도대체 이런 내용을 누가 보냐 싶겠지만, 새롭게 신분 질서가 재편되는 과도기에 조금이라도 상위의 계급에 들기 위해서는 이런 자기 과장과 과시가 필요하다. 또한 그들의 삶을 흉내라도 내며 그들 사이에 끼어들려면 이런 것을 보기라도 해야 한다.
신분제 철폐가 한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진행됐던 것처럼, 만약 새로운 신분제 사회가 도래한다면 이 또한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행이 계속된다면 과시용 소비와 플렉스 문화 역시 지속될 것이다. 이런 조건하에 소수의 고가 미술품 가격도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 이처럼 과거를 그저 반복한다면, 다시금 미술품은 왕과 귀족 등 일부 신분만이 누리는 그들만의 영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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