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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자 아닌 채용자 위한 ‘스펙’
[In-depth]
[12호] 2011년 03월 01일 (화) 남기곤 economyinsight@hani.co.kr

남기곤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데 월급은 적고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평생을 이런 직장에서 일한다면 인생에 대한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대기업이나 공기업과 같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장에 취업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정답은 이미 안다. 누가 뭐래도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 그것이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혹은 같은 대학 출신자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려면 ‘스펙’(Specification·학력, 경력 등 조건)을 쌓아야 한다. 학점을 잘 받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를 잘해야 한다. 전에는 영어시험 성적이 좋으면 됐지만, 이제는 회화도 잘해야 한다. 해외연수라도 가서 현지에서 집중적으로 교육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앞장서고, 정부가 채근하며, 대학이 현장 중심의 실무적 교육을 해야 한다고 유도한다. 그러기 위해 대학은 현장실습도 시키고, 인턴십도 경험하게 하며,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학생을 설득한다.

학점과 어학연수는 취업에 도움
대학 재학 중의 이런 경험이 과연 효과 있을까? 필자와 같은 노동경제학 연구자들에게 이 문제는 이전부터 주요한 연구 주제였고, 그동안 여러 자료를 이용한 분석 결과가 많이 축적돼 있다. 분석 결과의 전체적인 추세를 보면, 학업 성적이나 어학연수 경험 등은 취업 능력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반면 대학 재학 중에 이뤄지는 다양한 실무 경험은 기대와 달리 뚜렷한 효과가 없었다.
이 분석 결과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필자가 두 명의 저자와 함께 작성한 ‘대학 재학 중 활동이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효과’(<경제발전연구> 16권 1호·2010)는 기존 연구들의 두 가지 문제를 보완하려 했다.
   
 
첫 번째 문제는 기존 분석 결과를 ‘인과관계’로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다. 어느 분석 결과를 보면 현장실습을 경험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오히려 임금이 3% 정도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현장실습은 대학생의 인적 자본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현장실습을 하느라 공부할 시간을 빼앗겼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실습이 서울의 이른바 ‘일류’ 대학에서는 잘 시행되지 않는 반면, 주로 지방대학이나 전문대학에서 실시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구성상의 문제에 기인할 가능성이 크다. 현장실습이 임금을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현장실습을 받는 사람 중에 원래 능력이 낮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임금이 낮은 것이다.
인과관계는 실증 분석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며, 자연과학에서처럼 실험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완벽한 해결책이 없는 문제이다. 어떤 방법이 인과관계에 더 가까운 추정치를 제시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우리가 사용한 방법은 대학-계열에 대한 고정효과(Fixed Effect)를 통제하는 회귀분석이다. 쉽게 말하면, A대학 공학계열을 졸업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할 때 현장실습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임금 차이가 어느 정도 발생하는지, A대학 사회계열은 어떠한지, B대학 인문계열은 어떠한지 등 각 대학-계열 셀 내에서 현장실습 효과를 따로 구한 뒤, 이에 대한 전체적인 평균값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장실습을 받지 않은 그룹 내에 일류 대학 졸업자 비율이 더 높아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현장실습과 자격증은 ‘글쎄요’
이 방식을 이용해 한국고용정보원에서 2005년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조사’(GOMS·Graduates Occupational Mobility Survey) 자료를 분석한 핵심 결과를 정리한 것이 <표>이다. 우선 학점은 취업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일반 대학은 학점이 중위 이하인 학생과 비교했을 때 학점이 최상위인 학생은 미취업자 대비 현재 취업했을 비율이 1.5배, 중소기업 취업자 대비 대기업에 취업했을 비율이 1.5배 높으며, 시간당 임금도 8.7% 높다. 이보다는 약간 정도가 낮지만 학점이 상위인 학생은 중위 이하인 학생에 비해 역시 현재 취업했을 비율, 대기업에 취업했을 비율, 시간당 임금이 더 높다. 전문대학도 거의 유사한 추세를 보인다. 어학연수 경험은 주로 일반대학 학생들에게만 유의한 영향을 미쳤다. 전문대학은 어학연수 경험이 오히려 취업 확률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보일 뿐 취업의 질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대학-계열을 통제하는 더 엄밀한 분석 방식을 도입했음에도 기존 다른 연구 결과들과 마찬가지로 일자리 경험이나 자격증 취득과 같은 요인은 졸업생의 취업 능력 향상과 별 관련이 없었다. 일자리 경험이 전문대학 학생에겐 취업 확률을 다소 높여주지만 취업의 질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일반대학에는 오히려 취업 확률을 저하시켰다. 자격증 수는 어느 경우에나 유의한 영향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이번 연구 분석에서도 학점과 어학연수 경험은 졸업생의 취업률을 높이고 취업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이라면 학점 관리도 하고 어학연수도 다녀올 필요가 있다. 이런 스펙 관리는 개인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 논문에서 주목하는 두 번째 문제는 ‘과연 이런 경쟁이 경제 전체적으로도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우선 학점이 좋고 어학연수다녀온 사람이 노동시장에서 왜 우대를 받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2006년 7월 스카이라이프 영국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모습.
전통적인 ‘인적자본이론’(Human Capital Theory)에 따른다면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대학 재학 중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점이 높은 사람,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영어 실력이 좋은 사람은 그만큼 직장 생활에 필요한 능력이 잘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음으로써 이들은 생산성이 높을 것이기 때문에 기업에서 우대하게 된다. 과연 그럴까? 그동안 노동경제학 내부에서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인적자본이 향상되면 개인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임금수준이 높아진다는 인적자본 이론의 일직선적 설명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비판이 ‘신호이론’(Signaling Theory)이다. 일반적인 상품시장과 달리 노동시장은 ‘비대칭적 정보’(Asymmetric Information) 상황에 놓여 있다.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단계에서 기업은 지원자의 능력을 정확히 판별할 수 없기 때문에, 지원자의 몇 가지 특성을 신호로 판단해 노동자를 선별할 수밖에 없다. 대학 졸업자가 별로 많지 않던 시절에는 대학 졸업장이 지원자의 우수한 능력을 나타내는 주요한 신호였다. 하지만 대학 졸업자가 급격히 많아지면서 기업은 생산성과 관련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 다른 신호들을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이것이 학점이나 어학연수 경험이 왜 노동시장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신호이론의 설명 방식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두 이론에서 제시하는 함의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인적자본이론에 근거해 어학연수 경험이 노동자가 직장에서 일하는 데 유용한 능력을 향상시키고 이 때문에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대학과 사회가 앞장서서 대학생들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개별 노동자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경제 전체적으로도 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신호이론에서 제시하듯이 어학연수 경험이 단지 능력이 좋은 노동자를 선별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지표에 불과하다면, 그래서 이 경험이 실제 직장에서 일하는 데 별로 유용하지 않다면, 어학연수 경험은 사회적으로 비효율과 낭비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생에게 어학연수를 하도록 유인하는 것보다는, 기업이 신규 입사자의 질을 정확히 평가하도록 선별 기제를 확충하게 유도하는 편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 될 것이다.

사회 전체적 효용은 감소
여러분은 두 이론 중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다고 보는가? 이번 연구에서는 한국에서 학점과 어학연수 경험이 노동시장 성과에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는 것은, 인적자본이론보다는 신호이론에 근거해 설명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려 했다.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인적자본이론이 맞다고 하자. 즉 어학연수 경험이 어학 실력을 향상시켰고, 기업이 이 능력을 중시해 임금을 더 많이 주는 것이라 하자. 그렇다면 직장에서 외국어를 자주 사용하는 경우 어학연수 경험에 대한 임금 프리미엄이 더 높아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학점도 마찬가지다. 학점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전공 이해력이 높음을 의미하는데, 기업이 전공 실력의 차이를 인정해 그에 따라 임금 프리미엄을 지급한다면 본인의 전공에 잘 맞는 직장에 취업한 경우 졸업 학점에 대한 임금 프리미엄은 더 높아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인적자본이론에 근거한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은 직장에서 오히려 어학연수 경험에 대한 임금 프리미엄이 가장 높았고, 자신의 전공과 전혀 맞지 않은 직장에서 졸업 학점의 임금 프리미엄이 가장 높았다. 외국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 기업에서 어학연수 경험자를 왜 우대할까? 직무와 유사하지 않은 전공의 노동자를 선발하면서 학점을 더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사실은 학점이나 어학연수 경험이 기업에 필요한 능력을 향상시켜 생산성을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기보다는, 자신이 우수한 자원임을 기업에 알려주는 신호 기능을 할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
실무 교육을 강조하는 현 상황에서 볼 때, 일자리 경험이나 자격증 취득과 관련된 변수가 노동시장 성과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혼돈스럽게 한다. 그나마 대학 재학 때 활동 중 긍정적 효과를 보이는 것은 학점과 어학연수 경험인데, 이 변수 역시 개인적으로야 취업에 도움이 되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불필요한 낭비일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스펙 쌓기를 강조하는 대학 문화, 과연 이대로 좋을까? 대학 교육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야 할 시점에 있다.
nkgon@hanba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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