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책임도 전략이다
[이제구의 Moral Innovation]
[12호] 2011년 04월 01일 (금) 이제구 economyinsight@hani.co.kr

부모 노릇은 어디서나 녹록지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동료 교수에게서 들은 얘기는 내가 알고 있던 ‘책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에게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 그 아들이 몇 달 전 운전면허증을 받았다. 그래서 이따금 아버지 차를 빌려서 몰고 나간 모양이다. 어느 날 아들이 접촉사고를 냈다. 화가 난 동료 교수는 ‘앞으로 3개월간 운전 금지’라는 벌칙을 내렸다.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운전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지만, 접촉사고에 대한 책임을 느끼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들이 참여하는 여러 과외활동 모임이 있을 때마다 차로 데려다줘야 했다. 그전에는 아들에게 자동차 열쇠를 주며 “조심해서 운전해라”고만 말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모임이나 수업 계획을 세울 때 아들 일정을 염두에 둬야 했다. 주말에도 아들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없게 됐다.
동료 교수는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앞으로 다시는 접촉사고를 내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고 자동차 열쇠를 그냥 줘버릴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아들이 잘못을 저질러서 아버지로서 책임을 물어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아들이 둘러대는 핑계에 따라 아버지의 말을 번복한다면, 앞으로 아들은 아버지가 내리는 벌칙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여길 게다. 무엇보다 이런 태도는 아버지가 무책임한 것이 된다. 나와 동료 교수는 몇 시간 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리고 단호한 벌칙보다는 경영학 원론에 나오는 동기부여를 적용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책임을 추궁하기보다 책임 있는 활동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기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주도 경영에 책임져야
책임은 한쪽 당사자만 져야 하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서로의 이익을 위한 활동과 공동 목표를 향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기업 사례를 보면, 기업이 지켜야 할 책임을 다하면서 성공한 경우가 많다. 이런 기업들은 중요한 이해관계자, 특히 종업원·소비자·공급자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업 경영 활동이 좋은 결과를 낳게 만드는 이해관계자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자와 기업 간 책임을 다루는 데 흔히 범하기 쉬운 문제가 있다. 책임은 기업에만 있고 이해관계자는 책임이 없는가? 다르게 말해보자. 기업은 투자자인 주주에게 책임이 있는데, 주주는 투자금 외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가? 기업은 종업원에게 정당한 급부와 복리후생에 대한 책임이 있으나, 종업원은 기업에 대한 책임이 없는가? 기업은 소비자에게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이 있으나, 소비자는 기업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이런 질문은 공급자나 다른 이해관계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성공한 기업은 이해관계자 책임을 경영전략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세기가 막 시작된 1919년 미국 미시간에서는 기업 책임과 관련해 중요한 재판이 있었다. 다지(Dodge) 형제가 포드자동차를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포드자동차 주주인 다지 형제는 창업주이자 사장인 헨리 포드가 영업이익을 주주배당금으로 돌리지 않는다고 소송을 냈다. 이에 법원은 헨리 포드가 생산시설을 확장할 계획이 있었고, 이런 경영활동이 주주 이익보다 중요하다며 포드자동차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례에서 보듯이, 주주에 대한 경영자 또는 기업 책임에는 한계가 있다.
2006년에는 이와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재판이 델라웨어에서 있었다. 월트디즈니 주주들은 전 사장인 마이클 아이스너와 이사회를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1995년 아이스너는 차기 사장으로 마이클 오비츠를 지목하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오비츠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14개월 만에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문제는 오비츠가 받아간 퇴직금이 현금 3800만달러와 스톡옵션 9150만달러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주주들은 아이스너와 이사회가 오비츠를 사장으로 선발한 것이 실패한 경영활동이라고 주장했다. 이 재판은 경영활동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판례를 남겨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델라웨어 대법원은 아이스너와 이사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경영활동이었음을 인정하며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정부는 법을 제대로 집행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지난 1월26일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 모습.
두 사례는 법률적 판단이기는 하지만, 기업활동이나 경영자가 주주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기업 경영자는 경영활동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갖고 이를 인정받는다. 디즈니 사례에서 보듯이, 잘못된 경영활동 책임의 일부분을 주주들이 지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아이스너와 이사회가 오비츠를 사장으로 임명할 때, 디즈니 주주들은 오비츠에 대해 철저하게 사전 조사를 했어야 한다. 법원은 디즈니 주주들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책임의 상당 부분은 경영자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가 함께 지닌다는 것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잘나가는 이유
다른 이해관계자는 어떤 책임을 질까? 기업 경영자는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을까? 우선 종업원은 자신이 속한 기업조직이 원하는 업무를 신의를 갖고 끝내야 할 책임이 있다. 종업원이 기업에서 받는 여러 가지 복리후생은 이의 반대급부이다. 더 나아가서 종업원은 자신이 일하는 기업조직이 건전하게 운영되도록 노력할 책임이 있다. 어떤 기업이 실패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이유로 외부 요인이 좋지 않거나 경영진이 판단을 잘못한 점을 꼽을 수 있지만, 책임감이 결여되고 나태한 종업원이 지목되기도 한다.
어떤 기업은 종업원이 책임을 느끼고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 좋은 성과를 얻는다. 미국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가 좋은 예다. 사우스웨스트 설립자인 허브 켈러는 처음부터 종업원을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여겼다. 그는 “행복한 종업원이 행복한 소비자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즐거운 직장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해 독특한 기내 서비스로 소비자를 흐뭇하게 했다. 책임감이 충만한 종업원들만이 만들 수 있는 팀워크를 바탕으로 항공업계에서 가장 짧은 소요시간(여객기가 착륙해서 이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기록했다. 사우스웨스트는 경제 불황에도 37년간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기업과 공급자는 서로 의존하는 관계다. 공급자가 무책임하게 납품하거나 서비스를 할 때 기업이 좋은 성과를 낼 리 만무하다. 기업조직으로부터 호의적인 계약을 맺거나 좋은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공급자가 지니는 책임에 대한 반대급부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포드자동차가 만든 익스플로러 모델이 리콜을 하게 된 이유는 타이어 결함 때문이었다. 타이어 결함은 공급사인 파이어스톤의 잘못으로 드러났지만, 포드자동차에 대한 비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반면 공급자에 대한 책임을 잘 다독여서 성공한 기업도 있다. 스타벅스가 그중 하나다. 스타벅스는 환경보호단체인 세계보존협회(Conservation International), 멕시코 영세농과 손잡고 커피콩 유기농 재배 방식을 개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질 좋은 커피콩에 대한 기준을 정리한 C.A.F.E.(Coffee and Farmer Equity)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지침에 명시된 기준에 맞는 커피콩을 재배해 납품하는 영세농은 더 높은 가격을 받게 했다. 2009년 스타벅스는 전체 커피콩 가운데 81%를 이 지침을 따른 재배업자로부터 사들였다. 책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스타벅스는 안정되고 책임 있는 공급망을 확보한 것이다.
그러면 소비자는 어떤 책임을 갖는가? 미국은 ‘소비자 천국’이다. 물건을 사고 일정 기간 안에 언제든지 환불이 가능하다. 불쾌한 서비스를 받았거나 불량 제품을 구입한 때는 소비자 보호기관이나 다양한 소비자 동호회를 통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이 모두는 소비자 권리에 대한 내용이다.
책임 있는 소비자는 소비 행위가 낳은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컴퓨터와 주변 기기를 만드는 휼렛패커드는 소비자의 책임을 일깨우는 회사로 유명하다. 한 예로 레이저프린터 토너를 재활용하도록 반송하게 유인했다. 휼렛패커드에서 제조한 토너를 사면 포장 안에 반송 주소가 적힌 스티커가 들어 있다. 소비자는 다 쓴 토너를 포장 상자에 넣고 이 스티커를 붙인 뒤 가까운 수거함에 넣으면 된다. 이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일깨우면서 그에 대한 실행을 돕는 작지만 뜻깊은 활동이다. 2004년 휼렛패커드는 문구 소매업체인 오피스디포와 함께 못 쓰거나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 수거운동을 미국 전역에서 벌여 32만5천 개에 달하는 폐전자제품을 처리했다. 소비자가 지닌 책임을 이용한 활동을 통해 휼렛패커드는 ‘환경친화적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사우스웨스트는 종업원의 사기를 북돋워서 업계 최고 서비스를 만들었다. 스타벅스는 간단한 지침을 만들어 공급자의 책임 있는 활동을 만들어냈다. 휼렛패커드는 스티커 하나로 소비자에게 환경에 대한 책임을 갖도록 유도했다. 이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로 여기고 그에 걸맞은 전략을 세워 기업활동에 성공한 혁신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기업 경영자가 책임을 효과 있고 전략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경우는 주주·종업원·소비자·공급자처럼 경영활동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자에 한해서다.

정부의 책임은 공정한 법 집행
우리나라처럼 단시간에 산업화를 이룬 경우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누가 뭐래도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다. 문제는 정부가 직접적이고 주요한 이해관계자가 아니라는 데 있다. 기업이나 경영자는 정부에 책임을 묻거나 책임과 관련된 동기부여를 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기업활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다. 얼마 전,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정부가 대기업 활동에 편의를 봐주었으니 이제는 대기업이 나서야 할 차례다.” 놀랍다. 이는 정부가 무리를 하거나 편법을 써왔음을 자인하는 발언이 아닌가.
정부는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의외로 간단하다. 공정한 법 집행으로 정당하게 세원을 확보하고, 우리 사회의 필요한 곳에 효과적으로 예산을 집행한다. 정부가 기업에 준조세 등을 강요하기보다는 기존 법질서를 제대로 운영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economyinsight@hani.co.kr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구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1)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