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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이제 공유재, 시장에만 맡기면 안 돼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예술적 가치와 금전적 가치
[157호] 2023년 05월 01일 (월)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미술사학자
 

   
▲ 박서보의 <묘법 0308034-1826> 한겨레 자료


한국 미술시장에서 단색화가 몇 년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단색화는 1970년대 일본을 교두보로 국외 진출을 모색하면서 한국이 내세운 미술이었다. 당시 회화나 조각이 아닌 행위와 설치미술이 주류 미술계를 장악한 일본에서 새로운 양식의 한국 회화 작품은 주목을 끌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나 한국 경제가 세계 12위권으로 성장한 오늘날, 단색화는 비로소 한국적 모더니즘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으며 국내외에서 고가에 거래된다. 이 뒤늦은 인기를 좇아 단색조의 회화 작업을 하는 동시대 작가도 넘쳐나고 있다.
오늘날 재화 가치는 공개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시장에서 정해진 금전적 가치는 예술품의 원래 기능에 따른 예술적 가치를 수평적으로 반영하지 않거나 심지어 따로 가기도 한다. 예술품에 대한 감식안이 없는 대중은 미술품을 평가할 때 거래가격을 최우선으로 참조하고, 심지어 전문가의 의견마저 가격으로 검증한다. 따라서 시장과 무관하게 활동하는 미술사가나 비평가, 큐레이터 등 미술전문가는 대중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금전적 가치는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에 ‘올인’하는 순간, 예술적 가치는 상실되고 만다.
고전경제학에서 재화 가치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며, 공급이 희소한 재화는 풍부한 재화에 비해 가격이 높다. 미술품은 한 작가의 작품 수에 한계가 있고, 동일한 작품이 세상에 단 한 점밖에 없는 희소성으로 통상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장가격은 희소성이 아니라 인지도가 높을수록 비싸다. 한편으로는 공급과 더불어 수요를 창출하는 소비사회의 마케팅전략 영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실물에 근사한 대량 복제 기술로 인해 유명한 작가의 비싼 작품일수록 희소한 게 아니라 흔히 접할 수 있다. 게다가 예술품의 효용이 소유가 아니라 감상에 있다면, 수요와 공급만으로는 미술품 가격을 설명할 수 없다.

인지도 높을수록 고가
미술품의 금전적 가치는 어떤 의미에서 연예인의 명성과 유사하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연예인이 스타가 되고, 일단 스타가 되면 그 명성으로 점점 더 많이 보이면서 더욱 유명해진다. 미술품도 많은 사람이 아는 작가의 작품일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미술품뿐 아니라 베스트셀러 도서나 천만 관객 영화에 이르기까지 시장은 문화적 재화의 가치를 희소성이 아니라 대중성으로 결정한다. 대중매체의 오락프로그램은 광고든 관람료든 보는 사람이 많아야 수익이 나기 때문에 작품의 대중성은 금전적 가치와 직결된다.
그런데 책이나 영화, 미술 같은 예술의 경우 사정이 전혀 다르다. 좋은 문학작품이나 미술품은 인간과 세계, 사회에 대해 인습적이지 않은 새로운 통찰이나 시야를 열어준다. 즉, 이들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이전에 볼 수 없던 독창성을 얼마나 가졌는지에 결정된다. 이런 속성상 예술적 가치는 대중적 인지도에 의해 소비되는 시장에서 선호될 수 없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독창성이 아니라 어디서 본 듯한 진부한 사랑이야기와 뻔한 장르물이다. 그래서 금전적 가치가 중시되는 미술시장에는 널리 알려진 단색화의 저급한 모작이 넘쳐난다.
그렇다면 단색화의 예술적 가치는 단색화의 금전적 가치를 얼마나 설명해줄까? 수억원, 수십억원을 지급하고 단색화를 소유하는 효용은 그 가격을 과연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단색화는 대중의 선호를 반영해 미술관이나 화랑, 경매회사에서 거의 항시적으로 전시되기에 감상을 위해 굳이 작품을 구매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작품 감상에서 느끼는 기쁨으로 억대의 가격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가격의 대부분은 나도 가치 있는 작품을 소장할 감식안과 부를 가지고 있다는 과시 욕구와, 향후 나와 동일한 욕망을 지닌 이들에 의해 이 가격이 하락하지 않고 상승하리라는 기대를 반영한다.
그런데 이미 반세기가 지난 작품은 미술사에 남을 작품을 구매하는 부를 증명해줄 수는 있겠지만 동시대적 시의성을 파악하는 감식안을 증명해줄 수는 없다. 감식안은 앞으로 반세기 뒤 단색화 같은 미술사적 평가를 받을 작가를 가려내는 능력이며, 따라서 금전적 가치가 아니라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예술적 가치가 금전적 가치에 수평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시장에서 이런 작품을 구매하는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최근 크립토펑크나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BAYC)과 같은 수억원대의 대체불가능토큰(NFT)을 카카오톡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할 때, 원숭이나 크립토펑크의 그림은 단지 소유자의 경제적 신분을 확인시켜주는 부의 표지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가의 빌라나 아파트단지의 집마다 한 점씩 걸린 비슷비슷한 단색화는 사실상 이들의 계급적 소속감을 취향의 동질화로 보여줄 뿐, 거기서 소장가의 감식안이나 개별적 취향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보이지 않는 손’의 위험성
대중적 인지도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에서 취향은 획일화되고, 예술은 다양성을 잃은 채 상투적인 클리셰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즉, 시장과 예술은 정확히 대척의 길을 걷는다. 그래서 시장이 커질수록 역설적으로 예술은 본래의 예술적 기능을 수행하기가 어렵다. 원본의 완벽한 복제가 가능한 기술적 상황에서 원본성을 증명하기 위해 등장한 NFT가 시사하듯, 예술은 이제 사적인 재화라기보다 근본적으로 공유재 성격을 지닌다. 우리가 본래의 기능과 가치를 예술에 기대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이 함께 누리기를 원한다면 예술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서는 안 되며 공적인 지원과 관리, 보호가 필요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5월호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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