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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피바람 부른 서구의 원죄
[Focus]
[12호] 2011년 03월 01일 (화) 베른하르트 찬트 economyinsight@hani.co.kr
베른하르트 찬트 Bernhard Zand <슈피겔> 중동 특파원 중동 지역에서 오만의 작은 항구 도시인 수하르만큼 평화로운 장소가 또 있을까? 1년 내내 피어 있는 히비스커스, 평화, 질서, 물담배를 피우며 차를 마시는 사람들. 지난 2월27일, 2천여 명의 군중이 거리로 나와 시위하기 전까지 수하르의 일상 모습이었다.이날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발포로 최소 1명이 부상을 입었다.시위대의 요구는 술탄 카보스 빈 사이드(70)의 통치하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척결과 임금 상승이었다. 야자수와 모래, 60년 전에 발견된 세계 최대의 유전 지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의 오아시스 도시 카티프에서는 지난 3월11일, 시아파 주민들이 거리로 나가 시아파 정치범 수감자 3명의 석방을 요구했다.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압둘라 빈 아부 압둘 아지즈(86)가 그의 나라에서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벵가지는 수도 트리폴리에서 해안도로로 약 1천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리비아 동부 관목지대 키레나이카 지역의 중심 도시다.이곳에서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지난 2월까지 41년간 리비아를 지배했다.벵가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서 시위대는 카니발 행렬이라도 하는 듯이 카다피로 분장하고 거리를 행진하며 “리비아는 자유다” “신은 위대하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지난 몇 주간 튀니스, 카이로, 바레인, 그리고 벵가지에서 벌어진 사태가 증명하는 것이 있다면, 정치적 변화 예측을 불허한다는 것이다.누구도 튀니지 내륙 소도시에서 일어난 젊은 과일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이 몇 주 후 아랍권에서 가장 강력한 지배자 중 한 사람을 실각시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중동은 수십 년간 지리학적 크기나 인구 수에 비해 세계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1945년 이후 이 지역에서만 10여 회의 국제 전쟁과 수많은 내전, 군사 쿠데타, 수천 번의 테러와 정치적 암살이 벌어졌다.이런 문제가 세계의 다른 쪽 구석에서 벌어졌다면 서구 국가들은 애도를 표하겠지만 별다르게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 주둔한 이집트 군부. 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성공한 데는 군부의 역할도 컸다. 서방이 중동에 촉각 곤두세우는 이유 하지만 중동 분쟁은 세계 석유 매장량의 60%와 천연가스 매장량의 40%를 차지하는 지역에서 벌어진다.이스라엘의 안전은 미국, 독일 같은 나라에서 국시(國是)의 일부나 마찬가지고, 이란의 핵문제는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의 공통된 관심사다.중동이 불타오르는데 서구 국가들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누구도 미래를 짐작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100여 년에 걸친 근대 중동의 아픈 역사를 살펴보면, 이 지역에 그리고 서방세계에 임박한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이를 위해서는 먼저 시위대가 카다피 통치에서 최초로 스스로를 해방시킨 곳, 키레나이카 지역부터 알아봐야 한다. 100년 전 1911년 가을, 한 오스만제국군 소령이 벵가지 성문 앞에 나타났다.이스탄불에서 파견된 그의 목적은, 그가 한 친구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따스하고 우호적인 조국의 국경을 수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스만제국은 400여 년에 걸쳐 북아프리카,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다.페르시아만 연안에 이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홍해에서 아덴만까지, 그리고 나일강에서 수단의 국경까지 펼쳐지는 거대한 영토가 있었다.그러나 프랑스가 알제리와 튀니지를 정복했고, 1882년 영국이 이집트를 차지했다.그리고 이제는 이탈리아가 리비아에 도착한 것이다.영국,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도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가지고 싶어했다.당시 무너져가는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차지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었다. 무스타파 케말 소령은 터키인 장교 150명과 아랍인 용병 8천 명을 지휘해 수개월간 1만5천여 명으로 이루어진 이탈리아 병력을 리비아 해안에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하지만 그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제국의 국경이 흔들리는 곳은 아프리카뿐이 아니었다.발칸반도, 도나우강 유역, 트리폴리타니아의 카우카스에서도 국경이 무너지고 있었다.이스탄불로 돌아온 후 그는 ‘이탈리아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고 기록했다. 케말 소령은 아프리카에 남은 오스만제국의 마지막 영토를 잃는 것이 한 제국의 종말을 넘어 한 시대의 종말을 상징한다는 것을 느꼈다.그는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이 변혁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했지만 새로운 시대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그것은 중동 전체가 정치적·사상적·종교적 전쟁터이자 국제 정치의 산실로 탈바꿈하는 한 세기였다.이 기간에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국가들이 건설되고, 임의로 국경이 그어지고, 국민이 증오하는 그리고 국민을 증오하는 통치자들이 정권을 잡았다.전쟁과 내전이 벌어졌고 독재자들이 암살되었다.이 지역에서 2개국만이 민주주의를 수립했다.그중 한 나라는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이고, 다른 한 나라는 후세에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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