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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작품이 위작이라면?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진품 감정
[156호] 2023년 04월 01일 (토)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미술사학자
 

   
▲ 감정서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 이우환 작가의 1978년작 <점으로부터 No.780217>. 케이(K)옥션 제공


수억, 수십억원씩 하는 고가의 미술작품을 샀는데 시간이 지나 위작으로 판명된다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컬렉터는 당연히 진품이라는 전제로 작품을 사지만, 작품을 사 모으다보면 위작을 구매하는 일은 의외로 빈번하게 생긴다. 컬렉터는 진품이라 감정을 받으면 진품인 줄 알고, 혹 위작으로 판정될 경우 원금 반환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술시장에서 작가도 갤러리도, 심지어 감정가도 모두 판매자다. 그래서 구매자의 이익을 보호받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 이 문제에 관해 A씨가 작고작가 홍길동(가명)의 작품을 B화랑을 통해 구매했던 사례로 실상을 알아보자.
2008년 A씨는 평소 거래하던 B화랑을 통해 유명한 작고작가 홍길동의 작품 두 점을 샀다. 당시는 작품의 진위 감정을 해오던 ‘한국화랑협회’의 감정에 오류가 자주 생기면서 ‘미술품감정원’이라는 별도 기구가 새롭게 발족하던 때였다. 자연스럽게 두 기관의 감정서가 공존했다. A씨는 B화랑에서 작품을 사면서 한 점은 화랑협회 감정서로, 다른 한 점은 신설된 감정원 감정서로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어차피 그때나 지금이나 진품이라 감정한 기관이 나중에 위작 판정이 났을 때 손해배상을 해주는 것은 아니어서, A씨는 B화랑에 “추후 위작 판정시 원금을 반환한다”는 문구를 넣은 보증서를 추가로 받고 사들였다. A씨로서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취한 것이었다.
2016년 A씨는 이사 과정에서 감정서를 모두 분실했다. 감정원 감정서는 재발행받기로 하고, 감정원 감정을 받지 않은 작품들의 진위 감정을 새로 의뢰했다. 그 결과 홍길동의 작품 한 점이 ‘위작’ 판정을 받았다. 상당한 기간이 지났지만 다행히 작품을 샀던 B화랑이 여전히 영업 중이어서 감정 결과와 보증서를 함께 제시하고 원금 반환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이후 1년간 진품을 증명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과 3년간의 1심·2심의 법적 다툼을 거쳐 법원의 원금 반환 판결을 받고, 대금의 일부 할인과 분할로 실제 반환받기까지 5년 이상의 시간과 소송 비용이 들었다.
위작 판정 뒤 1년간 A씨와 B화랑은 진품임을 증명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과거 화랑협회와 현재 감정원의 감정위원 상당수가 중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술시장에서 목소리가 큰 화상 몇 곳이 친분이 있는 미술사, 보전전문가 등과 함께 감정위원을 독점한다. 이들의 감정은 크게는 미술시장 전체의 이익을 위하지만, 개별 화상의 이익이 작용하기도 한다. 특정인의 입김으로 감정 오류가 빈번해지면서 감정기구의 신뢰도가 떨어지면, 특정인을 제외하고 새 기구를 만들어 다시 나머지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감정한다. 그래서 재감정에서 결과가 바뀌는 경우 특정인의 사익에 연루돼 잘못 내려진 평가를 바로잡기도 하지만, 시장의 성숙에 따라 진품의 허용 범위를 좀더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바뀌기도 한다.

감정위원 같아도 결과 바뀔 수 있어
해당 작품을 전시에 대여했을 때 작가의 유족이 어린 시절 집에서 이 작품을 본 적이 있다며 굳이 A씨에게 연락해왔지만 막상 위작 판정을 받았다며 다시 물으니 기억이 희미하다고 외면했다. 힘들게 유족 대표를 수소문해 상황을 전하니 진품 확인이 필요하다면 해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다른 쪽에선 홍길동이란 작가의 위작을 유족이 유통했다는 소문이 있다며 그만두고 말았다. 작가가 그린 적 없다는 천경자의 <미인도>는 진품으로, 작가 스스로 진품이라고 한 이우환의 작품들은 위작으로 판결이 나는 상황에서 증빙자료 없는 유족의 말이 진품 여부를 증명할 수는 없다.
결국 소장 경로를 추적해 작품이 작가에게서 나왔다는 증거를 찾는 것만이 길이었는데, B화랑에 넘긴 화상이 작품을 구했던 지방의 화상까지만 추적할 수 있었다. 작가가 갤러리나 딜러에게 넘긴 작품이 고객에게 팔린 뒤 다시 유통시장에 매물화되면, 불특정한 수많은 딜러가 개입하면서 경로를 추적하기 훨씬 어려워진다. 게다가 미술품이 증여나 뇌물, 상속의 수단으로 주로 활용되면서 미술품 소장자를 밝히지 않는 관행이 생겼고, 유통시장에서의 추적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졌다.
미술시장에서 감정원의 감정평가서는 진위 판정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았지만, 1심 판사는 당시 이우환 작품의 감정으로 말이 많았던 감정원의 감정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B갤러리의 주장에 동조했다. A씨가 위작임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정한 것이다. 항고심에 가서야 판사는 B화랑의 주장에 따르면 진품임이 확실하고 그간 가격도 올랐다는데, 그러면 그냥 반환해주는 게 이득이 아니냐고 B화랑에 권했다. 이를 거부한 B화랑의 주장은 결국 판사의 신뢰를 잃었다. 법은 상식을 인정받기 위해 상당한 노력이 요구되는 곳이었다.
결과적으로 A씨가 감정서를 챙기고, 화랑의 보증서를 챙긴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감정 결과는 바뀔 수 있고, 심지어 같은 감정위원에 의해서도 바뀔 수 있어 감정은 진실을 보증하지 못했다. 시장의 주체들은 구매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감정기구에 절대적 신뢰를 보내는 척할 뿐, 감정위원도 감정기구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작가 유족의 말은 증빙이 없는 한 신뢰할 수 없고, 심지어 작가의 기억조차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오늘날 화랑의 원조로서 프랑스 인상주의의 산파역을 했던 화상 폴 뒤랑뤼엘은 본인이 거래한 작품에 대한 기록을 사진과 함께 꼼꼼하게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상 모더니즘 작가들의 거래가 활성화한 데는 당시 새로운 화상들의 이런 기록문화에 크게 빚졌다. 고객의 신뢰는 책임 있는 거래 기록에 의존한다. 그리고 감정기구가 신뢰를 담보하려면 일정한 책임이 수반돼야 한다.
외국에선 작품 감정을 주로 해당 작가의 재단이나 전속 갤러리가 맡는다. 이들은 그 작가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졌을 뿐 아니라 감정 오류는 작가의 시장에 나쁜 영향을 끼치므로 감정에 최대한 신중을 기하게 마련이다. 모든 시대, 모든 작가의 작품을 감정하는 감정기구는 이런 재단이나 갤러리가 없는 작가들을 위해 필요하나, 전문성이나 책임성이 훨씬 떨어지게 마련이고 보증용이라기보다는 참조용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4월호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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