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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의 비극’과 싸운 최초의 여성 수상자
[이재성의 노벨경제학상 다시 읽기] 엘리너 오스트럼
[156호] 2023년 04월 01일 (토) 이재성 san@hani.co.kr

 

   
▲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엘리너 오스트럼. 위키미디어커먼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그럴듯한 조어의 저작권은 미국의 생태학자 개릿 하딘(1915~2003)에게 있지만, 공공재(코먼스) 남용은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을 처음 내놓은 것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경제학자 윌리엄 포스터 로이드(1794~1852)였다. 하딘은 로이드가 1883년 발표한 작은 책자의 이론을 인용하면서 “공유지의 자유는 모두에게 파멸을 가져온다”고 단언했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근거한 이 숙명론적 편견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백 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 편견에 맞서 평생을 바친 학자가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럼(1933~2012)이다. 오스트럼은 노벨경제학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이며, 정치학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공용어라고 할 수 있는 ‘경쟁’이 아니라 사회주의 향취가 느껴지는 ‘협력’을 연구한 학자가 상을 받은 것도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모든 면에서 파격적이었던 2009년의 노벨경제학상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반성 모드일 수밖에 없었던 자본주의 진영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공유지가 잘 관리되는 이유
오스트럼이 공유지 연구를 시작한 것은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에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 훨씬 전인 1950년대 후반부터였다. 당시 미국 로스앤젤레스 일부 지역의 지하수에 소금물이 침투하면서 물 부족 문제가 생겼는데, 지역 주민들은 스스로 협회를 결성했고, 물 보충 지구를 만들어 해안을 따라 물을 주입해 염수 침입을 막는 데 성공했다. 오스트럼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대학원에서 이 과정을 연구하는 팀에 참여했고, 이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1965)을 썼다.
하지만 오스트럼은 하딘의 논문을 읽고 나서야 자신이 연구한 것이 공유지 문제였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만큼 하딘의 논문은 화제가 됐다. 하딘의 결론은 오스트럼의 연구 결과와 상반된 것이었다. 하딘은 과도한 공유지 이용의 대안으로 정부 규제(세금·할당)나 소유권 확립을 제안했는데, 오스트럼은 주민들이 자치로 공동재산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자본주의 세상은 사유재산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강화해준 하딘의 주장을 반겼다. 오스트럼의 논문은 주목받지 못했다. 정치학자들은 되레 적대적이었다. 오스트럼은 노벨상 수상 뒤 인터뷰에서 “많은 정치학 동료가 우리가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 힘들었다”며 “그들 대부분은 국회의원, 시장, 내각의 관료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은 우리가 농부와 소작농, 그리고 물을 (스스로)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관심 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겼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오스트럼의 연구가 궁극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선험적 주장에 불과한 하딘의 공동 초지 황폐화 논리를 사례에 기초한 경험적 연구로 논박했기 때문이다. 오스트럼은 광범위한 사례를 수집하기 위해 전세계를 포괄하는 학제간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약 500건의 기존 연구를 재분석하는 메타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정부가 아니라 지역 주민이 직접 관리하는 공유지(어장, 숲, 목초지)가 압도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왜 정부보다 주민이 관리하는 쪽이 더 성공적일까. 해답은 현장성과 소통, 신뢰에 있다. 정부 관리는 지역 주민보다 현지 사정에 어둡고 관료적이어서 탁상공론에 그치기 쉽다. 하지만 주민들은 현장을 훨씬 잘 알 뿐 아니라, 자신의 이익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오스트럼은 사유화가 공동소유보다 항상 효율적이라는 편견에도 도전했다. 그는 인류학자 로버트 네팅(1934~1995)의 스위스 고산지대 공동 목초지(알파인 코먼스) 연구를 예로 든다. 사유재산제를 적용하는 계곡지대와 달리 고산지대의 경우 적설량이 천차만별이어서 사유화에 따른 위험(곳에 따라 풀이 자라지 않아 양을 굶길 수 있는)이 있기 때문에 공동재산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공유지가 언제나 잘 관리되는 건 아니다. 공유지의 성공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임승차와 규칙위반에 대한 처벌이다. 오스트럼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연구를 거듭했는데, 역시 열쇠는 소통과 신뢰였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대화를 금지했을 때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인 결정을 했는데, 소통을 시작하자 공동의 이익을 찾기 위한 협력도 함께 이뤄졌다.
노벨상위원회는 오스트럼의 업적에 대해 “오랫동안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사용자들이 집합적으로 사용하는 천연자원이 장기적으로 과도하게 개발되고 파괴될 것이라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유지됐다. 엘리너 오스트럼은 작은 지역 사회의 사람들이 목초지, 어장, 숲과 같은 공유 천연자원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현장연구를 수행해 이 아이디어가 틀렸음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더 많은 이단이 필요하다
현대 자본주의의 요새인 미국에서 오스트럼은 이단아 같은 존재였음이 틀림없다. 가난한 부모는 딸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오스트럼은 각종 파트타임으로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할 때는 타자 속도(비서의 능력)를 묻는 말에 절망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가 경제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학부 때 수학을 배우지 않았다고 거절당했다. 메타 분석에 필수적이었던 학제간 연구도 당시 학계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모든 게 불리한 소수자였지만 적대적 환경에 굴하지 않았고, 시대와 타협하지 않았다. 2008년에 이어 다시 한번 금융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요즘, 그의 지혜를 돌아보는 이유다.
인생 후반기에 오스트럼은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지구라는 공유지의 남용과 착취로 절멸을 눈앞에 둔 오늘날 인류는 오스트럼의 지혜를 실현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지구 공동체는 너무 크고 국가들은 너무 이기적이다. 더 많은 이단아가 필요하다. 이단이 주류가 돼야 비로소 인류는 자신을 스스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4월호

* 노벨경제학상은 뒤늦게 따로 태어난 사생아 같은 노벨상이지만 현대 자본주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같은 존재다.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업적과 관련 논쟁을 통해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본다. 너무 전문적이지 않은 상식의 수준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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