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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짝의 장갑과 ‘세상을 바꾼 기계’
[156호] 2023년 04월 01일 (토) 조계완 kyewan@hani.co.kr

 
조계완 <한겨레> 선임기자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라인. 울산시 제공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미국 자동차 시대를 연 것으로 유명한 대중자동차 ‘모델 T’를 한창 생산하던 1914년, 디트로이트 공장 노동자들에게 ‘일당 5달러’ 지급을 선언해 미국 전역의 노동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5달러는 당시 보통 노동자 평균임금의 두 배였다. 그 배경에는 컨베이어벨트 일관 작업라인 노동자의 높은 이직률을 줄이려는 의도가 함께 깔려 있었다. 당시 포드 노동자들은 공장의 단조롭고 반복적인 동작에 적응하지 못해, 결근과 중도탈락이 기록적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도 5달러 소식을 듣고 미국 남부와 유럽에서까지 노동자 수천 명이 일자리를 구하러 디트로이트로 몰려들었다.
현대자동차가 이른바 ‘킹산직’(생산직의 왕)으로 불린 생산직 신입사원 공개채용(400명) 서류접수를 마감한 2023년 3월12일, ‘지원자 18만명설’이 회사 안팎에 풍문으로 나돌았다. 적어도 10만 명은 족히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2년 현대차 직원은 6만4840명, 1인당 평균연봉은 1억500만원(평균근속 17.6년)이다. 정년 보장은 물론 평생 현대차 구매시 최대 30% 할인, 병원비와 자녀 대학등록금 지원 혜택도 누린다. 지원자격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으로 나이·성별 제한도 없앴다. 대졸 사무직, 교사, 공기업 직원, 7~9급 공무원까지 응시자에 섞여 있다고 한다.
1990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경영학자들은 일본 도요타 생산방식을 연구한 책 제목을 <세상을 바꾼 기계>라고 붙였다. 유연생산방식의 도요타든 포드주의 대량생산방식이든 자동차는 20세기에 세상을 바꿔온 기계였다. 물론 자본주의경제와 자동차산업이 거대하고 역동적인 변모를 거듭하면서 2023년 울산 공장의 노동조건과 작업시스템은 110년 전 디트로이트 공장과는 크게 달라졌다. 그럼에도 완성차 조립라인은, 고임금과 좋은 사내복지에다 아무리 자동화된 체제라 해도 여전히 팍팍하고 고단한 공장이다. 1980년대 미국 지엠(GM) 린든 자동차공장에서 일어난 대규모 명예퇴직을 다룬 책 <공장이여 잘 있거라>(루스 밀크먼)에서 대다수 퇴직 노동자는 공장을 “우울하고 감옥 구멍처럼 지랄 같은 곳”으로 표현했다. 하루빨리 공장에서 도망치고 싶어 했고, 누구도 버리고 떠나온 공장세계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이번 ‘킹산직’ 취업 대열은 공장 일자리가 하나의 ‘자산’(Job Assets)이 된 우리 시대를 상징한다. 훨씬 전인 2006년 기아차 광주공장 생산직 채용 때도 취업원서를 받으려는 줄이 1㎞를 넘어 장사진을 이뤘다. “자본주의 업적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더 많은 비단 스타킹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 공장 여공들도 비단 스타킹을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주는 데 있다”는 조지프 슘페터의 은유가 실감 나는 세상이다.
현대차 공장이 ‘한 짝의 장갑’을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들이 몰려든 장소가 된 기반에는 국가와 사회공동체가 제공한 수많은 지원·혜택이 있었다. 도로·통신 같은 경제 하부구조나 기술 연구개발과 교육훈련 지출 같은 과업은 이윤 추구에 꼭 필요하지만 수익성은 거의 없고 막대한 비용 부담이 드는 일인데, 그 대부분을 자본 대신에 국가가 떠맡아준다. 국민 세금을 투입해 전국 곳곳에 도로망을 더 확충하면 자가용 운행의 효용이 늘어 자동차가 더 많이 잘 팔리게 된다. 공중위생과 사회보장도 국가의 일이다. 오히려 다른 수많은 공장에서 일하는 대다수 노동자의 저임금 상태를 새삼 돌이켜보는 까닭이다. 포드 공장에서도 노동기간 6개월 미만, 21살 미만, 그리고 여성 노동자는 ‘하루 5달러’를 요구할 권리가 없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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