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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주의 거부, ‘진보 요새’ 허물기
[집중기획] 위기의 실리콘밸리 ④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한 진짜 이유
[155호] 2023년 03월 01일 (수) 볼프람 아일렌베르거 economyinsight@hani.co.kr

 
창조적인 파괴자인가?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는 다혈질인가? 일론 머스크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볼프람 아일렌베르거 Wolfram Eilenberger 철학자

   
▲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사들인 이유는 돈도 아니고 기술적 목적도 아니다. REUTERS

모든 것을 몰락시키고 결국엔 파괴하는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려 한다면 그의 프로필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가 정치에 관심 갖는 방식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사회라는 것은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의 행동을 지배하는 원칙이 있다면 타인의 생각이나 요구에 굴복하는 것을 완전하고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일반적인 보상, 돈, 명성, 특권 같은 것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삶이 그의 일이고, 그는 자기 방식대로 이를 성취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일을 즐기는 유일한 방식이다. 아니면 싸우다 쓰러지거나.”
자유시장의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바로 이런 개인이 단문메시지 서비스 트위터를 사들였다. 그의 이름은 일론 머스크다. 그는 1971년 남아프리카에서 광산 소유주인 아버지와 모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2002년 미국 시민이 됐다. 두 차례 결혼해 일곱 자녀를 두었다. 무엇보다 그는 지난 30년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산업 혁신가이자 ‘창조적인 파괴자’였다.
마법 같은 속도로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엑스를 통해 전세계 자동차·우주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이제 그는 세계적 주요 여론 형성 매체(트위터)도 파괴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에 상응해 불안감도 생겨났다. 독일 언론계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에게 트위터는 정보 획득을 위해, 그리고 도덕적 선명성을 확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머스크의 행보는 금전적 동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만성적으로 적자를 내던 트위터를 440억달러에 인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동으로 게시글을 올리거나 팔로하는 이른바 ‘봇 계정’(Robot-Accounts)을 근절하려는 캠페인을 제외하면, 엔지니어의 기술적 도전 대상으로서도 머스크는 이 소셜네트워크에 큰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걸까? 무엇이 아스퍼거증후군 다혈질 환자를 사회적 뻐꾸기 둥지로 몰아가고 있는가? 그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모든 중요한 결정은 그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기업은 결국 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소설 <파운틴헤드>의 단서
앞에서 인용한 캐릭터 묘사에 중요한 단서가 있다. 머스크 본인이 한 말이 아니라, 러시아계 미국 여성 작가이자 철학자인 아인 랜드(1905~1982)가 쓴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소설 <파운틴헤드>(The Fountainhead)에서 주인공으로 설정한 천재 건축가 하워드 로아크의 캐릭터다. 저자의 예언대로 1943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자유지상주의라는 개념 아래, 오늘날까지 자유의 땅 미국에 거주하는 수백만 명의 자아상을 뒷받침하는 특유의 철학, 혹은 세계관의 문학적 기반 문서가 됐다.
그중에는 피터 틸(페이팔 공동창업자) 같은 선도적인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이 있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도 있다. 이해가 곧 정당화를 의미하지 않지만 머스크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랜드의 소설 주인공, 그리고 그의 일관되게 이기적인 삶의 철학보다 더 나은 단서는 없을 것이다. 머스크는 랜드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랜드의 소설 세계에서 문명의 발전은 오직 창조적이고 반사회적인 외톨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에 따르면 중요한 문화적 도약, 예를 들어 바퀴나 비트코인의 발명 같은 것은 최대한 수평적인 계층 구조에서 지속적으로 팀 작업을 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것은 충돌할 각오가 된 주동자의 아이디어와 솔루션에 기인한다. 이것이 머스크가 그의 회사를 운영하고 조직하는 방식이다. ‘마이 웨이 오어 더 하이웨이’(My way or the highway·내 방식대로 하거나 아니면 떠나라)라고 할 수 있다. 미팅? 완전 시간 낭비다. 합의? 스스로 생각하기 싫거나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한테나 필요한 것이다. 사고는 본질적으로 남에게 위임할 수 없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기업가적 혁신가의 동기는 외부의 부추김이 아니라 스스로 부과한 행동 목표를 가장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데서 나온다. 그래서 초집중형 인간인 머스크를 둘러싼 전설은 당연하다. 주당 100시간 일하는 것이 기본이다. 휴가는 조직된 지루함이다.
 

   
▲ 2022년 10월28일에 찍은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계정에 “새(트위터)는 해방됐다”(The bird is freed)라고 쓰여 있다. REUTERS

평등은 정신질환이라 생각
이상적인 직원은 사회적 인정이나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 이유와 가치를 다른 사람의 판단에 맡긴다. 이는 자신의 결정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돈 자체를 목적이라 생각하는 이는 돈이 무엇이고,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돈은 순전히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목적이란 다른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로부터 최대한 독립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연과 문명 사이의 순전히 감상적인 구분, 즉 진보를 가로막는 구분은 단호히 거부한다. 어머니 지구는 우리의 고향 행성일 수 있지만 미래에도 계속 그런 상태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머스크의 우주탐사 회사가 추진하는 화성 식민지화는 단지 첫 번째 테스트 과정에 불과하다.
랜드의 소설 같은 인생을 사는 영웅이 자기 의지로 추구하는 목표로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사회적 권력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의지를 강요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없고, 복잡하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행위는 다른 사람의 의지에 자신을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예속의 주요한 형태다. 특히 권력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랜드나 머스크의 관점에서 볼 때 도널드 트럼프는 자유롭고 자기 결정적인 존재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이 시대의 전형적인 비개인(non-individual)일 것이다. 돈과 인정 외에 내적 동기가 없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권력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고 또 말하는 사람이다. 여기에도 절대적 한계가 있다. 자유지상주의자는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증오발언을 무엇보다 혐오한다.(모든 형태의 집단에 대한 발언 또는 옹호 역시 엄격히 거부한다!) 미국의 헌법과 그에 따른 작은 정부를 보존하는 일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 대부분 진보 성향을 가진 많은 ‘트위터 저널리스트’들이 이런 세계관과 머스크를 위협으로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파운틴헤드>에서 주인공 로아크의 적수가 되는 인물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언론인이자 네트워커인 엘스워스 투헤이다. 미국 최대 미디어그룹의 기자로 일하는 그는 로아크의 직업적 성공을 방해한다. 그는 여러 위원회에 참여하고, 장학금을 수여하고, 그의 친구들로부터 한두 개의 상을 받는다. 랜드는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어떤 것에도 큰 열정이 없고 자신만의 관심사도 없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뿐이다. 이 때문에 그는 스스로 우월성을 획득하려 하지 않고, 대신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우월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올라갈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끌어내릴 수는 있다. 그는 남보다 더 큰 일을 해낼 수 없다. 하지만 평준화할 수 있다. 평등은 그의 가장 큰 열정이 됐다.” 투헤이의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우리 모두가 평등하고 교환 가능하다고 믿는다.” 머스크에게 이는 순응주의를 뜻하는데, 국가가 바라는 정신질환이다.

‘투헤이 원칙’에 대항
투헤이가 이 시대 사람이라면 강력한 트위터 권위자일 것이고, 언제나 좋은 뜻인 그의 트윗은 올바른 단어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머스크는 그가 속한 엘리트 집단의 적잖은 주요 인물처럼 ‘관용’ ‘연대’ ‘평등’ ‘지속가능성’이라는 수사적 기치 아래 ‘투헤이 원칙’이 대중적 판단의 영역에 스며들어 이념적으로 점유했고, 심지어는 구체적으로 정당정치까지 침투했다고 본다. 랜드와 머스크에 따르면, 이 생존을 위협하는 프로세스에서 트위터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트위터는 특히 미국에서 선의의 순응주의 요새가 됐다. 더는 그래서는 안 된다.
트위터는 머스크의 비호하에 극단적인 검열 해제라는 수단으로 모든 ‘투헤이 원칙’의 화신에 대응할 것이다. 머스크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것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 Der Spiegel 2022년 제52호
American Sprengmeister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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