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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혀야 성공한다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미술 투자
[155호] 2023년 03월 01일 (수)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미술사학자
 

   
▲ 유영국의 1965년 작 <작품>(개인 소장). 고향 경북 울진의 산과 하늘을 모티브로 색채에 대한 격정이 터질 듯 발산되는 1960년대 걸작 가운데 하나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시장이 한창 뜨거웠던 수년 전 경매회사 직원들 말에 따르면 요즘 고객은 작품을 대부분 투자 목적으로 구매할 뿐 아니라, 작품을 사고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매물로 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물론 미술품 가격이 수백만원에서 수억, 수십억원씩 하니 단순히 보고 즐기기 위해 지출할 액수는 아니다. 당연히 투자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다만 미술품은 단기가 아니라 부동산처럼 오래 묵혀야 하는 장기투자용 자산이다. 성공한 투자가들은 하나같이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미술 투자 역시 시장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미술시장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면, 투자로 성과를 내려면 우선 공급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생전에 꽤 고가에 거래되던 한국 근대미술 대가들의 상당수 작품이 유족의 방만한 관리로 가격이 폭락했다. 대표적인 한국화가 운보 김기창과 그의 부인 우향 박래현을 비롯해, 1966년 프랑스 망통 비엔날레에서 금상을 받고 한국 최고의 추상화가로 대접받은 남관, 고유의 설화 소재와 독특한 마티에르(질감)로 인정받은 최영림 등 숱한 작가들의 미술시장이 유작의 매각으로 망가졌다.
이에 비해 유족이 재단을 세워 작가 연구를 수행하는 등 지속적 관리를 했던 유영국은 최근 김환기와 함께 한국근대 추상의 대가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오늘날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단색화 역시 해당 작가들이 미술계 내에 탄탄한 입지를 지니면서 작품을 함부로 팔지 않고 잘 보관했기에 외국 갤러리의 뒤늦은 수요에 부응할 수 있었다.
작품의 공급량 관리는 무엇보다 관리하는 갤러리의 유무에 달려 있다. 갤러리 입장에서 전속작가는 비용이 드는 장기투자여서 신중한 검토로 실력 있는 작가를 선별한다. 당연히 시장 영향력이 큰 갤러리일수록 까다로운 기준으로 작가를 선별하기 마련이어서 어느 갤러리 소속이냐만으로 작가의 가능성과 수준에 대한 일차적 검증이 완료된다. 전속 갤러리는 작가 검증 외에 안정된 시장 조성과 좋은 컬렉터와의 연결을 수행한다. 작고 작가일 경우 유족과 계약해 유작 판매를 대행한다.
통상 갤러리에 전속된 작가는 작품 가격의 절반을 갤러리에 나눠주고, 갤러리는 그 절반의 금액에서 전시 및 작가 관리 비용을 충당한다. 따라서 최종 고객에게 판매할 때 할인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갤러리가 없는 작가일 경우 구매자가 딜러, 갤러리 혹은 최종 컬렉터인가에 따라 판매가격이 50~100%에서 임의로 정해진다. 갤러리가 있는 작가는 전시가격을 중심으로 시장가격이 안정되지만, 갤러리가 없는 작가의 경우 전시가격과 딜러가격으로 이중가격이 형성된다. 단기에 큰 수익을 원하는 사람은 반값에 작품을 살 수 있는 작가를 선호한다. 하지만 시장은 안정된 가격이 유지되는 작가를 신뢰하기에 일반적으로 후자의 경우 시장가격이 50%에도 못 미치게 된다.

부나방 같은 요즘 투자자들
갤러리의 정말 중요한 기능은 전속작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단일 창구로서 고객을 선별하는 것이다. 좋은 갤러리의 경우 젊은 작가를 전속할 때 당장 돈 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수백만원대 작품을 팔아서 얻는 금전적 이득은 사실상 무시할 만한 수준이며, 전시는 가격이 오를 때까지 작가가 성장하는 과정을 고객에게 반복적으로 보여 각인시키는 수단이다. 갤러리 전시에서의 판매는 몇 점을 파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파느냐가 관건이다. 대개 좋은 갤러리는 좋은 컬렉터를 고객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작품을 소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작가에게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런 고객에게 작품을 팔면 작가가 성장하기 전에 경매시장 같은 유통시장에서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낮아 자연스럽게 시장 공급량이 제한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일반인에게 갤러리의 문턱은 높다. 돈이 많으면 고객 대접을 받기 쉽겠지만, 돈이 있다고 아무나 작품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갤러리에 전속작가는 장기간 함께 가야 할 동반자이자 자산이다. 그런 자산을 사서 쉬이 팔아버리는 고객을 갤러리는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갤러리가 신뢰하는 고객이 되는 과정은 갤러리, 궁극적으로 작가에게 좋은 컬렉터가 되기 위한 학습 과정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일이 으레 그렇듯 이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술시장이 뜨거워질 때마다 단기매매를 노리는 고객을 만난다. 시장에 편승해서 한몫 잡아보겠다고 들어오는 신규고객에게 갤러리의 문턱은 높다. 그래서 이들은 접근 가능한 작가에게 작품 여러 점을 갤러리 가격으로 사거나, 별다른 문턱 없이 상대보다 더 높은 가격을 내면 살 수 있는 경매를 이용한다. 절반 가격에 구매한 작품은 일단 두 배 장사로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지만 막상 돌아서 팔려고 하면 시장가격이 그 아래이기 십상이고,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받은 작품은 시세보다 비싸기 일쑤여서 시세가 하락하기 전에 팔고 싶어 마음이 조급하다. 이래서는 수익도 내기 어렵고 해당 작가의 시장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이렇게 단기 차익 내지 거래 수수료를 벌기 위해 움직이는 전문 업자를 ‘딜러’라고 한다. 경매에 입찰하거나 갤러리가 없는 작가에게 접근하는 단기투자자는 당연히 전문가가 제시하는 적정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줘야 경매에서 작품을 살 수 있고, 딜러가 접근하는 작가보다 못한 작가에게 접근할 수 있다. 단기투자자는 시장에 들어오자마자 전문 딜러와 경쟁하는 셈이어서, 그들보다 미술시장을 더 모르는 신규 참여자를 만나지 않고는 이익을 남기기가 어렵다. 이런 선수들과 경쟁해서는 이길 수 없다. 성공하자면 이들 딜러보다 미술시장의 훨씬 강자인 좋은 갤러리와 한편이 돼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3월호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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