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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한 공산주의자들이 주는 교훈
[이재성의 노벨경제학상 다시 읽기] 로버트 포겔과 더글러스 노스
[155호] 2023년 03월 01일 (수) 이재성 san@hani.co.kr

 

   
▲ 199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직후 로버트 포겔(왼쪽)과 그의 부인이 감격해하고 있다. 노벨재단

 
1993년 노벨경제학상을 함께 받은 로버트 포겔(1926~2013)과 더글러스 노스(1920~2015)는 젊은 시절 공산주의자 또는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경제사 분야의 업적으로 일가를 이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공산주의 도래의 필연성을 역설하는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사 연구를 중시하는데, 전향한 뒤에도 이들의 학문적 관심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수상 이유는 “경제와 제도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경제 이론과 정량적 방법을 적용하여 경제사 연구를 새롭게 한 것”이다.
로버트 포겔의 대표 연구인 미국 경제 발전에서 철도의 역할에 관한 저서 <철도와 미국의 경제성장: 계량경제사 에세이>(Railroads and American Economic Growth: Essays in Econometrics History, 1964)는 참신한 연구 방법과 도발적 결론으로 당시 학계를 시끄럽게 했다. “창조적 파괴”라는 수사로 유명한 조지프 슘페터(1883~1950)에 의해 널리 받아들여졌던 통념(기술혁신이 경제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포겔은 철도가 미국 경제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철도가 없는 가상현실을 구상하고 이를 실제와 비교했다. 1890년대 운송 인프라가 마차와 운하, 자연 수로로 제한됐다고 가정하고 실제로 철도가 역할을 한 현실과 비교한 것이다. 이 연구방법론을 반사실적(Counterfactual) 가정을 통한 사회비용편익 분석(Social cost-benefit analysis)이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포겔은 철도로 사회적으로 절약한 비용이 통념과 달리 국민총생산(GNP)의 2.7%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직관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리는 막연한 추측을 실제 데이터로 검증해 반박했다. 나아가 그는 몇 가지 위대한 혁신이 아니라 여러 기술 변화의 합이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결론 내렸다. 포겔의 학문적 범주는 계량경제사(Cliometrics)로 분류한다.
노예제도에 대한 저서 <십자가 위의 시간: 미국 흑인 노예제의 경제학>(Time on the Cross: The Economics of American Negro Slavery, 1974) 역시 논란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었다. 포겔은 이 책에서 노예제도가 비효율적이고 수익성이 없다는 기존 견해가 틀렸음을 밝혔다. 노예제도는 비인간적임에도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었으며, 비효율적이어서가 아니라 비인간적이어서 정치적 결정에 따라 폐지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포겔의 세 번째 중요한 연구는 경제인구학인데, 사망률 감소의 원인을 현대 의학의 획기적인 발전에서 찾는 통념과 달리, 영양 상태 개선이 더 중요한 구실을 했음을 데이터로 입증했다. 사망률과 음식 섭취량, 키와 체중을 비롯한 개별 통계를 생의학과 경제학의 학제간 연구로 분석한 국제적 협업이었다.
신제도경제학의 선구자인 더글러스 노스는 조직과 제도의 관점에서 슘페터의 기술 우선주의를 반박한다. 예를 들어 1968년 발표한 ‘대서양 횡단 해상운송의 생산성’에 관한 논문에서 그는 조직 변화가 기술 변화보다 더 큰 역할을 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중세부터 18세기까지 서유럽의 경제 발전을 고찰한 결과, 개인의 재산권에 기반한 인센티브가 경제성장의 전제 조건이며, 제도가 경제성장의 원인이자 장애물이라고 분석했다.

데이터로 통념 반박
노스에 따르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는 국가의 규제가 느슨하고 길드 시스템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중상주의가 이미 발전해 경제생활과 대외무역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있었고, 이에 따라 경제성장은 미약했다. 17~18세기 스페인의 경제 발전이 더뎠던 이유 역시 재산권과 관련한 모호한 규칙 같은 제도적 장애물에서 찾았다. 기술 변화는 성장 과정의 일부이며, 효과적인 경제 조직이 경제 변화의 핵심이라는 것이 노스의 지론이다. 어찌 보면 닭-달걀 논쟁 같은 성격이 있긴 하지만, 인센티브와 효율적인 조직이 먼저 있어야 혁신이나 기술 변화도 일어난다는 주장인 셈이다.
1990년 저서에서는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다른 국가는 가난한지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제도는 인간이 질서를 만들고 교환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시도하는 기본 구조를 제공한다”며 제도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거래 비용은 커지고, 이것이 개발도상국과 사회주의국가 모두의 경제침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노스가 말하는 제도는 “우리의 존재 방식과 행동 양식에 영향을 주는 서면과 불문율의 모든 규칙과 용례를 내포하는 것”이다. 법률, 헌법 같은 형식적 제약이나 규칙뿐만 아니라 비공식적 제약(행동규범, 관례, 도덕적 행동)까지 포괄한다.
노스는 사람이 선택을 내리는 데 개인의 신념과 이데올로기, 편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수학적 정확성과 우아함을 부여해 마찰이 없고 정적인 세계를 모델링하는 신고전주의를 비판하고 현실 세계의 선택과 경제 작동 원리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행동경제학과 맥락이 통한다. 노스는 특히 시간 요인과 사회 갈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경제 분석이 탈역사적이 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기관과 신념 체계 모두 변해야
포겔과 노스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1990년대 초반은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체제 경쟁이 막을 내리면서 자본주의 진영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역사의 종언(프랜시스 후쿠야마)이 선포되던 시점이다. 젊은 시절 평등의 가치를 추구했던 이들에게 새로운 지향점을 알려준 세이렌의 노래는 성장이라는 멜로디였다.
성장을 일구는 데 자본주의적 조직과 인센티브만큼 강력한 제도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됐다. 그러나 이제 성장은 자연파괴와 기후위기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지 오래고, 지구의 보존과 인류의 생존보다 우위에 두어야 할 가치는 없다는 사실 또한 명백해졌다. ‘성공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기관과 신념 체계 모두 변화해야 한다’는 노스의 말은 이렇게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성공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기관과 신념 체계 모두 변화해야 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3월호

* 노벨경제학상은 뒤늦게 따로 태어난 사생아 같은 노벨상이지만 현대 자본주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같은 존재다.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업적과 관련 논쟁을 통해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본다. 너무 전문적이지 않은 상식의 수준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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