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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비평가 도움 없이 소셜미디어로 셀프홍보
[TREND] 워홀의 후손들- ① 무너지는 출세 공식
[154호] 2023년 02월 01일 (수) 이코노미 economyinsight@hani.co.kr

신세대 예술가들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에서 경력을 쌓고 포르셰나 디오르를 홍보한다. 비평가는 신세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속물스럽다고 깎아내리지만 신세대 예술 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타냐 팔렌치크 Tanya Falenczyk
알렉산더 퀸 Alexander Kühn
제바스티안 슈페트 Sebastian Späth
<슈피겔> 기자

   
▲ 신세대 예술가 파비네 마이어가 웃으며 자신의 작품 앞을 거닐고 있다. 파비네 마이어 인스타그램

팀 벵겔은 이제 겨우 서른 살인데 노화를 지연시킨다는 상품을 광고했다. 닥터 페터 하르티히(Dr. Peter Hartig) 브랜드의 안티에이징(항노화) 세럼이 “진정한 젊음의 샘”이라고 업체는 광고한다. 안티에이징 세럼 10㎖ 가격은 무려 74.99유로(약 10만원)다.
안티에이징 세럼 케이스에는 벵겔이 그린 흰색 바탕의 황금색 무늬 그림이 있다. 황금색 무늬는 석류를 연상시킨다. 벵겔은 2022년 11월 초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석류가 그리스 신화와 페르시아 신화에서 장수의 상징이었다’고 올리며 “유료광고 포함”이라고 명시했다. 세럼에 석류 성분이 들어 있지는 않지만, 케이스에 석류 디자인을 한 것은 예술의 자유에 속할 것이다.
예술가 벵겔은 풍족한 삶을 누린다. 그가 기업들과의 협력에 적극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벵겔은 2020년 신발 브랜드 수(Sioux)와의 협업에서 기후중립적 비건 운동화를 디자인했고, 이 외에 비료로 사용 가능한 스니커즈 모델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벵겔은 포르셰와도 협업했다. 그의 2021년 베를린 작품 전시회를 위해 포르셰는 셔틀 서비스를 제공했고, 케이터링(행사 음식 제공) 비용을 일부 부담하기도 했다. 벵겔은 2022년 10월 포르셰 슈투트가르트 럭셔리 매장 개장식 참석으로 보답했다. 개장식에는 할리우드 배우 패트릭 뎀프시, 모델 토니 가른, 엔터테이너 클라스 호이퍼움라우프도 참석했다. 기업 행사에 예술가들이 참석하는 것은 최신 추세다.
벵겔은 대표적인 신세대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신세대 예술가는 대부분 젊은 남성이다. 소셜미디어로 이름을 알린 예술가들은 마치 인플루언서처럼 소셜미디어로 팬들에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과 작품활동을 세세하게 공개한다. 이들은 특별전시회를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영상에 담는다. 벵겔의 인스타 팔로어는 28만3천 명, 페이스북 팔로어는 50만 명이다. 그가 작업 과정을 공개한 영상의 조회수는 1천만 회에 이른다.

   
▲ 신세대 예술가 팀 벵겔은 풍족한 삶을 누린다. 기업들과의 적극적인 협력 덕분이다. 팀 벵겔 인스타그램

저명 예술가보다 벌이 좋아
독일 일간 <빌트>(Bild)는 팀 벵겔을 “문화계 진정한 혜성”으로 지칭했다. 반면 대부분 언론의 문화면은 그를 의도적으로 애써 무시한다. 기존 예술계에서 그의 존재감은 0에 수렴한다. 벵겔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벵겔의 신세대 예술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 가격으로 최대 8만유로(약 1억원)까지 부른다.
전통적인 예술시장에는 엄격한 불문율이 적용된다. 기존 예술시장에서 예술가들이 유명 인사가 되려면 미술관이나 주요 컬렉션에서의 전시 등을 먼저 해야 한다. 혹은 미국 뉴욕의 가고시안(Gagosian) 갤러리나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 갤러리, 독일 슈프뤼트 마게르스(Sprüth Magers) 갤러리 등 주요 갤러리 소속도 명성의 기준으로 통한다.
인스타그램 스타 예술가들에게는 이런 불문율이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존 저명한 예술가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신세대 젊은 예술가가 많다.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광고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다.
예술 판매 시장이 인터넷으로 점점 옮겨가면서 예술시장 권력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전세계 최대 특수보험업체 히스콕스(Hiscox)의 2020년 연례 연구보고서에서 설문 응답자의 3분의 2는 ‘예술작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한 적이 있다’고 했다. 현재는 해당 수치가 무려 80%를 넘는다. 이제 예술을 정의하는 것은 갤러리 소유주나 박물관장, 큐레이터, 비평가뿐이 아니다. 황색언론과 인스타그램·틱톡 팔로어, 그리고 홍보대행사와 대기업 마케팅 부서도 무엇을 예술로 간주해야 하는지 결정한다.

   
▲ 팀 벵겔이 2020년 신발 브랜드 수(Sioux)와 협업한 신발. Sioux 웹사이트

굿즈가 된 예술
이렇게 엘리트 예술시장과 더불어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2의 예술시장’이 형성됐다. 벵겔 등 인터넷 스타 예술가들이 제2의 예술시장에서 새 규칙을 확립하고 있다. 기존 예술시장에서 비웃음거리가 됐을 작품이 제2의 예술시장에서는 통하기도 한다. 인터넷 스타 예술가들은 지금까지 미술관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예술을 재정립한다. 이들의 작품은 매력적이고 재미를 선사하며, 아무런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 무엇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인터넷 예술품은 마치 장식 같기도 하고, 이케아 매장에 전시해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자율성을 상실한 예술>의 저자 볼프강 울리히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선이 흐려지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 예술시장에서 예술, 디자인, 패션, 시각적 유흥거리 혹은 하이브리드 등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기존 분류 방식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제 예술가가 관람객에게 “벽에 걸거나 세워둘 것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예술은 팬들을 위한 굿즈(상품)가 됐다.
예술 소비자의 목적은 더 이상 단순한 작품 소유에 있지 않다고 울리히는 설명한다. 예술을 구매하려는 동기는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사람들에게 이제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제 미학적 범주만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소비자는 예술가에 대한 호감도, 예술가의 이력, 예술가의 관점 등을 고려한다.” 예술가가 작품 자체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팀 벵겔처럼 말이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벵겔이 사는 고향 도시 에슬링겐의 일요일 오후. 올림머리에 키 190㎝가 넘는 벵겔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슈피겔> 취재진에게 자신의 화실을 소개했다. 그의 화실은 목공소로, 이후엔 카센터로 사용된 적이 있다고 한다. 화실 천장에는 아직도 크레인 후크가 달렸다. 계단은 그라피티(벽에 낙서처럼 그리거나 페인트를 분무기로 내뿜어서 그리는 것)로 가득하다. 2층에는 지역 저축은행에서 열린 벵겔의 전시회 포스터 ‘황금 젊은이, 에슬링겐에서 세상으로’가 붙어 있다. 벵겔은 몇 년 전 미국 뉴욕에서 작품전시회도 했다. 무명의 갤러리였지만 말이다.
벵겔은 먼 길을 돌아 예술계에 발을 들였다. 고등학교 졸업시험 ‘아비투어’를 끝내고 독일 패션 브랜드 휴고보스(Hugo Boss)에서 재단사 실습을 받다가 그만뒀다. 이후 그는 대학에서 보건관리를 공부하다 예술사와 철학으로 전공을 바꿨지만 학위는 받지 못했다.

 

   
▲ ‘닥터 페터 하르티히’ 브랜드의 안티에이징 세럼. 흰색 바탕의 황금색 무늬는 장수의 상징인 석류를 그린 것으로 팀 벵겔의 작품이다. 닥터 페터 하르티히 웹사이트

SNS는 무대이자 변화 주체
벵겔이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2016년 샌드아트 퍼포먼스를 통해서였다. 그는 알루미늄 복합재로 만든 캔버스에 특수한 산업용 접착제를 뿌린 뒤 모래를 붙여 그림을 그린다. 사진을 찍어놓은 풍경이나 인물이 대상이다. 캔버스를 세워서 털어내면, 접착제에 붙지 않은 수북한 모래알이 우수수 아래로 떨어진다.
벵겔은 시대정신의 물결에 올라탔기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건강한 식생활과 기후보호는 그의 작품활동에서 주요 주제다. 그는 2021년 중량 10㎏의 순금으로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아보카도 베이글’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이 작품이 아보카도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기를 원했다. “아보카도는 슈퍼푸드로 인식되지만, 재배에 엄청나게 많은 물이 소비된다.” 그는 과소평가받는 신토불이 채소 슈피츠콜(끝이 뾰족한 양배추)을 주제로 2023년에 작품을 만들 계획이다.
예술 밖에서도 음식은 벵겔의 주요 사업이다. 벵겔은 2021년 7월 슈투트가르트에 전 축구선수 티모 힐데브란트와 함께 비건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곳 메뉴에는 초밥과 대체육으로 만든 닭고기 요리가 있다. 지속가능성을 항상 강조하는 벵겔은 항공동맹 ‘스타얼라이언스’(Star Alliance) 광고에도 스스럼없이 출연한다.
벵겔 같은 예술가들과 접촉하려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으로 연락하면 된다. 인터넷 예술가를 대리하는 갤러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 예술가는 스스로 마케팅과 작품 판매까지 하는 일이 적지 않다.
소셜미디어는 이들에게 무대이자 시장일 뿐만 아니라 예술 자체를 변화시키는 주체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작품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기존 예술시장이 아닌 인터넷이라는 플랫폼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예술이론가 볼프강 울리히는 말한다. “컬러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그림 세계에서 다양하고 강력한 컬러를 사용할수록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모티브는 세속적이어야 한다. 관객이 스스로 예술가가 되려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
이 말이 맞는다면 파비네 마이어(27)는 많은 것을 제대로 하고 있다. 2022년 11월 초 마이어는 독일 베를린의 힙한 지역 베르크만키츠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슈피겔> 취재진을 맞이했다. 이 여성은 집에서 작품활동을 한다. 그의 그림이 벽마다 걸렸고 서재에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작품은 다채로운 색상의 어린이 느낌이 주를 이룬다. 마이어가 식탁에서 보여준 그림은 소가죽으로 보이는 것 위에 푸르고 노란 용기가 그려졌다. 그 옆에는 성냥이 있다.
마이어의 집에는 야구장갑과 ‘페즈 캔디’ 디스펜서가 있다. 두 가지는 그의 여러 그림에도 등장한다. 초기 작품에는 의자와 타일, 그리고 레몬이 자주 나왔다. “시답지 않게 들리겠지만, 나는 레몬이 엄청나게 미학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마이어는 예술가인 어머니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배웠다고 한다. 대학에선 출판학을 전공했다. 어린이책 <원숭이 타피르>를 2019년 출간했다. 그의 화가명은 빙스(Bings)다.
마이어는 ‘인스타그램 화가’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인스타그램으로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집을 공개하고 심지어 가구 브랜드도 언급했다. 인플루언서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홈스토리다.
마이어의 작품은 ‘쿤스트(Kunst) 100’이나 포스터숍인 ‘월오브아트’(Wall of art) 등의 온라인 갤러리에서 살 수 있다. 젊은층은 예술작품 인터넷 구매 선호도가 상당히 높다. 엠제트(MZ)세대에서 오프라인 갤러리를 선호하는 비율은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마이어는 대형 캔버스 배송이 까다로워 때로는 작은 캔버스를 선호한다.

   
 

“예술시장 민주적으로 변화”
마이어는 인터넷이 예술시장을 민주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금세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이 있는데, 예술가가 기존 오프라인 갤러리에 진입하기 위해 수년간 고통받을 이유가 없다.” 자신이 전통적 예술계에서 시작하지 않은 것은 “처음엔 장벽으로 작용”했지만 “이제는 전통 예술계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는 시선에도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마이어는 아직 ‘투잡’을 뛰고 있다. 그는 홍보 컨설턴트로도 일한다. 지난 2년간 에이전시 두 곳을 설립했다. 에이전시 고객에는 모델 슈테파니 기징거의 화장품 브랜드와 성인용품숍 아모레리(AMORELIE) 등이 있다.
‘빙스’ 마이어가 젊은층에 잘 알려진 것은 그의 소셜미디어 팔로어가 많아서라기보다는,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 덕택이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1만7천 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패션 블로거 니케 판 딘터(팔로어 9만8천 명), 인테리어 전문가 율레스 필브란트(팔로어 16만7천 명) 등 인플루언서들의 자택 벽에 걸려 있다. 마이어의 그림은 이들의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고스란히 노출된다.
마이어는 2022년부터 인테리어디자이너로도 일하고 있다. 톰테일러(Tom Tailor) 브랜드와 협업해 다이아몬드와 원 문양의 형형색색으로 구현한 양탄자를 디자인했다. 가로 1.6m, 세로 2.3m 되는 순모 재질의 추상적인 수레국화 문양의 양탄자는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가격이 750유로(약 100만원) 정도다.
홍보(PR) 캠페인을 통해 마이어의 양탄자 작품은 날개를 달았다. 그는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들의 집에서 자신의 양탄자 작품을 사진 찍어 각 언론사에 보냈다. 인테리어 잡지 <아키텍추얼 다이제스트>(Architectural Digest), 라이프스타일 잡지 <인스타일>(Instyle), <글래머>(Glamour) 등 여러 잡지사가 마이어의 양탄자 사진을 실었다.
예술과 경제의 결합이 서로에게 얼마나 이익을 줄 수 있는지는 1980년대부터 줄곧 실험 대상이었다. 당시 현대적 작품이 투기 대상이 되면서 예술가는 더 이상 별종이 아닌 몸값이 비싼 사람들로 정의됐다. 베엠베(BMW), 지멘스, 도이체방크 등 독일 대기업들이 문화적으로 능력 있고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예술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브랜드와 예술가의 협업 시대도 시작됐다.
 

   
▲ 팀 벵겔은 항공동맹 ‘스타얼라이언스’(Star Alliance) 영상 광고에도 출연했다. 광고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 팀 벵겔이 2021년 중량 10㎏의 순금으로 제작한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아보카도 베이글’. 팀 벵겔 누리집

ⓒ Der Spiegel 2022년 제47호
Warhols Enkel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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