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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두고 브랜드와 협업… 질문하지 않는 작품들
[TREND] 워홀의 후손들- ② 예술의 진보인가 퇴보인가
[154호] 2023년 02월 01일 (수) 타냐 팔렌치크 economyinsight@hani.co.kr

타냐 팔렌치크 Tanya Falenczyk
알렉산더 퀸 Alexander Kühn
제바스티안 슈페트 Sebastian Späth
<슈피겔> 기자

   
▲ 소셜미디어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이자 다우어(왼쪽)와 예술가 파울 슈라더. 슈라더는 다우어를 매니저로 두고 작품 홍보에 적극 활용한다. IdeeDialog 인스타그램

스웨덴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 술병은 키스 해링 등 스타 예술가들이 디자인한 것이다. 행위예술의 대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미술가 제프 쿤스는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일리의 에스프레소 커피잔을 디자인했다. 의류 체인 에이치앤드엠(H&M)은 2014년 제프 쿤스와의 가방 협업으로 중저가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했다.
예술을 매개로 가장 뻔뻔하게 사업했던 예술가는 아마 앤디 워홀일 것이다. ‘팩토리’(Factory·공장)로 불리던 그의 작업실은 후기 단계에서 대기업을 방불케 했다. 워홀이 창간한 잡지 <인터뷰>를 출간하는 부서와 자동차 브랜드 광고 제작을 전담하는 부서가 따로 있었을 정도다. 유명 인사들은 2만5천달러(약 3천만원)에 실크스크린으로 초상화를 찍을 수 있었고, 워홀은 텔레비전(TV) 출연에 1만달러를 요구하기도 했다.
요즘 젊은 스타 예술가들은 워홀보다 더 잘하는 것이 있다. 과거에는 저명한 예술가들만 기업의 선택을 받았다면 이제는 정반대다.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이름을 알리는 예술가가 나타났다. 파울 슈라더(41)라는 예명을 가진 예술가가 그런 경우다.
슈라더의 실명은 따로 있다. 현관문 문패에 적힌 이름은 이전 직업을 그만두면서 더는 쓰지 않고 있다. 박사 출신의 법학자 슈라더는 2018년 예술가로 살기로 결심하기 전까지 6년간 경제법 전문의 대형 로펌에서 일했다. 그가 13살 때 집의 벽에 스프레이를 뿌렸던 이후 예술은 그의 취미가 됐다.

   
▲ 앤디 워홀은 예술을 매개로 사업을 했던 대표적 예술가로 꼽힌다. 독일 함부르거반호프현대미술관에 상설 전시된 워홀의 작품들. 위키미디어커먼스(장 피에르 달베라(Dalbéra) 촬영)

키스 해링, 제프 쿤스…
“로펌을 그만두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 중 하나였다.” 동시에 고수익을 안겨준 결정이기도 했다. 그는 예술가로 사는 지금, 변호사로 일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그의 작품 가격은 2만5천~6만유로(약 8천만원) 수준이다. 그는 연간 작품 25점을 그린다.
독일 함부르크의 한 오래된 공장 건물 2층에 슈라더의 화실이 있다. 3층에는 그의 거주 공간이 있다. 그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이 흘러내리면서 섞이게 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어떤 예술이 자신에게 맞을지 고민하던 중 마음에 드는 예술이 없어 직접 실험을 거쳐 현재 작업 방식으로 정착했다. 스스로 틈새시장을 찾아내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처럼 말이다.
슈라더는 유명 브랜드들과의 협업으로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이 프로젝트를 관리한 사람이 이자 다우어인데, 그의 소셜미디어 에이전시 이데디알로그(IdeeDialog)의 주요 고객에는 독일 패션 브랜드 에스카다와 아마존프라임비디오가 있다. 다우어는 라인헤센의 포도농장주 율리아네 엘러도 관리하고 있다. “와인과 예술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준다.”
슈라더는 매니저인 다우어의 인맥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다우어의 여동생 카로 다우어는 독일에서 저명한 패션 인플루언서다. 카로가 인스타그램에 슈라더 전시회 사진을 공유하면 400만 명에 이르는 팔로어가 해당 사진을 보게 된다. 슈라더의 작품을 배경으로 카로를 찍은 사진을 올리면 슈라더 작품이 명성을 얻는 식이다.
다우어는 슈라더를 디오르 등 럭셔리 브랜드의 세계로 인도했다. 디오르는 슈라더의 특별전시회에 양복을 특별 협찬했고, 남성 잡지 <지큐>(GQ) 수상식에 참가하는 슈라더에게 턱시도도 협찬했다. 거래 조건대로 슈라더는 협찬받은 의상을 며칠 뒤 돌려보냈다고 한다. 2022년 9월 구찌는 슈라더에게 사진 촬영용 의상을 협찬했고, 앞서 팀 벵겔에게 협찬을 제공한 포르셰는 슈라더에게 더 적극적으로 협찬을 아끼지 않았다.
포르셰가 렌트 방식으로 전기스포츠카를 협찬하면 슈라더는 보통 6개월씩 타고 다닌다. 그리고 6개월 뒤 후속 모델 차량을 받는 식이다. 현재 그는 타이칸을 몰고 있다. 2022년 10월 인스타그램에 타이칸 앞에서 찍은 셀카와 함께 타이칸의 연비 정보도 올렸다. 슈라더는 포르셰와 협업해 ‘파울-슈라더-블루’라는 완전히 새로운 색채도 작업 중이다. 이 색은 포르셰 스포츠카에 사용할 예정인데 양쪽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협업이다.
“브랜드는 예술가와 협력해 문화적 색채를 띠게 된다. 반대급부로 나는 브랜드 후광을 입는다.” 슈라더는 광고 모델료를 받지 않는 대신, 기업들로부터 항공료와 숙박료를 충분히 지원받는다.

   
▲ 알렉산더 횔러가 디자인한 남성 잡지 <플레이보이> 독일판 창간 50주년 기념 표지. 플레이보이> 누리집

위대한 예술은 중요하지 않다
기업과 예술가의 협업은 호혜성에 바탕을 둔 사업이다. 슈라더는 주류 브랜드 캄파리(Campari)의 초대로 2021년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방문했다. 프랑스 파리의 에르메스와 루이뷔통도 방문했다. 그는 협업했던 브랜드를 평소 인스타그램에서 꾸준히 언급한다. 슈라더에게 위대한 예술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멋있게 보이는 것이다.
슈라더는 직접 의류도 제작했다. 2019년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에 디자이너 이리스 폰 아르님과 협업해 캐시미어 스웨터를 제작했다. 스웨터 라벨 앞면에 1989가 적혀 있고 뒷면에 슈라더의 사인이 있다. 스웨터는 한정판으로 89장만 제작했다. 가격은 989유로(약 134만원)였다. 슈라더가 최근 브랜드와 협업한 작품은 피부관리 앰풀 용기 디자인이었다. 화장품 브랜드 바버(Babor)는 슈라더의 작품이 “대가 수준”이라고 칭송했다.
슈라더 등 신세대 예술가들이 승승장구하자 독일의 가장 유명한 갤러리 소유자 요한 쾨니히도 숟가락을 얹으며 태세를 전환했다. 쾨니히는 인스타그램 출신 예술가들을 위해 2019년부터 매년 여러 차례 박람회 ‘미사’(MISA)를 열고 있다. 박람회 미사에 최근 온라인숍이 추가됐다. 예술가는 갤러리스트의 명성 덕을 본다. 갤러리스트의 인맥은 예술가가 판매망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쾨니히는 온라인숍(misa.art)에서 유명한 작가는 물론이고 무명작가들의 작품도 판매한다. 그중에는 최근 구설에 올랐던 인플루언서 퓐 클리만, 가수 크로(Cro, 화가명 ‘칼리토’), TV 진행자 겸 배우 유디트 밀베르크, 광고인 장레미 폰 마트나 베스트셀러 작가 에벨린 바이게르트 등의 작품도 있다. 팀 벵겔, ‘빙스’ 파비네 마이어, 파울 슈라더를 비롯해 셀프 마케팅의 달인 알렉산더 횔러(26)도 미사를 거쳐갔다.
횔러는 스스로가 작품이기도 하다. 횔러의 몸 대부분은 타투로 뒤덮여 있다. 그는 영상과 사진으로 자신의 몸을 많이 노출한다. 오른쪽 어깨에는 상어 한 마리가, 왼쪽 어깨에는 가오리 타투가 있다. 횔러는 “몰디브 휴가 기념품”이라고 말한다. 오른발에는 해골 타투가 있다. “해골 타투로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최초 타투는 “Art is my passion”(예술은 나의 열정)이라고 가슴에 새긴 문구다. 그의 몸에 새긴 타투만 100개가 넘는다.
횔러의 첫인상은 무섭지만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가 소심하고 연약한 사람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자기 몸에 새긴 타투는 보호막이자 인식표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사진에는 가운뎃손가락으로 조롱하고 욕하는 포즈가 많다. “사회를 향한 나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횔러는 오래전부터 외로운 늑대처럼 지냈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시험 아비투어를 치르기 9개월 전에 학교를 중퇴했다. 영재시험 덕택에 예술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뮌헨 근교의 과거 패션 브랜드 창고로 썼던 곳에 횔러의 화실이 있다. 팬들은 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화실을 잘 알고 있다. 팬들은 횔러가 보통 밤에 와인을 마시고 펑크 음악에 맞춰 고래고래 소리치며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도 잘 안다.
횔러는 <슈피겔> 취재진에게 화실을 보여줬다. 화실은 물감 매장을 연상시켰다. 아크릴 물감, 스프레이 물감, 유화 물감이 진열대를 가득 메웠다. 횔러는 잭슨 폴록과 빌렘 데 코닝 등이 썼던 물감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유명 화가의 명성을 업고 가는 것이 그에게는 중요하다.

   
▲ 셀프마케팅의 대가 알렉산더 휠러는 영상과 사진으로 자신의 몸을 노출한다. 몸 대부분이 타투로 뒤덮여 있다. 알렉산더 횔러 닷컴

아버지 인맥 이용하기도
횔러는 기본적으로 손이 크다. 2020년 최초의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그는 곧바로 캔버스 100개, 담배 10갑, 로제 와인 50병을 샀다. 그에게 예술은 환각이자 큰 거래다.
횔러는 2022년 여름 자신의 몸값을 2만유로에서 3만유로로 올렸다. 대신 그림 주문자는 횔러가 가장 선호하는 가로 1.7m, 세로 1.8m 포맷으로 받는다. 그의 작품은 모두 예외 없이 강렬한 색상을 뿜어낸다. 그의 작품 다수가 찡그린 얼굴을 소재로 하고 표현주의적 분위기가 물씬 난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랄프 묄러, 올리버 칸 등 유명 인사들은 집에 횔러 작품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횔러 아버지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연사로 초대된 공통점이 있다. 횔러의 아버지는 동기부여 트레이너 위르겐 횔러다. 횔러의 작품을 산 사람도 있고 선물로 받은 사람도 있다.
새로운 예술시장에서 성공하고 대중성을 얻으려면 전문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횔러는 지난 몇 년간 미디어기업가 알렉산더 엘베르츠하겐의 홍보매니지먼트 회사인 킥미디어(Kick Media)의 관리를 받고 있다. 킥미디어에는 TV 쇼호스트 바르바라 쇠네베르거와 배우 한스 지글도 소속돼 있다.
킥미디어는 횔러의 최초 개인 전시회를 위해 쾰른에 있는 갤러리스트를 연결해줬고, 횔러의 특별전시회에 유명 엠시(MC) 마르코 슈라일을 게스트로 초대하기도 했다. 킥미디어는 횔러를 위해 언론 인터뷰도 마련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인터뷰는 <차이트>와의 알렉산더 횔러 부자 동시 인터뷰였다. 이후 횔러는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했다.
2022년 2월 횔러는 여성잡지 <분테>(Bunte)와 한 인터뷰에서 몇 달 전 약혼 사실을 알리면서 파리 에펠탑 아래서 약혼녀와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같은 해 6월 로마에서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그의 결혼식을 수많은 팬이 지켜봤다. 독일 일간 <빌트>는 “꿈의 결혼식”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뒤 횔러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결혼식 사진이 삭제됐다. 횔러는 당시 자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어떻게 살고 일반 대중에게 자기 삶을 어디까지 공개할지 등을 고민했다고 한다. “나는 자신과 싸웠고 이를 통해 성장했다.”
횔러는 “신발을 바꿔 신었다”고 한다. 이제 더는 황색언론과 기를 쓰고 인터뷰하려 하지 않으며, 유명 인사들이 자신의 그림을 소장한 것을 자랑거리로 삼지도 않는다고 한다. 횔러는 이제 진지한 예술가로 거듭나려 한다.
횔러가 마음을 바꾼 뒤에도 놓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는 여름에 남성잡지 <플레이보이> 독일판 창간 50주년 기념 앞표지에 양손의 가운뎃손가락으로 조롱 몸짓을 취하는 풍만한 가슴의 분홍색 토끼를 그렸다.

   
▲ 파울 슈라더(맨오른쪽)와 디자이너 이리스 폰 아르님(가운데)이 공동작업한 스웨터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리스 폰 아르님 닷컴

ⓒ Der Spiegel 2022년 제47호
Warhols Enkel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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