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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의 부 간접적 향유, 계층상승 꿈에 인생 ‘올인’
[INTERVIEW] 사회학자 알리제 델피에르, 슈퍼리치의 가사노동자 분석
[154호] 2023년 02월 01일 (수) 나이리 나아페티앙 economyinsight@hani.co.kr

 
나이리 나아페티앙 Naïri Nahapétian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22년 4월 프랑스 파리 인근 오베르빌리에에서 히잡을 쓴 이슬람교도 여성이 유모차를 끌고 시장을 지나가고 있다. 가사노동자 가운데 이민자 여성은 최하층에 속한다. REUTERS

슈퍼리치(초고액 자산가)의 가사노동자에게 신분 상승은 고된 일과를 버티는 원동력이다. 가사노동은 쉴 틈이 없다. 고용주가 시키는 일을 노동자는 낮이든 밤이든 해내야 한다. ‘슈퍼리치와 가사노동자의 고요한 세계에 침투하기’는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국립과학연구원(CNRS) 소속 연구원이자 사회학자, 교사인 알리제 델피에르(Alizée Delpierre)가 한 일이다.
부잣집 가사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부자 모시기>(Servir les riches)에서 그는 가사노동자 집단의 이질성을 탐구한다. 가사노동자는 단결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금빛 착취’를 묵묵히 견딜 뿐이다. 착취는 여러 형태로 구현된다. 첫째, 가족주의가 사용자-노동자 관계를 지배한다. 둘째, 사용자는 인종을 고른다. 셋째, 노동자는 있어도 없는 듯 움직여야 한다. 여성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지배-피지배 관계와 일에 대한 무한 투자가 결실을 가져다주리라는 희망(혹은 그의 표현대로 ‘하인의 허황된 꿈’)이 얽힌 세계에 빠져본다.
-슈퍼리치의 가사노동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
가사노동자를 두 집단으로 나눠 연구했다. 먼저 전문직업을 가진 백만장자의 가사노동자 집단이다. 수입이 아주 많은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대표, 주식거래 중개인, 예술품 딜러, 성형외과 의사 등의 가사노동자다. 다른 집단은 배경이 매우 다양하다.
슈퍼리치는 집에서 여러 사람을 부린다. 가사노동 시장은 직무 구분이 명확하다. 집안일을 하는 사람부터 집사까지 노동자 간 위계가 뚜렷하다. 그들 사이를 가르는 어떤 세계가 있다. 학사나 석사 졸업장이 있는 프랑스 국적의 백인은 자신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사람과 어울린다. 최하층 계급인 이민자 출신 여성은 프랑스어를 못하기도 한다.
가사노동은 가난한 사람을 붙잡는 덫이라는 인식이 있다. 부잣집 가사노동자는 사정이 다르다. 돈을 아주 잘 버는 사람도 있다. 맡은 일의 종류와 성격, 노동자의 학력과 인종에 따라 임금이 몇 배나 차이 날 수 있다. 현물급여를 빼고 한 달에 현금 800유로(약 100만원)를 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천~1만유로(약 400만~1300만원)를 버는 사람도 있다. 고가의 선물도 받는다. 초부호의 집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 중에는 부자인 사람도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가사노동 양극화
-가사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가 가족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가사노동자에게 일을 지시하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다. 여성 고용주는 가사노동자를 ‘가족구성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가사노동자가 일하는 집은 그들이 사는 집이기도 하다. 한 지붕 아래 방 한 칸을 얻어 살거나 원룸 등 독립된 건물에서 지낸다. 고용주는 가사노동자가 먹을 음식과 타고 다닐 차를 마련해주고 옷·가방·액세서리 같은 작은 선물을 준다. 여행도 보내준다.
어떤 집은 가사노동자 자녀의 학비와 의료비도 부담한다. 가정부가 교양을 기를 수 있게 도우려는 ‘사모님’도 있다. 예술품 딜러인 여성 고용주가 자기 일과 관련된 지식을 가사노동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해서 노동력을 사고파는 고용인-피고용인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일과 가족의 경계를 허물려는 것이다. 하지만 고용인의 그런 행동이 관계를 외려 불편하게 하고 노동자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력 착취 정황이 가려질 수 있다.
-가사노동 현장에서 노동력 착취가 일어나는 것은 노동자가 단체로 행동하는 동일 집단이 아니라는 점과 연관이 있나.
초부호 집의 가사노동자는 사회적 특성이 비슷한 일반 가정부와 다르다. 거기에서는 집사가 집주인이 한 말을 부하 직원인 나머지 노동자에게 전달한다. 모든 가사노동자가 지배-피지배 관계로 묶여 있다. 노동자 간 문화적·인종적 차이가 큰 경우도 있다. 가사노동 현장엔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단체가 없다. 가사노동자가 사용자에게 단체로 항의하는 일이 없다. 작은 불만이 있으면 남들 모르게 조용히 집주인에게 얘기한다. 일에 염증을 느낀 사람은 그만두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 2022년 9월 프랑스 최대 민영방송 <테에프1>(TF1)과 인터뷰하는 사회학자 알리제 델피에르와 그가 부잣집 가사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부자 모시기> 표지. TF1 누리집

인종 편견
-가사노동자를 부릴 때 ‘인종 편견’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이 시장에서 이력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노동자는 주로 평판으로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는다. 여성 고용주는 인종 따위의 특성을 특정 능력과 연관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흑인 여성은 단단한 몸, 지치지 않는 체력,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고 생각해 보모로 고용하는 사례가 많다. 백인 남성은 여성을 지도 관리하는 일에 적합하다고 여겨서 집사 일을 맡긴다. 집사는 지성을 갖춘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리핀인에 대한 평판도 좋은 편이다. 윗사람 말을 잘 따르고 입이 무겁다고 여긴다.
가사노동자도 고용주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이국적 면모’에 부응하려 한다. 서인도제도 출신 프랑스인 가사도우미가 생각난다. 그는 고용주가 자신을 아프리카 출신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고 닭고기 야사(양고기·닭·생선을 토막 내 라임즙과 매콤한 양념에 재운 뒤 졸이듯 익혀 쌀밥 또는 조밥을 곁들이는 음식) 등 아프리카 음식을 만들었다. 고용주가 아프리카 출신 도우미에게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가사노동자의 몸은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
가사노동자는 한없는 노역에 시달린다. 몸에 피로가 많이 쌓이는 일을 대부분 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한다. 늦은 밤에도 고용주가 일을 시킬 수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피곤하다고 하면 안 된다. 아픈 데가 있거나 일하다가 다쳐도 이를 숨기려 한다. 일터에서 노동자 몸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가사노동자는 되도록 침묵을 지켜야 한다. 있지만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가사노동자의 직업윤리 규범은 소리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또 자신의 출신 성분이나 인종을 드러내는 억양을 깨끗이 버려야 한다. 여성 고용주는 가사도우미의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매력적인 가사도우미가 지배관계를 역전시켜 권력을 잡을까 두려워서다. 용모를 너무 가꾸는 여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대판 노예
-‘금빛 착취’라는 표현을 썼다. 무슨 뜻인가.
일부 가사노동자는 혹독한 착취의 피해자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한다. 그러고도 한 달에 500유로(약 64만원)를 벌지 못한다. 이런 현대판 노예의 실태는 관련 재판이 있기 전까지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슈퍼리치의 가사노동자 대다수는 일이 힘들어도 그에 합당한 급여와 별도의 선물을 받는다. 부자와 가사노동자가 항상 착취자와 피착취자 관계는 아니다. 이 점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가사노동 현장이 착취가 일어나기 쉬운 공간인 건 맞다. 고용인-피고용인 관계가 친밀함으로 흐려지기 때문이다. 가사노동 현장은 감시가 어렵다. 외부와 단절돼 있어서다. 가사노동자에게 적용하는 단체협약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사노동이 신고되지 않은 탓에 사용자가 마음대로 노동자를 부릴 여지가 크고 법규를 우회하기도 쉽다. 게다가 노동자가 먼저 사용자에게 불법노동을 제안하는 일도 많다. 합법적 체류 자격을 갖춘 사람도 그렇게 한다. 그 편이 경제적 이득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슈퍼리치의 가사노동자가 혹독한 노동을 신분 상승의 발판으로 삼는다고 볼 수 있나.
슈퍼리치의 가사노동자로 일해 빈곤층이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런 신분 상승의 희망이 가사노동자의 꿈을 키운다. 나는 이 꿈을 피에르 부르디외(프랑스 사회학자) 표현을 빌려 ‘환몽’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은 힘든 만큼 언젠가 열매를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부잣집에서 일하려는 것은 얻고 싶은 게 있어서다. 어떤 사람은 가사노동과 고용주에게 자기 삶을 바칠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
슈퍼리치의 가사노동자는 얻는 게 많다. 경력을 쌓고 수준을 높이고 이름을 알리고 자본을 모으는 등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 다만 환몽이라고 한 것은 신분 상승의 기회가 좋은 자리를 차지한 일부에게만 오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자가 아무리 계층 사다리를 올라가도 슈퍼리치와 동등한 자리까지 절대 갈 수 없다.
가사노동 환경이 좋아도 달라지지 않는 점이 있다. 노동자는 무한한 투자, 강도 높은 육체노동, 감정적·심리적 시험을 감내해야 한다. 부모나 자녀를 고향에 두고 온 이민자 등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마저 박탈당한다. 돈을 많이 벌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돈을 쓸 시간이 없다. 하지만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틴다. 급여가 많지 않아도 사용자의 재산과 성공을 간접적으로 누린다. 좋은 집에서 일해 행복해하고 유명한 사람을 보필한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가사노동 세계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슈퍼리치의 세계는 그들만의 세계다. 하지만 한두 사람의 신의를 얻어 작은 문을 통과하고 나면 그 안에서 이동하기는 쉽다. 나는 프랑스 상류사회 인명록인 <보탱 몽댕>(Bottin Mondain)의 편집장을 지낸 분을 통해 그 세계에 발을 디뎠다. 육아도우미로 취업해 다른 가사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집사 아카데미에 연락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들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3년 1월호(제430호)
Les domestiques vivent la richesse de leurs employeurs par procuration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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