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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세와 예술가 기본소득은 합리적이다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젠트리피케이션
[154호] 2023년 02월 01일 (수)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미술사학자

 

   
▲ 2015년 9월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있는 가수 싸이의 집 앞에서 복합문화예술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미술작가들이 강제집행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2014년 가수 싸이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새로 산 건물을 놓고 건물주인 싸이 쪽과 세입자인 ‘테이크아웃드로잉’, 그리고 미술계에서 구성한 ‘한남포럼’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싸이의 유명세에 힘입어 이 싸움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세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왜 건물주가 조물주보다 위에 있는지, 예술과 예술가의 힘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영국의 상류 신분을 의미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한 말로 낙후 지역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고급 주택과 대형 문화·상업 시설이 들어서는 상류화나 고급화를 뜻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로 인해 임대료가 올라 지역 발전과 개발에 직접적 기여를 한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 즉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결과를 지칭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 사례는 미국 뉴욕 맨해튼을 들 수 있다. 1970년께 싼 임대료에 넓은 작업공간을 마련하려는 예술가들이 맨해튼 남부의 버려진 공장지대인 소호로 몰려들었다. 당시 백남준의 플럭서스(Fluxus·1960~1970년대 구미 각지에서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운동으로 삶과 예술의 조화를 기치로 함) 동료이던 조지 마키우나스도 작업을 포기하고 낡은 공간을 재단장해 예술가들에게 싼값에 파는 부동산개발 업자로 변신했다. 1974년 백남준은 자신의 여생을 보내게 되는 ‘원텐(110) 머서(가)’ 스튜디오를 그에게서 샀다. 이 정도면 예술가들의 ‘소호 러시’라고 부를 만하다.
1970년대에 화랑이 곳곳에 생겼고 예술가가 모이는 레스토랑, 술집, 서점, 옷가게 등도 일대에 문을 열었다. 상권이 커지면서 문화·예술가의 거리로 거듭나자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가 올라 지역개발에 이바지했던 예술가와 소규모 자영업자는 1980년대부터 소호를 떠나야 했다. 밀려난 예술가들은 이스트빌리지를 거쳐 브루클린의 덤보(맨해튼 브리지와 브루클린 브리지 사이의 지역)와 윌리엄스버그로 다시 이주하면서 해당 지역들을 모두 유명 갤러리와 힙스터가 모이는 핫플레이스로 만들었다. 그러나 도시를 탈바꿈한 예술가들에 대한 보상은 없이 오히려 이들은 값싼 외곽으로 다시 쫓겨날 뿐이었다.

소호, 홍대앞, 이태원, 을지로…
한국의 경우,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에서 도시의 확장과 재정비가 시작됐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이런 움직임은 지방으로 퍼졌다. 서울 강남이 본격 개발되기 이전인 1980년대 초반까지 동대문에서 서대문을 동서로 잇는 종로는 명실공히 서울의 중심이었고, 종로서적이 있던 종로2가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최고의 상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령도시처럼 공실이 즐비한 채 을씨년스럽다. 지역 도시들도 새로운 도심이 조성되면서 저층의 오래된 건물이 모인 구도심은 대부분 공동화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서울 세운상가 일대는 2000년 초반 일괄 재개발 계획을 세웠다가 시장이 바뀌면서 중소 규모 개발과 지역재생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 과정에서 공구상들이 빠져나간 일부 지역에 예술인들이 입주했다. 불과 10여 년 만에 을지로 일대는 ‘힙지로’라 할 정도로 핫한 젊은이들의 명소가 됐다.
한편 많은 음악인과 작가가 거주하고 출판사가 밀집했던 서울 홍익대 인근은 2000년 전후로 강남 압구정을 제치고 젊은이들이 찾는 일번지가 되면서 지가와 임대료가 급등했다. 어쩔 수 없이 지역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인근 외곽 지역인 상수·합정·동교·망원동 등으로 이전하면서 홍대 상권을 광역화했다. 일부는 철물점이 밀집해 있던 문래동의 빈 공간으로 이주해 2008년 문래동을 ‘문래창작촌’이라 부를 정도로 많은 예술인이 거주하는 지역이 됐다. 지금은 재개발 지역으로 고시됐던 문래동 일부 지역이 소규모 개발과 재생 지역으로 변경될 정도로 상권이 다시 활성화됐다.
홍대 인근의 재개발 과정에서 2009년 칼국숫집 ‘두리반’의 주인 부부가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였다. 당시 예술가들은 “홍대 앞에서 밀려나는 음악가의 처지와 철거민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연대의식으로 두리반 투쟁에 대거 가담했다. 미술·음악·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은 이곳을 농성장이자 문화운동의 장으로 연출했고, 이를 계기로 2012년 ‘미술생산자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한바탕 이슈가 됐던 와중에 2014년 건물주 싸이가 예술가들의 전시공간이자 작업공간이던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명도소송과 불법적인 강제집행을 했다. 예술가들이 지원사격을 위해 ‘한남포럼’을 결성하고 미술계 공동의 투쟁으로 비화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본격적으로 이슈화했다.
뉴욕이건 서울이건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 활성화를 통한 지가 상승에 직접 기여한 당사자를 역차별하고 건물과 토지 소유주에게 부당한 불로소득을 제공하면서 한 사회의 정당한 자원배분을 왜곡한다. 자영업자들의 경우 사업이 잘되면 임대료가 덩달아 오르면서 막상 매출이 늘어도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이 건물주에 귀속된다. 그나마 자영업자는 지가(임대료) 상승에 기여한 대가로 권리금을 청구하지만 이마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쯤 되면 아이들의 장래 희망 일순위가 왜 건물주이고 건물주가 조물주보다 위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경제법칙이 정의로워야 한다고 봤던 <진보와 빈곤>(1879)의 저자 헨리 조지는 독점과 더불어 토지사유는 도덕법칙에 어긋나는 경제적 불의라고 봤다. 사유재산제하의 시장경제를 유지하면서 지대의 이런 부당함을 없애기 위해 그는 토지가치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역재생은 계획한다고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그런데 예술가들이 이주하고 활동하는 것만으로 지역재생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면 예술은 존재 자체로 지역사회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지자체마다 토지의 가치상승분을 세금으로 거둬 예술가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것이야말로 정의롭고 합리적이다. 천국일지 지옥일지 알 수 없는 자본주의의 외부를 찾느라 힘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부당한 제도와 관행부터 고쳐가며 자본주의를 사용할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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